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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유류세 인상 반대 '노란조끼' 시위 현장
 프랑스 유류세 인상 반대 "노란조끼" 시위 현장
ⓒ 연합뉴스/E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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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첫 주말, 파리 도심은 뿌연 최루가스 연기로 뒤덮였다. 지난 11월 17일부터 프랑스에서 일고 있는 '노란 조끼'(Gilets Jaunes) 시위 때문이다. 주말인 8일 노란 조끼를 입은 시민들이 파리 도심인 샹젤리제 거리에서 최저임금 인상, 부유세 부활, 연금 개혁, 대입제도 개편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고, AP, CNN 등 국제언론들은 이를 긴급 타전했다. 

한국 언론의 보도는 과격 시위에 초점을 맞추는 모양새다. <TV조선>과 MBC 보도가 대표적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아름다운 도시로 꼽히는, 유명 관광지 파리가 전쟁터로 변해버렸습니다.", "샹젤리제는 전쟁터가 돼버렸습니다." - <TV조선> 12월 3일

"당초 유류세 폭등에 항의하는 중산층들의 시위로 출발했지만, 일부 급진세력들이 가세하면서 폭력사태로 변질됐다는 게 프랑스 정부의 주장입니다." - MBC, 12월 3일


우리 언론 보도만 보면 파리 노란 조끼 시위가 그저 저 먼 나라 프랑스의 급진세력이 벌이는 과격시위쯤 되는 것 같다. 과연 그럴까?

프랑스는 혁명의 나라로 역사에 자주 등장한다. 멀게는 1789년 프랑스 대혁명에서 가깝게는 1968년, 이른바 '68혁명'까지 프랑스에서는 역사의 변곡점에서 늘 세계사의 흐름을 바꾸는 혁명이 일어났다. 특히 이번 노란 조끼 시위는 여러모로 68혁명을 방불케 한다. 

낙후된 시설에서 불붙은 혁명의 불꽃    68혁명의 불꽃은 아주 사소한 데서 일었다. 이 시기 대학에 갓 신입생들은 제2차 세계대전 후 경제호황에 힘입어 부유한 환경에서 자라났다. 그런데 학생들이 대학에서 마주한 건 낙후된 시설과 구태의연한 학교 행정이었다. 당시 학생들이 문제점으로 지적한 것 중 하나는 이랬다. 

"남학생의 여학생 기숙사 방문을 금지한다."(낭테르 대학 규칙) 

학생들의 불만은 당시 세계적 흐름과도 맞물려 있었다. 68혁명 즈음 파리에서는 베트남 전쟁을 끝내기 위한 파리 평화회담이 열리고 있었다. 1960년대 베트남 전쟁은 미국은 물론 유럽에까지 반전 운동의 물결을 일으켰다. 이 시기 전세계 학생운동은 베트남 전쟁의 영향을 받았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학생들은 단순히 전쟁 반대를 넘어 냉전체제가 가져온 경직된 사회구조에까지 의문을 제기했다. 학생들의 사소한 불만은 시대흐름과 맞물리면서 대규모 시위로 번져 나갔다. 학생들의 시위는 파리 평화회담이 열리던 1968년 5월 정점에 올랐고, 당시 소르본느 대학은 해방구 역할을 톡톡히 했다. 

68혁명이 체제 전복으로까지 이어진 건 아니다. 당시는 드골 대통령이 집권 중이었고, 기성 세대들은 드골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68혁명은 세계사에 큰 획을 그었다. 68혁명을 연구하는 연구자들은 1968년 파리 5월 혁명이 당시 전세계가 안고 있던 19세기적 지체현상을 벗어나 20세기로의 이행을 이뤄낸 계기라는 데 대체적으로 인식을 같이한다. 요즘 유행하는 '포스트 모더니즘'도 68혁명의 결과다. 
 
유류세 인상에서 비롯된 프랑스의 노란 조끼 시위는 1968년 혁명과 비슷한 양상으로 흐르는 모양새다.
 유류세 인상에서 비롯된 프랑스의 노란 조끼 시위는 1968년 혁명과 비슷한 양상으로 흐르는 모양새다.
ⓒ C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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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류세 인상 반발, 그 이면엔?

50년 뒤인 2018년 파리 도시 중심가엔 노란 조끼의 물결이 일고 있다. 노란 조끼 시위도 68혁명처럼 아주 사소한 데서 시작됐다. 직접적인 원인은 유류세 인상이었다. 

마크롱 정부는 지난 1년간 환경오염 방지 대책의 일환으로 경유 유류세를 23%, 휘발유 유류세를 15%를 올렸다. 프랑스 시민들은 분노하기 시작했다. 마카롱 정부가 기업들에게는 세금을 깎아주면서 서민들에게만 세부담을 짊어지운다는 게 주된 비판이다. 

아닌 게 아니라 프랑스의 빈부격차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파리에서 활동 중인 목수정 작가가 전한 상황은 무척 심각하다(관련 기사 : "루이 16세보다 더 심한 마크롱" 폭력 시위에도 '노란조끼' 택한 프랑스인). 

"지난 2008년 사르코지 정권 때부터 정부는 경제위기를 말하며, 시민들에게 고통 분담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한국이 IMF 경제위기 때 그랬듯이 고통을 짊어지는 것은 오직 직장인과 영세상인, 노동자들 뿐. 대기업들은 정부가 시행하는 노동법 개악으로 쉬운 해고와 정부지원금, 기업분담금 축소라는 선물만 가져갔다. 그 결과 지난 10년간 프랑스에서 가장 부자인 500인의 자산은 12배로 늘어난 반면, 빈곤층으로 새로 전락한 사람은 60만 명에 달한다. 노숙자 수도 50%나 증가했다."

빈부격차가 벌어지고 있는 와중에 정부는 복지를 축소해 나갔다. 다시 목 작가의 말이다. 

"정부는 '위기를 긴축으로 넘겨야 한다'는 논리로 복지를 차곡차곡 축소했다. 교육시설과 병원, 연금이 줄어들었고 공기업들은 민영화됐다. 슈퍼리치들은 그들이 벌어들인 돈을 고용을 위해 재투자하는 대신 세금도피처에 쌓아 놨다. 지금 세금 도피처에는 이들이 은닉한 돈 800억 유로(105조 원)가 잠자고 있다."

노란 조끼 시위는 유류세 인상이라는 다소 사소해 보이는 지점에서 출발했지만, 빈부격차 확대와 복지정책 축소라는 정부정책과 맞물려 증폭된 셈이다. 그런데 이게 비단 프랑스만의 문제일까? 지금 이 시대는 역사상 가장 부유하면서, 분배는 가장 불평등한 시대다. 노란 조끼 시위를 살짝 확대 해석하면 이런 거대한 부의 불평등 분배에 대한 저항으로 볼 수 있다. 

이 지점에서 프랑스 노란 조끼 시위는 촛불혁명 이후의 한국사회에 적잖은 시사점을 남긴다고 생각한다.

이른바 촛불혁명 이후 2년의 시간이 지났다. 그런데 돌아가는 상황이 미묘하다. 무엇보다 새 정부 출범 직후 드높았던 '적폐청산'의 목소리는 2년이 지난 지금 잦아드는 양상이다. 이 와중에 박근혜 청와대와 양승태 대법원이 자행한 사법농단 수사는 법원의 잇단 영장기각으로 제동이 걸렸다. 보수 자유한국당은 새정부 출범 직후 지금까지 개혁입법에 어깃장을 놓는 중이다. 

그런데, 시선을 이런 '큰 이야기' 말고 소소한 일상으로 돌려보았으면 좋겠다. 그간 적폐청산이라는 거창한 대의만 따진 건 아닌지 돌아보자는 말이다. 적폐청산을 하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적폐는 의외로 가까이에 있을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는 종종 쉽게 손에 잡히는 문제에서 후진적인 모습을 드러내곤 한다. 예를 들어보자. 갑질이 비단 거대 기업 총수만의 일일까? 조직 크기와 무관하게 소소한 권력만 쥐었어도 쉽사리 갑질이 다반사로 이뤄지는 게 한국 사회다. 의식이 올곧고 한국 정치현실에 준엄하게 비판의 날을 세우는 이가 페미니즘이란 말만 나오면 거부반응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런 일들의 뿌리는 따지고 보면 가부장 중심의 위계적 권위주의다. 이런 일그러진 권위의식은 하루 빨리 청산해야 할 적폐가 맞다. 

이렇게 소소한 문제에 집중하다보면 자연스럽게 '큰 이야기'로 시야가 넓어질 수 있으리라고 본다. 반면 손에 잡히는 적폐를 청산하지 못하면, 결국 적폐청산은 관련자 몇 명을 사법처리하거나 국회에서 졸렬한 타협을 보는 데 그칠 것이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적폐는 다시금 고개를 들 것이 분명하다. 

이런 맥락에서 노란 조끼 시위는 적잖은 시사점을 던진다. 유류세 인상이라는, 얼핏 작아 보이는 문제에서 마크롱 대통령의 국정운영 전반으로, 더 나아가 전지구적인 부의 불평등에 대한 반발로까지 번졌으니 말이다. 

프랑스 시민들은 68혁명 이후 50년 만인 2018년 노란 조끼로 다시 한 번 혁명의 역사를 쓸 기세다. 프랑스 노란 조끼 혁명이 우리나라에 나비효과를 일으켜, 촛불혁명 이후 지지부진해진 우리 사회의 개혁움직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주기를 바란다.

태그:#노란 조끼 시위, #유류세 인상, #마크롱 정부, #68혁명, #적폐청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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