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동피랑 꼭대기에 있는 찻집에 앉아 내려다본 강구안바다. 치열한 삶의 현장이기도 한 이 바다는 그래서 더욱 푸근한 사람냄새가 난다.
 동피랑 꼭대기에 있는 찻집에 앉아 내려다본 강구안바다. 치열한 삶의 현장이기도 한 이 바다는 그래서 더욱 푸근한 사람냄새가 난다.
ⓒ 김숙귀

관련사진보기

  
통영에 갔다. 얼마 전에 다녀왔는데도 또 그리워졌다. 이제는 마음에 새겨질 만큼
익숙한 길을 달려서 여객선터미널에 도착했다. 그리고 길건너 서호시장으로 들어간다. 통영의 별미인 시락국을 먹을 참이다. 언제나 그렇듯 서호시장은 활기가 넘친다.

시장골목 끝에 있는 시락국집에 들어선다.  주인아주머니가 웃으며 아는 척을 한다. 오랫동안 드나들면서 자연스레 생긴 인연이다. 이 집의 메뉴는 시락국, 단 한 가지다. 원래 새벽일찍 바닷일을 나오던 사람들이 뜨끈하게 한 그릇 먹고 속을 풀던 음식이었는데 지금은 통영의 별미가 되었다. 장어와 시래기를 넣고 푹 끓여서 만든 시락국을 먹고 있노라면 건강해지는 기분이 든다.

시락국을 먹고 서호시장을 나와 슬슬 걸어서 문화마당쪽으로 향한다. 가는 길에
강구안 골목길도 둘러볼 생각이다. 통영의 명동으로 불리며 융성했던 강구안 골목은 여객선터미널이 서호동으로 옮겨가며 쇠락해졌다. 하지만 몇 년전 ‘강구안 푸른골목만들기’ 사업이 진행되면서 골목은 되살아나고 있다.

이중섭의 그림속에서 튀어나온 커다란 물고기 한 마리가 서있는 골목으로 들어선다. 푸른 눈의 외국인 조각가들이 스테인리스 밥그릇뚜껑으로 만든 작품이다. 골목안에는 소를 그린 간판을 달고 있는 이중섭식당도 있다. 이중섭의 자유로운 영혼을 보듬어준 강구안 골목에는 아직도 그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강구안골목안에 있는 이중섭식당. 생선찜을 전문으로 하는 집인데 특히 
마른 물메기찜이 맛있다고 소문이 나있다.
 강구안골목안에 있는 이중섭식당. 생선찜을 전문으로 하는 집인데 특히 마른 물메기찜이 맛있다고 소문이 나있다.
ⓒ 김숙귀

관련사진보기

   
골목을 돌자 칠십 년동안 대를 이어 손님들에게 따뜻한 국밥을 끓여낸 원조돼지국밥집이 있다. 그 곁에 오래된 전당포가 있고 그 맞은 편에 석녕간이라고 쓰인 글씨가 보인다. 가까이 가니 할아버지께서 불에 달구어진 호미날을 망치로 힘껏 내리치며 벼리는 중이다. 오십 년간 한 번도 풀무질이 끊긴 적 없다는 설명글 곁에 서서 할아버지의 작업을 구경한다.
 
강구안골목안에 있는 대장간. 세월의 흔적이 켜켜이 내려앉은 석녕간에서 어르신은 오늘도 연장을 다듬는다.
 강구안골목안에 있는 대장간. 세월의 흔적이 켜켜이 내려앉은 석녕간에서 어르신은 오늘도 연장을 다듬는다.
ⓒ 김숙귀

관련사진보기


석녕간곁에 여행자카페가 있다. 생긴지 얼마되지 않는 이곳은 ‘빅피처패밀리’라는 TV프로그램의 촬영지가 되었던 곳이다. 골목의 풍경은 낡았지만 온기있는 과거와 새로운 현재가 서로 살비비며 지내고 있는 모양새다.

골목 여기저기에 백석의 시가 붙어있다. 그의 시 앞에 멈춰섰다. 추운 겨울날, 집도 아내도 없이 어느 목수네 집에 ‘쥔을 붙이었던’( '남신의주 박시봉방' 중에서..세를 들다라는 뜻) 그의 서러움을 생각하면 때로 울컥해진다. 강구안 골목에 올 때면 가슴에 물기를 올리고 슬프고도 아름다운 백석의 시앞에 서서 한참을 머물곤 한다. 사랑하는 여인, 난이를 만나지는 못했지만 통영으로의 여행은 그에게 아프고도 새로운 경험이었을 것이다.

백석뿐만 아니라 많은 예술가들이 통영을 사랑하고 그림과 문학, 그리고 음악에 통영을 녹여내었다. 그들의 삶을 품고 있는 좁은 골목을 거니노라면 어디에선가 화가 이중섭과 청마 유치환이 술잔을 기울이며 주고받는 정담이 들릴 것만 같다.
 
강구안골목 곳곳에 백석의 시가 붙어있다. 해금된 이후 불었던 백석의 열풍을 떠올려본다. 그의 시에는 뛰어난 언어감각과 절제된 이미지, 그리고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이 나타나 있다.
 강구안골목 곳곳에 백석의 시가 붙어있다. 해금된 이후 불었던 백석의 열풍을 떠올려본다. 그의 시에는 뛰어난 언어감각과 절제된 이미지, 그리고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이 나타나 있다.
ⓒ 김숙귀

관련사진보기

  
흠씬 젖어있던 추억과 정감에서 빠져나와 문화마당으로 간다. 문화마당에는 언제나 관광객들과 바둑을 두는 어르신들, 그리고 사람을 전혀 겁내지 않는 비둘기가 있다. 그리고 두 사람의 터줏대감이 있다. 칼갈이 할아버지와 커피를 파는 아주머니다. 통영의 마지막 톱장인 할아버지는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톱이나 칼을 갈고 계신다. 나도 늘 곁에서 할아버지가 칼을 가는 모습을 한동안 지켜본다. 요즘도 할아버지께 칼을 갈아달라고 부탁하는 사람이 있을까 생각하며 가끔 안쓰러운 마음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몇 년전 시집까지 내신 할아버지는 돈벌이에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눈치다.

엄마와 함께 놀러나온 꼬마는 비둘기가 모여있는 곳으로 자박자박 걸어간다. 한 무리의 비둘기가 푸드득 날아오르자 꼬마가 까르르 웃으며 팔짝팔짝 뛴다. 초겨울 한낮의 따뜻한 햇살이 내려앉은 문화마당에 꼬마의 천진한 웃음소리가 공처럼 튀어오른다.

할아버지와 함께 늘 문화마당을 지키고 있는 커피아주머니에게로 가서 동전 다섯 개를 주고 커피 한잔을 받아든다. 커피를 들고 바닷가에 걸터앉아 도심 깊숙이 들어와 있는 바다를 본다. 겨울의 초입, 바람은 차지만 한낮의 따사로운 햇살이 솜사탕처럼 포근하다.
 
차 한잔 들고 문화마당바닥에 걸터앉아 도심깊숙히 들어온 바다를 본다.
노부부가 배안에서 그물을 손질하고 있다. 강구안바다는 따뜻하다.
 차 한잔 들고 문화마당바닥에 걸터앉아 도심깊숙히 들어온 바다를 본다. 노부부가 배안에서 그물을 손질하고 있다. 강구안바다는 따뜻하다.
ⓒ 김숙귀

관련사진보기

   
강구안바다에는 고만고만한 고깃배들이 모여 쉬고 있다. 배안에서 노부부가 그물을 손질하고 있다. 조업을 끝낸 배가 들어오고 어부는 뜰채로 잡아온 고기를 건져낸다. 아낙네는 고기를 받아담고 길건너 활어시장으로 향한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욕심없이 바다가 내어주는 그만큼만 건져오는 뱃사람들의 소박한 일상이 그대로 다가온다. 그런 사람들을 껴안고 함께 숨쉬는 바다가 그지없이 푸근하게 느껴진다. 그렇게 문화마당에 앉아 통영의 속살을 본다.

사람들은 미륵산에서 바라보는 한려수도를 통영의 1경이라 말하지만 그동안 수없이 통영을 드나든 내 생각은 다르다. 시락국이나 충무김밥으로 배를 든든히 채우고 강구안골목을 거닐며 옛 정서에 흠뻑 젖기도 하고 백석을 만나며 감성에 불을 지피기도 한다. 동피랑 좁은 골목길을 여유롭게 걸으며 아름다운 소년, 어린왕자와 조우하고 남망산공원에 올라 강구안바다를 조망한다. 그리고는 문화마당으로 와서 커피 한잔 들고 걸터앉아 작은 배들이 들고나는 강구안 바다를 느긋하게 바라본다. 그러면 바다사람들의 진한 생명력이 때로 가라앉은 나를 일으켜 세운다.        

통영은 다양한 볼거리만큼이나 먹거리도 풍부하다. 특히 겨울철, 강구안 중앙시장과 활어시장에는 방금 배에서 내린 싱싱한 생선이 펄떡이고 제철을 맞은 물메기와 굴이 넘쳐난다. 여객선터미널 맞은 편에는 복국과 물메기탕을 끓이는 식당들이 늘어서 있고 굴요리 전문점들도 많다.  활어시장 버스정류장곁 동광식당은 늘 줄을 설 정도로 복국이 유명하다. 이 겨울, 매력적인 도시 통영으로 나서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태그:#통영, #강구안바다, #백석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여행은 마치 숨을 쉬는 것처럼 나를 살아있게 한다. 그리고 아름다운 풍광과 객창감을 글로 풀어낼 때 나는 행복하다. 꽃잎에 매달린 이슬 한 방울, 삽상한 가을바람 한 자락, 허리를 굽혀야 보이는 한 송이 들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날마다 꿈꾼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