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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한 실적주의와 연구비 쏠림 현상,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잡무 분담, 성과에 대한 국제적 평가와 네트워크 부족…. 한국 과학의 진흥을 가로막는 건 이런 낱낱의 문제만은 아니다. 학문의 계승자를 비서나 연구부품 정도로 여기는 학계 풍토부터가 잘못됐다. 교수 지위를 이용해 사욕을 채우는 관행은 연구자들의 사기와 학술 경쟁력을 떨어뜨린다.

국가연구개발사업은 국가 예산 약 20조원이 투입되는 거대 규모 사업이다. 교육부나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사업을 총괄하고 한국연구재단이 용역을 발주하고 예산을 편성ㆍ심의하는 등 실무를 담당한다. 미래 먹거리나 기초연구를 위해 편성된 예산은 연구 실무자들의 인건비이자 생계유지 수단으로 사실상 임금에 해당한다. 그러나 근로자성이 부정되는 문화와 연구비 공동관리(poolingㆍ풀링) 등 여러 관행이 인건비의 정당한 집행을 가로막기 일쑤다. 학생연구자들은 근로자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까닭에 법적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어서다.

한국연구재단은 감사를 통해 다른 목적에 쓰인 돈을 회수(연구비 환수조치)하고 해당 연구자가 재단의 연구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한다(연구참여 제한조치). 2016년부터는 연구비 관련 범행이 드러나면 적극적으로 고발하고 있다. 한국연구재단에 따르면 재단 감사 결과 연구비를 개인적인 목적으로 사용해 수사기관에 고발 조치한 교수가 최근 3년간 22명에 달한다.

2016년 5명, 지난해 7명, 올해 10월 1일 기준 10명이다. 재단 관계자는 "관행을 그대로 방치하면 국내 연구가 발전할 수 없다는 인식 아래 일벌백계 차원에서 연구비 환수 조치 등 행정처분과 함께 수사기관에 고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런 제재조치가 오랜 기간에 걸쳐 이뤄져 해당 연구실의 연구는 사실상 중지돼 큰 피해를 입는 반면, 정작 교수들은 처분을 피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점이다. 연구재단이 연구비 횡령 등의 문제를 발견해 부처에 보고하면, 부처는 여러 단계의 검토를 거쳐 최종 처분을 내린다. 이때 해당 교수가 제재처분에 대한 집행정지를 구하는 가처분 신청을 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법원이 교수의 신청을 받아들여 처분을 정지하면, 이 집행은 판결 이후로 미뤄지면서 제재조치가 임시로 풀리는 결과가 발생한다.

실제 서울 시내 모 대학교 공대에서 대학원생들에게 지급된 인건비 4억3,000여만원 중 1억5,800만원을 공동관리하다 적발된 윤모 교수는 "제한조치를 취소해달라"고 행정소송을 내 승소했다. 한국연구재단이 부과한 연구비 환수조치와 국가연구개발사업에 5년간 참여제한 조치 처분이 법원의 판단으로 무력화된 셈이다.

서울행정법원은 판결문에서 "(연구비 공동관리를 금지하는 목적은) 연구원에게 지급돼야 하는 인건비를 본래 용도로 사용하지 않게 되어 연구원의 최소한의 경제적 기반을 무너뜨리고 연구의욕을 저하하는 것을 방지하는 데 있다"라면서 "(윤 교수가) 개인적인 이익을 취한 것은 없어 보이고(중략) 결과적으로 연구 인원에게 모두 지급되었음에도 참여 제한 처분을 하였는 바 향후 교수로서 연구활동을 함에 있어 중대한 지장을 초래하는 것으로서 재량권을 일탈 남용하여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대해 연구비 공동관리와 관련한 소송을 다룬 경험이 있는 실무자는 "연구비와 관련한 법원의 판결 경향이 대학원생들의 눈물을 외면하는 측면이 있다"며 "(법원의) 현실인식과 관점의 차이가 크다고 느낀다"고 털어놨다.

"법원이 연구사회의 풍토를 갈아엎어야 하는 현실적 긴요함을 어째서 외면하는지 씁쓸합니다. 연구사회의 적폐인 교수 갑질, 그리고 연구비 공동관리 관행에 대해 법이 규정한 가장 강력한 제재를 내려도, 정작 실태를 알 수 없는 사법부가 처분취소판결을 내리면 솜방망이 제재를 받거나 무력화되는 결과가 됩니다. 게다가 행정소송에서 교수가 승소해 참여제한 처분이 취소되면, 다시 제재조치를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복잡해집니다."

이에 서울행정법원 관계자는 "행정소송에서는 당사자에게 회복할 수 없는 손해가 발생할 염려가 있을 때 집행을 정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며 "요건을 충족해서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인 것이기 때문에 (행정청이 패소한 결과가 나오더라도) 문제되는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물론 사법적으로 형사처벌로 이어지는 경우도 최근에 많이 나타났다. 하지만 위에서 보듯 법과 현실 사이에서 미꾸라지 빠져나가 듯 하는 비리 교수들이 존재하는 한 오랜 세월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버젓이 국고보조금을 횡령 배임하는 모습들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정부는 적폐청산을 말만으로 하지 말고 이와 같은 문제를 개선해 양심적으로 연구하고 학문 발전에 임하고 있는 수많은 연구자들의 명예와 정당한 권리를 지켜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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