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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의 초대형교회 '명성교회'와 '사랑의 교회'가 보여주는 일련의 모습을 보면서 필자는 한국교회가 얼마나 타락했는지 분명하게 볼 수 있었다. 명성교회의 변칙적인 교회세습과 사랑의 교회 오정현 목사의 목사직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과 이에 대해 교회가 대응하는 모습, 교회 교인들의 행태와 그 교회가 속해있는 교단의 반응을 보면서, 예루살렘 성전을 보시며 눈물 흘리시는 예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예수의 눈물은 이제 분노로 변하여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는(마가 13:2)' 현실을 맞이해야만 했던 예루살렘 성전처럼, 교회 본연의 사명을 뒤로하고 오로지 맘몬(물질- 기독교에서는 하나님 아닌 다른 것을 섬기는 것을 우상이라 한다. 그러므로 기독교에서 '맘몬'이라고 지칭하면 '우상'을 의미한다)에 기초해 있는 교회들도 결국에는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는' 것이 현실화될 것을 필자는 희망한다.

"너희는 세상이 소금과 빛이다(마태 5:13-14)."

위의 이야기는 예수께서 산 위에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심(산상수훈)을 주실 때에 하신 말씀이다. 이 말씀은 초대교회 이후로, 그리스도인뿐 아니라 교회도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다양한 해석이 있을 수 있겠지만, '소금'은 맛을 내는 역할로서 혹은 '방부제'로서 해석된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오늘날의 의미로 풀어보면 그리스도인 혹은 교회는 '살맛 나지 않는 세상을 살맛 나게 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둠'이라는 것이 '거짓과 불의'를 상징하므로 '빛으로 산다는 것'은 곧, 어두운 이 세상에서 거짓과 불의 때문에 방황하며 삶의 방향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등대의 '불빛'과 같은 역할을 그리스도인과 교회가 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그리스도인과 교회가 이런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대부분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대사회적인 책임을 망각하고, 개인 구원과 개교회주의에 빠져 들어가는 오류를 범했다. 그리고 이런 행태는 맘몬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신자유주의라는 체제를 수용함으로써 교회의 대형화를 이루는 쪽으로 발전되었다. 교회의 성공 혹은 목회의 성공은 겉으로 보이는 부흥(양적 성장)으로 평가되었고, 신앙인들조차도 자신들이 다니는 교회의 양적인 크기만큼 자신의 신앙도 크다고 착각하게 된 것이다.

결국, 양적인 부흥을 이룬 교회들은 그것을 바탕으로 양적인 부흥을 이뤄가는 발판으로 삼았으며 주변의 작은 교회들은 흡수 통합되는 형태로 소멸하거나 명맥만 유지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교인들의 욕망과 목회자의 욕망이 적절하게 만나 예수라는 반석 위에 교회가 세워진 것이 아니라 맘몬이라는 반석 위에 교회가 세워지게 된 것이다(물론, 그들은 자신들이 섬기는 교회가 진짜라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맘몬을 기초로 하는 교회나 그 교회에서 헌신 봉사하는 신앙적인 행위는 사실 그리스도교 전통에 서 있는 하나님을 섬기는 행위라기보다는 자기들이 만든 신(우상)을 섬기는 일에 불과한 것이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대부분 교회는 교회의 양적 부흥을 목표로 삼고 있으며, 대다수 목사도 교회의 양적 부흥을 목회의 성공으로 생각한다. 그러는 사이 이미 물질적인 토대를 다진 대형교회는 한국의 교단과 기독교단체에서 막강한 힘을 발휘하게 된다. 그 힘의 원천은 맘몬(물질)이었음은 말할 필요가 없다. 대형교회 목사는 막강한 재력을 이용해서 각종 단체의 장을 맡았고, 그러한 단체들은 대형교회의 후원이 없이는 존립하기 어려운 상황들 때문에 적절하게 타협하며 그들의 불의를 합리화하는 기제로 이용되어왔다. 그리하여 보수대형교회 목사들은 한국교회의 주요한 단체의 장이나 공동행사 등에서 주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자신들의 위치를 공고화할 수 있었다.

'명성교회'와 '사랑의교회' 문제가 다시 사회적인 관심의 표면으로 올라온 가운데 주목할 만한 내용 중 하나는 '교단탈퇴'라는 것이다. 왜, 이것이 주요한 키워드가 된 것일까? 그것 역시도 돈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교단마다 조금씩의 차이는 있겠지만, 교회마다 속한 교단이 있다. 이를 '총회'라고 한다. 총회는 교단을 통칭하는 기구이며, 총회 아래로는 '노회(지역별 단위)'가 있고, 노회보다 작은 시 단위의 '시찰회'가 있다. 교단에 속해있는 모든 교회는 이런 기구의 활동을 위해 교회별로 크기에 따라 분담금을 할당받고, 분담금을 내어 회원교회(혹은 목사)로서의 자격을 유지한다.

당연히 분담금은 교회의 크기에 따라 정해진다. 당연히, 명성교회나 사랑의교회가 내는 분담금의 액수도 상당할 것이다. 그리고 두 교회 예산의 %로 치면 별것 아닐지 몰라도 보통의 교회에서는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금액의 선교비나 후원비 등을 이들 교회에서 담당했을 것이다.

한 예로, 명성교회 부자세습으로 잡음이 일자, 김하나 목사는 자신이 속해있는 서울동남노회에 미자립교회 지원금으로 1억 8천만 원 후원을 시도했다(명성교회, 미자립 교회 지원금 1억 8,000만 출연비대위 "돈으로 회유 시도" 뉴스엔조이 박요셉 기자 (josef@newsnjoy.or.kr)). 그리고 후에도, 미자립 교회 1,000곳에 500만 원씩 50억을 예산 책정하기도 (http://m.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220234) 했다고 한다.

보통 서울에 있는 100여 명 정도 규모의 작은 교회들 일 년 예산이 2억 정도에 불과한 현실에 비추어보면, 명성교회나 사랑의 교회가 시찰회나 노회나 총회 차원에서 담당하고 있는 분담금이나 기여는 물질로 따지면 적지 않을 것이다.

바로, 이 지점 때문에 '교단 탈퇴'라는 것이 그들의 무기가 되고 있는 현실이다. 결국, 그들이 속한 교단의 속내는 뻔하다. 그들이 교단법을 어겨도, 사회법에 따라 정죄를 받아도 교회법 운운하며 오히려 그들을 감싸는 이유는 분명하다. 처벌하고 치리 해야 할 감독기관들이 오히려 그들을 감싸는 행태는 결국 '돈'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할 교회가 맘몬을 따르고 있는 현실, 그것이 한국 교회가 손가락질받는 이유다.

거기에다가 그 교회에 속한 교인들은 그런 잘못된 행태에 대한 대사회적인 비판과 건전한 생각을 하는 이들의 충고를 마치 자신들을 무너뜨리려는 이단을 대하듯 하면서 자신들끼리 똘똘 뭉쳐서 위기를 극복해 내자며 내부결속을 다진다. 대법의 목사자격 없음 판결이 나온 후 사랑의 교회 오정현 목사(?)도 설교에서 "성도들 똘똘 뭉치자!"며 독려했다. 물론, 그를 지지하는 교인들은 '아멘!'으로 화답했고, 아마도 그 일이 하나님을 섬기는 자신들의 신앙적인 결단이요, 행동이라고 믿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맹신은 자신들의 행위가 죄짓는 일인 줄로 모름으로 회개할 기회조차도 박탈하기 때문에 무서운 것임을 다시 한번 느낀다.

대형교회의 교단탈퇴를 왜 두려워하는가? 오히려,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그들이 교단의 치리도 받지 않고, 회개도 하지 않고, 자기들 마음대로 하겠다면 오히려 교단에서 적극 탈퇴를 권고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하여, 그런 교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초로 한 교회가 아님을 분명하게 선포해야 한국교회의 낯이 서지 않겠는가?

맘몬을 섬기는 한국교회, 과연 교회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필자는 그들에게서 교회의 모습이라고는 보이지 않고, 오로지 돈과 권력의 노예가 된 신자유주의라는 괴물만 보인다.  기독교에서는 예수님이 오시는 대림절기를 맞이하여 저마다 성탄의 빛을 밝히고 있다. 그 빛조차도 교회의 크기에 따라 화려함이 더해진다. 그리고 교회는 화려해지는데 예수는 점점 초라해 진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한국기독교장로회 한남교회 담임목사입니다.


태그:#명성교회, #사랑의교회, #대형보수교회, #교단탈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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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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