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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때마다 양당 중에서 선택을 강요받는 유권자들은 사표를 막기 위해 차악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유권자 권리를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지난 세월 내내 사표가 되는 줄 알면서도 정당과 특정 정치인을 뽑을 때 소신 투표를 해 왔다.

촛불 정국으로 정권교체의 필요성이 절실했던 때조차 나는 소신투표를 해 반역자 취급을 받기도 했다. 사표를 각오하고 소신 투표를 하면서 늘 갈등했다. '모' 아니면 '도'인 상황이라 원치 않는 정당으로 지역구 자리가 넘어 갈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유권자의 뜻이 최대한 반영되는 선거 제도를 도입해 정착시켰더라면 나처럼 매번 사표를 각오하고 소신 투표를 하거나, 사표가 될 것이 두려워 차악을 선택하거나 투표 자체를 기권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요즘 대안으로 제시된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문제와 선거법 개정 논쟁이 뜨겁다. 도대체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무엇이길래 시민단체는 적극 주장하는 반면, 정당들은 이견 차이를 보이는 것일까.

오랫동안 거대 양당체제를 이어온 기득권 정당은 소수 진보정당의 약진으로 자기들 밥그릇을 빼앗길 것이 두려워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반대한다. 과연 그들의 염려대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면 거대 정당 의석수가 줄어들까.
  
더 나은 선거제도, 정당시스템, 정부형태에 대한 독일식 모범답안과 해설
 더 나은 선거제도, 정당시스템, 정부형태에 대한 독일식 모범답안과 해설
ⓒ 지식의 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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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복의 <독일 정치, 우리의 대안>은 독일이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통해 군소 정당의 원내 진입, 연정을 통한 합의제 민주주의를 어떻게 실천하고 있는지 알기 쉽게 풀어내고 있다.

저자는 1997년 독일에 유학해 정치학을 공부했다. 박사 학위 취득 후 주독대사관 전문연구관으로 근무하며 독일 연방정부와 독일 정치시스템을 심층적으로 이해하게 됐다. 2010년 귀국해 대학, 국회, 정당에서 일하며 한국 현실정치의 후진성을 깨달았다.

그는 성공적인 민주주의 시스템인 독일의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과 정당 정치 활성화, 의원내각제를 통해 한국도 승자독식 사회에서 합의제 민주주의로 성숙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더 나은 선거제도와 정당시스템의 활성화, 의원내각제로 국회는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는 입법 기관으로서 바로 설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먼저 독일의 정당제도, 선거제도 정치시스템을 차근차근 설명해주고, 한국 정치개혁의 필요성을 논한다. 독일의 정치가들은 오랫동안 정당 활동을 통해 정치인으로서의 소양을 쌓은 사람들이라고 한다.

메르켈 총리는 14살 때부터 정당에 가입해 활동을 했다고 한다. 정당 활동을 통해 정치적으로 필요한 자질을 충분히 계발하고 대화와 합의에 필요한 능력도 갖춰야 한다. 그 모든 것은 정당 활동을 통해 이뤄진다. 정치는 철저하게 정치인이 되기 위해 훈련을 쌓은 정치적 전문성을 갖춘 사람들 몫이다.

독일은 정당 시스템이 발달했다고 한다. 정당을 기본으로 정치가 발달했기에 정치인이 되기 위해서는 정당 활동을 통해 정치적 자질을 인정받고 당원들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십대 후반부터 정당 활동을 하면서 정치적 전문성을 기르는 것이다.

한국도 정당의 당원들에게 권리를 주고 정당을 통해 정치인의 꿈을 키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의원내각제가 안정적인 민주주의 형태로, 대통령 중심제가 해결하지 못하는 비정규직 노동문제, 청년실업 문제 등을 해결할 수 있는 해법이라고도 주장한다.

비례대표제도 독일은 한국과 전혀 다르다. 한국은 직능별 대표를 표방해 장애인, 여성, 이민자 등이나 특정 영역의 전문가를 비례대표로 내세우고 유명인을 영입하기도 한다. 독일은 권역별로 지역을 대표하는 사람이 비례대표가 된다. 정치적 역량을 쌓고 지역과 당의 신뢰를 얻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무엇일까. 핵심은 정당득표율이 정당의 의석수를 결정하는 것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정당득표율에 따라 각 정당의 의석을 결정하는데 이는 지역구에서의 '소선거구 단순 다수제'와 권역에서의 '정당명부식 비례 대표제'를 서로 연동하여 결합한 것이다. -172쪽

한국도 독일처럼 지역구와 비례대표가 있고 1인 2표제로 지역구와 정당에 투표한다. 그렇다면 한국식과 독일식은 어떻게 다를까. 한국은 지역구와 비례대표 당선자를 따로 구분하여 별도 집계하지만 독일은 연동하여 계산한다.
 
어떤 정당의 주 의석수가 특정 숫자로 결정됐을 때 지역구 당선자가 많으면 비례대표 당선자는 줄어들고, 반대로 지역구가 적으면 비례대표는 늘어나게 된다. 지역구 의석은 우리와 같이 1표라도 더 득표한 1인을 당선자로 결정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당득표수 또는 정당득표율에 따라 당선자 수가 결정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모든 유권자의 한 표 한 표는 바로 각 정당의 의석수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 175쪽
 
바로 이 지점이 중요하다. 정당득표율이 정당 의석수를 결정하면 유권자는 사표가 될 것을 염려해 차악을 선택하지 않아도 된다. 또 군소 정당도 원내 진입이 가능해진다. 녹색당이나 노동당 등 진보정당의 원내 진입 가능성이 커진다. 군소 정당들은 연정을 통해 견제와 비판, 정책 제안을 하면서 정당의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사표를 없애고 유권자의 뜻을 최대한 반영할 수 있는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시행된다면 승자독식 사회의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 것이다. 불합리한 선거제도만 바로잡아도 민주주의는 앞당겨진다.

덧붙이는 글 | 독일정치, 우리의 대안/ 조성복 지음/ 지식의 날개/17,000


독일 정치, 우리의 대안 - 승자독식 사회에서 합의제 민주주의로

조성복 지음, 지식의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2018)


태그:#연동형비례대표제, #정당 정치, #협상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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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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