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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고등학교 다닐 적 또래 친구들과 지금 아빠가 가르치고 있는 고등학생을 비교할 때, 가장 크게 달라진 건 뭐라고 생각해?"

대안학교를 다니는 아이가 뜬금없이 물었다. 국어 과목 프로젝트 수업의 중요한 과제라고 했다. 인터뷰한 내용을 바탕으로 보고서를 제출해야 하니 장난치지 말고 심사숙고해서 답하라고 채근했다.

생각은 많았지만, 순간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뜸을 들였다. 30년도 더 지난 그때와 지금을 단순히 비교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교사 생활 20여 년 동안 지금 아이들 앞에서 선배들과 비교하는 말을 하지 않는 건 여태껏 지켜온 불문율이다.

"30년이면 강산이 세 번이나 바뀐 짧지 않은 세월인데, 단지 같은 나이라는 이유로 같은 저울에다 올려놓고 이러쿵저러쿵하는 건 의미 없는 일 같다. 자칫 '요즘 아이들 버릇없다'는 식의 그릇된     편견을 조장할 수도 있고. 아무튼 네가 바라는 답변은 아닐 테지만, 요즘 아이들은 과거보다 뛰어난 점도 있고, 부족한 점도 있는 듯하다."

두루뭉술한 대답에 실망스러운 눈빛으로 '보고서 작성용'으로라도 하나만 꼽아달라고 거듭 채근했다. '묵비권'을 행사하면, 지금 자기의 생각을 아빠의 그것인 양 쓸 수밖에 없다며 통사정했다. 결국 모두가 수긍할 만한 아쉬운 점과 부러운 점 각각 하나씩을 들어 답변을 대신했다.

"요즘 아이들은 점수와 등급 경쟁에 지나치게 매몰돼 있다. 친구들을 딛고 올라서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것 같다. 점수 1점 깎였다고 발끈하거나, 실수해서 내신 한 등급 내려갔다고 울먹이는 아이들의 모습이 이해는 가면서도 솔직히 너무 낯설다.

그런가 하면, 부러운 면도 있다. 자기의 주장을 권위에 주눅 들지 않고 당당히 말하는 아이들이 있다. 학기말 실명으로 적는 강의평가서에 '학생들을 비하하는 표현을 삼가라'거나 '무력감에 빠진 교실은 교사의 책임'이라고 서슴없이 적어낸 경우도 봤다."


강박적 경쟁심을 굳이 아쉬운 점이라고 표현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기성세대의 책임일 수밖에 없다. 20년 전 IMF 이후, 우리 사회는 물론 학교조차 무한경쟁의 정글이 되어버렸으니 아이들을 향해 손가락질하는 건 뻔뻔한 짓이다. 아이들 앞에서 '왕년엔 이렇게까지 심하진 않았다'는 말을 되뇌는 어른들이 있다면, '누워서 제 얼굴에 침 뱉기'라는 이야기다.

자기밖에 모르는 아이들과 어느새 경쟁에서 밀려나 무력감에 빠진 아이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남들 가는 대로 따라가는 아이들, 그리고 부모의 품에 안겨 '면역력'을 잃어버린 아이들까지. 요즘 아이들은 이기적이고 나약하다고 나무라지만, 기실 그들은 기성세대를 비추는 '거울'일 뿐이다. 기성세대는 그들을 꾸짖을 자격이 없다.

하지만 이마저도 머지않아 옛 이야기가 될 듯하다. 아이들끼리의 뒷담화가 아니라 다양한 채널을 통해 기성세대의 책임을 묻고 반항하는 아이들이 시나브로 늘어나고 있다. 이는 그들처럼 살지 않겠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누군가 아이들 앞에서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거나 '군사부일체'라는 말을 꺼낸다면, 대놓고 코웃음을 칠지도 모른다.

역설적이지만, 그런 아이들이 부럽고, 한편으론 반갑다. 교사의 매질이 암묵적으로 허용됐던 30여 년 전 학창시절에는 꿈조차 꾸지 못할 일이었다. 자녀의 허벅지가 매를 맞아 시퍼렇게 피멍이 들었는데도, 부모들은 교사를 탓하기는커녕 자녀의 잘못을 꾸짖기 일쑤였다. 그야말로 매 맞는 게 두려워 공부하던 시절이었다.

부모가 다짜고짜 자녀를 감싸며 학교를 찾아와 교사를 조리돌리는 기가 막히는 세상이 됐지만, 그렇다고 교사로서 그때가 더 좋았다고 말하진 못하겠다. 세상 이치를 알아간다는 오십이 낼모레여서인지, 아이들이 교사의 말 한 마디에 주눅이 들어 납작 엎드렸던 그때보다 차라리 눈 부라리며 대드는 요즘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막무가내가 아니라면 말이다.

사실 아이가 집을 떠나 대안학교에 진학한 뒤 아빠로서 가장 뿌듯했던 점이기도 하다. 이따금 주말에 집에 오면 다양한 일상을 소재로 그동안 못 나눈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데, 그때마다 화기애애한 대화는 껄끄러운 토론으로 바뀌기 일쑤다. 작년까지만 해도 전혀 볼 수 없었던 모습이다.

아이는 항상 '나'를 주어로 해서 자신의 생각을 에둘러 말하지 않고 분명히 밝힌다. 만약 동의할 수 없다면 나름의 근거를 찾아 그 이유를 설명한다. 때론 막무가내처럼 느껴져 설득하는 데 적잖이 애를 먹기도 하지만, 언성을 높이다가도 '쿨'하게 인정하는 모습이 대견스러울 때가 있다.

아이는 토론하지 않는 수업은 재미가 없다고 말했다. 어차피 일방적인 강의식 수업은 교과서의 내용을 크게 벗어날 수 없어 수업시간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공부할 수 있다는 거다. 교과서 내용과 관련지어 교사가 화두를 던져놓으면 또래 친구들끼리 각자의 생각을 말하고 듣는 게 훨씬 더 도움이 된다고 했다.

아직은 소수일지언정 교사에게 반항하는 아이들을 통해 세상이 '긍정적으로' 변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들은 '밟아서 꿈틀하는 지렁이'가 아니라, 스스로 눈을 뜨고 행동하는 어엿한 시민이 돼가는 중이다. 아이들의 몸은 학교에 가둘 수 있지만, 마음만은 그럴 수 없다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되는 이유다.

아이들은 더 이상 교사의 생활지도를 통해 성숙하고, 교과서에 적힌 내용만으로 세상을 이해하지 않는다. 그들의 머리를 채워주고 가슴을 덥혀주는 '학교'는 교문 밖에 이미 차고도 넘친다. 요즘 아이들에게 기존의 학교는 상대가 되지 않을뿐더러 어쩌면 그들의 성장을 방해하는 곳인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인터넷을 통해 수많은 지식과 정보를 얻고 다양한 사람들과 SNS로 소통을 한다. 거칠게 말해서, 수능과 내신 대비를 위한 '수험용 지식'이 아니라면 굳이 학교와 교사에게 의존할 까닭이 없다. 학교를 박차고 나온 일부 아이들은 수능을 비롯한 시험제도가 기존의 사회구조에 학생 모두를 순치시키기 위한 장치라는 걸 이미 간파했다.

요즘 아이들은 동아리 활동도 교내에 국한되지 않는다. 교문을 벗어나 다른 학교와 동아리 연합회도 조직하고, 사회적 이슈에 대해 거리낌 없이 목소리를 내는 아이들도 있다. 남녀학생들이 한데 모여 있다며 백안시하는 분위기가 여전하지만, 예전 같으면 '불량 서클'로 매도되어 학생부에 끌려가 치도곤당해야 할 일이었다.

그들이 시민으로 성장해가는 걸 못마땅해 하는 기성세대는 전가의 보도처럼 대학입시를 방패삼는다. 지금은 공부에 매진할 때라고, 원하는 대학에 합격한 뒤 해도 늦지 않다고 이구동성 다그친다. 심지어 '대학입시에 실패하면 평생 루저'라며 불안을 부추기기까지 한다. 그러면서도 '다 너 잘 되라고 하는 것'이라는 말로 책임을 회피한다.

한 아이가 사회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을 식사 시간 부모님께 자랑스레 꺼냈다가 면박만 당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독일에선 자기 또래인 18살 청소년이 연방의회 의원에 당선됐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느냐는 '우문'에, '독일은 독일이고, 여긴 한국이다'는 '현답'이 돌아왔단다. 그는 우리나라 정치의 수준이 왜 떨어질 수밖에 없는지 어렴풋하게나마 알 것 같다고 했다.

지식을 머릿속에만 담아두고 행동으로 실천하지 못하도록 하는 게 지금 교육의 현실이다. 그렇듯 아이들의 사회와 정치에 대한 관심은 대학 이후로 미뤄지지만, 대학에 진학한 뒤에도 별반 달라질 건 없다. 어느덧 보편명사가 돼버린 취업난으로 입학하자마자부터 '공시족'이 되기 때문이다.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정치에 대한 관심은 사치라는 푸념마저 들린다.

한참 오래된 이야기지만, 청소년들이 아직 미숙하고 학교가 정치화할 우려가 있어 선거 연령을 18살로 낮출 수 없다는 고루한 주장이 있다. 백 보 양보해서, 청소년들이 미숙하다면 그건 학교가 정치화하지 못해서다. 아이들의 정치에 대한 관심은 토론 수업의 활성화로 이어지고, 토론 문화의 정착은 성숙한 시민이 되는 밑거름이다.

아이의 질문에 답변을 고민하다 생각이 여기까지 와버렸다. 아무튼 약관이 코앞인 아이들에게 마냥 어리다고 치부할 게 아니라, 그들의 판단과 선택이 옳을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하고 그들에게 자리를 내어줄 마음의 여유가 필요하다. 아무리 막아보려 해도, 장강의 뒷물은 앞물을 밀어내게 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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