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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보지 않았지만 마약과 낚시는 비슷하다. 중독성이 있어서. 낚시는 또 도박과 비슷하다. 언제 보상이 주어질지 모르고, 또 가끔씩은 엄청난 보상이 주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 보상은 또 주기적이지 않고 랜덤하다. 그래서 쉽게 끊지 못한다.

그러나 바다 낚시 특히 섬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 낚시는 투자한 것보다 언제나 보상이 크다. 그러니 도박보다 훨씬 경제적이다. 손맛을 본 다음에는 그것보다 더한 입맛이 뒤따른다.
 
어두워지고 나서 얕은 곳에서 다금바리와 참돔을 잡았다. 횡재했다.
▲ 다금바리와 참돔 어두워지고 나서 얕은 곳에서 다금바리와 참돔을 잡았다. 횡재했다.
ⓒ 신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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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제주 성산의 신산리 환해장성 중간 포인트로 갔다. 어제 저녁 깜깜할 때 걸었으나 목줄이 터져 놓친 괴물이 다시 나타나기를 기대했다. 오늘은 5물, 오후 8시 반쯤이 만조이니 오후 내내 들물이다. 황금 물때이다. 그러나 북풍이라 파도가 잔잔하다. 파도가 일어 물거품이 생겨야 큰 놈이 갯가로 나오니, 어둠이 오기 전까지는 허탕이기 십상이다.

오후 5시경부터 낚시를 시작했다. 해가 지기 전까지는 탐색전이다. 바다 쪽으로 조금 나간 갯바위에서 밑밥을 앞에 치고 이리 저리 낚시를 던져본다. 어랭이만 걸린다.

5시 반쯤 되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뒤쪽에 물살이 조금 이는 곳에 던졌더니 제법 힘쓰는 놈이 걸렸다. 흔히 이 지역 사람들이 말하는 똥구리였다. 벵에돔을 구리라고 하는데, 이놈은 벵에돔 비슷하긴 하나 맛이 없어서 똥취급 당하는 놈이다. 그러나 중요한 정보를 얻었다. 똥구리도 큰 놈은 갯가로 잘 나오지 않으니, 지금부터 저 놈이 잡힌 바로 저 곳이 큰 놈이 나오는 곳임을 깨닫는다.
 
바다에서 조금 들어온 포인트로 수심은 깊은 편이다. 다금바리와 참돔을 잡은 곳이다
▲ 다금바리를 낚아 올린 갯가 바다에서 조금 들어온 포인트로 수심은 깊은 편이다. 다금바리와 참돔을 잡은 곳이다
ⓒ 신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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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쪽에서 갯가로 물러서서 집중적으로 그 포인트를 공략하기로 작정한다. 갯가이긴 하나 수심은 제법 깊은 곳이다. 점점 어두워졌다. 캐미컬라이트를 찌에 끼웠다. 이 세상에 찌의 불빛 하나 밖에 없는 듯 보인다. 열심히 앞쪽에 밑밥을 친다.

입질 비슷해서 챘다. 헛탕이었다. 그런데, 미끼가 그대로 남아 있다. 왔구나! 순간 기대가 솟구친다. 미끼가 그냥 있다는 건 작은 고기가 없다는 뜻이다. 그건 큰 고기가 들어왔다는 뜻이기도 했다. 밑밥을 더 친다. 그리고 그 중간에 낚시를 드리운다.

수십 초가 흘렀을까? 찌도 바다 쪽으로 제법 흘러갔다. 이때 파르스름한 찌의 빛이 작아져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입질이었다. 황급히 챘다. 묵직한 느낌, 낚시에서 가장 폭발적인 희열이 생기는 순간이다.

물고기는 엄청난 힘으로 재빠르게 바다로 달린다. 릴이 찌지직 풀린다. 혹시 드래그가 많이 잠겨 있나 싶어 조금 풀어본다. 너무 줄이 잘 풀린다. 다시 조금 조인다. 엄청난 힘으로 끌고 가던 놈이 멈춘다. 이젠 내가 줄을 감을 차례다. 몇 번을 주고 받으면서 고기는 점점 가까워졌다.
 
길이 53cm, 무게 2kg, 내가 잡은 최대의 다금바리였다.
▲ 어두운 갯가에서 잡은 다금바리 길이 53cm, 무게 2kg, 내가 잡은 최대의 다금바리였다.
ⓒ 신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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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큰 다금바리였다. 제발 줄이 터지지 않기를 빌었다. 얕은 곳으로 끌고 와 파도를 이용하여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50cm는 넘어 보였다. 다금바리로서는 45cm가 나의 최대어였는데, 기록을 경신한 것 같았다. 어제 줄이 터져 못 건져 올린 놈이 이 놈일까?

사실 이 포인트 부근에서 줄이 터뜨려 놓친 게 수 차례였다. 그래서 이날은 준비를 단단히 했다. 시작하기 전 원줄을 많이 잘라내고 목줄도 새로 묶고, 바늘도 꼼꼼하게 완벽하게 묶었다. 목줄 2호줄이 터지지 않았던 것도 이런 대비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어두워졌다. 욕심은 끝이 없다든가. 또 다른 놈을 목표로 낚시를 던지고 밑밥을 친다. 찌밖에 안 보인다. 스멀스멀 찌의 빛이 줄어든다. 휙 챘다. 엄청난 힘이 느껴진다. 아무리 당겨도 나오지 않는다. 바위에 낚시 바늘이 걸렸던 것이다. 낚싯대를 직선으로 해서 당겼더니 원줄이 터지고 말았다. 찌도 바늘도 모두 바다에 뺏기고 말았다.

집에 갈까? 아니다. 욕심은 밑도 끝도 없다 했다. 낚시 가방에서 예비 낚싯대를 꺼내 편다. 가방에 있던 머리 랜턴도 모자에 붙인다. 2호대 낚싯대에 목줄이 3호다. 웬만해서는 줄이 터질 일은 없다. 낚싯대 접고 새로 펴는 사이 많이 어두워졌다. 그리고 입질이 왔다. 또 엄청남 힘이다. 낚싯대를 잡고 어쩔줄을 몰라한다.

사실 이게 낚시꾼의 로망이다. '낚싯대를 잡고 어쩔줄을 몰라하는 것' 머리 랜턴을 켜서 보니 붉은 고기, 바다의 미녀, 참돔이다. 오랜만에 잡아 보는 참돔이다. 가을 내내 한번도 내겐 잡히지 않더니 이제야 걸렸다. 약간 풀어주다가 곧 감아 올린다. 낚싯대와 줄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참돔은 항상 두마리가 같이 다닌단다. 그렇다면 남은 놈마저 잡아야지. 욕심은 한없다 했다. 밑밥을 많이 친다. 신산리 앞바당 물고기 다모여라 하면서. 한참을 지나도 소식이 없다. 낚시를 걷어본다.

바늘은 없고 목줄이 엉망으로 엉켜있다. 아마도 바늘이 바위에 걸렸고, 고기가 물었고, 고기는 힘껏 버둥거리다가 그 강한 줄이 바위에 쓸려 끊어지고 말은 것으로 추측되었다. 그 고기는 오늘은 다시 오지 않을 거라 생각되었다. 
 
다금바리 53cm, 2kg, 참돔 50cm, 1,.5kg
▲ 다금바리와 참돔 다금바리 53cm, 2kg, 참돔 50cm, 1,.5kg
ⓒ 신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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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여기서 철수다. 아내에게 먼저 연락한다. 같이 먹을 사람 구해보라고. 주변 몇 사람에게 연락했더니 모두 약속이 있어 안타까워했다. 집에 와서 무게와 길이를 재고 무용담을 풀어내고 그리고 어떻게 먹을 것인가 등 즐거운 고민을 한다. 

다음날 아침 서울에 가야 하는 아내는 회를 떠서 포장해서 가져가겠단다. 먼저 방이동 사는 아들에게 물어본다. 내일 저녁에 방화동 사는 또 다른 아들집에 오라고. 멀어서 싫단다. '다금바리회를 가져갈건데...' 했더니 금방 오겠단다. 
 
어둠에서 잡은 참돔과 다금바리, 비늘을 쳐서 색이 달라졌다.
▲ 참돔과 다금바리 어둠에서 잡은 참돔과 다금바리, 비늘을 쳐서 색이 달라졌다.
ⓒ 신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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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금바리 머리와 내장은 탕 재료로 최고다. 무와 함께 푹 고운 다금바리 탕은 구수하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 다금바리탕 다금바리 머리와 내장은 탕 재료로 최고다. 무와 함께 푹 고운 다금바리 탕은 구수하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 신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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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기는 회를 떠서 아들들 먹이려고 포장하고 우리 부부는 참돔 머리 구이와 다금바리 머리 지리탕으로 늦은 저녁을 배불리 먹는다. 보람찬 하루였다. 

'내일은 6물, 좋은 물때다. 오늘 놓친 그놈을 내일 잡아야지. 그럴려면 낚싯대는 1.5호대로 하고, 목줄은 2호로, 그리고 원줄도 좀 잘라내고, 꼼꼼히 낚싯줄을 새로 묶어야지, 수심은 항상 체크하고, 밑밥은 잘 섞어서 준비하고, 포인트는 오늘 그 포인트로 해야지. 아참 릴뭉치 드래그는 적당히 풀려있는지 꼭 챙기고, 큰놈이 물었을 때, 일단은 풀어준다는 생각으로 너무 세게 당기지 말아야지...'

벌써부터 머리속에서 온갖 생각들이 뱅글뱅글 맴돌고 있다. 이 정도 되면 내게 낚시는 도박을 넘어 마약인 게 아닐까?

태그:#낚시, #다금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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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 살고 있습니다. 낚시도 하고 목공도 하고 오름도 올라가고 귤농사도 짓고 있습니다. 아참 닭도 수십마리 키우고 있습니다. 사실은 지들이 함께 살고 있습니다. 개도 두마리 함께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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