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23일 청룡영화제는 최우수 작품상을 장준환 감독의 영화 < 1987 >(2017)에게 수여했다. 이미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과 올해의 영화상을 비롯한 다수의 수상실적을 보유하고 있는 < 1987 >은 이로써 명실공히 흥행성과 작품성을 모두 인정받았다. < 1987 >은 지난 2월 기준 누적 관객 720만 명을 기록했다. 일반적으로 흥행은 대중의 공감을 얻는 데 성공했다는 사실을 뜻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는 것은 영화의 예술성이 높다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 1987 >의 특별한 점은 대중의 공감을 얻는 데 성공했을 뿐만이 아니라 대중의 자기 반영성을 영화 미학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영문 부제에 < When the Day Comes, 2017 (그 날이 오면, 2017)>이 추가된 < 1987 >은 대통령 직선제를 이끌어낸 대한민국 민주화운동의 분수령이라고 할 수 있는 1987년의 6월 항쟁을 다룬다. 그리고 이는 대통령 탄핵을 이끌어낸 민주화운동의 결실인 2017년의 촛불혁명을 떠올리게 한다. 영화는 6월 항쟁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대중과 한 세대 이후 촛불혁명을 가능하게 했던 대중을 시청광장을 중심으로 잇고 있는 셈이다.
 
포스터 영화 <1987 >포스터

영화 < 1987 >포스터 ⓒ CJ엔터테인먼트

 
 영화 <1987> 포스터

영화 < 1987 > 포스터 ⓒ CJ 엔터테인먼트

 
이는 두 가지 메인 포스터에서도 잘 표출되고 있다. 아래 위가 바뀌고 제목의 색깔이 흰색과 검은색으로 뒤바뀐 두 가지 메인 포스터들은 정확히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그들의 선택이 세상을 바꾸다"라는 문구 밑으로 극을 이끌어가는 핵심 인물들이 위쪽에 그리고 아래쪽에 보이고, 이와 대칭으로 "모두가 뜨거웠던 그 해 1987"이라는 문구 배경으로 광장에 모여 항쟁하는 대중의 모습이 보인다. 영화 < 1987 >은 1987년의 역사적 사건을 현재로 불러와서 역사를 바꾸는 것은 결국 대중의 힘임을 암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 1987 >은 주인공을 딱 짚어내기 어려운 영화다. 다시 말하면, 바로 대중이 주인공인 영화다. 영화는 6월 항쟁의 시발점인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으로 시작해, 6월 9일 시위에서 연세대 학생 이한열이 경찰의 최루탄에 맞아 사망하는 사건을 보여준다. 그리고 6월 항쟁의 최고봉인 6.10 민주항쟁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열어놓으며 끝맺고 있다. 따라서 영화는 박종철과 이한열을 영웅화하는 서사 기법을 사용하기보다는, 조직적인 국가 폭력에 저항하여 진실을 밝히고 법치주의를 수호하고자 하는 대중의 열망과 선택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 1987 >은 상업영화다. 자본이 투입되는 상업영화는 더 많은 관객을 끌어들이기 위해서 관객의 입맛에 맞춘 공식을 사용한다. 이때, 가장 중요한 공식은 스타의 등장이다. 장준환 감독은 영화 개봉 직후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강동원이 최초로 우리 영화를 시작하게 해줬다"고 고백했다.

또한 김윤석(박처원 역), 하정우(최환 역), 유해진(한병용 역), 김태리(연희 역)를 비롯한 다른 많은 유명 배우들이 합세하고, 설경구(김정남 역), 여진구(박종철 역), 문성근(장세동 역), 우현(강민창 역), 고창석(정구종 역), 오달수(이두석 역), 정인기(김승훈 역) 등이 특별출연하면서 완성된 영화다. 따라서 < 1987 >은 관객에게 영화를 보는 재미를 솔솔 느끼게 하는 동시에, 이 많은 스타가 결국 대중과 대칭을 이루는 모습을 보이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상업영화는 아무리 실화와 역사를 바탕으로 제작되어도 허구가 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를 장준환 감독의 말로 다시 표현하면 "기본적으로 착한 영화로서 디즈니식의 필터를 끼웠다"고 할 수 있다(2017년 12월 21일 < 씨네21 > < 1987 > 장준환 감독 - 현실을 목도하는 힘과 에너지). 영화는 선과 악이 분명하게 구분되어 있고 연희라는 가공인물이 등장하며, 주인공인 대중은 선의 편에서 행동하는 착한 구조로 되어 있다. 그리고 정치적 신념보다는 가족에 대한 연민과 걱정이 앞서던 연희가 투쟁하는 시위대의 일원이 되면서 막을 내리는 영화의 마지막은 영화적 인물 연희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영화관에서 현재의 대중과 소통하는 인물임을 암시한다고 할 수 있다.
 
독재 국가에서의 맹목적 애국주의와 개인의 진실추구
  
 영화 < 1987 > 관련 사진.

영화 < 1987 > 관련 사진. ⓒ CJ엔터테인먼트

 
< 1987 >의 선악 구조는 독재 국가 속에서 맹목적으로 애국심을 발휘하는 악의 축과 진실을 밝히려는 개인들로 구성된 선의 축으로 뚜렷이 구분되어 있다. 치안감 박처원으로 대변되는 악의 축이 맹목적인 애국심을 바탕으로 한 맹목적인 충성심으로 뭉쳐있다면, 검사 최환과 동아일보 기자 윤상삼(이희준 분)을 비롯한 각 개인으로 대변되는 선의 축은 진실을 알리고자 한다. 독재 국가가 국가안보를 이유로 개인의 희생을 강요한다면, 국가를 구성하는 개인들은 명분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알고자 그리고 알리고자 했던 것이다.

영화는 1987년 1월 14일 남영동에서 물고문으로 사망한 박종철 사건으로 시작한다. 경찰은 사건을 은폐하려 하지만, 법과 상식을 지키지 않는 경찰의 요구를 수상히 여긴 최환 검사가 협조를 거부하고 오히려 사체 보존 명령을 내리면서 잡음이 발생한다. 더 나아가, 동료 검찰을 시켜서 기자에게 사건을 넌지시 전달하고, 이것이 기사화되면서 잡음은 더 커지게 된다. 궁지에 몰린 경찰은 기자회견을 열어 사망원인을 "책상을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고 발표하지만, 스물두 살의 남자가 그렇게 어이없이 죽을 수는 없다고 믿는 한 기자의 끈질긴 취재가 결국 부검의였던 오연상(이현균)에게서 고문에 의한 사망 가능성을 확인하게 된다. 잡음이 일파만파 커지자, 경찰은 사건을 축소하기 위해서 고문에 가담했던 경찰관 두 명을 구속한다.

여기까지는 잘 알려진 역사적 사건의 재현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는 아직도 많은 이들의 기억에 선명한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던 당시의 기사 제목을 중심으로 역사적 사건을 순서대로 보여준다. 하지만 이 역사적 사건이 마치 허구의 누아르, 첩보영화처럼 느껴지는 것이 영화의 별미이자 동시에 대한민국 현대사가 간직하고 있는 씁쓸함이라고 할 수 있다. 경찰의 고문으로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도 씁쓸하고 화가 나지만,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오히려 망자와 국민을 우롱하는 상식 밖의 처사는 한 세대가 지난 지금도 우리를 씁쓸하게 만들고 분노케 한다. 그리고 저러한 행위가 30년 전 이 땅에서는 애국심이라는 이름 아래 모두에게 강요되었던 모범적인 행동이었다는 사실이 우리를 전율케 한다.

이후, 영화는 국민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려 사건을 덮으려고 하는 애국주의자들과 끝까지 진실을 추구하고 이를 알리려고 하는 개인들의 투혼과정을 그리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두 가지 사실이 대조를 이루며 드러난다는 것이다. 하나는 충성심을 다해 상부 명령에 복종하기만 하면 아무 일도 없을 줄 알았던 고문 경찰들이 오히려 모든 누명을 다 뒤집어쓰고 꼬리 자르기의 희생양으로 전락하는 모습이다. 그리고 이는 결국 '빨갱이'를 향한 철저한 증오심을 바탕으로 한 애국주의자 박처원이 모든 죄를 홀로 뒤집어쓰고 구속되는 모습과 겹친다. 억울함을 호소할 뿐 자신들의 잘못을 인지하지 못하는 고문 경찰들처럼 박처원의 '빨갱이'에 대한 증오심은 반인륜적인 자신의 모든 행위를 끝까지 정당화시킨다.

원리원칙대로 자신의 임무만 묵묵히 수행해나가던 구치소 보안계장 안유(최광일 분)는 원리원칙을 지키지 않는 상부의 모습을 목격한 이후 생각을 바꾸어 자신이 구치소 내에서 보고 들은 것을 밖에 알리는 일에 동참한다. 또한 세상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고 믿으면서 개인주의를 지향하던 연희는 삼촌이 구속되고 자신을 도와줬던 이한열이 시위 도중 최루탄을 맞았다는 소식을 접하자 생각을 바꾸어 마침내 대중항쟁에 가담한다. 보다 개인주의적이었던 이들의 작은 변화가 마침내 거대한 항쟁을 가능하게 했던 것이다. 이렇게 영화는 변하지 않는 측과 변하는 측 그리고 대의명분을 수호하는 측과 일상의 작은 진실을 추구하는 측이 악과 선의 두 축으로 뚜렷이 구분되어 나타난다.

영화의 후반부는 6월 항쟁의 상징물이 된 이한열의 운동화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1987년 당시 시위 현장에서 발견된 흰색의 타이거 운동화는 주인이 집으로 무사히 돌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사경을 헤매던 이한열에게 전달됐다. 그러나 주인이 끝내 사망해 슬픈 유품으로 대중의 기억에 자리 잡고 있는 사물이다. 이 운동화는 그동안 <이한열 기념관>에 보관되어 있다가 2015년 미술품 복원전문가 김겸 박사에 의해서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그리고 작가 김숨이 이 복원과정을 소설 < L의 운동화 >(2016)를 통해 소개하면서, 이 운동화는 6월 항쟁의 상징물이 됐다.
 
 영화 < 1987 > 관련 사진.

영화 < 1987 > 관련 사진. ⓒ CJ엔터테인먼트

 
영화는 역사 속의 운동화를 연희라는 가상 인물을 통해서 복원한다. 미팅을 하기로 한 날 시위가 터져 위험에 처하게 된 연희를 한열이 구해주는데, 한열은 그 와중에 어디선가 운동화 한 짝을 잃어버렸다. 둘이 도망친 곳은 때마침 신발 가게였고, 고마움의 대가로 연희는 한열에게 운동화 한 켤레를 선물한다. 이후 삼촌이 구속된 남영동에서 엄마와 함께 항의하다가, 연희는 백골단에 붙잡혀 어딘지 모를 시골 논밭에 버려지게 된다. 신발 한 짝을 잃어버리고 비 오는 시골에서 오도 가도 못 하는 연희에게 한열이 운동화를 들고 찾아온다. 오른쪽 운동화를 잃어버렸던 한열과 대칭적으로 연희는 왼쪽 신발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6월 9일 시위에서 그 슬프고 안타까운 한열의 하얀 타이거 운동화가 먹먹하게 그래서 아련하게 그 시절을 다시 불러온다. 최루탄을 맞은 한열의 오른쪽 신발이 벗겨진 것이다. 이제 연희는 시위가 한창인 광장으로 달려간다. 한열이 선물한 운동화를 신고서다. 이렇게 영화 < 1987 >은 이제는 역사적 인물과 유물이 된 이한열과 그의 운동화를 가상의 인물 연희를 통해서 되살려내고, 못다 이룬 한열의 꿈을 한열로부터 선물 받은 운동화를 신고 뛰는 연희가 이뤄 내리라는 희망을 담고 있다. 따라서 이 후반부 이야기는 보는 이로 하여금 허구인 줄 알면서도 믿고 싶고 또, 희망을 품게 만든다.

< 1987 >은 암울했던 군부 독재 시절 국가폭력에 의해서 왜곡되고 은폐되던 진실을 지키고자 수많은 개인이 고군분투하는 과정과 이들이 마침내 광장에 모여 한목소리를 내는 모습을 담고 있다. 이때, 역사적 현실과 영화적 허구가 잘 어우러져 뜨겁던 대한민국의 1987년을 진실하게 그려낸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영화는 대중의 자기 반영성 뿐만이 아니라 매체의 자기 반영성을 십분 활용하고 있다.

87학번 연희는 삼촌의 마이마이 '뇌물'에 넘어가 비둘기 심부름을 해주게 되고, 역사 속에서는 전달내용이 휴지 위에 쓰였던 반면 영화에서는 1970~80년대 황색 언론의 대명사였던 <선데이 서울>에 쓰이게 되기 때문이다. 당시의 마이마이는 가장 최신의 이동기기로 현재의 스마트폰에 상응할 수 있기 때문에 연희의 비둘기 심부름은 촛불혁명을 이끈 2030 세대의 스마트폰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사용에 비유될 수 있다. 그리고 <선데이 서울>은 전두환 집권 시절 3S(스크린, 스포츠, 섹스) 정책으로 대표되는 우민화 정책을 고스란히 반영하던 매체다. 반면 영화 < 1987 >은 우민화 정책의 상징으로 사용되던 대중매체를 오히려 진실을 전달하는 수단으로 사용하면서 대중매체의 숨겨진 잠재력을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거울작용을 하는 영화
  
 영화 1987

영화 < 1987 >의 한 장면. ⓒ CJ 엔터테인먼트

 
< 1987 >은 우리의 모습을 담은 영화다. 아직도 6월 항쟁의 기억이 생생한 중장년층은 영화를 보면서 당시를 상기하게 된다. 박종철 열사가 좋아했었다는 전태일 추모곡 '그 날이 오면'이 흐르는 가운데, 전태일 열사부터 이한열 열사까지 열사들의 이름을 일일이 목 놓아 외치는 문익환 목사가 나오는 엔딩 크레딧은 그래서 눈물이 절로 나온다. 식민주의와 독재주의를 거치면서 척박해질 대로 척박해진 이 땅에 민주주의를 정착시키기 위해서 많은 열사가 목숨을 잃었다. 그 속에서 우리는 열사들의 정신을 지키면서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편을 선택했다. 스크린을 가득 메운 광장에 모인 대중의 모습은 다름 아닌 곧 우리의 모습인 것이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뜨거웠던 대한민국의 1987년을 직접 경험한 세대는 이제는 당시의 자신들만큼이나 성장한 자식을 가진 부모세대가 됐다. 그리고 후손 세대인 지금의 2030 세대가 촛불혁명을 주도하면서 다시 한번 진실을 향한 열망을 담아 이 땅의 민주주의를 수호했다. 1987년 광장에 모였던 대중이 2017년 광장에 모인 대중과 겹치는 이유다. 따라서 스크린에 재현된 대중의 모습은 결국 우리 모두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를 보면서 거울을 보듯이 우리는 우리의 모습과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 1987 >은 특정한 모습을 띠지 않던 '대중'이 스크린이라는 거울을 통해서 '우리'라는 역사공동체로 재정립되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흔히 맹목적인 애국주의와 국수주의를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작품들이 신화를 중심으로 한 영웅 서사의 형식을 답습하면서 관객으로 하여금 영웅을 우상화하도록 만든다면, < 1987 >은 영화를 보면서 그때의 우리와 지금의 우리를 역사를 바탕으로 다시 성찰하게 만드는 일종의 우리의 자화상 같은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거울 속에 비친 우리의 모습은 모두 함께 힘을 합쳐 진실을 추구하고 헌법을 수호하고자 하는 열망을 만천하에 천명하며 이를 실천에 옮기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역사발전의 원동력과 구심점이 바로 우리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만든다. 많은 열사의 죽음이 헛되지 않은 까닭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 1987 영화평론 대중 역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