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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물었다. "네 자서전은 언제 나오나?" 갑작스런 질문이어서 말문이 막혔다. 몇 년 전 '이름 나려면 자서전 쓰세요!'라는 칼럼을 쓴 적이 있다. "군자는 이 세상의 삶을 끝낼 때까지 그 이름이 한 번도 값있게 불려지지 못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긴다.(君子疾沒世而名不稱焉; 논어 위령공편, 도올 김용옥 역)"는 공자말씀을 인용하며 '죽기 전에 한 번 값있게 불려지는 방법', 그 중에서 '가장 돈 안 들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조용한 방법'으로 자서전 쓰기를 권했다.

친구의 말은 아마도, 자서전 쓰기를 권한 당사자로서 책임(?)을 다하고 있느냐는 질문 같았다. 뜨끔했다. 어떤 글이든 글에는 인생이 담겨 있어야 한다. "인생이 안 들어간 글은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무한화서/ 이성복)"는 잠언이 생각났다. 남에게 권하려면 스스로 자서전을 써보아야 맞다. 그런데 정작 난 자서전을 쓰지도 않았고 또 쓰려고 노력해본 적도 없다.

그럼 '자서전 쓰기 권유'는 '말장난'이었을까. 아니다, 전제 조건이 있었다. '이름이 나려면'이다. 이름을 내고 싶은(값있게 이름이 불려지고 싶은) 사람에게만 권했다. 세상에 쉬운 일은 없지만, 이름 내는 일은 더욱 쉬운 일이 아니다. 특출한 재능이 없으면 엄청난 공력을 들여야 한다. 특히 자서전 쓰기는 돈 대신 시간이 들어간다. 수년 수십 년 꾸준히 자료를 모으고 정리해야 한다.

그뿐인가, 누가 그 자서전을 읽어 줄 것인가? 소로는 20세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37세 때(1854년), 17년간 쓴 일기를 바탕으로 <월든>을 썼다. 월든 호숫가 통나무오두막(1845년 7월4일 입주) 생활 2년2개월2일이 끝나고 7년 후에야 발간했다.

<월든>은 사실 소로의 37년 인생이 담긴 자서전인 셈이다. 소로는 이미 이름 난 작가였음에도 불구하고 <월든>은 초기엔 관심을 끌지 못했다. 소로가 45세로 죽을 때(1862년)까지 8년 동안 초판 2천부가 다 팔리지 않았다.

"난 자서전 대신 일기를 열심히 쓰고 있지. 그런데 너는 자서전 안 쓰나?" 친구가 했던 질문을 되돌려 주었다. 이번엔 친구 말문이 막혔다. 아마도 친구는 자서전을 쓰고 싶었는데 잘 안 되어 그런 질문을 했던 가 보다. "그럼 일기는 쓰느냐?"고 고쳐 물었다. 일기는 날마다 열심히 쓰고 있단다. "그러면 자서전 기초는 다 되었네, 이제 정리만 잘하면 자서전이 되겠지!"라고 시원하게 말해주었다.

친구 표정이 밝아졌다. "그래도 일기와 자서전은 다른 게 아니냐?"고 한마디 했다. 맞는 말이다. 일기는 독자가 없지만 자서전은 독자가 필요하다. 일기는 나중에 자신도 못 읽을 만큼 개발새발 낙서처럼 써도 되지만 자서전은 독자가 읽어줄 만큼은 써야한다. 자서전은 재미나는 스토리나 눈물겨운 감동 아니면 깨닫게 하는 교훈(敎訓)이라도 줄 수 있어야 존재한다. 우리는 그만한 스토리를 만들며 살아왔던가.

자서전에 대한 문답은 거기서 끝났다. 다른 친구들 관심을 끌지 못해서이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어떻게 하면 친구가 일기를 정리해 자서전을 낼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돈은 걸림돌이 아니다. 자가 출판을 하면 50부든 100부든 찍을 수 있고, 그 종이 값마저 아까우면 전자책으로 만들 수도 있다.

역시 제일 큰 문제는 '누가' 읽어주느냐이다.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보니 확실한 방법이 있었다. 가족이다. 아예 독자를 아들딸로 정해놓고 책을 쓰고 만든다. 공자도 '값있게 이름이 불려지라'고 했지 '많은 사람에게 이름이 불려지라'는 말씀은 없었다. 평생 독신으로 산 소로는 아들딸 대신 '가난한 젊은이들'을 위해 <월든>을 썼다.

가장 가까운 아들딸에게 값있게 불려지는 게 '이름이 나는' 시작이자 최종 목표가 아닐까.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 손자손녀가 읽어줄 것이다. 언젠가는 얼굴 한 번 못 본 증손이 그 이름을 불러줄지 모른다. 누군가 선조가 쓴 자서전이라며 기념관 한 귀퉁이에 모셔줄지도 모른다.

태그:#자서전, #일기, #월든, #독자 , #아들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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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어려운 문제도 글로 쓰면 길이 보인다'는 가치를 후학들에게 열심히 전하고 있습니다. 인재육성아카데미에서 '글쓰기특강'과 맨토링을 하면서 칼럼집 <글이 길인가>를 발간했습니다. 기자생활 30년(광주일보편집국장역임), 광주비엔날레사무총장4년, 광주대학교 겸임교수 16년을 지내고 서당에 다니며 고문진보, 사서삼경을 배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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