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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과 선거 연령 만 18세 하향 등의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국민의 참정권 확대와 더 나은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지난 10월 정치개혁특별위원회(아래 정개특위)가 출범했으나 업무 보고와 공청회만 열렸을 뿐 정당 간사들이 심도 있게 논의하는 모습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특히 선거권 만 18세 하향을 두고 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 등은 대체로 합의가 이루어졌지만, 자유한국당만 반대하고 있는 형국이다. 고등학생들에게 선거권을 부여하면 교사와 권력 관계에서 학생이 압력을 받거나 교사로부터 정치적으로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게 자유한국당의 반대 이유로 알려진다.

"'18세 선거권'은 사명, 교육감 선거는 17세로 낮춰도..."

지난 11월 21일 국회 정개특위에서 열린 공청회에서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는 "만 18세에 해당하는 운전·병역·혼인 등의 권리·의무와 연관 짓지 않아도 만 18세 선거권은 당연하다"며 "선거연령을 만 18세로 낮춘 일본은 선거 포스터에 고등학생이 투표하는 사진도 보여주는 등 대대적으로 홍보한다. 대한민국에서도 전혀 문제 될 게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관영 의원
 김관영 의원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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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10일과 17일 두 차례에 걸쳐 만난 김관영 의원(바른미래당 원내대표)은 "한국전쟁 때 학생 신분으로 전선에 투입됐던 학도병(학도의용군)과 고등학생 중심의 4·19혁명 기록이 말해주듯 이 땅의 10대 청소년들은 역사적 고비 때마다 앞장서 나섰다. 그들의 용기 있는 행동은 동시대 나이 든 사람들을 자극하고, 시대정신을 일깨우는 역할을 해왔다"라며 "선거연령 만 18세 하향 조정은 역사적 사명"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김 의원은 "3·1만세운동과 광주학생항일운동 기록에서도 당시 10대 청소년들의 활동상이 잘 나타난다. 그럼에도 세계 OECD 회원국 중 선거 연령을 만 19세를 고집하고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이는 세계적 트랜드에도 맞지 않을뿐더러 청소년들을 지나치게 무시하는 처사"라며 "개인적인 생각인데, 교육감 선거만큼은 16~17세로 낮출 필요가 있다고 본다"라고 덧붙였다.

"지난 19대 국회 때 선거연령을 18세로 하향 조정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적이 있다. 그러나 임기가 끝나면서 자동 폐기됐다. 그때 발의한 법안은 직계비속 선거운동 16세 이상 가능, 지방자치단체 조례 제정, 개폐 청구 권한 및 감사 청구 권한, 선거 연령 기준 18세 조정 등이었다.

만 18세는 고등학교 3학년에 해당한다. 대학입시에 몰두하는 그들에게 선거권을 부여하면 부작용이 있다는 게 자유한국당 논리다. 그러나 청소년들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에 관심이 많을 뿐만 아니라 역사의식, 참여의식 등이 기성세대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높다. 국회를 방문하는 학생들과의 대화에서도 느껴지는데, 사고력도 뛰어나고 정의감도 강하다.

개인적인 생각인데 교육감 선거는 만 17세까지 낮춰도 괜찮다고 본다. 각 시·도 교육청이 펼치는 정책의 주요 수혜자가 고등학교 학생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얘긴데, 고등학교 학생은 나이 상관없이 교육감 선거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 잠재적 유권자인 10대들의 참정권을 짓밟는 결과를 초래하지 말자는 뜻에서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다."


18세 이하 청소년, 나라 위기 때마다 앞장서
 
군산 3·1만세운동 재현행사
 군산 3·1만세운동 재현행사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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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만세사건으로 3월 5일부터 8일까지 검거된 사람이 90여 명이나 되었는데, 여러 날을 두고 취조한 결과 학생 12명은 미성년자이므로 태형(笞刑)에 처한 뒤 석방하고 64명은 구속 송청(送廳)하였다."- <군산시사>(1991)
 

위는 3·1만세운동(군산 3·5만세운동) 때 군산 경찰이 학생 및 시민 90여 명을 연행하여 구속에 이르기까지 과정을 상부에 보고한 일일 정보 내용이다. 보고서에 나타나듯 당시 만세 시위는 어린 학생에서 장년층까지 다양한 세대가 참여했음이 확인된다.

놀라운 것은 '학생 12명은 미성년자이므로 태형에 처한 뒤 석방했다'는 대목이다. 어린아이들에게 고문이나 다름없는 태형을 가하다니 일제의 악랄함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군산 3·5만세운동은 영명학교와 멜볼딘여학교 학생들이 주도하였다. 기록에 따르면 약 2개월 동안 28회(연인원 3만여 명) 있었으며, 사망자 53명, 실종자 72명 등 피해자 195명이 발생하였다. 수많은 학생과 직장인이 징역 6개월 이상의 징역형에 처해졌다.

특히 군산공립보통학교 방화사건 관련자 8명 중 김수남(18세)은 징역 10년, 이남률(17세)은 징역 7년의 중형을 선고받았고, 권재길(18세), 문종묵(17세), 김학술(18세), 라명조(16세), 신형식(17세), 김종련(18세) 등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는다. 이들 중 김수남, 이남률, 권재길 등은 잡화상 점원이었고, 나머지 5명은 보통학교 학생이었다.

청소년들의 독립운동 참여는 3·1만세운동으로 그치지 않는다. 장태성 선생은 전주고보 3학년 때 일본인 교장 배척을 주도한 협의로 전주지방법원에서 집행유예 판결과 함께 퇴학 처분을 받는다. 이후 옥구군(군산시) 서수면에 야학을 열고 문맹 퇴치와 민족의식 고취에 힘쓰다가 1927년 가을 농민항쟁을 주도했다. 그해 나이 열여덟이었다.

1929년 11월 전남 광주에서 시작된 광주학생항일운동에 동참했다가 1930년 1월 15일 군산 경찰에 검거되어 광주로 호송됐던 김귀선(金貴先) 학생은 군산 공립고등여학교 2학년으로 그해 나이는 열여섯이었다.

한국전쟁 때는 전국의 중학교(6년제) 학생들이 조국을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자원입대하였다. 그들은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학도병'이란 이름으로 전선에 투입, 용맹을 떨치며 산화해갔다. 그처럼 계급도 군번도 없이 참전했다가 전사한 학도병은 17~18세가 대부분으로 군산에서만 200명 이상 희생된 것으로 집계된다.

4·19혁명 역시 고등학생이 주도했다. 군산에서도 10여 개 중·고등학교 학생 1200여 명이 거리로 나와 '학원에 자유를 달라!', '각지에서 무참히 쓰러져간 학도들을 이승만 정부는 책임지라!'는 등의 구호를 외쳤다. 학생들은 '4월 민주혁명 순국 학생위령탑' 건립기금 모금 운동에도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이상은 지방의 작은 항구도시 군산의 사례일 뿐이다. 유관순 열사도 당시 17세 소녀였고, 4·19혁명의 도화선이 됐던 김주열 열사 역시 1943년생으로 사망 당시 열일곱 살이었다. 이처럼 위기 때마다 10대들이 앞장선 사례는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다. 현실이 이러함에도 18세는 정치적 판단과 소양이 부족한 나이라고 단언할 수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매거진군산 12월호에도 실립니다.


태그:#선거연령 만18세 하향, #김관영 의원, #청소년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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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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