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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마무리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인연 '가연(佳緣)'은 사제(師弟)간이 아닌가 싶다. 왜냐하면 인류 역사와 문화는 사제관계로 이어왔기 때문이다. 이전에 나는 제자들의 초청을 극도로 자제해 왔는데, 이나마 건강할 때 만나 차담을 나누면서 그들에게 꿈과 용기를 주는 것은 한 훈장으로서 큰 기쁨이요, 아름다운 마무리이리라. - 기자 말
 
원용희 경기도의원
 원용희 경기도의원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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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과 기본소득

'과학기술의 발달로 생활은 편리해졌지만, 삶의 일상은 오히려 불안이 극대화 되어가는 오늘날의 현실, 일용직에겐 하루하루가, 비정규직들에겐 한 달 한 달이 고달파 내일을 계획을 할 수 없는 시대, 정규직이거나 아파트 한 채 정도 재산이 있더라도 노후를 비롯해 미래의 생존이 걱정인 불안시대.

우리는 언제쯤 이러한 생존불안시대를 마감할 것인가? 죽음 이후나 혹은 꿈에서나 가능한 일인가?'
 

더불어민주당 원용희 경기도의원은 이런 당면문제에 깊이 파고들어 <생존불안시대, 4차 산업혁명과 기본소득>이라는 책을 펴냈다. 그는 이러한 현안의 해결책으로 기본소득을 제시하고 있다. 기본소득은 국민이라면 누구나 누릴 권리이자 의무라면서 기본소득 지급 방안 5가지를 말하고 있다.
① 주기성 : 한 번만 아니라 규칙적인 주기로 매달 지급한다.
② 현금성 : 현금형태로 최저생계비 이상 지급한다.
③ 개인성 : 가구가 아니라 개인에게 지급한다.
④ 보편성 : 수입과 자산에 대한 조사 없이 모두에게 지급한다.
⑤ 무조건성 : 근로의지가 없거나 근로요건을 갖추고 있지 않아도 지급한다.
이에 대한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기본소득을 규칙적으로 지급해야 하는 까닭은 불안한 경제적 삶을 예측가능하게 만들기 위해서다. 그리고 기본소득을 현금 형태로 지급하는 까닭은 소비행위에 자유를 주기 위해서다. 각 개인에게 지급해야 하는 까닭은 가족 내 위계질서로 인하여 자유가 침해당하는 일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수입과 자산에 대한 조사 없이 모두에게 지급하는 까닭은 사회구성원 모두가 공동체 유지에 이바지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개인의 근로 의지가 없거나 근로 요건을 갖추고 있지 않아도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까닭은 그것이 인권과 마찬가지로 공동체 구성원의 권리이기 때문이다.'

 
원용희 지음 <4차 산업과 기본소득>
 원용희 지음 <4차 산업과 기본소득>
ⓒ 너와나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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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불안시대, 4차 산업혁명과 기본소득>의 책장을 넘기다가 느낀 바가 많아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실 그는 오래 전부터 나를 찾았지만 그때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미루어 왔던 터였다. 지난여름 무더위가 극성을 피웠을 때 그가 안부 전화를 하기에 더위가 한물 지난 다음 서늘할 때 만나자고 약속한 바가 있었다. 그런데 첫눈이 내릴 때까지 그 약속을 지나쳐 버렸다.

지도력이 뛰어났던 학생

나는 그를 떠올리면 교사로서 내 책무를 다하지 못했다는 부끄러움을 지니고 있다. 나는 그를 고1 때 담임교사로 지도했을 뿐 아니라 결혼식 때 주례를 서기도 했다. 그 무렵 주례를 하면 부부가 와서 사전이나 사후에 인사를 하는 게 상례였는데 그는 신혼초의 삶이 팍팍했는지 그런 일을 건너뛰었다. 아마도 그는 그게 늘 걸렸나 보다. 결혼 20주년 이후에야 삶의 여유를 다소 찾은 모양으로 2015년 초여름, 굳이 가족을 데리고 내가 사는 원주로 오겠다는 걸 여러 차례 사양 끝에 승낙했다.

그런데 약속일을 며칠 앞두고 생전 들어보지도 못했던 '메르스 사태'로 온 나라가 법석이었다. 신문방송 등 뉴스에서는 거의 매일 매시간 그 사태를 보도하면서 높은 치사율을 말했다. 사실 나는 그런 현상에는 둔감하며 살았는데 나보다는 상대를 생각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다음 기회로 미룬 바 있었다.

1년이 지난 2016년 5월 무렵이었다. 그때 나는 장편소설을 집필한다고 오대산 월정사 명상관에 머물고 있을 때인데, 그가 다시 찾아뵙고 싶다는 전화를 했다. 그래서 나는 사실대로 말하자 그는 오히려 잘 됐다고 나를 만난 뒤 오랜만에 동해바다도 둘러보고 가겠다고 하여 그의 제의에 동의했다.

약속한 그날 그는 내가 머물고 있는 곳으로 아내와 딸을 데리고 와서 인사를 시킨 뒤 곧장 강릉으로 안내했다. 강릉 경포대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막 주문한 생선회를 뜨려는데 그의 손전화가 울렸다. 그는 당시 고양시의원이었는데 갑자기 지역구에 긴급한 일이 일어났다며 생선회를 다 먹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이번은 아예 약속을 멀리 잡지 않았다. 마침 그가 이즈음 한창 경기도의회 회기 중으로 매일 수원으로 출퇴근한다기에 그 이튿날 점심시간에 만나 같이 밥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기로 했다. 지난 11월 30일 우리는 경기도의회 부근의 한 밥집에서 오랫동안 벌려 왔던 대담을 나눴다.

그는 어려서 소아마비를 앓은 장애인이다. 그런데 그는 지도력이 대단히 뛰어나 반장선거에서는 다른 학생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다. 그가 재학했던 당시는 1980년대 초로 고교 학생회조차도 무늬만 민주주의였다. 그러다 보니 눈뜬 학생들의 불만이 컸다.

그가 1학년 때는 학생회 대의원으로 무사히 넘겼는데 고2 때 학교 측의 사리에 어긋나는 학생회 선거 규제에 항의하다가 정학을 맞고 곧장 반장직에서 쫓겨나는 조치를 당했다. 나는 그때 그의 변호를 해 주지 못했다. 그때 내가 그의 담임교사는 아니었지만 모른 척 흘려버린 것은 나의 더러운 보신책이었다.

그는 그때 그 징계로 많은 고통을 받았지만 다행히 고교를 무사히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했다. 사실 지난날 군사독재가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거기에 순종, 순응하는 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부류에서 예외였다고, 이제 와서 구차한 변명이나 면피성 글로 나 자신을 호도하고 싶지 않다. 그럼에도 그는 인생길에 가장 중요한 혼인식 주례를 나에게 부탁뿐 아니라, 이후 내 출판기념회 때나 책 판매에도 많은 도움을 줬다.
 
원용희 경기도의원
 원용희 경기도의원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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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려운 데를 긁어주다

우리는 밥상머리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자네는 급우들로부터 많은 지지를 받은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아마도 학급 친구들의 가려운 데를 긁어준 탓일 겁니다."
  

그는 대학졸업(사회학과) 후 시민사회운동에 이어 한때는 경실련에서 일했고, 개인사업을 하다가 왕창 들어먹기도 했다. 2014년 경기도 고양시 시의원으로 활동하다가 2018년 지방선거 때는 도의원에 당선, 현재는 경기도의회 도시환경위원회 소속이다.

"저는 지역구 주민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는 편입니다. 그리고 그분들의 민원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그런 그의 배려와 열정이 지역구 주민들의 기대에 부응하여 흙수저 출신인 그는 시의원 1기만에 도의원으로 도약한 것 같았다.

내가 담임했을 때 일화다. 그가 입학한 1983년 5월, 봄 소풍을 도봉산으로 갔다. 당시 우리 학교(이대부고)는 여느 학교와는 달리 코펠과 버너를 소지케 한 등산 소풍을 갔다. 그때 우이암 등산 코스는 험한 산길로 장애 학생은 사전에 열외를 시켰다.

그래서 나는 소풍 전날 그에게 가정학습을 하라고 지시했건만 그는 이튿날 소풍 집결지에 나타났다. 나는 거기서도 귀가해도 좋다고 일렀지만 막무가내로 처음부터 끝까지 뒤처지지 않고 산을 탔다. 나는 그의 열정과 투지력에 놀랐다.

그는 오늘날 젊은 세대들이 희망을 찾지 못 하는 데 그 원인을 주택문제, 교육 및 보육문제, 취업 및 노동문제 등으로 진단하면서 현재 자기가 소속된 도시환경위원회 분야의 주택문제 해결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 대안은 싱가포르식 '환매 조건부 분양'을 제시했다. 이는 공공기관이 토지개발과 주택건설을 직접 맡아 조성원가 이하(시세의 2/3 수준 내외)에 민간에 분양하되, 매매나 상속을 허용하지 않고, 반드시 공공기관에 다시 매각하도록 하는 방안이다. 이 제도는 1960년대부터 싱가포르에서 시행되고 있는 바, 이를 우선 경기도에서부터 도입 시행코자 한 다음, 성공하면 중앙정부에 건의하겠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그의 다양한 정책들을 듣는 순간, 나는 문득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떠올랐다.

루스벨트는 두 다리를 못 쓰는 장애인 대통령이었다. 그는 가난하고 실패한 사람들의 친구로 낙담하고 절망한 사람들을 격려하며, 그들에게 미국의 새로운 판을 짜자고 외쳤다. 그는 뉴딜정책으로 당시 사상 최악의 미국을 구해낸, 오늘의 미국을 이뤄낸 업적으로 역사상 전무후무한 1933년부터 1945년 운명 때까지 4선을 한 대통령이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실질적으로 종신 집권을 한 셈이지만, 아무도 그를 독재자라고 부르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시민들과 대화할 줄 아는, 보기 드문 정치지도자였기 때문이다.

나는 대담의 마무리로 1986년 아시아게임의 혜성 임춘애 선수의 일화를 들려주었다.

'그는 1986 서울 아시안게임의 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해서 국가대표가 되지 못했다. 그런데, 선발전 이후에 치러진 전국체전의 3000m 종목에서 한국 신기록을 세우며 좋은 성적을 기록하자, 임춘애를 국가대표로 선발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고 뒤늦게 국가대표에 합류했다.

국가대표로 깜짝 발탁된 임춘애는 86 아시안게임에서 '신데렐라'로 거듭났다. 여자 육상 불모지 중장거리인 800m, 1500m, 3000m에서 모두 금메달을 획득하여 3관왕이 되었다.

3000m는 중국 선수에게 10초 이상 뒤진 기록이라 금메달은 바라지도 않았는데, 당시 중국 선수의 컨디션이 안 좋았는지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여 운 좋게 금메달을 땄다. 또한, 800m는 2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는데, 1위를 기록한 인도 선수가 파울로 실격당하면서 금메달을 받았다. 1500m에서는 자력으로 금메달을 따내며 아시안게임 3관왕이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내가 그에게 남긴 마지막 말이다.

"자네 부디 공부하는 정치인으로서 실력을  더욱 쌓고, 내공을 기르면서 때를 기다리시게."  

태그:#원용희, #4차 산업혁명과 기본소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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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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