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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 숨죽인 소리만 들린다. 안대로 눈을 가리고 무대에 선 가수의 긴장한 심장박동도 들리는 듯하다. 사회자가 "자, 이제 안대를 벗어주세요!"라고 외치면, 가수는 떨리는 손으로 안대를 벗는다. 눈부신 조명 사이로 사람들의 함성이 쏟아지고, 감격에 찬 가수는 공연이 가능할 만큼의 관객 수가 달성됐는지 카운트판의 숫자를 초조하게 지켜본다.

2000년대 초반 방영된 <게릴라 콘서트>라는 방송의 레퍼토리다. 어렸을 때 참 좋아했던 프로그램이다. 유명한 가수부터 막 데뷔한 신인까지 다양한 출연진이 전국 곳곳을 깜짝 방문해 몇 시간 후의 공연에 사람들을 모으러 트럭 위에 올랐다. 매주 방송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안대 벗는 장면보다도 내게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바로 이 트럭 유세(?) 장면이었다.

특히 사람 많은 도시가 아닌, 비수도권 지역의 한적한 동네에서 한 시간 동안 만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는데 그게 그렇게 안타까울 수가 없었다. '도대체 사람들은 다 어디에 있지?' 궁금해하며,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있을법한 장소를 찾아다니던 그 절실함이 2016년 4월의 내게도 찾아올 줄이야.

도대체 사람들은 다 어디에 있지?

2016년 4월 13일에 치러진 20대 총선에 나는 녹색당의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했고, 낙선했다. 선거일 오후 6시에 출구조사 결과를 확인하고, 녹색당 원내진출의 꿈이 다시 4년 후로 미뤄졌구나를 실감하는 순간은 응원하던 가수의 게릴라 콘서트 실패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비통함을 가져왔다.

국회에 단 한 명이라도 녹색당 의원이 있다면 다른 결정, 다른 긴장, 다른 장면, 다른 기본값을 만들어낼 수 있을 텐데. 박근혜 정부의 임기가 2년 가까이 남아있던 당시로서는 앞으로의 시간이 암담해 좌절감이 배가 됐다.

본 선거운동 13일을 포함해 당내 후보선출 절차를 거치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고군분투한 5개월가량의 시간이 마치 꿈처럼 느껴졌다. 힘들기만한 건 아니었지만 막막했던 시작은 잊지 못한다.

기본소득 활동가로서, 총선 출마를 계기로 한국 사회에 기본소득을 제대로 알려보자며 당차게 나섰지만 그런 나도 선거운동에 대해 잘 알았던 건 아니다. 하면서 알아보자는 마음으로 새로운 도전에 임하는 열정이 가득했다. 그 열정은 곧 여러 장벽에 부딪히고 말았지만.

후보로 나왔는데 선거운동은 못한다니요? 재판관님
 
 비례대표국회의원선거 기탁금 등에 관한 사건(사건번호 : 2015헌마1160)에 관한 공개변론일에 위헌 판결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비례대표국회의원선거 기탁금 등에 관한 사건(사건번호 : 2015헌마1160)에 관한 공개변론일에 위헌 판결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 녹색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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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녹색당을 '프로 헌법소원러'라 부른다(유사품으로 '프로 정보공개러'도 있다). 아직 원외정당이기에 국회 내에서 법안을 발의할 수 없으니 헌법재판소에 자주 가게 된다.

여러 차례의 헌법소원 결과 성과도 없지 않다. 정당등록취소 위헌 판결이나, 비례후보 기탁금 헌법불합치 판결을 받아내기도 했다. 그 외에도 정치 참여 문턱을 낮추기 위해 청소년 참정권 획득, 피선거권 인하를 위한 헌법소원을 하거나 공장식 축산 헌법소원으로 동물권을 정치의제화하는 등 한계 속에서도 길을 모색해왔다.

나도 2015년 12월 14일, 비례후보 당사자로서 헌법소원 청구인이 됐다. 국회의원 후보 1인당 1500만 원의 기탁금을 납부하도록 한 공직선거법 제56조 제1항 제2호와 비례대표 후보 유세를 금지한 공직선거법 제79조 제1항이 청구인들의 정치활동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한다는 게 주요 내용이었다.

이후로 여러 차례 갈 일이 많았지만, 그날이 바로 헌법재판소 앞에서 처음 기자회견을 했던 날이었다. 비례후보로서의 첫 행보에서 다음과 같이 발언했다.

"국고보조금을 받지 않는 신생정당과 새로운 정치인에게는 집집마다 공보물 한 장씩 보내는 비용과 최소한 선거운동 비용을 모으기도 어렵습니다. 고액 기탁금은 그 자체로 커다란 벽 같습니다. '시민들이 정치에 참여 않는다, 무관심하다'고 한탄하기 전에 실질적으로 정치 참여를 가로막는 게 무엇인지 묻고 싶습니다.

결국 또다시 돈입니다. 우리나라 현행 선거 기탁금 1500만 원, 당선이 유력한 큰 정당들만 원금을 돌려받을 수 있는 출마기탁금이 너무 비쌉니다. 그런데 비례후보는 그 큰 돈을 내고 할 수 있는 선거운동도 별로 없습니다. 비례후보는 유세시 마이크도 못 쓴다는 게 말이 됩니까? 목소리가 들릴 권리를 빼앗은 것과 같습니다.

정치의 문턱을 낮춥시다. 돈이 없어서 정치에 참여하지 못하고 정치에 참여하지 못해 삶이 나아지지 않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합니다. 소수가 독점해온 정치권력에 균열을 내고 새로운 이들이 정치 주체로 나설 수 있게 문턱을 낮춰야 합니다. 이것은 헌법에 보장된 우리의 권리이며 민주주의 국가가 할 일입니다. 헌재의 조속한 판결을 촉구합니다."


"아니 그럼 비례후보는 선거 운동을 어떻게 해요?"

그러나 조속한 판결은 없었다. 총선 이후 헌법재판소는 2016년 12월 29일 비례대표 국회의원 후보 부분에 대해서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지역구 국회의원 후보에 대해서는 합헌 결정을 내렸다. 비례후보 유세 금지에 대해서도 위헌 판결에 필요한 6인 중 1인이 부족해 합헌 판결이 내려졌고, 올해 11월 14일 녹색당은 다시 릴레이 헌법소원을 시작했다.

선거운동은 해야 했고, 나는 다른 네 명의 비례후보들과의 역할 분담 결과 전남·광주·전북의 당원들과 본 선거운동기간을 보내기로 했다.

본 선거운동 전까지는 당원들과 함께 정당연설회를 자주 했다. 선거일 13일 전 본 선거운동 기간이 시작되면 '통상적 정당활동'으로 분류되는 정당연설회는 할 수 없게 된다. 피켓과 앰프만 있으면 거리에서 정책 설명을 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사라지는 것이라 하루하루가 아쉬웠다.
 
 비례후보 유세금지 조항으로 인해 명함을 건네주는 선거운동이 비례후보 선거운동의 주를 이룬다.
 비례후보 유세금지 조항으로 인해 명함을 건네주는 선거운동이 비례후보 선거운동의 주를 이룬다.
ⓒ 조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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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본 선거운동 기간에 비례후보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배우자와 직계존비속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경우엔 후보 본인만 어깨띠를 매고 명함을 나눠줄 수 있다(명함 규격, 내용 등도 엄격히 제한돼 있다).

거리에서 이야기를 할 때 마이크를 쓸 수 없고, 지역구 후보자가 있는 곳에서만 지역구 후보자의 연설원으로 등록해 마이크로 지지연설을 할 수 있다. 도대체 왜 이런 제한을 둔 것일까? 후보자가 왜 출마했는지, 어떤 공약을 내세웠는지 사람들에게 성심성의껏 알리고 소통할 수 있도록 장려하는 선거법이어야하지 않을까?

지역구 후보자를 많이 내지 못하는 소수정당 후보의 연설 기회를 줄어들게 해 후보자의 공무담임권(여러 가지 선거에 입후보해서 당선될 수 있는 피선거권과 국정과 관계되는 모든 공직에 임명될 수 있는 공직취임권을 포괄한다)뿐만 아니라 유권자의 알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

거리에 현수막을 거는 것도 불가능하고(지역구 후보 것만 가능하다), 방송 차량도 못 쓴다. 방송 차량을 쓰고 싶지도, 쓸 돈도 없었지만 애초에 기회를 박탈당하니 당황스러웠다(게릴라 콘서트만도 못 해...).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내봐도 공직선거법상 금지. 상상력의 한계를 원망하다가 이건 개개인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제도적 한계임을 절감했다.

이게 바로 현행 한국 선거법의 핵심인 것을 간파해버렸다. 후보가 아닐 때 오히려 할 수 있는 게 더 많아 보였다. 적극적으로 정치활동을 하고자 하면 손발이 묶이는 시스템이다. 마땅한 이유도, 납득할만한 유래도 없는 공직선거법의 악마 같은 디테일들은 누가 언제 만든 것일까?

기탁금 제도만 본다면 1958년, 그러니까 60년 전 이승만 전 대통령이 장기집권을 꾀하면서 만든 것을 4.19 혁명 이후 폐지했다가 박정희 전 대통령이 반대세력 출마를 막기 위해 부활시킨 역사가 있다. 그리고 여태껏 여러 독소조항들이 1987년 혁명 이후에도 2016년 촛불혁명 이후에도 기득권 정치세력들에 의해 돈독히 지켜지고 있다.

"아니 그럼 비례후보는 선거 운동을 어떻게 해요?"라고 처음 선거법 교육받을 때 했던 질문을 다시 던져보고, "하지 말란 거지"라는 답을 얻었다.

지역구 후보와 비례후보 통틀어 전국에 딱 10명뿐이었던 녹색당에게는 한 사람 한 사람의 활동이 중요했다. 뭘 해야 할까. 온갖 꼼수를 생각해보지만 쉽지 않았다. 특별한 이유도 없이 비례후보는 지역 유세시 '마이크'를 쓸 수 없고 오직 '생목'으로만 하라는 게 가장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었다. 엽기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했다.

비례후보가 마이크를 사용해서 거리 연설을 하게 되면 어떤 무서운 일이 생기는 것일까. 단골 카페 사장님은 이 기회에 산에 가서 득음하고 오라는 농담을 건넸다. 고향에서 보내준 도라지배즙을 부지런히 먹고 있었지만 무리였다. 지금까지 다른 정당 비례후보들은 선거운동을 어떻게 한 건지, 하기는 한 건지 진심으로 궁금했다.
 
 광주의 한 호수공원에서 선거운동. 생각보다 사람이 적어 초조한 모습.
 광주의 한 호수공원에서 선거운동. 생각보다 사람이 적어 초조한 모습.
ⓒ 조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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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선거운동을 정말 열심히 했다. 시장도 다녀오고 호수공원도 가고 대학교에도 가고 등산로 초입에도 역전에도, 터미널 앞에도 가고 선거운동 통틀어 사람이 가장 많았던 전주 한옥마을에도 갔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몸 사리지 않고 하다보니 소위 링거 투혼도 해봤다. "제가 후보입니다~" 하면 나이든 남성이 아닌 모습에 화들짝 놀라며 한 번 더 돌아보시는 반응에 익숙해져가며, "투표 용지는 두 장입니다. 정당투표는 녹색당에 부탁드려요~" 하면 "저 여기 안 살아요", "저 교회 다녀요", "녹색당? 안철수당이냐" 등의 다양한 반응을 수집하며 정책홍보 명함을 소진해갔다.

가끔 신호등 아래 서계신 분들께 인사드리며 짧은 연설을 하기도 했으나 "횡단보도에 녹색불이 켜졌습니다"보다 작은 목소리로는 역부족이었다. 녹색당을 지지해달라는 얘기까지 가기 이전에 1인 2표제가 뭔지, 사전투표는 어떻게 하는지 등 길거리 선거 교육을 하는 시간이 길었다.

내가 녹색당 후보인지 선관위 직원인지 헷갈릴 때도 있었다. 이 역시 중요한 일이니 열심히 설명했지만 거리에서 비례후보 투표에 대한 유권자들의 반응을 직접 체크하다보니 시험 전날 시험범위 알게된 사람처럼 마음이 초조했다.

'비례대표 후보 유세금지'가 의미하는 것

비례후보 유세 금지가 의미하는 건, 지역구 후보와 비례후보 간의 위계관계다. 비례후보 유세 금지가 합헌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지역구 후보와 비례후보는 '다르다'고 말한다. 동등한 가운데 차이가 발생하는 게 아니다. 비례후보더러 지역구 후보의 유세원으로서 활동하라는 현행 선거법이 보여주듯, 비례후보를 지역구 후보에 종속된 존재로 보고 있다.

국회 안에서도 비례후보로 당선된 사람과 지역구 후보로 당선된 사람 간의 영향력이 다르다고들 한다. 그러니 비례후보로 당선된 의원들은 임기가 시작하자마자 다음에 출마할 지역구부터 정하고 열심히 지역구 관리에 나선다.

지역구 후보와 권역별 비례대표 후보 선출 절차가 선거법에 규정돼 있는 독일과는 달리, 여러 정당들에서 후보 공천 절차가 비민주적이고, 밀실에서 소수의 지도부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도 선출된 비례후보들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린다. 공천 과정을 공정하고 투명하게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선거 때마다 외부에서 보여주기식 인재영입에 급급하지 않고 다양하고 새로운 정치인을 당내에서부터 양성하는 등 정당 내 민주주의와 연결된 문제이기도 하다.

또한 비례후보 유세 금지는 정당 득표를 위한 홍보는 지역구 후보를 통해서만 하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 경우 의제를 중심으로 한 신선한 선거운동을 경험할 수 없고, 폭넓은 이야기를 들을 수 없다.

각각의 정당이 어떤 강령과 가치와 정책을 내세우는지는 각 지역구의 현안에 집중하는 후보들을 통해서만은 자세히 알기 어렵다. 선거 때만 되면 매번 정당의 이름을 바꾸고 그 사람이 그 사람인 헤쳐모여를 즐기는 정당들은 딱히 할 얘기가 없을 수 있다. 유권자들이 그런 엉터리 정당들을 걸러내기 위해서라도 비례후보들을 통해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어야 한다.
 
 스웨덴 녹색당의 선거오두막
 스웨덴 녹색당의 선거오두막
ⓒ 김주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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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총선을 앞둔 스웨덴에 다녀올 일이 있었다. 스톡홀름 시립 도서관에 설치된 사전투표장에서는 유권자들이 각 정당 비례대표 순번까지 투표할 수 있는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개방형 투표용지를 누구나 가져갈 수 있었다. 스웨덴 녹색당 용지를 살펴보니 후보자들의 나이와 직업이 적혀 있었다. 한눈에 봐도 참 다양했다.

세계녹색당 의장을 맡고 있는 켈리와 함께 예블레(Gävle) 지역의 선거운동을 관찰했다. 스웨덴의 정당들은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도시의 한 곳에 다같이 오두막이나 탁자를 차려놓고 선거운동을 한다. 오두막 간의 빈부격차(?)도 크지 않다. 사람들은 걷다가 멈춰서 정당들의 정책에 관해 대화하거나 팸플릿을 가져가는데 어떤 대화는 30분도 넘어간다.

시끄러운 트럭은 찾아볼 수 없고, 물어보니 그런 건 본 적도 없고 상상하기 어렵다했다. 각 정당의 공약을 조사하는 과제를 하러온 학생들도 많이 보였다. 평소 내가 꿈꿔온 선거운동에 가까웠다. 동네 마실가듯 둘러보고, 사과도 나눠먹을 수 있는 캠페인 부스 말이다.   

선거운동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나의 가치와 신념을 대변하는 정당에서 같이 준비한 이야기를 갖고서 사람들과 만나 대화하는 것이어야 한다. 후보가 조금 앞장서더라도, 함께하는 당원들이 거들어줘야만 가능하다.

부끄러움은 잠깐, 뿌듯함은 길다. 밥상머리 금기 같은 정치 이야기를 대놓고 할 수 있는 기회,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하고 싶어서 나선 시간들 속에 자기다운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한 당원은 내게 숨 막히는 일상에서 쌓인 모멸의 순간들이 일순간 해소되는 해방감도 느꼈다고 말한다. 시민들의 정치 참여를 가로막는 공직선거법, 정당법이 더 많은 자유를 허용하는 방향으로 바뀌었으면 좋겠다.

21대 총선이 1년 반 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각 정당의 정체성이 분명히 드러나고, 정책토론이 가능한 선거를 꿈꾸는가. 비례후보 선거 유세를 허용하라. 이번에야말로 헌재의 조속한 판결을 기대한다. 혹은 국회가 응답하라. 정치개혁의 시대적 책무를 다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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