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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비건> 이향재 대표와 반려묘 '꼬맹이'
 월간 <비건> 이향재 대표와 반려묘 "꼬맹이"
ⓒ 이향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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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은 빼 주실 수 있을까요?"

북적이는 김밥 전문점 귀퉁이에 앉은 A양의 주문이다. 올해로 4년 차 비건인 그녀는 외식할 때면 '깐깐한' 소비자가 된다. 그녀만의 레시피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육류뿐만 아니라 어류, 달걀, 유제품 등 동물성 원료는 일절 섭취하지 않는 것. 수정이 필요한 그녀의 주문은 판매자들에게 따가운 눈초리 받기 십상이다. 판매자에게도 기존의 레시피가 아닌 조리는 까다롭다. 비건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이 부족한 국내 실정은 적지 않은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다.

지난 23일 179명을 대상으로 안중근기자단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비건 식당을 모르는 응답자는 58.1%로 비건 식당을 아는 응답자(41.9%)의 약 1.5배였다. 그마저도 비건 식당을 인터넷에서 듣거나 알게 된 경우가 대다수다. 국내에서 비건 식당을 흔하게 볼 수 없다는 의견은 96%를 차지했다. 실제로 SNS에는 "우리(비건)를 위한 메뉴가 하나도 없어서 헛걸음했다", "어딜 놀러 가도 마음 놓고 식사할 수 없어 도시락을 싸고 다니는 게 낫다" 등 고충이 엿보인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도 비건의 신념을 지키는 사람이 있다. 올해로 창간 8주년을 맞은 <월간 비건>의 이향재 대표다. <월간 비건>은 채식, 생명 사랑, 환경 보호 등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잡지다. 비건 식재료, 레시피, 식당과 행사 등 비건을 위한 소식들을 담고 있다.

이 씨의 지난 삶은 소위 사회가 말하는 '성공한 사람의 라이프 스타일'이었다. 대기업 호텔과 광고 디자인 대행사에서 일하며 바쁘게 살았다. 그는 이틀만 고기를 안 먹어도 마트로 달려가는 열렬한 육식 애호가이기도 했다. 그런 그의 삶을 바꾼 건 10년 전 찾아온 한 소중한 인연, 반려묘 '꼬맹이'였다.

인간 먹거리의 참혹함이 시작이었다
   
월간 <비건> 11월호 표지
 월간 <비건> 11월호 표지
ⓒ 월간 비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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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하자면 많이 벌고 많이 쓰고, 많이 먹고, 많이 버리는, 전형적인 '성공한 사람의 라이프 스타일'을 살았죠. 그러다 10년 전 우연히 키우게 된 고양이 한 마리가 제 삶을 180도 바꿔 놓았어요."
 
동물사료를 공부하다 알게 된 인간 먹거리의 참혹함이 시작이었다. 이후 생명과 환경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노력이 채식이라고 판단하여 비건을 결심하고 월간 <비건>을 창간했다.

월간 <비건>의 기자 대부분은 비건이다. 페스코(육류만 먹지 않는 채식주의자) 직원이 있었지만, 함께 비건식을 즐긴 후 비건이 됐다. 1년 동안 꾸준히 비건식을 먹으며 맛있고 영양적으로 부족함이 없다는 것을 인정했다. 이 대표는 평소에도 사람들을 집으로 초대해 직접 만든 채식밥상을 대접한다. 그는 "채식음식이 얼마나 만들기 쉽고 맛도 있는지 '자랑질'을 하기도 해요. 요리를 자주 만들다 보면 육류, 유제품, 달걀 없이도 맛있고 건강한 요리가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됩니다"라며 웃었다.

비건만의 특권을 알려 달라는 질문에 그는 '채식이 옳다'고 말하는 몇 가지 이유를 소개했다. 첫 번째로, 채식을 결심한 순간 그동안 지나쳤던 소중한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는 "수십 가지의 채소들 각각이 가진 모양과 향기를 구별하게 됐다. 길가의 잡초나 들꽃, 가로수도 살펴보게 된다"고 덧붙였다.

두 번째로 적게 먹고, 적게 쓰고, 적게 버리게 된다. 채식을 하면 아무래도 먹는 양이 줄어들고, 자연스럽게 일회용품도 안 쓴다는 얘기다. 어느 날 문득 자신이 전보다 소박하고 부지런해졌다는 걸 느낄 수 있다는 이씨의 말에는 채식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 담겨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는 "동물들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소나 돼지 닭들이 어떻게 키워지고 어떤 가공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방부제와 식품첨가물을 뒤집어쓰고 내 밥상까지 올라왔는지를 생각하게 된다"며 살아 있는 생명으로 대접받지 못하고 오로지 빨리 커서 사람에게 맛있게 먹히기 위해 생산되고 도살되는 현실을 얘기했다. 이는 동물을 사람과 같은 반열에 놓자는 게 아니다. 사람에 의해 삶과 죽음이 결정되는 약한 생명체인 만큼 돌봐줄 도의적 책임이 있다는 얘기다.

"느리지만 진전이 있다"

채식을 실천하고 알리는 게 늘 쉬운 일은 아니었다. 채식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많다 보니 안타까운 일도 많았다. 그는 "언론에서는 채식 인구가 막 늘어나고 시장도 커지는 것처럼 보도하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다"며 "소개한 채식식당이 경영 부진으로 문 닫는 경우도 많이 봤다"고 했다. 비건 제품을 런칭하다가 부족한 국내 수요에 얼마 못 가 사업을 접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얘기다.

채식이 오해받는 이유에 대해서는 "언론환경에서는 광고주 저항 때문에 채식이 좋다고 말하기 힘들다. 연구 개발 환경에서는 많은 연구비가 가장 큰 압력 단체인 육가공협회, 유제품협회, 제약회사 등에서 막대한 자금이 지원되기 때문에 채식이 이롭다는 결과를 도출할 수는 없다"는 것이 그의 견해다.

그렇다면 비건에 대한 국내 인식은 개선되기 어려운 걸까. 어려운 질문에도 그는 밝은 대답을 이어갔다.

"느리지만 진전이 있다고 기대합니다. 동물보호, 환경 보호 등 추구하는 신념을 지키기 위해, 인류의 미래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채식을 시작한 독자들은 일상에서의 많은 불편과 제약을 감수하면서도 꿋꿋하게 채식의 길을 걸어가요."

그는 자발적인 채식을 하는 젊은 층이 늘어나고 있다는 말을 덧붙이며 한국의 비건 문화가 '희망'이 있다고 전망했다.

비건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이 부족한 국내 실정에 이향재 대표처럼 비건의 신념을 지키고 노력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기쁜 일이다. 조금씩만 관심을 가지고 인식을 개선한다면 우리나라도 비건 문화가 자리 잡게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안중근청년기자단 공도영, 김연정 기자입니다.


태그:#월간비건, #비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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