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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서 바뀐 것이 한둘이 아니다. 북한의 국제적 입지도 바뀌었다. 여성과 노동자의 지위도 최근 들어 많이 바뀌었다. 이뿐만 아니다. 개나 고양이 같은 반려동물의 위상도 놀랄 정도로 바뀌었다. 이들은 인간 사회에서 점차 가족이나 친구의 지위를 얻어가고 있다.

승용차 뒷좌석에서, 좌측 창문도 아니고 우측 창문을 내다보는 강아지 모습에 익숙해진 지 이미 오래다. 자동차 상석에 앉아 거리 풍경을 감상하는 그들의 지위도 이미 보통이 아닌 듯하다.

한동안 다니던 미용실 바로 옆에 고양이 미용실이 생긴 지도 1년 가까이 된 것 같다. 그래서 기존에 다니던 미용실은 어느덧 머릿속에서 '인간 미용실'로 바뀌었다. 인간 미용실과 고양이 미용실이 나란히 있는 장면을 일주일에 몇 번씩 보면서, 인간 사회를 파고드는 그들의 맹렬한 전진을 음미하는 일이 자연스레 많아졌다.

이런 세상이라 그런지, 반려동물과 함께하지 않는 사람들의 삶에도 그들이 자꾸만 들어오고 있다. 몇 달 전엔 출판사의 제안으로, 고양이가 주인공인 역사 삽화집에 해설을 붙인 적도 있다. 역사 글쓰기에서까지 고양이와 만나게 된 것이다. 남들 눈에는, 집에 반려동물을 뒀거나 반려동물과 친숙한 사람처럼 보였을 수도 있다.

그러다 결국 고양이를 소재로 한 전시회까지 가게 됐다. 11월 마지막 날(30일) 늦은 오후에, 생애 처음으로 그런 전시를 봤다. 위즈덤하우스 미디어그룹이 서울 용산역 아이파크몰에서 개최한 'The 냥: Love Like Cat' 전시회였다.

전시회는 12월 1일부터 3월 3일까지이고, 11월 30일에는 언론 시사회에 이어 VIP 시사회가 열렸다. 닌볼트의 퍼포먼스 작품, 조각가 변대용의 고양이 조각, 돌배·배성태·스노우캣 같은 웹툰 작가들의 작품, 고양이들의 일상을 담은 사진들을 보여주는 전시회였다.
 
 ‘The 냥: Love Like Cat' 전시회.
 ‘The 냥: Love Like Cat" 전시회.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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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장에서 작품들을 둘러보다가, 귓전에 들어와 떠나지 않는 한마디를 듣게 됐다. 평소에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던 말이다. 고양이 전시회라서 그런지, 그 순간에는 그 말이 귀에 와서 확 박혔다.

자기 작품을 설명하는 어느 작가의 매우 짧은 해설이었다. 스마트폰 배터리를 교체하느라 고개를 숙인 상태에서 들었기 때문에, 어느 작가의 해설인지는 모른다. '고양이를 오랫동안 접하다 보니 고양이 눈을 들여다보노라면 그가 인간인 자신보다 더 나은 정신 능력을 가진 거 같다는 느낌이 든다'고 그는 말했다.

자기 작품에 의미를 부여하느라 그렇게 말했을 수도 있다. 전시회의 성격상, 좀 과도할지라도 고양이에 대한 미화가 허용되는 분위기라서 그랬을 수도 있다. 그 해설을 들으면서, 고양이가 인간과 정말 가까워졌다는 새삼스런 사실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북한의 입지가 달라진 것은 세계 정치환경의 변화에 기인한 측면도 크지만, 북한 자체의 역량에 기인한 측면도 적지 않다. 여성과 노동자의 지위가 최근 많이 달라진 것도, 사회적 관점이 변화함과 동시에 그들의 역량이 고양된 데서 기인한 측면이 있을 것이다. 자기 스스로 얻지 않은 것은 오래가지 않으므로, 사회적 위상이 꾸준히 향상되는 개인이나 집단을 관찰할 때는 그들의 자체 역량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개나 고양이의 지위 향상과 관련해서도 어느 정도는 그런 관찰법을 가져야 할 듯하다. 인간이 귀여워해주기 때문에 그들의 입지가 나아지는 측면도 있지만, 그들이 가진 조건이나 역량이 그들 자신을 돕는 측면도 부정할 수 없을 듯하다. 그들이 인간 역사에 침투한 지가 한두 해나 몇십 년도 아니고, 적어도 수천 년이 넘으므로. 인간 곁을 차지한 채 일정한 이익을 챙길 수 있는 그들의 조건과 역량이 무엇인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전시회에서 찍은 사진.
 전시회에서 찍은 사진.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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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주변에는 수많은 동물들이 있다. 그중에서 인간과 일상을 함께하는 동물은 많지 않다. 반려동물보다 넓은 개념인 '가축'의 범주에 드는 동물은 개·고양이를 포함해 소·말·양·닭·염소·돼지 등과 얼마간의 조류뿐이다.

이들 중 일부는 역사가 기록되기 전부터 인간의 가축이 되었다. 앨프리드 크로스비(Alfred W. Crosby) 텍사스대학 역사학 교수가 쓰고 번역가 이창희가 옮긴 <태양의 아이들>에서는 "DNA 분석 결과에 따르면, 개의 가축화는 멀게는 4만 년 전, 아무리 늦어도 1만 5천 년 전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다.

'가축' 단계의 동물은 '반려동물' 단계보다는 못해도, 야생동물에 비해 현저히 나은 삶을 향유해왔다. 가축이 되는 동물은 인간 집의 앞마당에 살 수 있는 특권을 누려왔다. 인류의 미움을 사면 양식은 물론 주거지도 확보할 수 없는 이 지구의 현실에서, 가축 자격을 얻은 동물들은 적어도 밥은 굶지 않는 생활을 누려왔다. 여러 날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초원을 누비는 일이 허다한 사자들보다 그들의 입장이 다 나은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가축 지위를 승인받는 데는 조건이 필요했다. 우선, 인간과 조화를 이룰 만한 체격 조건을 갖고 있어야 했다. 인간과의 조화에 필요한 유전적 변화를 감당하는 능력도 있어야 했다. 동물에 관한 책들을 번역하거나 집필해온 임정은의 <세상을 바꾼 동물>에 이런 글이 있다.
 
"사실, 동물은 야생종과 가축화된 종의 차이가 크다. 겉모습부터 행동방식까지 차이가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어떤 동물이든지, 가축화가 시작되면 몸집이 작아진다. 아무래도 사람이 관리하고 기르려면, 덩치가 너무 크면 힘들 것이다. (중략) 또한 사육되는 동물들은 머리뼈 안면부와 턱뼈가 짧아진다. 턱이 좁아지면서 이빨도 작아진다."
 
적당한 몸집에, 위협감을 덜 줄 뿐 아니라, 인간과 조화를 이룰 만한 유전적 변화를 감내할 수 있는 동물들이 인간의 가축으로 초대됐던 것이다. 초원에서 맹위를 떨치는 사자나 표범 등은 가축이 되기에 부적합했던 것이다. 인간과 친숙한 맹수도 없지 않지만, 공포심을 주는 동물은 인간 사회에 끼기 힘들었다.
 
 전시회 사진.
 전시회 사진.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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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축 단계를 지나, 개나 고양이처럼 반려동물 단계에 도달하는 동물한테는 추가적인 조건이 요구됐다. 적당한 체구 및 유전적 변화 능력에 더해, 인류와 교감할 수 있는 지적 능력까지 필요했다. 좀전에 소개한 전시회의 그 작가가 말한 대단한 정신적 능력은 아닐지라도, 인류의 가족이나 친구가 될 수 있을 정도의 교감 능력은 가져야 했다. 이런 동물은 인간 집의 앞마당에서 한걸음 더 들어와, 거실이나 안방까지 차지할 수 있었다.

물론 인간과의 교감 능력이 동물의 절대적 가치를 평가하는 최고의 척도는 아니겠지만, 반려의 지위를 얻은 동물들은 단순히 밥을 굶지 않는 단계를 벗어나 상당 수준의 호사까지 누릴 수 있게 됐다. 중국인 일러스트레이터 과지라(瓜几拉)가 제작하고 번역가 조윤진이 옮긴 역사 삽화책 <당나라에 간 고양이>에는 사후에 무덤까지 만들어진 앵무새 이야기가 소개돼 있다. 최근 개봉된 영화 <안시성>에 등장한 당태종 및 그 증손자인 당현종(당나라 현종)과 관련된 이야기다.
 
"정관 5년(631년), 태종은 오색앵무새를 얻게 되자, 곧바로 사람을 불러 앵무새를 위한 시를 지어주었다. 현종 또한 양귀비와 함께 설의녀(雪衣女)라는 이름의 앵무새를 오랫동안 키웠는데, 새가 죽자 몹시 상심한 나머지 정원에 묘를 만들어 영원히 기억하고자 했다."
 
흔한 사례는 아니지만, 반려동물 장례식이 당나라 때도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일부 반려동물이 호사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인간이 그들을 사랑해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들에게 나름의 무기가 있었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인간에게 정서적 만족을 제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인간과의 공생 속에서 편리한 삶을 유지하고자, 인간의 귀염을 받으려고 애쓴 결과라고 볼 수 있을 듯하다.

그런 노력이 없었다면, 그렇게 오랫동안 인간과 더불어 한 지붕 아래서 먹고 자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인간 심리에 영향을 줄 능력이 없었다면, 가축 단계에 머물며 끼니를 해결하는 수준에 그쳤을지도 모른다.
 
 전시회 사진.
 전시회 사진.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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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나 친구가 될 수 있는 반려동물들의 능력과 관련해, 미래학 학계에서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왔다. 인간과 반려동물의 관계가 종교의 기능을 어느 정도 대체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신이나 내세에 대한 믿음이 강해서 종교를 신봉하는 이들도 있지만, 불안을 해소하고 심적 안정을 얻을 목적으로 그렇게 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후자에 해당하는 이들한테는 반려동물이 어느 정도는 종교 기능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미래학자 박영숙과 제롬 글렌의 <세계미래보고서 2030~2050>에 나오는 이야기다.
 
"인공지능, 로봇공학 및 생명공학 등 과학의 발전이 많은 고대 종교의 기반을 허물 것이다. 특히 사망률을 감소시키면서 죽음의 공포 역시 감소시킨 덕분에 종교가 전반적으로 약화된다. 또 인류의 우주 진출은 천국과 사후세계에 대한 이미지를 바꾸며, 반려동물을 비롯한 많은 동물들과 의사소통이 가능해지면서 불안과 외로움을 종교가 아닌 동물을 매개로 치유하게 될 것이다."
 
SNS 보편화에 힘입어 인간 상호 간의 의사소통 가능성이나 범위는 확대됐지만, 대면접촉 기회가 줄어들다 보니 전화통화보다는 문자메시지로 연락하는 일이 훨씬 빈번해지는 세상이 되고 있다. 누군가의 생사가 걸린 해고 통지마저 문자 메시지로 보내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이렇게 인간 상호 간의 대면접촉이 축소되는 틈을 비집고, 반려동물들이 인간 사회로 더 깊숙이 들어오고 있다. 개나 고양이는 이미 오래전부터 반려동물이었지만, 최근 1, 20년 사이에 인간 사회 안에서의 위상이 부쩍 높아졌다.

동물과 교감하는 인류의 능력이 향상됐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인류의 친구가 될 수 있는 그들의 능력이 만들어낸 결과라고도 볼 수 있다. 그들이 누리는 호사는 어느 정도 그들 자신의 역량 때문인 측면도 있는 것이다.

그들이 종교 기능까지 대체할지는 아직 더 두고 봐야 하지만, 인간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칠 만큼 그들이 우리 곁에, 아니 자동차 상석까지 바짝 들어와 있는 게 사실이다. 이런 흐름이 계속 이어진다면, 앞으로는 연인의 마음을 얻기 위해 인간 경쟁자 못지않게 반려동물 경쟁자와도 삼각관계를 벌여야 하는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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