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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조직에 속해 일하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이 사람이 업무시간에 일이 생겨 자신의 근무처에서 도보로 15분 거리에 있는 다른 곳에 간다. 그러자 조직이 이 사람에게 '여비' 2만 원을 책정해 지급한다.

사기업에 속한 노동자라면 '공돈'이 생겼다며 좋아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돈을 받는 사람이 선출직 공무원이라면? 소위 나랏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그 여비가 국민 세금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문제는 달라진다.

실제 존재하는 이야기다. 서울시 서대문구의회 소속 구의원들의 이야기다. 최근 한 구의원이 구의회에서 이와 같은 문제점을 지적했다. 문제제기의 주인공은 임한솔 정의당 서대문구의회 의원(마선거구). 
 
임한솔 정의당 서대문구의원.
 임한솔 정의당 서대문구의원.
ⓒ 임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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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구의원은 지난 27일 서대문구의회 의회사무국 행정감사(아래 행감, 국회로 치면 국정감사)에서 "구의원이 구청에 감사하러 갈 때 하루에 2만 원씩 준다"라며 "서대문구의원이 서대문구청에 감사하러 가는 데 여비라니, 상식에 맞지 않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서대문구의회에서 서대문구청까지는 도보로 15분 정도(1.06km) 걸린다. 만약 버스를 이용한다면 서너 정거장(버스요금은 900~1200원)만 거치면 된다. 이 정도 거리의 업무를 보는 데 1일 2만 원을 지급하는 것. 이 여비 지급은 지난 2005년부터 이뤄져 왔다고 한다.

이와 같은 여비 지급은 "지방의원에게 관행적으로 주어져 왔던 불필요한 특혜"라고 진단하는 임한솔 구의원. 11월 30일 임 구의원에게 더욱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다음은 임 구의원과의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

"서대문구 안에서 일하는데 1일 여비 2만 원... 말이 되나"
 
서대문구의회에서 서대문구청까지 걸어가면 얼마나 걸릴까. 16분가량 걸린다는 조회 결과. 거리는 1.06km다.
 서대문구의회에서 서대문구청까지 걸어가면 얼마나 걸릴까. 16분가량 걸린다는 조회 결과. 거리는 1.06km다.
ⓒ 네이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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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감 여비' 1일당 2만 원 지급, 어떻게 발견하게 됐나.
"아시다시피 지방의회 행정감사는 지방자치단체의 각 부서가 국민들이 낸 세금을 적절하게 잘 사용했는지 감시하는 데 목적이 있다. 혹시 '내 눈에 들보'가 있는지 살펴보고자 서대문구의회 사무국의 지출 내역을 살펴봤다. 그때 발견하게 됐다."

- 구체적으로 어떻게 지급됐나.
"'행감 여비' 문제를 지적하자 의회사무국에서 2017년도 행감 여비 지급내역을 보여줬다. 당시 서대문구 구의원이 15명이었는데, 행감은 7일이었다. 하루에 2만 원씩, 총 14만 원이 행감이 종료된 뒤 현금 지급됐다. 구의원 전체가 받은 여비는 총 210만 원이었다. 의회사무국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모든 의원이 직접 서명해 여비를 수령했다.

서대문구의회의 행감 여비는 2005년부터 지금돼 왔다고 한다. 의원 수를 15명이라고 가정하고 매년 행감 때마다 200만 원가량이 의원들에게 갔다면 그 금액은 총 2600만 원에 이른다."

- '행감 여비' 지급이 타당하지 않다고 본 이유는?
"여비는 업무상 필요에 따라 먼 거리를 이동하는 경우 지급되는 것이다. 가령, 서대문구에서 타 시·도를 방문해야 할 필요가 있다면 여비 지급이 타당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서대문구의회에서 서대문구청은 심지어 같은 연희동에 있다. 걸어서 15분, 버스 타고 가면 10분도 안 걸린다. 어떤 날은 행감이 동 주민센터에서 이뤄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같은 구다.

의회사무국에서는 '공무원 여비지급 규정에 따라서 지급했다'고 설명했지만, 이것은 명백히 규정을 잘못 적용한 것이다. 행정상의 오류다. 의회사무국 직원에게 서울시내 25개 구의회에 대한 전수조사를 요청했더니 행감 때 구의원에게 여비를 주는 곳은 서대문구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24개 구의회가 '공무원 여비지급 규정'을 어기고 있는 건가. 아니다.

또한, '행감 여비 지급'은 국민 눈높이에도 맞지 않다. 구의원은 사기업에 고용된 노동자가 아니다. 국민들이 대표자의 역할을 하라고 선출한 사람이지 않나. 지금까지 구의원들이 스스로에게 여비를 지급한 것이나 다름 없다. 국회의원들이 스스로 세비를 인상하듯, 구의원들이 이런 가외수입을 챙겨온 것이다. 십수 년 동안 이어진 관행이다."

- 문제를 지적하자, 구의회 사무국은 뭐라 답하던가.
"처음에는 '규정이 있으니 당연하다'는 식이었는데, 규정 적용의 불합리성과 국민 상식 밖 행정이라는 점을 지적하자 '행감 여비 지급을 중단하는 방향으로 검토하겠다'는 답변이 나왔다."

"지방의원들 불필요 특권 심각해... 영리겸직허용 없애야"

- 동료의원들이 싫어했겠다(웃음). 주변 반응은 어땠나.
"두 가지의 다른 분위기가 상존함을 느꼈다. '지적할 만한 걸 지적했다'는 기류와 '기존에 받아왔던 걸 안 받게 되니 떨떠름한' 기류가 바로 그것이다. 하루에 2만 원, 적다고 보면 적은 돈일 수 있으나 문제는 정당성이다. 의정활동에 꼭 필요한 것이라면 당연히 주는 게 맞다. 하지만 이건 원칙과 상식에 어긋난 지방의회 의원의 특권이다."

- 지방의회 의원이 누리고 있는 특권 중 가장 시급히 타파해야 할 것은?
"사실 지방의원이 누리고 있는 불필요한 특권이 많다.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시급한 것은 '지방의원의 영리 겸직 허용' 문제다. 국회의원은 투잡을 뛰지 못한다. 하지만 시·구의원은 이게 가능하다. 본인 사업체 운영하면서 구의원을 겸직하는 분들이 적지 않다. 자신의 주된 시간과 노력을 할애하는 업이 주민들이 부여한 의원직인지, 자기 사업인지 경계가 불분명한 경우를 보게 된다. 상임위 회의하다가 사업 때문에 자리 비우는 경우도 있으니...

물론, 지방의원이 자신의 직업과 직접적 연관이 있는 상임위에 배정되지 못하는 등 제도적 장치는 있다. 하지만 지방의원직이라는 자리가 갖고 있는 유무형의 영향력이 존재한다. 지자체 공무원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이런 데에서 지방의회에 대한 불신이 커진다. 제도적으로 근절할 필요가 있다."
 
최근 '동네 어려운 이웃돕기 김장행사' 현장에서 김장하는 임한솔 구의원.
 최근 "동네 어려운 이웃돕기 김장행사" 현장에서 김장하는 임한솔 구의원.
ⓒ 임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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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그래야 지방의회 신뢰회복"

- 지방의원에 대한 신뢰회복, 쉽지 않아 보인다.
"맞다. 나는 지난 6.13 지방선거 때 당선한 이후, '열심히 의정활동을 하고 있다는 걸 알리면 되겠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현장에서 지방의회를 보니 내 의정활동도 중요하지만, 지방의회의 신뢰회복이 급선무라고 여기게 됐다.

그래서 '지방의원 특권 내려놓기 시리즈'를 진행 중이다. 첫 번째로 한 것이 '구의회 해외연수 임기 내 전면 불참 선언'이었다. 그 다음으로는 '구의원 급여명세서 공개'였다. 내가 얼마만큼의 세금을 받고 일하는지 고용주인 구민들에게 알려야겠다고 생각해서였다. 세 번째가 '구의회 업무추진비 공개 조례'였다(이 조례는 지난 10월 부결됐다). 이번에 행감 여비 문제를 제기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솔직히 동료의원들이 곱게 보지 않는다(웃음). 하지만 누군가는 나서서 비판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바뀌지 않는다. 이런 노력들이 켜켜이 쌓여 지방의회에 대한 신뢰를 회복시킬 수 있을 것이라 본다. 앞으로 적극적으로 특권들을 찾아내 문제제기하고 이슈화하겠다."

태그:#서대문구의회, #서대문구청, #여비, #임한솔, #정의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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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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