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후르츠> 포스터

<인생 후르츠> 포스터 ⓒ (주)엣나인필름

 
키키 키린은 일본영화를 좋아하는 관객들이라면 한 번쯤은 보았을 배우이다. <악인><걸어도 걸어도><도쿄 타워> 등 다양한 작품에서 인상적인 어머니 연기를 선보인 그녀는 암 투병 중에도 <어느 가족>을 촬영하며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열연을 선보였다. 특히 <어느 가족>의 바닷가 장면에서 그녀가 애드리브로 선보인 '고마웠어'라는 입모양은 실제 배우의 마지막 인사말처럼 느껴져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키키 키린이 내레이션을 맡은 <인생 후르츠>는 57년을 배우로 살아온 그녀와 177년을 살아온 노부부의 삶이 오버랩 되는 다큐멘터리이다. 90세의 건축가 츠바타 슈이치와 87세의 아내 츠바타 히데코는 혼자 산 날보다 함께 한 날이 더 길다. 두 사람은 50년 간 살아온 집에서 과일 50종과 채소 70종을 키운다. 새와 고양이가 공존하는 도시 속 단독주택은 마치 작은 숲과 같다.
 
영화는 이 두 부부를 통해 두 가지 이야기를 전달한다. 첫 번째는 65년을 함께 살아온 노부부의 사랑이다. 슈이치가 추구하는 삶인 슬로 라이프는 많은 양보를 요구한다. 스스로 밭을 일구고 집안의 물건들을 수리해야 되며 매일 반찬과 디저트를 요리해야 한다. 200년 전통의 양조장 외동딸인 히데코는 어린 시절부터 '현모양처'로 교육을 받았다. 그녀는 남편을 위해 헌신하며 매일 맛있는 요리를 만든다.
  
 <인생 후르츠> 스틸컷

<인생 후르츠> 스틸컷 ⓒ (주)엣나인필름

 
하지만 두 사람의 사랑이 히데코의 헌신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가정의 분위기상 스스로 무언가를 결정해 본 적 없는 히데코에게 슈이치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당신이 하고 싶은 건 다 좋은 일이에요. 그러니 하도록 하세요.' 슈이치는 히데코를 존중해 주었고 이런 존중에 히데코는 믿음으로 보답하였다. 이는 두 사람의 식사를 통해 알 수 있다. 슈이치는 밥과 반찬을 먹는 반면 히데코는 빵에 잼을 발라 먹는다. 한쪽의 식탁을 고집하지 않고 서로를 배려하는 부부의 모습은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두 번째는 세 명의 건축가의 명언을 통해 알 수 있는 부부가 살아온 삶의 자세이다. '집은 삶의 보석 상자여야 한다(르 코르뷔지에)' 는 말은 슈이치의 건축가로써의 지향점이라 할 수 있다. 태평양 전쟁 후 폐허가 되어버린 일본에서 슈이치가 할 수 있는 일은 집을 짓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는 건축설계에 있어 천부적인 재능을 지니고 있었지만 그 재능을 펼치기 힘들었다. 고조지 뉴타운 건설 당시 자연친화적인 디자인을 제안하였으나 금액과 시설 문제로 반대에 부딪친다.
 
집은 편안함과 안락함을 줄 수 있어야 하며 이런 편안함과 안락함은 자연의 형태에서 온다고 생각하는 슈이치는 대만에서 본인이 설계에 참여한 건물 역시 전망을 보장 받지 못한 점에 실망한다. 그가 생각하는 보석 상자 같은 집은 사람을 위한 집이고 이에 대한 답은 자연에 있다 여긴다. '모든 답은 위대한 자연 속에 있다'는 가우디의 명언처럼 그의 집은 작은 숲을 형성하고 있다.
  
 <인생 후르츠> 스틸컷

<인생 후르츠> 스틸컷 ⓒ (주)엣나인필름

 
슈이치는 모든 건물이 최소한의 주거공간만을 확보하고 나무와 텃밭으로 이뤄진 숲의 형태를 이룬다면 시원한 바람을 통한 통풍과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공생을 이룰 수 있다 생각한다. 여름을 더 덥게 만드는 아스팔트와 시멘트로 꽉 막힌 마을의 풍경을 수정하려 하였으나 비용의 문제로 실패한다. 이에 그는 직접 민둥산에 나무를 심어 숲을 형성하고 집에 나무와 채소를 심어 변화를 실현하고자 한다. 성격적으로 아웃사이더인 슈이치는 비록 집단 내부에서 변화를 일으킬 수는 없지만 자신의 이상을 조그맣게나마 실현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런 슈이치의 삶의 자세를 잘 보여주는 명언이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오래 살수록 인생은 더욱 아름다워진다'라고 할 수 있다. 슈이치가 원하는 집의 지향점은 히데코와의 노력으로 결실을 이룬다. 두 부부는 자신들이 일군 텃밭에서 끼니를 해결하며 플라스틱을 최대한 적게 쓰는 자연 그대로의 삶을 실현한다. 슈이치와 히데코는 느리지만 천천히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나아갔고 그 꿈은 90의 나이에 현실이 된다.
 
영화의 시작과 끝을 수미쌍관으로 장식하는 키키 키린의 내레이션은 츠바타 부부의 삶을 요약한다.

'바람이 불면 낙엽이 떨어진다 / 낙엽이 떨어지면 땅이 비옥해진다 / 땅이 비옥해지면 열매가 열린다 / 차근차근, 천천히'

낙엽이라는 시련과 고통은 땅이 비옥해지는 양분이 된다. 비옥해진 땅은 열매라는 결실을 맺는다. 부부는 직접 텃밭을 일구며 이 과정을 겪는다. 한 박자 천천히 돌아가는 슬로우 라이프는 느리지만 '열매'를 맺는 방법을 알려준다.
 
<인생 후르츠>는 삶에 있어 의미 있는 '결실'이라는 열매를 맺는 방법을 알려주는 영화이다. 남들이 지름길 혹은 정답이라 말하는 길과 방향이 다르고 느리지만 진정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길을 뚝심 있게 천천히 걸어갈 수 있는 자세를 말한다. 2년간 400개의 테이프를 통해 담아낸 츠바타 부부의 모습은 자신의 삶을 조금은 더 믿고 나아가라는 따뜻한 힐링을 선사해 줄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준모 기자의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 키노라이츠, 루나글로벌스타에도 실렸습니다.
인생후르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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