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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을 살해한 아버지가 있다. 희귀병으로 전신이 마비 된 딸을 돌본 지 6년째, 생활고를 견디다 못한 그의 선택은 딸의 목숨을 제 손으로 끊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딸의 생명을 이어주던 산소호흡기 전원을 껐다. 딸 장례식을 치르던 아버지 손목에 수갑이 채워졌다. 2003년 10월의 일이다.

당시 기자 초년생이었던 유영규 기자(현 서울신문 탐사기획부 부장)에게 아버지를 인터뷰 해오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그는 1박 2일 동안 용산구 후암동, 피의자의 집 앞을 떠나지 못했다. 오는 비를 고스란히 몸으로 맞았다. 딱 한 번, 아버지를 맞닥뜨렸다. 아버지는 말했다.

"입장 바꿔 생각해보세요. 딸 죽인 아빠가 무슨 얘기를 하겠습니까."

그는 펑펑 울었다. 기사는 나가지 못했다. 15년 후, 그는 이 사안을 다시 끄집어냈다. 병든 가족을 간병하다 마음이 병들어 환자를 살해하거나 본인이 목숨을 끊는 비극들을 한 데 묶어보자 싶었다. 지난 9월 <서울신문> 탐사기획부가 8회에 걸쳐 내놓은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은 그렇게 첫 발을 뗐다.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 기획 보도로 이달의 기자상을 수상한 <서울신문> 탐사기획부 유영규 부장이 28일 서울신문 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 기획 보도로 이달의 기자상을 수상한 <서울신문> 탐사기획부 유영규 부장이 28일 서울신문 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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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기자생활 하면서 가장 어려웠고 결과적으로 실패했던 취재를 후배들은 해낸 거죠."

후배 임주형·이성원·신융아·이혜리 탐사기획부 기자가 유 부장과 함께 했다. 5명이 오롯이 3개월을 매달려 나온 결과물은 호평을 받았다. 지난 9월 이들은 한국기자협회가 선정한 이달의 기자상을 수상했다. 지난 26일에는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가 선정한 '국제앰네스티 언론상'에 선정되기도 했다. "보기 드문 역작"이라는 평가를 받은 기사를 써낸 서울신문 탐사기획부 기자들을 지난 28일 서울신문사에서 만났다.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 위해 판결문 108건 입수, 언론보도 전수조사

성공기를 듣기 위한 인터뷰였는데 실패기부터 나왔다. 그럴 만도 했다. 사건 당사자를 만나는 것부터가 난관이었다. 일단, 2006년 이후 선고가 난 간병살인 판결문 108건을 모두 입수했다. 언론보도를 전수 조사했고 온갖 기록을 뒤졌다. 그 결과 2006년 이후 간병살인 가해자가 154명, 희생자가 213명이라는 숫자를 도출했다. 이 중 30여 명을 만나기 위해 직접 찾아갔다. 부동산 사장님도 "꼬시고" 부녀회까지 돌았다. 각고의 노력 끝에 당사자를 만난 건 10여 건, 인터뷰는 6~7건 성사됐다.

"맨 처음 만났던 분은 5번 찾아갔어요. 처음 만났을 때 일생 얘기를 다 들었죠. 세상과 단절하고 사시다가 저희가 가니까 반가우셨던 거 같아요. 아내가 급성 뇌출혈로 전신마비가 오면서 간병하다 결국 아내를 죽인 사건인데, 그 얘기만은 못하겠다고 하시더라고요. 다섯 번째 갔을 땐 쫓겨나다시피 나왔어요." (이성원 기자)
  
함께 간 신융아 기자도 손 편지까지 쓰며 취재원의 마음을 돌리려 했지만 결국 '살인' 얘기 앞에 그는 입을 다물었고, 기사에 담지 못했다.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 기획 보도로 이달의 기자상을 수상한 <서울신문> 탐사기획부 신융아·이성원 기자(왼쪽부터)가 28일 서울신문 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 기획 보도로 이달의 기자상을 수상한 <서울신문> 탐사기획부 신융아·이성원 기자(왼쪽부터)가 28일 서울신문 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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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리 기자는 "시작할 때는 취재원을 만나면 어떻게 얘기를 꺼내야 할까가 고민이었는데, 직접 찾아가니 이사한 경우가 허다해서 막상 만나니 너무 반가운 마음이 먼저 들었다"고 했다. 그만큼 지난한 작업이었다.

"치매 걸린 시어머니를 모시고 장애를 가진 아들을 둔 40대 여성이 있었는데 경제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동반 자살을 하려다 미수에 그친 사건이 있었어요. 살인미수로 집행유예를 받았죠. 사건 발생 5년 후에 찾아간 거였는데 이미 그 여성분 혼자 자살하셨더라고요. 한 번은 이겨냈지만 두 번은 못 이겨낸 거죠. 다시 무너진 이유를 듣고 싶었지만 남편분이 연락에 답을 안 주시더라고요. 우리 사회가 한 번 무너진 사람들을 돌봐줘야 비극이 반복되지 않을 텐데, 아쉬웠죠." (임주형 기자)

각각의 사건마다 담아낼 메시지가 있었으나 결국 인터뷰를 하지 못한 게 수두룩했다. 그랬기에 기사로 전달하지 못한 '실패'들이 이들의 마음 끝을 잡고 있었다.

가족간병인 325명 직접 설문..."학계에서도 나온 적 없는 데이터"

탐사기획부는 가족 간병인 325명을 대상으로 직접 설문조사를 실시한 것도 큰 성과로 꼽았다.

신 기자는 "간병하는 사람만을 대상으로 한 설문이어서 그 자체가 어려웠다"라며 "그럼에도 간병 기간에 따라 자살·살인 충동이 몇 배나 뛰는 게 수치로 나타났고 우울증 정도가 일반인의 10배 수준으로 측정됐다, 이건 학계에서도 나온 적이 없는 데이터로 설문 과정이 어려웠던 만큼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서울신문> 분석 결과 간병인 4명 중 3명이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으며, 간병범죄 절반 이상(53.7%)이 치매 환자 가정에서 일어났다. 또 간병살인 18.5%가 명절과 가정의 날에 집중돼있고, 목 조름 살인이 전체의 38%임이 드러났다. 이러한 사실들은 간병살인 사건 전수조사와 간병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가 아니었으면 도출할 수 없는 결론이었다. 
 
서울신문이 지난 9월 8회에 걸쳐 내보낸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 기획 기사.
 서울신문이 지난 9월 8회에 걸쳐 내보낸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 기획 기사.
ⓒ 서울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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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아쉬움도 있다. 유 부장은 기사에 달린 다수의 댓글들이 '안락사 허용'을 얘기하고 있는 것을 보며 "반성했다"고 했다.
 
"내가 비겁했구나 싶었어요. 안락사 얘기를 다뤘어야 했는데 그러면 또 하나의 챕터가 필요했죠. 당장 이것도 감당하기 어려운데 여기서 끊자 했어요, 탐사팀임에도. 딱 그 지점에 대해 독자들이 '이거 좀 다뤄주세요'라고 하는 순간 독자들에게 미안했습니다. 그러나 안락사만으로 대안을 끝낼 수는 없었어요. 결국 다 죽자는 얘기냐, 논쟁이 이상하게 갈 수 있거든요. 아무래도 조심스러웠습니다."
 

그렇다면, 탐사기획부가 본 실질적인 대안은 무엇일까. 임 기자는 "간병살인이 일어났다는 것은 간병인의 정신상태가 붕괴됐음을 뜻하는 거다, 이들이 잠시라도 쉴 시간을 주는 것, 간병상황에서 잠시라도 떨어져 있게 하는 게 필요하다"라며 "일본은 쇼트스테이(단기보호서비스)가 있다, 이런 제도만 활성화 되어도 정신적으로 무너지지 않게 할 수 있고 비극을 줄일 수 있다"라고 짚었다.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 기획 보도로 이달의 기자상을 수상한 <서울신문> 탐사기획부 임주형·이혜리 기자(왼쪽부터)가 28일 서울신문 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 기획 보도로 이달의 기자상을 수상한 <서울신문> 탐사기획부 임주형·이혜리 기자(왼쪽부터)가 28일 서울신문 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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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본연의 역할을 하기 위해, 탐사 보도에 투자해야합니다"

마지막으로 유 부장에게 탐사기획의 중요성에 대해 물었다. 그는 "언론이 힘들다 보니 길게 보고 투자하는 게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 본연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가치 있는 기사, 질적으로 뛰어난 기사를 써야한다, 탐사는 투자"라고 강조했다.

유 부장은 3년 전 이미 탐사기획팀을 맡았으나 7개월 만에 어그러진 경험을 갖고 있다. 재도전에 대해 그는 "이혼한 부인과 재혼한 기분이다, 아 이래서 날 힘들게 했지 생각이 든다"며 웃었다. 그러면서 그는 탐사기획을 준비하는 다른 언론인들에게 "뻔뻔해질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어 그는 "묵묵히 믿어주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번 건이 잘 안 풀릴 때 박찬구 편집국장이랑 술을 마셨는데, 국장이 아주 옛날에 탐사보도 하다가 망한 얘기를 해주면서 '얘들이 타사로 도망가지 않으면 실패해도 서울신문 경험이고 노하우잖아'라고 말하더라. 망하면 안 되는데 (하하) 그게 사실은 되게 고마웠다. 그런 마음으로 버텨주고 있다는 게."

누군가는 버텨주었고, 누군가는 15년 전 실패를 잊지 않았다. 누군가는 문전박대 당했고 누군가는 산더미 같은 자료 앞에 끙끙대며 결론을 끄집어냈다. 이는 '기자상 추천 만장일치'로 귀결됐다. 한국기자협회는 '이례적인 일'이라고 했다.

"가야할 길이 보이지 않는다며 저널리즘의 미래를 묻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에게 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 수상작으로 선정된 서울신문의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기획의 힘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작품이다." -한국기자협회 기자상 심의위원회-

태그:#간병살인, #서울신문, #이달의기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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