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당신이 믿었던 페이크>이 한 장면

MBC <당신이 믿었던 페이크>의 한 장면 ⓒ MBC

  
"MBC보다 할 말 하는 조덕제TV가 훨씬 진실 되고 의미 있는 방송 아닙니까."
 
성추행·성폭력 피해자는 울었고, 가해자는 의기양양했다. 지난 9월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40시간의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를 선고받은 가해자 배우 조덕제는 웃었고, 2015년 이후 송사와 가짜뉴스, 2차 피해에 시달렸던 배우 반민정은 눈물을 훔쳤다. 반민정은 지상파 공영방송의 시사교양 프로그램에서였고, 조덕제는 본인의 유튜브 방송에서였다.
 
반민정이 직접 출연해 사건 당시 성추행 장면이 담긴 화면까지 공개한 MBC <당신이 믿었던 페이크>가 방영되던 27일 밤, 조덕제는 본인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조덕제 TV' 생방송을 진행 중이었다. 조덕제의 유튜브 방송은 "페미민국, 정말 대단하네요!", "이게 바로 '피해자다움'입니다!"라는 부제를 내걸고 있었다.
  
 MBC <당신이 믿었던 페이크>의 한 장면

MBC <당신이 믿었던 페이크>의 한 장면 ⓒ MBC

 
방송이 계속되면서, 조덕제의 방송은 시청자가 수십 명에서 수백 명으로 늘었다. 반민정과 조덕제의 이름이 포털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면서 급작스레 벌어진 '호황'이자 '특수'였다. 댓글 창에 "MBC에서 반민정 건 하는 거 아세요?"란 질문들이 올라오자, 조덕제는 의연한 듯 이렇게 말했다.
 
"다 알고 있지 않나요? 속지 않고 다 알고 있지 않은가요? 제목이 좀 거슬리긴 하는데. 저도 MBC에서 인터뷰를 하긴 했죠. 뭐, 여러분들이나 국민 여러분들이 다 그 사안에 대해 파악하고 계신데요."
 
조덕제는 유튜브 창에서 자신만의 시청자와 구독자들을 향해 끊임없이 "진실"이나 "다 아시죠?"라는 말을 하고 있었다. 그에게 진실이란 무엇일까. 또 지속적으로 무엇을 확인 받고자 하는 것일까. 이는 역설적으로 조덕제가 "편파 방송"이라고 단언한, 자신 또한 출연한 <당신이 믿었던 페이크> '조덕제 사건' 편의 내용에 적나라하게 담겨 있었다.
 
투사로 거듭난 가해자
  
 MBC <당신이 믿었던 페이크>이 한 장면

MBC <당신이 믿었던 페이크>의 장면 ⓒ MBC

 
"더 이상은 최악은 없을 거야라고 생각했는데 매일 매일 저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이에요."

재판이 진행되는 40개월 동안 "너무 많은 것을 잃어야 했다"는 반민정. 그를 괴롭히고 있는 것은 크게 두 갈래였다. 지속적으로 2차 가해를 하고 있는 조덕제, 그리고 '언론'이란 이름 하에 오보와 악의적인 가짜 뉴스 및 선정적인 보도로 일관하는 인터넷 상의 수많은 매체들 말이다. 먼저, "여성단체의 개입이 재판을 뒤엎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주장하는 조덕제는 유튜브를 통해 본인 스스로가 '가짜뉴스'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반민정은 그간의 고충을 이렇게 토로했다.
 
"점점 저의 숨통을 조여 오는 것 같아요. 사고(성추행) 장면을 올리면 어떡하지 굉장히 불안하고 고통스럽고. 마치 영화라고 생각하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실제로 제가 당하는 장면이기 때문에 제 자신한테는 너무나 끔찍하거든요."

그러니까, 조덕제가 본인의 유튜브에 공개한 영상들은 사고 전후의 영상일 뿐, 실제로 반민정이 당했던 성추행이 담긴 장면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이렇게 반민정은 여성으로서 느낄 수밖에 없는 고통을 절절히 호소하고 있었다. 조덕제가 올린 영상을 단지 화면으로만 대하는 이들에게는 단지 영화 촬영장 속 장면이지만, 본인은 수치심과 고통을 겪었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사건'의 순간이지 않겠는가.

조덕제가 공개하고 여타 유튜버들이 퍼다 나른 영상은 <디스패치>가 공개해 논란을 부채질 했던 메이킹 필름 중에서도 조덕제 자신이 유리하게 보일 수 있는 사고 전후 장면을 짜깁기한 영상이었다. 이를 공개한 이후 그는 공공연히 억울함을 호소하는 중이었다. 마치 투사라도 되는 것 마냥.
 
또 조덕제는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조덕제는 패하지 않았음을 알리기 위해 현대판 의병장이 되고자 한다"고 선언하는가 하면, 반민정을 향해 "니가 톱배우냐, 연기를 하고 싶으면 오디션을 봐라"라고 비난하는 영상을 계속해서 올리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조덕제가 '당당위'(당신의 가족과 당신의 삶을 지키기 위하여) 집회에 참석해 실시간 방송을 하는 장면은 꽤나 상징적이었다. "페미민국, 정말 대단하네요!"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그는 '미투' 운동의 시대 흐름 속에 여성 운동, 여성 단체들에 의해 재판이 뒤집혔다면서 자신을 피해자로 둔갑시키고 있었다. '남혐'을 믿는 이들과 함께 반민정을 비난하고, 여성 단체들을 욕하면서 그는 유튜브 시청자들에게 본인의 은행계좌를 공개한다.
  
 조덕제TV 화면 캡처

조덕제TV 화면 캡처 ⓒ 조덕제TV캡처

 
또 하나의 가해자, 언론
 
또 하나의 축은 언론이었다. 작년 10월, 사건의 발단이 된 영화 <사랑은 없다>의 메이킹 필름을 공개하면서 반민정의 얼굴과 이름을 노출하고, 조덕제에게 유리한 내용의 편파적이고 악의적인 기사를 내보낸 <디스패치>는 형사조정 판결 끝에 결국 1년 만인 지난 10월 기사를 삭제하고 사과문을 게재했다.
  
 MBC <당신이 믿었던 페이크>의 한 장면

MBC <당신이 믿었던 페이크>의 한 장면 ⓒ MBC

 
그러나 그 1년 간, <디스패치>를 받아 쓴 왜곡-선정보도는 확대 일로였다. 심지어 <디스패치>는 삭제한 기사에서 조덕제에게 유리한 내용의 인터뷰를 했던 영상전문가의 의견도 급조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영상전문가는 정작 재판에선 반민정 측의 손을 들어줬다.
 
반민정에 대한 가짜뉴스의 생산지는 또 있었다.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실형을 선고 받은 개그맨이자 연기자 이재포(는 조덕제와 사적인 친분이 있었다)와 그의 매니저는 법원으로부터 가짜뉴스를 작성한 혐의로 엄벌에 처해졌다. 해당 매체인 <코리아데일리>는 사과문을 게재했고, 결국 폐간 수순을 밟았다.

'백종원 식당에서 돈을 뜯어낸 여배우', '병원에서 난동 피워 돈을 받아낸 보험 사기녀'와 같이 이재포 등이 작성한 자극적인 기사들은 물론 허위로 판명됐다. 하지만 이 악의적인 보도들 역시 여타 매체들의 받아쓰기로 이미 일파만파 퍼진 후였다.
 
"뭐가 가짜뉴스냐? 내가 물어 보고 싶다"
 
"피해자를 지원하면서 막상 가장 대응하기 힘들었던 것은 가해자가 아니라 언론이었습니다.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피해자의 몫이 되고 피해자는 가해자뿐만 아니라 언론, 그리고 그 언론을 보고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중, 삼중의 고통을 받아야 했다."

지난 11월 6일 반민정과 함께 기자회견에 나선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본부 윤정주 소장은 가짜뉴스와 받아쓰기 보도, 선정적인 보도에 '올인'하는 언론과 매체들을 질타했다. 헌데, 대법원에서 유죄를 확정 받은 가해자가 도리어 피해자를 비난하며 스스로 '가짜뉴스'를 생성하는 중이다. 이런 식이다.
 
"쭉 한 번 제가 올려놓은 영상들 보시면 충분히 여러분들 아실 테고요, 여성단체를 표방하고, 꼴통 여성단체들, 이들이 하고 있는 행태가 우리 사회를 분열시키는지, 우리 사회를 전복시키는 행동을 하고 있는지 아셔야 합니다. 거기에 편승하고 있는 MBC와 같은 언론들, 그 앞에서 줄서기하고, 더 나아가서 정치인들, 위정자들의 실태를 밝혀내서 국민의 이름으로 처단해야 합니다."
 
27일 유튜브 방송에서, 시간이 갈수록 조덕제의 표정은 경직돼 갔고, 언어는 점점 과격해져 갔다. <당신이 믿었던 페이크>의 방영 와중에 포털 검색 등을 통해 유입된 시청자들이 조덕제의 방송으로 몰려들었기 때문. 
   
 MBC <당신이 믿었던 페이크>의 한 장면

MBC <당신이 믿었던 페이크>의 한 장면 ⓒ MBC

 
 조덕제TV

조덕제TV ⓒ 조덕제TV

  
"뭐가 가짜뉴스냐? 내가 물어 보고 싶다."
 
시청자들이 급증했다고 반색하던 조덕제도 자신을 비판하는 시청자들이 늘어가자 태도가 돌변했다. 예의 그 '가짜뉴스'에 해당하는 '말'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꼴페미) 벌레들이 많이 들어 온다, 저기 가서 놀아라", "MBC 시청자 중에 민주당 지지자가 많다", "내가 만졌으면 유죄인데, 그게 아니라 1심에서 무죄가 났다" 등등.
 
채팅 창 역시 과격해졌다. 반민정에 대한 욕설과 비난이 난무하긴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반민정을 "죽이고 싶다"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왜 40개월 동안 반민정이 극심한 고통 속에 살아야 했는지를 유추할 수 있는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지상파 방송인 <당신이 믿었던 페이크>와 유튜브 채널 조덕제 TV를 동시간대에 함께 접했던 이들은 아마도 역사적인 순간을 목도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성폭력 사건의 가해자가 자신을 고발하고 가짜뉴스를 비판하는 내용의 방송이 전파를 타던 순간, 본인 스스로 자랑스럽다는 듯 가짜뉴스를 생성해내는 그 기기묘묘한 장면을 말이다. 조덕제는 그렇게 가짜뉴스의 투사로 거듭났다.
조덕제 반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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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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