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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도 한국토지주택공사 상임감사위원이 펴낸 책 <도시의 얼굴들> 표지.
 허정도 한국토지주택공사 상임감사위원이 펴낸 책 <도시의 얼굴들> 표지.
ⓒ 지앤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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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도시를 거쳐 간 사람들의 이야기이고, 그들이 머물고 스쳤던 시간과 장소에 관한 이야기다. … 최근 도시정책의 무게 중심은 도시재생에 있다. 도시재생은 문화에 방범이 있고, 문화적 도시재생은 스토리텔링이 요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이 문화적 도시재생을 위한 한 줌의 거름이 되면 좋겠다."

이는 현재 한국토지주택(LH)공사 상임감사위원으로 있는 허정도 박사(건축사)가 경남 창원마산과 관련한 인물 16인의 흔적을 정리해 펴낸 책 <도시의 얼굴들-한 도시에 남긴 16인의 흔적>(지앤유 펴냄)에서 한 말이다.

책에는 마산에 깊은 흔적을 남긴 인물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김주열 열사와 김춘수 시인은 마산과 인연이 예사롭지 않아 이미 잘 알려져 있고, 조선 마지막 왕 순종과 한글학자 이극로, 나도향, 백석 등의 인물도 마산 이야기를 할 때 빼놓을 수 없다.

순종은 1909년 벽두에 마산 순행했다. 허정도 박사는 "순행에 나선 왕은 민중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춰졌을까?"라며 "나라를 앗아간 통감 이토(68세)와 나라를 팔아넘긴 매국노 이완용(51세) 사이에 낀 젊은 순종(35세)은 어떤 모습이었을까"라며 궁금해 했다.

책에는 순종이 철도를 타고 삼랑진을 거쳐 마산역에 오기까지, 당시 마산 앞바다에 정박해 있던 일본 함대의 축포, 기마경찰이 이끄는 행렬 등을 자세히 설명해 놓았다.

또 순종 순행길의 마산역, 마산심상고등소학교, 경교, 마산이사청, 장군교, 월포원, 몽고정, 창원부청, 망월루, 마산이사관사, 세관 등의 옛 사진도 함께 책에 실려 있다.

한글학자 이극로(1893∼1978) 선생은 2년간 마산에서 보냈다. 허정도 박사는 이극로 선생에 대해 "새벽마다 말죽을 끓였고 여관을 드나들며 인단을 팔았던 고학생, 갓 뚫린 비포장 북성로를 오갔고 상남동 골목길을 내달렸으며 일에 지치면 교방천에 발을 담갔던 청년 이극로, 마산은 그 위대한 생애의 첫 장소였다"고 했다.

'여장군'이라 불리었던 김명시(1907~1949) 독립운동가도 있다. 김명시 선생은 마산에서 열여덟살까지 살았고,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었으며, 3.1만세운동 때 얻은 부상 후유증으로 어머니를 잃었다. 사회주의 계열 항일투쟁에 뛰어들어 12년간 일제 감옥에 갇혔던 김형선이 오빠이고, 1930년대 부산과 진해에서 적색노조운동을 이끈 김형윤이 남동생이었다.

허정도 박사는 "강만길 역사학자는 김명시를 마산의 독립운동사에서 가장 앞에 세워야 한다고 했다"며 "일제강점기 민족해방운동사에서 그녀는 잊혔다. 고향에서조차 그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이 드물다. 다른 이유는 없다. 그녀가 사회주의자였기 때문"이라고 했다.

스물다섯 청춘에 요절한 나도향(1902~1926)은 죽기 한 해 전 여름 마산에 왔다. 그는 말기 폐결핵 치료를 위해 요양차 왔고, 마산에서 대표작 "범어리 삼룡", "물레방아", "뽕" 등을 발표했다.

1988년 북한 문인 해금 이후 그들의 삶과 작품이 알려지기 시작했을 때 관심을 끈 인물이 시인 백석(1912~1996)이고, 그도 마산과 인연이 깊으며 그 이야기가 책에 나온다.

마산하면 독립지사 명도석(1885~1954) 선생을 빼놓을 수 없다. 명도석 선생의 호는 '허당(虛堂)'으로, "주권 잃은 나라는 주인이 없는 빈집과 같다, 내 나라가 주권국이 될 때까지 헌신하겠다"며 스스로 다짐하며 지은 것이다.

허정도 박사는 "명도석 선생을 죽게 한 조국은 선생이 떠난지 36년, 해방된 지 45년이 지난 1990년에야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선생을 지린 표적 몇이 마산시내에 있다. 중성동 생가 터 앞에 박힌 표지석과 봉암로변에 세운 기념비, 2004년 선생의 호로 명명된 마산용마고 앞 '허당로'다"고 소개했다.

남원에서 태어나 마산에서 죽었던 김주열(1944~1960) 열사의 이야기도 책에 나온다. 그는 옛 마산상고(현 용마고) 입학하기 위해 마산에 왔던 것이다. 허정도 박사는 "은행장을 꿈꾸었던 열일곱 살 주열은 얼굴에 최루탄이 박힌 그 모습으로 영원히 국민들 가슴 속에 녹아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책에는 "만석꾼 옥기환", "임화와 지하련", "귀천 천상병", "산장의 여인", "꽃의 시인 김춘수", "천생 춤꾼 김해랑", "추기경 김수환" 등의 이야기도 나온다.

허정도 박사는 "이들이 마산에 머물렀던 시간과 장소는 제각각이다. 머문 이유도 달랐다. 그런 만큼 그들의 행적도 다를 수 밖에 없었다. 지난했지만 그것들을 하나둘 찾아내며 그들이 남긴 행적과 그들이 머물렀던 장소를 연결시켰다"고 했다.

그는 "16인이 남긴 도시 속 흔적들은 이미 훼손됐다. 건물은 대부분 철거됐고 장소도 변했다"며 "하지만 장소가 훼손됐다고 해서 그들이 몸짓했던 사실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장소만 알고 있을 그 이야기들은 우리의 감성으로 살려낼 수 있다. 어떤 모습으로 다시 살려낼 것인가? 그것은 오롯이 우리의 몫이다"고 했다.

황교익 맛칼럼니스트는 이 책에 대해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에 우물이 숨어 있기 때문이야.' <어린왕자>에서 우물은 사람의 흔적을 상징하지요. 도시도 그러합니다"며 "도시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그 도시의 사람들로 해서 발현됩니다. 한반도 남녘 작은 도시에 어린 왕자들이 다녀가며 흔적을 남겼습니다. 그분들 덕분에 아름답습니다"고 했다.

태그:#마산, #허정도, #순종, #이극로, #김주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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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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