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스토리공모대전에 블랙리스트 실해자로 예심 심사위원으로 선정해 문화예술계의 비판을 받고 있는 한국콘텐츠진흥원 나주 본사

대한민국스토리공모대전에 블랙리스트 실해자로 예심 심사위원으로 선정해 문화예술계의 비판을 받고 있는 한국콘텐츠진흥원 나주 본사 ⓒ 한국콘텐츠진흥원 상상플러스

 
한국콘텐츠진흥원(김영준 원장, 아래 콘진원)이 최근 진행한 공모전에서 박근혜 정권의 블랙리스트 실행자로 지목된 인사를 예심 심사위원으로 넣은 것으로 확인돼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인사들로부터 비판이 제기됐다.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문화예술계 인사들은 블랙리스트 관련자 처벌 문제에 대한 문화체육관광부의 소극적인 태도가 이런 상황을 만들었다며 성토하는 분위기다.

논란이 된 공모 행사는 2018 대한민국스토리공모대전이다. 김세훈 세종대 교수(전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가 예심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것이 확인되면서 블랙리스트로 상처를 받았던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2018 대한민국스토리공모대전은 지난 4월 공모를 시작해 23일 10편의 수상작을 선정하고 마무리됐다. 8월 초에 접수를 마감하고 이후 9월 중순까지 예심을 하고, 10월~11월까지 1개월간 본심을 거쳐 수상작을 선정했다.

예심위원으로 39명이 참여했고, 본심에는 11명이 참여했다. 김세훈 교수는 애니메이션 전문가로 심사위원에 선정됐다. 콘진원 측은 "김세훈 교수가 만화 애니메이션 전문가이고 심사위원 후보자군(Pool)에 있어 기본적인 절차를 거쳐 담당 분야 예심 심사위원으로 선정한 것이지 특별하게 선정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블랙리스트 문제 무감각, 안일한 콘텐츠진흥원

하지만 아무리 전문가라고 해도 영진위원장 시절 블랙리스트 실행에 역할을 했고 책임이 있는 인사를 심사위원으로 선정한 것은 적절하지 않았다는 것이 영화인들의 지적이다. 콘진원이 안일함을 넘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문제에 대해 무감각하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콘진원 역시 전임 원장 시절인 '2015년 만화 제작지원 사업'에 지원한 사단법인 우리만화연대를 공모사업에서 배제시키기도 했다. 우리만화연대가 만화무크지에 '유신공주인형놀이'라는 만평을 게재한 것이 대통령 모독 등의 사유로 블랙리스트에 올랐기 때문이었다.
 
 지난 5월 8일 열린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 종합발표 기자회견

지난 5월 8일 열린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 종합발표 기자회견 ⓒ 성하훈

 
지난 5월 발표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이하 블랙리스트 조사위) 발표에 따르면 김세훈 위원장 재임 당시 영진위는 독립영화 지원 사업이나 다양성영화 개봉 지원 사업 등에서 심사위원들에게 특정 작품의 배제를 요구해 관철시키거나 의도에 맞게 심사위원을 구성해 검열과 배제를 진행했다.

또 <다이빙벨> 상영 보복으로 2015년 부산영화제 예산을 삭감하는 과정에서는 김세훈 영진위원장의 지시 아래 심사위원 후보자군(Pool)에 포함돼 있지 않은 자를 심사위원으로 포함하는 형태로 심사위를 구성해 지원금 축소를 주문하고 실행했다. 이에 대한 비판 여론이 일자 외부인사에게 원고를 보내 언론 매체에 게재하는 대필 기고를 했는데, 이 과정에도 위원장이 관여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문체부는 지난 9월 13일 전직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 등 공공기관장 2명을 블랙리스관련 수사의뢰 대상에 포함했다고 밝혔다. 스토리공모대전 예심이 시작된 이후이기는 해도 수사 대상자를 심사위원으로 선정한 셈이다.

한 영화 프로듀서는 "심사위원 명단을 보고 깜짝 놀랐다"며 "어떻게 블랙리스트 실행자로 지탄을 받고 있는 인물을 심사위원에 포함시켰는지 모르겠다"고 분개했다. 그는 "황당함을 넘어 화가 났다"면서 "문체부가 블랙리스트 조사 결과를 발표한 게 5월이었는데, 8월에 예심위원으로 심사에 참여시켰다는 점에서 콘진원 자체에도 문제가 커 보인다"고 비판했다. 이어 "블랙리스트 문제를 문화체육관광부가 대충 넘어가려고 하니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생긴다"고 덧붙였다.

한 영화감독도 "심사위원으로 위촉한 콘진원에 1차 책임이 있지만 김세훈 전 영진위원장도 자숙을 모르는 걸 보니 전혀 잘못했다고 생각 안 하는 것 같다"고 질타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로고

한국콘텐츠진흥원 로고 ⓒ 한국콘텐츠진흥원

 
이 같은 비판에 콘진원은 당혹스러움을 나타내고 있다. 콘진원 측은 "심사의 공정성을 위해 스토리공모대전은 관련 전문가로 구성된 심사위원 후보자군에서 무작위 3배수 추출을 통해 심사위원을 섭외했다"며 "현재 심사위원 후보자군에 대해 검증과 개선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앞으로 이러한 문화예술계의 염려와 지적이 발생하지 않도록 개선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콘진원 관계자는 "해당 부서가 너무 안일했던 것 같아 안타깝다"면서 "문화예술계와 산업계 등의 현장 목소리를 반영해 심사위원 후보자군에 대한 검증 작업을 면밀히 하겠다"고 덧붙였다.

문체부 미온적 태도가 원인

문화예술계에서는 이 같은 논란이 문체부가 블랙리스트 문제에 대해 미온적인 태도를 보일 때부터 예고된 사안이라고 지적한다.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한 영화제작자는 "촛불이 2년이 지나니 책임을 져야할 이들이 대충 회피하면서 잊히기를 원하고 있는 것 같다"며 "단호한 처벌을 미루고 미적대고 있는 정부의 태도가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말했다.

문체부는 지난 9월 블랙리스트에 관련된 이들에 대한 수사의뢰 및 징계 권고 등 이행계획을 발표했으나 형식적인 징계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문화예술인 대행진 '블랙리스트 블랙라스트' 적폐청산과 블랙리스트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2018문화예술인 대행진 - 블랙리스드 블랙라스트(Blacklist Blacklast)’가 3일 오후 문화민주주의실천연대 주관으로 여의도 국회앞을 출발해 청와대앞까지 열렸다. 광주민예총, 민족미술인협회, 터울림 등 131개 단체와 문화예술인 2,166명 개인은 선언문을 통해 ‘블랙리스트 불법공모 131명 책임규명권고안 즉각 이행’ ‘진상조사 및 책임규명이행 축소, 왜곡, 방해, 셀프 면책 책임자 문책’ ‘국회의 블랙리스트진상규명 특별법 제정’ 등을 촉구했다.

적폐청산과 블랙리스트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2018문화예술인 대행진 - 블랙리스드 블랙라스트(Blacklist Blacklast)’가 11월 3일 오후 문화민주주의실천연대 주관으로 여의도 국회앞을 출발해 청와대앞까지 열렸다. ⓒ 권우성

 
실제로 블랙리스트 실행자로 지목된 용호성 주영 한국문화원장에 대한 소환은 12월이 다 됐지만 아직도 진행형이다. 문체부는 재외 문화원장으로 재직 중인 관련자 3명은 외교부와의 협의를 거쳐 조기 복귀시킬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으나 정확한 소환날짜는 모르겠다는 태도다.

현지의 문화예술계 관계자들은 "여전히 용 원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12월까지 원하는 것 실컷 하고 갈 모양"이라며 "문체부 내부에서 돕지 않으면 저렇게 버틴다는 게 불가능해 보인다"고 주장했다. 블랙리스트 조사위에서 활동했던 인사들은 "당장 직무정지 시키고 소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으나 문체부는 적극성을 보이지 않는 모습이다.

또 최근 개봉해 흥행에 참패한 <출국> 측은 화이트리스트 논란에 대해 "많은 매체들이 합리적 의심이라는 걸 근거로 사실이 아닌 기사를 냈다"며 관련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블랙리스트 조사위 발표를 통해 모태펀드를 통해 순제작비를 초과한 특혜성 지원을 받은 사실이 확인됐음에도 처음 기획했던 제작자와 제목이 바뀌었다는 이유를 들며 부인하는 자세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특정영화의 상영을 막기 위해 제한상영가 등급을 매기거나, 등급분류 전 상영 문제로 고발됐던 영상물등급위원회도 사과를 외면하고 있다. 영등위원장과 영등위원들은 사과 방침을 정했으나 정작 책임 있는 직원들이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영등위 사과가 실기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화예술계 인사들은 지난 11월 3일 여의도 국회에서 청와대까지 행진하며 문재인 정부와 문체부가 문화계 블랙리스트 적폐 청산에 나설 것을 요구했다. 이들은 ▲블랙리스트 조사위의 책임 규명 권고안 즉각 이행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책임규명 이행 축소·왜곡·방해 책임자를 문책 ▲ 대통령, 국회, 정부가 미진한 진상규명의 구체적인 대책 수립을 촉구했다.

문체부는 문화예술계의 블랙리스트 책임규명 이행계획 재검토 요구를 수용하겠다고 밝힌 상태이나, 의지가 약해 보인다는 게 블랙리스트 피해자들의 비판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경우 지난 21일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관여한 직원을 사실상 전원 징계 조치하면서 문화예술계의 요구를 수용했다.
콘텐츠진흥원 블랙리스트 스토리공모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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