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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그마한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잔뜩 화난 세상에 살고 있다. 얼마 전 치른 수능에서는 감독관의 향수 냄새가 너무 짙어 시험을 못 봤다는 민원, 경비원의 작은 말 실수를 주먹다짐으로 앙갚음하는 아파트, 커피숍에서는 주문한 대로 나오지 않았다고 큰소리치는 고객... 한번쯤은 실수를 하는 사람들의 입장에 서서 생각해 볼 여유는 없을까? 물론 나도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이라는 이름을 걸고 영업을 하는 식당이 있다면 어떻겠는가? 주변인의 반응은 '화가 날 것 같다', '직원을 불러 항의를 하겠다'는 식이었다.

2017년 6월 일본에서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이라는 프로젝트가 진행된 적이 있다. 치매 할머니들이 서빙을 보는 식당, 가끔씩 음이 끊겨버리는 치매 할머니의 피아노 연주가 흐르는 식당은 일본의 방송국 PD가 기획한 이벤트였다.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을 기획한 PD가 여유로운 마음이 널리 퍼지기를 바라며 영상에서 못다 한 이야기를 책으로 펴냈다. 그 책 제목이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이다.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 표지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 표지
ⓒ 웅진지식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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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는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과 관계된 손님, 치매 할머니, 도움을 준 사람 등 다양한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치매 할머니의 삶을 조명한다. 단지 치매라는 이유로 일상의 평범함을 잃어버린 모습을 그리기도 했다. 치매를 한 마디로 정의하면 '무언가를 잊고 잃어버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잃어버린다는 것은 슬프고 아픈 일이다. 잃는 도중에 무언가를 얻는다면 '나'라는 존재를 다시 확인할 수 있다. 이 요리점이 치매 할머니들에게 꼭 그런 역할을 했다.
 
역할을 가진다는 것이 사람을 이토록 빛나게 한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눈앞에서 한없이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 분들을 보며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89쪽)

손님들은 퍽퍽한 세상에서 전혀 다른 풍경으로 들어온 듯하다. 식당에 들어온 손님의 관점으로 쓰인 글은 '괜찮아', '실수하니까 더 웃음이 나고 재미있어요', '다시 오고 싶어요' 등의 내용으로 정리할 수 있다. 실수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자신의 실수도 타인으로부터 용인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적장애를 앓고 있는 자녀를 둔 가족은 외식을 할 때마다 아들이 실수할까 걱정했지만,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은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었다.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은 어떻게?

2부는 요리점을 만들면서 어려웠던 일, 순식간에 일이 추진되는 모습, 추진하는 사람으로서 느끼는 감정, 만들면서 추구했던 가치와 원칙 등을 정리했다. 눈에 띄는 것은 기획팀이 철저하게 지키고자 했던 두 가지 규칙이다.
 
① 식당답게 음식의 질을 고집하기(멋있을 것, 맛있을 것)
② 실수가 목적이 아니다. 일부러 실수를 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182쪽)

사람들의 흥미를 끌기 위해서 일부러 치매 어르신의 실수를 유도한다면 방송을 위한 기획이 되고 만다. 그러나 그들은 '리얼'한 방송을 추구했다. 틀릴 가능성을 전제하긴 했지만 유도하지는 않았다.

저자는 방송국 PD로서 2012년에 치매 관련 시설과 치매 어르신을 촬영한 일이 있다. 조금 특별한 그림을 기대했지만, 치매 어르신의 지극히 평범한 광경이었다.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약간 위험한 사람들'이라는 느낌으로 취재를 나간 현장이었지만 현실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시설의 사람들은 자유롭게 열린 문을 통해 마을 사람과도 왕래하며 치매를 앓기 전과 같이 보통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저자는 어르신의 삶의 풍경 속에서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 프로젝트의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한다.

그리고 몇 년 뒤 저자는 심실빈맥이라는 병을 얻으면서 멀리까지 취재가고 촬영하는 일을 할 수 없게 된다. 프로그램 제작을 안 하는 PD가 된 저자는 심장병 때문에 우울한 나날을 보내다가 새로운 삶을 개척하게 된다. 프로그램 광고 사이트를 만드는 등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사람으로 변신했고, 2016년 가을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을 다시금 떠올렸다.

그는 100% 즐길 수 있는 사람,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는 사람, 자신의 이익을 포기할 수 있는 사람 등 3가지 조건으로 동료를 찾고, 함께하자고 설득했다. 프로젝트 실행 후 세계 각지에서 치매 환자를 위한 새로운 사례라며 극찬을 받았고, 150여 개의 국가로 소식이 퍼져나갔다.

왜 이토록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당긴 걸까? 치매환자도 보통 사람이라는 새로운 관점과 치매 환자의 순수하고 행복한 표정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그리고 실수에 대한 비난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실수를 허용하고 받아들이는 장소를 통해 작은 위안을 받고, 용기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지 않았을까?

물론 한 가지 일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다. 그러나 사람들이 이 책을 보며 다른 듯 다르지 않은 치매 환자에 대한 편견을 깨트리고, 더 나아가 실수에 대한 비난이 관용으로 바뀔 수 있는 심리적 공간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서 운영 중인 독서IN(www.readin.or.kr) 홈페이지 독서카페에도 실립니다.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

오구니 시로 지음, 김윤희 옮김, 웅진지식하우스(2018)


태그:#주문을 틀리는 요리점, #황왕용, #오구니 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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