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어로즈의 '캡틴' 서건창은 육성선수 출신으로 KBO리그 신인왕(2012년)과 MVP(2014년), 역대 최초이자 현재까지 유일한 정규시즌 200안타까지 달성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장종훈(한화 이글스 수석코치)이나 박경완(SK 와이번스 수석코치)처럼 육성선수 출신으로 리그 MVP에 선정된 선수는 가끔 있었지만 육성선수 입단과 방출, 그리고 다른 구단으로의 재입단을 거치며 리그 최고의 선수가 된 경우는 서건창이 유일하다.

하지만 서건창처럼 기존 구단에서 방출된 선수가 다른 팀으로 이적해 기량을 꽃 피우거나 부활에 성공하는 경우는 결코 흔하지 않다. 올 시즌이 끝난 후에도 각 구단에서 많은 선수들이 방출의 아픔을 겪었지만 심수창과 장원삼(이상 LG트윈스), 배영섭(SK), 윤지웅(NC다이노스), 박근홍(롯데 자이언츠)처럼 재취업에 성공한 선수는 과거 1군에서 크고 작은 실적을 보였던 선수가 대부분이다.

한국시리즈 준우승팀 두산 베어스도 지난 25일 한국야구위원회에 제출한 보류 선수 명단에서 팬들에게 제법 낯이 익은 여러 선수가 제외됐다. 대부분 프로 입단 후 장시간 동안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한 소위 '실패한 유망주'들이다. 그 중에서 두산팬들의 마음을 가장 아프게 하는 선수는 무려 10년 동안이나 구단과 팬들이 애타게 기다려 왔던 '민간신앙' 성영훈이다.

프로 입단 2년 만에 자취를 감춘 세계 청소년 대회 MVP 

해마다 많은 유망주들이 고교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초고교급 선수'라는 수식어를 달고 프로의 문을 두드리지만 성영훈은 그야말로 '격이 다른 유망주'였다. 덕수고 시절 이미 2000년대 서울 지역 최고의 우완 투수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녔던 성영훈은 2008년 제23회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대회 우승과 MVP를 휩쓸었다. 한국뿐 아니라 동년배들을 상대하는 세계 무대도 성영훈에겐 좁았던 셈이다.

이 대회에 출전했던 한국 대표팀 명단을 보면 김상수, (삼성 라이온즈), 안치홍(KIA 타이거즈), 오지환(LG), 허경민, 정수빈, 박건우(이상 두산) 등 오늘날 KBO리그의 스타들이 즐비하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에이스' 성영훈의 존재감은 단연 돋보였다. 특히 미국과의 결승전에서는 심한 감기 몸살을 앓고 있는 상황에서 선발 등판을 자처해 7피안타9탈삼진무사사구 완봉승을 거두기도 했다. 

2009년 두산의 1차 지명을 받은 성영훈은 5억5000만 원의 높은 계약금을 받고 프로 무대에 뛰어 들었다. 이미 덕수고 시절에 세계 무대를 정복했던 괴물 투수의 등장에 두산 팬들은 커다란 기대에 부풀었다. 하지만 성영훈은 프로 첫 시즌 9경기에서 2승평균자책점3.38을 기록하며 기대에 부응하는 큰 활약을 하지 못했다. 고교 시절부터 따라 다니던 고질적인 팔꿈치 통증이 원인이었는데 이를 방치한 것이 더 큰 화를 부르고 말았다.

2010년 재활과 복귀를 병행하면서 15경기에서 1패 4.96을 기록한 성영훈은 그 해 삼성과의 플레이오프에서 뛰어난 구위를 선보였다. 하지만 성영훈은 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팔꿈치에 통증을 느낀 후 강판됐고 팔꿈치 인대파열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렇게 프로 입단 2년 만에 팔꿈치 인대접합수술을 받은 성영훈은 사회복무요원으로 입대했다. 성영훈이 자리를 비운 사이 청소년 대표 동기들은 KBO리그를 대표하는 스타로 자리 잡았다.

2013년 1월 소집 해제된 성영훈은 곧바로 스프링캠프에 합류했지만 이번엔 어깨가 말썽이었다. 어깨 통증으로 다시 2년을 허비한 성영훈은 2015년 6월 어깨 관절경 수술을 받았다(같은 해 LA다저스의 류현진이 받았던 것과 같은 수술이다). 1군은커녕 퓨처스리그에서조차 5년 동안 등판 소식이 없는 성영훈을 두산 팬들은 언젠가부터 '민간신앙'이라 불렀다. 분명히 실존하는 선수지만 아무도 본 사람이 없다는 의미였다.

2536일 만의 1군 복귀전이 두산에서의 고별전이 된 성영훈

매년 시즌이 시작되기 전 복귀를 위한 재활을 하고 있다는 소식만 들려주던 성영훈은 2016년 5월 KT 위즈와의 퓨처스리그 경기를 통해 마운드로 돌아왔다. 비록 퓨처스리그 경기였지만 설화(?)로만 전해지던 성영훈의 실전 등판에 두산팬들은 큰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두 타자를 상대한 성영훈은 볼넷 하나와 삼진 하나를 기록하고 마운드를 내려 왔는데 시속 148km의 강속구를 뿌렸을 정도로 구위가 많이 회복됐다.

하지만 성영훈은 그 해 재활과 등판을 반복하다가 끝내 1군 무대에 오르지 못했다. 작년에도 2군에서 시즌을 시작한 성영훈은 그 해 5월 19일 KIA전에서 2536일(정규시즌 기준) 만에 1군 복귀전을 가졌다. 이 경기에서 성영훈은 1이닝을 1볼넷 무실점을 기록하면서 두산팬들을 감격시켰다. 하지만 성영훈은 복귀 일주일도 되지 않아 허리가 삐끗하면서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됐고 결과적으로 성영훈의 1군 복귀전은 두산에서의 마지막 등판이 됐다.

작년 8월 퓨처스리그 경기를 끝으로 실전 등판을 하지 못한 성영훈은 지난 4월 팔꿈치 인대 접합수술과 뼛조각 제거 수술을 동시에 받으며 또 한 번 수술대에 올랐다. 프로 데뷔 후 팔꿈치에 두 번, 어깨에 한 번 칼을 댄 것이다. 2009년 프로 입단 후 10년 동안 '아프지 않은' 성영훈의 성장을 기다려 온 두산에도 드디어 한계가 왔다. 결국 두산은 올 시즌이 끝난 후 보류 선수 명단에서 성영훈의 이름을 제외했다.

한주성, 남경호, 최원준(개명 전 최동현)으로 이어지는 두산의 1차 지명 잔혹사는 2009년 1차 지명이었던 성영훈으로부터 시작됐다. 두산은 입단하자마자 팔꿈치 수술을 받은 이영하가 올해 10승을 거두며 징크스를 끊었지만 올 시즌 초반 좋은 구위를 뽐낸 곽빈이 지난 10월 팔꿈치 인대 접합수술을 받았다.김태형 감독이 2019년 1차 지명 선수 김대한을 투수로 키우고 싶다고 했을 때 두산 팬들이 결사반대한 것도 '성영훈 트라우마' 때문이다.

한편 207cm의 국내 최장신 야구선수로 유명했던 2010년 1라운드 지명 선수 장민익도 '한국판 랜디 존슨'이 되겠다는 꿈을 이루지 못하고 두산 유니폼을 벗었다. 장민익은 프로 입단 후 구속 증가를 위해 몸을 키우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부드럽지 못한 투구폼과 제구력 난조, 단순한 구종 때문에 좌완이 귀했던 두산에서도 끝내 생존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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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리그 두산 베어스 성영훈 민간신앙 보류선수 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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