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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훔치는 문무일 검찰총장 문무일 검찰총장이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부산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을 만나 사과하던 도중 눈물을 훔치고 있다. ⓒ 남소연

"과거 정부가..."
 
준비된 사과문을 손에 든 문무일 검찰총장이 채 열 글자도 읽지 못하고 말을 멈췄다. 입술을 굳게 다문 그는 이내 안경을 벗고 눈물을 닦아냈다. 이른바 '한국판 아우슈비츠'로 불리는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에게 사과하는 자리였다.
 
문 총장은 27일 오후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피해자들을 만나 고개를 숙였다. 과거 형제복지원 사건 수사 과정에서 검찰이 저지른 과오를 사과한 것이다. 그의 눈물에 피해자들은 "오늘 눈물을 잊지 말아 달라"라고 호소했다.
 
이날 문 총장은 "그때 검찰이 진상을 명확히 규명했다면 형제복지원 전체의 인권침해 사실이 밝혀지고, 인권 침해에 대한 적절한 후속 조치도 이뤄졌을 것"이라며 "하지만 검찰은 인권 침해의 실상을 제대로 규명하지 못했다, 이렇게 피해 사실이 제대로 밝혀지지 못하고 현재까지 유지되는 불행한 상황이 발생한 점에 대해 마음 깊이 사과드린다"라고 말했다.
 
이어 "당시 김용원 검사가 형제복지원의 인권 유린과 비리를 적발해 수사를 진행했으나 검찰이 외압에 굴복해 수사를 조기에 종결하고 말았다는 과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를 무겁게 받아들인다"라며 "기소한 사건마저도 재판 과정에서 관련자들이 제대로 처벌받지 못했다, 이러한 과정은 민주주의라고 할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오늘 이 자리만으로는 부족하겠지만 형제복지원 피해자분들의 아픔이 회복되길 바라며 피해자와 가족 분들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라면서 "인권이 유린되는 사태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검찰 본연의 역할을 진력을 다하도록 하겠다"라고 덧붙였다.
 
형제복지원 피해자 만난 문무일 검찰총장 문무일 검찰총장이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부산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을 만나 고개숙여 사과하고 있다. ⓒ 남소연

형제복지원은 1975년~1987년 부랑인을 선도한다는 명목으로 운영된 부산 지역 최대 수용시설(약 3000명)로 불법감금, 강제노역 등 인권 유린이 자행된 곳이다. 이곳에서 숨진 이들은 확인된 것만 500여 명이다.
 
형제복지원의 설립 근거는 당시 전두환 정권의 내무부훈령 제410호 '부랑아의 신고, 단속, 수용, 보호와 귀향 및 사후관리에 관한 업무지침'이었다. 피해자들은 지난 9월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형제복지원 사건은 위헌적 성격의, 그것도 법령도 아닌 훈령에 의해 인간의 생명과 존엄이 무참히 짓밟힌 사건이며 어느 한 개인이 벌인 일이 아니라 경찰력과 행정력이 동원된 국가에 의한 인권유린이자 범죄"라고 규정했다(관련 기사 :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이 국회 앞에서 300일 노숙한 이유).
 
1987년 탈출을 시도한 원생 1명이 직원의 구타로 사망하고 35명이 집단 탈출하는 사건이 벌어져 형제복지원 사건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하지만 박인근 원장 등은 횡령죄 등 가벼운 처벌만 받았다.
 
1987년 시설 폐쇄 후 형제복지원 사건은 잊히는 듯했으나 2012년 피해자 한종선(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실종자·유가족 모임 대표)씨가 국회 앞 1인시위를 벌이며 다시 세상에 알려졌다. 그를 포함한 피해생존자들은 국회 앞 농성, 릴레이 1인시위, 서명운동, 토론회, 공청회, 증언대회, 삭발, 단식, 국토 도보행진 등의 활동을 벌여왔다. 지난해 11월 7일부터는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301일째 국회 앞 노숙농성 중이다.
 
대검찰청 산하 검찰개혁위원회는 지난 9월 문 총장에게 이 사건의 비상상고를 권고했고, 문 총장은 지난 20일 이를 이행해 대법원에 박인근 원장의 특수감금 혐의에 무죄를 선고한 판결을 다시 판단해달라고 요구했다. 법무부 산하 검찰과거사위원회도 지난달 정부와 검찰의 사과를 권고했다.
 
피해자 딸 편지에 손편지 답장한 검찰총장
 
눈물 보인 문무일 검찰총장 문무일 검찰총장이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부산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을 만나 당시 피해자들의 증언을 듣던 중 눈시울이 붉어지고 있다. ⓒ 남소연

이날 현장에는 형제복지원 생존 피해자 30여 명이 참석해 그동안의 설움을 토로했다. 피해자들은 어린 나이에 형제복지원에 끌려가 혹독한 세월을 보낸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눈물을 쏟아냈다.
 
피해자 김대호씨는 "부산 성지초등학교 3학년 11반 학생이었던 저는 경찰에 끌려가 구타를 당했다, 생각만 할수록 치가 떨린다"라며 "교회당을 짓는다며 10살 아이에게 벽돌을 찍고, 그 벽돌을 지고 올라가게 했다, 어떻게든 살아보고자 자격증도 따고 택시 운전면허증도 땄지만 마음처럼 사회에 적응할 수 없었다"라고 말했다.
 
다른 피해자는 "9년 가까이 저를 찾겠다고 돌아다닌 아버지는 결국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고 이후 가정이 파괴됐다"라며 "저는 골병이 들어 지금도 기초생활수급자로 살면서 치료를 받고 있다, 국가 공권력이란 이름으로 우리를 청소했던 그때가 60세 가까이 된 아직도 머리 속에 생생하다"라고 눈물을 흘렸다.
 
함께 형제복지원에 끌려간 동생이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는 다른 피해자는 "국가가 책임을 회피했기 때문에 가족들조차 '네가 거지처럼 살았으니 끌려간 것 아니냐'라고 말하더라"라며 "36년 동안 악몽을 꾸며 살아왔는데 이제라도 국가가 좀 앞장서서 억울한 우리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달래줬으면 한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또 다른 피해자는 "진주에 살던 제가 부산의 오빠 집에 잠깐 놀러 갔다가 순경들에 의해 끌려갔고, 이후 검찰이 똑바로 수사하지 않아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이라며 "어린 나이에 끌려갔기 때문에 우리는 친구가 없다, 이런 삶을 살고 있는 피해 생존자들을 위해 문 총장이 진상규명에 힘을 써달라"라고 덧붙였다.
 
현재는 전주에 거주한다는 이 피해자는 이날 자신의 딸이 문 총장에게 보냈다는 편지를 읽기도 했다. 문 총장은 이후 비공개 면담 후 피해자 딸에게 수기로 답장을 써 보내기도 했다.
 
"총장님 안녕하세요. 만약 총장님이 형제복지원 피해자였다면 이러한 상황에 이를 때까지 아무것도 안 하셨을지 궁금합니다. 그래도 엄마께 사과해주신다고 하니 너무 감사드립니다. 엄마가 이 일(형제복지원 피해자 모임 활동)을 하신 지 5년이 흘렀는데 무척 힘들어하셨고, 지켜보는 가족들도 너무 힘들었습니다. 오늘 엄마의 상처가 조금은 괜찮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이 사건이 일어나지 않게끔 신경 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이△△ 학생. 엄마의 아픔은 우리나라의 아픔이었습니다. 아픔을 우리 삶의 아름다움으로 이루어내길 기대합니다. 누구보다 아름답고 굳센 엄마의 모습에서, 학창시절 또 청춘시절 엄마로서의 삶을 멋지게 펼쳐나가길 바랍니다. ◯◯ 학생, △△ 학생의 행복을 기원하며 문무일 드립니다."

 
고개숙인 문무일 검찰총장 문무일 검찰총장이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부산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을 만나 고개숙여 사과하고 있다. ⓒ 남소연

한종선 대표는 이날 피해자들을 대표해 요구사항을 문 총장에게 전달했다. 요구사항에는 ▲ 애초에 검찰 윗선의 외압이 있었던 만큼 국회에 계류 중인 특별법을 검찰 차원에서 강력히 요구해 달라 ▲ 모든 인권유린 사건의 범죄자들에게 강력한 처벌을 내려달라 ▲ 앞으로 검찰이 윗선에 흔들리는 일이 없도록 해달라 ▲ 한 번의 사과로 끝낼 것이 아니라 검찰의 뼈아픈 역사로 기억해 검찰을 개혁하는 자세를 보여 달라 등의 내용이 담겼다.
 
한 대표는 "비상상고만으로 피해자의 억울함을 풀 수 없지만, 지금이라도 법치를 외치며 잘못된 판결을 바로잡겠다는 검찰에게 잘했다고 말하고 싶다"라며 "피해자에게 진심으로 사과함과 동시에 범죄자에겐 엄벌을 내릴 수 있는 당당한 검찰이 되길 바란다"라고 강조했다.

한편 문 총장은 지난 3월 고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를 찾아가 검찰의 과오를 사죄한 바 있다. 최근 검찰과거사위원회는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의 피해자 강기훈씨에게도 검찰총장이 사과해야 한다고 권고한 바 있다(관련기사 : 검찰과거사위 "검찰총장은 강기훈에게 사과해야").
태그:#문무일, #검찰총장, #형제복지원,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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