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MBC <뉴스데스크> '방정오 TV조선 대표이사 사퇴…"자식 문제 물의 책임"' 보도 화면

지난 22일 MBC <뉴스데스크> '방정오 TV조선 대표이사 사퇴…"자식 문제 물의 책임"' 보도 화면 ⓒ MBC

 
"제 자식 문제로 물의를 일으킨 점 머리 숙여 사과드립니다. 자식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저를 꾸짖어 주십시오. 운전 기사분께도 마음의 상처를 드린데 대해 다시 사과드립니다. 저는 책임을 통감하며 TV조선 대표직에서 물러나겠습니다."
 

아버지가 대국민 사과를 했다. 짧고 간결했다. 그리고 대표이사 직에서 물러났다. 논란이 불거진 지 하루만이었다. 이례적으로 빠른 속도였다. 그렇게 사건은 일단락되는 것처럼 보였다. '조선일보 손녀' 폭언 논란 말이다.
 
앞서 지난 16일 MBC <뉴스데스크>가 "구두 닦고 자녀 학원 등원까지…'폭언' 항의하자 해고"란 제목으로 최초 보도했을 땐, 파장이 적었다. <조선일보>를 주시하거나, 언론계에서 반짝 주목했을 뿐이다. 소위 '받아쓰는' 언론도 많지 않았다.
 
그 이면엔, 여러 추측이 가능할 것 같다. "<조선일보>가 그럼 그렇지..."와 같은 반응과 함께 하루면 멀다하고 터져 나오는 재벌가와 기업을 위시한 일상적인 갑질 보도에 대한 피로감이 기저에 깔렸다고 보면 틀리지 않을 것이다.
 
21일 <미디어오늘>이 녹취록을 공개하면서 상황이 급반전됐다. 급속도로 전파된 이 10살 소녀의 폭언 내용은 실로 충격적이었고, 다음날까지 포털 실시간 검색어 1위를 달리며 공분을 자아냈다. 급기야 22일 오후, 방정오 TV조선 대표이사 전무가 부랴부랴 사과문과 사퇴 소식을 알렸고, 논란은 정점을 찍고 마무리 수순으로 돌입하는 것처럼 보였다. 
 
지난 22일, JTBC와 KBS, SBS 메인뉴스 역시 방전오 전무의 사퇴 소식을 다루긴 했다. 하지만 유의미한 후속보도는 없었다. SBS '비디오머그'가 방정오 전무의 부인과 자녀의 운전기사였던 김아무개씨를 후속 인터뷰한 게 전부였고, 이마저도 소셜 미디어를 통해서만 공개됐다.
 
이후 보도도 대동소이했다. <미디어오늘>을 비롯해 몇몇 매체가 방전오 전무가 대표직에서 물러난 <TV조선>의 뒤숭숭한 분위기를 전한 것이 전부였다. 정말 이 사안은 '조선일보 손녀'의 폭언이란 자극적인 녹취 공개와 그에 따른 방 전무의 사퇴로 일단락돼도 되는 걸까.  
 
 미디어오늘 '조선일보 사주일가 운전기사 폭언 녹취록' 유튜브 동영상 캡처.

미디어오늘 '조선일보 사주일가 운전기사 폭언 녹취록' 유튜브 동영상 캡처. ⓒ 미디어오늘


방정오 대표이사 전무의 배임 횡령 의혹, 그냥 넘어가도 괞찮은 건가
 

"저희 용어로 (배임횡령이) 딱 걸린 거거든요. 어쩔 수가 없는 겁니다. 만약에 수사가 시작되면 과연 그것만 있을까. 거기 오너일가만 해도 방정오만 있는 게 아니라 형 방준호 그 다음에 아버지 방상훈. 이런 집들의 운전기사는. 운전기사만 있냐. 가사도우미도 있거든요. 뭐 등등해서. 대한항공 수사도 결국 그렇게 간 거잖아요. 갑질이 아니라 다른 쪽으로. 아마 그런 것들을 생각하지 않나 싶습니다."
 
MBC 장인수 기자는 무척이나 할 말이 많은 듯 보였다. 이 사건을 최초보도한 장 기자는 26일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 <조선일보> 측이 방 전무 사퇴를 눈에 띄게 신속하게 처리한 배경으로 위와 같이 추측했다.
 
여기서 '배임횡령'은 방 대표 집안의 사적인 일로 근무한 운전기사 김씨의 월급을 디지틀조선일보가 지급한 사실과 관련돼 있다. MBC는 지난 16일 보도에서 운전기사 김씨가 당시 디지틀조선일보가 월급을 지급한 내역을 공개했다. MBC와 인터뷰한 임주환 변호사는 이에 대해 "개인 기사의 급여를 회사가 지급하게 했다면 배임죄 내지 횡령죄가 성립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된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지난 22일 MBC <뉴스데스크> '방정오 TV조선 대표이사 사퇴…"자식 문제 물의 책임"' 보도 화면

지난 22일 MBC <뉴스데스크> 보도 화면 ⓒ MBC

 
이렇게 '조선일보 손녀' 폭언 사건은 일회성 보도에 그칠 문제가 아니다. 1등 신문을 자처하는, 이미 20세기부터 재벌가와 '혼맥'으로 얽히며 언론족벌로 군림한 <조선일보> 사주일가의 도덕적-윤리적 일탈을 넘어 '배임횡령'을 포함 드러나지 않은 불법적인 사안이 얼마나 더 남았을지 모를 문제다.
 
물리적 폭력을 동반한 '갑질' 동영상를 시작으로 여론이 일파만파 커지고, 이후 사내 제보가 쏟아지고 후속 보도로 이어지면서 전방위적인 경찰 수사까지 이르게 된 대한항공과 한진 일가의 선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물론, 여론의 공분을 촉발시킨 녹취 파일 속 주인공이 10살 초등학생이란 사실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미디어오늘>은 보도 이후 그러한 딜레마에도 불구하고 <조선일보>라는 '1등 신문'의 사회적 영향력 등을 고려해 보도를 결정했다고 밝힌 바 있다. MBC 역시 같은 고민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장 기자의 설명을 더 들어 보자. 
 
 지난 22일 MBC <뉴스데스크> '방정오 TV조선 대표이사 사퇴…"자식 문제 물의 책임"' 보도 화면

ⓒ MBC

 
갑질의 끝판왕, 계급질을 만천 하에 보여주다
 

"이 운전기사가 해고당한 이유. 바로 그 10살 소녀의 '갑질'이 나와야 되는데 도대체 그러면 이걸 보도를 어느 수준으로 해야 되는 것이냐를 놓고 굉장히 치열한 논쟁이 있었고요. 빼느냐, 넣느냐. 음성대역을 쓰느냐. 조선일보를 밝히느냐 마느냐. 다양한 논란이 있었는데 저희는 최대한 10살 소녀 아이에게 초점을 맞추지 않고 한번 방송을 해 보자(중략). 30분 정도 되는 (녹음파일). 30분이 넘는데 저희 딱 20초도 안 됩니다, 저희가 쓴 그게.
 
가급적 10살 아이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어떻게 좀 알려보자. 이렇게 해서 방송을 하게 됐습니다. 그런 얘기가 있었어요. 그래서 모 제 선배기자는 중학생만 됐어도 내가 별 고민 없이 방송하자고 했을 텐데. 이렇게 말하는 기자가 있었고요. 모 선배기자는 고등학생만 됐어도. 내가 이걸 그냥 방송하자고 했을 텐데 고민이라고 하는 기자도 있었고. 또 어떤 기자들은 이게 10살이니까 기사가 되는 거지(라고)."

 
장 기자는 방송에서 공개하지 않은 30분 분량의 녹취 내용이 훨씬 더 충격적이라고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하지만, 10살 아이의 폭언을 어디까지 공개하느냐는 분명히 언론의 윤리적인 문제와 직결될 사안임은 자명해 보인다.
 
다행스러운 것은, <미디어오늘>의 녹취 공개 이후 여론의 공분이 10살 아이를 그렇게 만든 배경, 즉 부모인 방 전무 부부와 <조선일보> 일가로 쏠렸다는 사실이다. 방 전무와 <조선일보> 측이 짤막한 사과문에 "자식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저를 꾸짖어 주십시오"란 문장을 넣고, 재빨리 사태를 진화하려고 했던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을 것이다.
  
 지난 22일 MBC <뉴스데스크> '방정오 TV조선 대표이사 사퇴…"자식 문제 물의 책임"' 보도 화면

ⓒ MBC

 
장 기자는 이에 대해 "대한민국 엘리트들, 로열패밀리들이라는 사람들의 수준인가라는 부분들"이라며 "계급질"이란 표현을 썼다.

"이게 들어왔을 때 기자들이 갑질의 끝판왕이다, 이렇게 얘기를 했었는데 저는 사실 갑질이라는 표현으로 다 표현이 안 되고 계급질이라고 생각합니다, 계급질(중략). 갑질이 끝까지 가면. 갑질이 극단화가 되면 결국 그 마지막 단계는 신분제 사회, 계급사가 있는 거고. 이 사람들은 이미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그 세계를 만들어놓고 그렇게 살고 있었던 겁니다."
 

장 기자는 '갑질의 끝판왕'을 '계급질'로 표현하면서 다시 한 번 본질을 언급했다. "근본적인 우월적 지위가 태생에서 나오는 겁니다, 태생에서"라고. 10살 아이가 50대 운전기사에게 '해고' 운운하며 "죽었으면 좋겠다"라는 폭언을 내뱉을 수 있는 근원은 결국 '계급'이라 쓰고 '스스로 느끼는 우월적 태생'이라 읽은 그 경제적, 사회적 차이 아니겠는가.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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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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