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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이 끝난 지도 벌써 일주일. 각 고등학교에서는 수능이 끝난 고3 학생들을 위한 각종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서울 소재 ㅁ여고에서는 12월 첫째, 둘째 주에 걸쳐 아홉 개의 특강을 준비했다. '사회초년생을 위한 금융교육', '심폐소생술' 등의 일정표에는 '새내기 메이크업', '새내기 패션 스타일링', '건강한 몸매 만들기'가 포함됐다.
 
ㅁ여고의 수능 후 일정표
 ㅁ여고의 수능 후 일정표
ⓒ 고함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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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ㅁ여고 3학년에 재학 중인 한 학생은 학교 측에 메이크업 강의를 취소해 달라며 익명으로 긴 편지를 보냈다.

"화장이 여학생들에게 미치는 악영향 중 가장 큰 것은 본래의 모습을 부끄러워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여고생들 중 많은 아이들이 민낯이 부끄러워 마스크를 끼고 다니거나 고개를 숙이고 다닙니다. 화장은 틴트를 바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강박관념을 양산합니다. (...) 수능을 보기 전, 선생님들께 수능 끝나고 다이어트도 하고 화장도 하고 성형도 하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아팠습니다. (...) 여학생들은 남학생들과 달리 외모가 예뻐질 것을 지나치게 요구받을 뿐만 아니라 성인이 되고 나서 꾸미지 않으면 위축되기까지 합니다."
  
ㅁ고의 수능 후 일정표
 ㅁ고의 수능 후 일정표
ⓒ 고함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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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ㅁ여고와 같은 재단 산하의 남고인 ㅁ고의 수능 이후 일정도 비슷할까. <고함20>이 이 학교의 일정표를 확인한 결과, 수능 후 활동은 기념관, 박물관 등 역사, 문화 체험활동 위주였다. 여학생들에게 강요된 '새내기 메이크업', '새내기 패션', '몸매' 등 외모와 관련된 부분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들은 분명 수능 전까지 똑같은 과목을 배웠고 똑같은 시험을 봤다. 하지만 그 이후는 사뭇 다르다. 남학생들이 역사와 문화를 체험하는 동안, 여학생들은 무엇을 먹으면 식욕이 조금 더 억제되는지, 어떻게 하면 아이라인을 잘 그릴 수 있는지를 배우고 연습해야 하는 꼴이다.

이에 대해 ㅁ여고 측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메이크업 프로그램은 이왕 할 거면 잘 하자는 취지에서 끼워 넣은 것이고, 화장을 장려한다는 취지가 절대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어 익명의 편지를 보낸 학생을 CCTV를 통해 밝혀내겠다는 것 역시 이뤄진 바가 없다고 밝혔다.

ㅁ고의 일정표와 ㅁ여고의 일정표가 다른 것에 대해서는 "남학생이기 때문에, 여학생이기 때문에 이건 하면 안 된다는 개념으로 추진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라며 "(편지를 보낸) 학생의 주장에 의하면 페미니스트 운동의 일환으로 생각을 하는 모양인데 남학생과 비교를 하는 것 자체가 조금 이상하다, 그러면 남학생들은 근육 만들기 프로그램은 하면 안 될 것"이라며 학교의 취지를 강조했다.

ㅁ여고는 학생의 편지를 받은 후 논의를 진행했으나, 크게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일정대로 특강을 진행하기로 했다.

수능 후부터 3월까지 : 왜 예뻐져야만 하나

여학생들에게 '외모 가꾸기'를 부추기는 건 학교 밖 역시 마찬가지다. 여학생들에게 '수험표 할인'을 받을 수 있는 수많은 영역 중 성형외과의 인기는 단연 압도적이다. 이 성형외과들은 '수능 끝났으니 이제 예뻐지자'는 문구를 내세워 적극적으로 성형을 홍보한다. 한 반에 열 명 이상이 쌍꺼풀 수술을 하고 오는 일도 아주 드문 일이 아니란다.

작년에 대학에 입학한 이가영(21. 가명)씨는 수능이 끝나자마자 쌍꺼풀 수술을 했다. 이씨의 어머니가 예고도 없이 병원에 예약을 잡아둔 것이다. 실밥을 풀러 들른 병원에서, 이씨는 같은 학교 친구들을 두 명이나 만나기도 했다. 여고를 나온 이씨의 동창 중 쌍꺼풀이 없는 학생들은 대부분 이씨처럼 수술을 했다.

이씨는 "성형을 하고 나서 기억에 남았던 반응은 제 아빠예요, 항상 저한테 예쁘다 하고 엄마가 다이어트를 시킬 때 몰래 간식을 갖다 주기도 해서 성형을 하면 싫어할 줄 알았는데 예뻐졌다며 좋아하시더라고요"라며 "그런데 저와 비슷한 또래의 오빠에게는 엄마도, 아빠도 성형에 대해 강요를 하지 않았어요"라며 여성에게만 지워지는 '예뻐져야 할 의무'를 비판했다. 
 
수험표 할인을 홍보하는 성형외과 광고들
 수험표 할인을 홍보하는 성형외과 광고들
ⓒ 고함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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틴트, BB크림 비난하더니... 어른들의 손쉬운 태세전환

이때 문제는 성형, 다이어트 그 자체가 아니다. 문제는 사회에 나가려면, '여자 어른'이 되려면, 꾸며야 하고 예뻐져야 한다는 요구다.

수능 전까지 여학생들에겐 항상 제재가 가해졌다. 틴트, 염색, 매니큐어, BB크림 등의 '치장', '꾸밈'은 들켜서는 안 되는, 하면 벌점을 받고 혼이 나는 영역이었다. 학생들이 화장을 하려 할 때마다 학생들을 설득하고 다그치는 어른들의 말은 언제나 비슷했다.

"너희는 안 꾸며도 예뻐."
"공부에 방해돼."

하지만 수능이 끝나자마자 사회는 돌연 말을 바꾼다.

"이제 화장도 좀 하고, 살도 좀 빼자."
"예뻐져야지."

이는 단순히 '그동안 공부하느라 하고 싶은 것 제대로 못 했으니 마음껏 해'라는 정도의 응원이 아니다. 화장을 해야만 한다는, 모두가 다이어트를 하니 너도 해야 하고, 모두가 쌍꺼풀 수술을 하니 너도 해야 한다는, 그럼으로써 사회가 말하는 미의 기준에 맞춰야만 한다는 어른들의 강요로 비칠 수 있다.

수능이 끝났음에도 꾸미려고 노력하지 않는 것이 곧 일탈이 되는 상황이다. 수능 전까지만 해도 꾸미려고 노력하는 것을 일탈로 규정하고 통제한 사회와 어른들의 손쉬운 태세 전환이다.

수능 후, 학교가 정말 바꿔야 할 것은

'아름다워라! 그리고 성실 근면하자.'(Be a lady of beauty! Be sincere and diligent)

ㅁ여고의 교훈이다. 학교는 이 교훈의 '아름다움'을 두고 "외면적, 신체적 아름다움에 앞서 내면적 아름다움을 갖추기 위해 정서적 순수성과 어질고 기품 있는 심성을 기르자는 이념"이라 설명하고 있다. 

수능이 끝나고 고3 학생들에게 짧지 않은 시간이 주어진 이 시점, 학생들이 어떤 변화를 선택할지는 어디까지나 그들 자신의 선택에 의한 것일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라도 학교가 바꿔야 할 것, 기성세대와 사회가 바꿔야 할 것은 수능이 끝난 학생들의 외면이 아니다. 사회가 바꿔야 할 것은 일단 예뻐져야만, 화장을 해야만 '여자어른', '여대생'으로 인정하는 사회의 분위기다.

화장해야 한다는 말을 화장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보다 훨씬 많이 들어야만 하는 사회에서 학교의 역할은 무엇일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볼 때다. 졸업을 앞둔 학생들이 더 큰 사회에서 보다 주체적인 성원이 되길 진정으로 응원하는 학교가 되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인터넷 청년언론 <고함20>에서 오전 10시에 발행됐습니다.


태그:#수능, #수능후, #청소년, #여학생, #남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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