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으로 보는 전쟁의 파괴력은 그 규모를 바로 가늠하기가 어렵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지, 그 피해가 현실로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개개인의 이야기는 수백만 명이라는 비현실적인 숫자 안에 갇혀 휴머니티를 지우고, 마치 나와는 상관없는 가상현실의 일처럼 막연하게 다가오게 한다.

반면 전쟁을 소재로 한 작품(문학이든 영화든)들은 수백만 명 중의 하나, 개인의 이야기로 들어가 처절하게 고통 받고 망가지는 누군가의 아들이고, 누군가의 아버지이자 어쩌면 나의 가족일지도 모르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서 전쟁의 참혹함을 고발한다. 영화 <저니스 엔드>도 마찬가지다. 영화는 세계 1차 대전이 벌어지고 있는 1918년 프랑스의 어느 최전방 대피호, 독일군과 싸우는 영국군의 모습을 현미경으로 보듯 확대해서 들어간다. 3월 18일, 독일군의 공격이 오늘 내일 하는 그 때에 스탠호프 대위(샘 클라플린)가 지휘하는 부대가 최전방으로 이동한다. 독일군이 공격을 해오면 저항할 틈도 없이 무너질 만큼 열악한 상태의 참호는 태풍이 오기 전의 얌전한 바다처럼 고요하고, 군인들은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를 전투를 긴장감 속에서 기다린다. 
 
 영화의 한 장면

영화의 한 장면 ⓒ (주)스톰픽쳐스코리아

 
전쟁의 불안과 공포 속에서 부대를 이끌어야 하는 극심한 중압감을 술로 버티는 스탠호프 대위와 어떤 상황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고 모두에게 힘이 되어 주는 오스본 중위(폴 베타니), 참전한지 얼마 되지 않아 의욕이 넘치는 롤리 소위(에이사 버터필드)가 이야기를 끌어간다. <저니스 엔드>(Journey's End, 2017)는 극한의 공포와 긴장 속에 있는 이들의 심리에 집중하고 있다. 
 
옛 친구 스탠호프를 찾아 최전방에 지원한, 이제 겨우 소년티를 벗은 롤리는 수차례의 전투를 거치면서 변해버린 스탠호프를 마주한다. 부대원들 앞에서는 자신의 불안한 모습을 철저하게 감추고 대위로서의 역할을 다하지만 그는 술이 없으면 잠시도 버틸 수 없는 신경쇠약 직전의 상태로 보는 사람의 연민을 자아내기까지 한다. 독일군의 공격을 앞두고 상부에서는 스탠호프 부대의 전멸을 예상하고도 스탠호프에게 끝까지, 하루라도 더 버텨야한다고 말한다. 쥐가 득실거리고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참호를 보수하고, 무기들을 점검하면서 부대원들은 군인으로서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지만, 전투가 시작되면 참호를 메우고 있는 이들 대부분이 사라질 것은 자명한 일이다. 
 
 영화의 한 장면

영화의 한 장면 ⓒ (주)스톰픽쳐스코리아

 
오직 조국을 위해 싸운다는 명분 하나로 서로가 힘이 되어 전투에 임하고 있는 군인들 대부분은 아직 제 삶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도 전인 어린 청년들이다. 이들은 시작한 이상 힘들다고 포기하거나 그만둘 수 없는 싸움 한 가운데에 있고, 스탠호프는 이들에게 책임감을 느끼고 있지만 상부에서는 이들의 희생은 어쩔 수 없다고, 전투가 아닌 전쟁의 승리를 위해 당연한 일이라는 듯이 군다. 

제목에서 이미 우리는 영화의 결말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내내 느껴지는 주인공들의 불안과 공포가 가슴 아프다. 롤리는 독일 군 기습을 앞두고 선생 면담을 앞두고 있는 학생이 된 것 같다고, 차라리 빨리 해치우고 싶다고 말한다. 이들이 느끼는 공포는 죽음보다 더 큰 것이다. 이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그리고 이후로도 계속된 더 많은 희생 덕분에 결국 연합군이 승리했다고 승자는 위로하겠지만 수백만 명의 무명으로 뭉뚱그려진 개개인과 그들 가족의 상처를 모두 위로할 수는 없다.   
 
 영화의 한 장면

영화의 한 장면 ⓒ (주)스톰픽쳐스코리아

 
<저니스 엔드>에 화려한 전투 장면이나 가슴을 졸이는 서스펜스는 없지만, 전투(죽음)를 앞둔 군인들의 섬세한 심리묘사는 전쟁의 참혹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들이 느꼈을 불안과 공포를 어떻게 감히 상상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이들이 극한의 공포 속에서 나누는 인간애는 우리에게 공감과 감동을 준다. 

<공작부인: 세기의 스캔들>과 <스윗 프랑세즈>를 통해 섬세한 연출력을 인정받은 사울 딥의 연출과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가 조화를 이루는 <저니스 엔드>는 오는 28일 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저니스 엔드> 영화 포스터

<저니스 엔드> 영화 포스터 ⓒ (주)스톰픽쳐스코리아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강지원 시민기자의 브런치 계정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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