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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나는 인하대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이다. 현재 인하대 후문 원룸가에서 산다. 할머니와 어머니, 아버지, 언니 그리고 나의 사랑하는 반려견 망고와 함께 북적북적한 본가에 있을 때와 달리 수업이 끝나면 TV하나 없는 어두컴컴하고 좁은 원룸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래서 수업이 끝나면 늘 바로 자취방으로 돌아가지 않고 밖에서 최대한 시간을 보내다가 하루를 전부 마칠 때쯤 다시 돌아가곤 했다. 하지만 돈과 친구가 궁한 '복학생+자취생'에게는 선택지가 많지 않다. 도서관 열람실, 강의실, 인경호 벤치, 값싼 카페... 보통은 돈이 들지 않는 도서관 열람실에서 하루를 보낸다.

그런 나에게 최근 다른 선택지가 생겼다. 산책 나온 강아지들에게 인사하고, 견주분들과 수다 떨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인하대 후문에는 정말 많은 원룸 건물이 있는데 그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다 보면 꽤 많은 강아지와 견주들을 만날 수 있다.

자취방 옆 옆 건물에서 혼자 사시면서 작은 요크셔테리어를 키우는 할머니도 만나볼 수 있고, 골목으로 좀 더 들어가면 옆으로 지나가기만 해도 엄청나게 짖곤 하는 말티즈를 데리고 산책 나오신 동네 아주머니도 볼 수 있다.

또 용남시장 근처 놀이터에서는 저녁마다 멋있는 시베리안 허스키를 데리고 산책 나온 여성도 만날 수 있다. 처음에는 소심하게 다가가서 강아지들 하고만 인사하곤 했는데, 자주 마주친 견주분들은 먼저 말을 걸어주기도 하셨다. 보통은 "강아지 키우세요?" 아니면 "강아지 좋아하세요?"로 시작하며 말문을 튼다.

이것 말고도 또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취미가 생겼는데, 바로 골목골목 돌아다니면서 동네 길고양이들과 친해지기다. 이 취미가 생긴 계기는 꽤 재미있다.

이번 달 초에 학교 후배와 원룸가 골목을 지나고 있었다. 그 후배는 이미 나보다 먼저 '길고양이와 친해지기'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고양이 울음소리를 기가 막히게 듣고 숨어있는 아이들을 찾아내곤 했는데, 그때도 마찬가지였다.

"언니, 어디서 고양이 울음소리 들려요. 근처에 있는 것 같은데?"라고 말하며 용현동 성당 근처 원룸 빌딩으로 다가갔더니 아니나 다를까, 아예 얼룩무늬 고양이 한 마리가 빌딩 안에 갇힌 채 울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는 고양이는 아닌 것 같았다. 길고양이, 일명 길냥이였다.
 
원룸 빌딩 안에 갇힌 채 울고 있는 길고양이. 문을 열어달라고 하는 것처럼 보인다.
 원룸 빌딩 안에 갇힌 채 울고 있는 길고양이. 문을 열어달라고 하는 것처럼 보인다.
ⓒ 강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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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를 발견해주기를 기다렸다는 듯 우리가 다가가자 얼룩무늬 고양이는 더 애처롭게 울기 시작했다. 우리는 빌딩에서 고양이를 꺼내기 위해 문을 열려고 노력해보았지만 비밀번호가 걸려있는 두꺼운 문은 열리지 않았다.

혹시라도 건물에 사는 누군가가 들어올까 한참을 문 앞에서 기다렸지만 30분 정도가 흘러도 아무도 오지 않았다. 고양이가 있는 복도의 방 창가는 환하게 불이 켜져 있었지만, 고양이의 울음소리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아무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지나가는 동네 아주머니께도 사정을 설명하며 혹시 건물의 집주인분을 아시냐고 여쭤봤지만, 모른다는 대답과 함께 "고양이가 춥고 배고파서 사람 따라 들어갔다가 갇혔나 보네~ 알아서 나올 테니까 내버려 둬~"라는 말고 함께 가버릴 뿐이었다.

지금 이 길거리에서 건물 안에 갇힌 이 고양이를 신경 쓰는 사람은 나와 그 후배, 두 사람뿐인 것 같았다. 할 수 없이 20분가량을 더 기다려보았지만 아무도 오지 않아서 결국 무거운 발걸음으로 그곳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고양이의 야옹거리는 소리가 한참을 귓가에 울렸다.

그 후, 며칠 뒤에 다시 그 근처를 지나는데 그때 봤던 얼룩무늬 고양이가 내가 자주 가는 닭강정 가게 앞에 앉아있는 게 아닌가? 눈이 동그란 것이, 분명히 그때 그 길고양이었다. 무사히 빌딩에서 탈출해서 밖을 돌아다니는 모양이었다. 바로 옆에는 누군가가 밥을 챙겨줬는지 사료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한번 마주쳤었다고 괜히 신경이 쓰여서 아는 척하면서 다가갔더니, 이미 사람 손이 꽤 익숙한 듯 다가와서 얼굴이랑 몸을 다리에 비비기 시작했다. 퍽 애교가 많은 모양이었다. 이 근처가 이 길고양이의 구역인 듯, 지나가는 사람들도 그 고양이에게 아는 척을 하면서 지나가기도 했다.
 
빌딩에서 탈출한 후 동네 음식점앞에 앉아있는 그 고양이. 자기 구역인듯 당당하게 앉아있다.
 빌딩에서 탈출한 후 동네 음식점앞에 앉아있는 그 고양이. 자기 구역인듯 당당하게 앉아있다.
ⓒ 강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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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로 길고양이를 만나기를 기다리면서 주머니에 고양이의 일명 '최애 간식'을 챙기고 다니는 게 습관이 됐다. 만나는 길고양이마다 친해지고 싶어서다. 굳이 노력해서 찾으러 다니지 않아도 골목이나 차 밑에서 꽤 많은 길고양이들을 마주칠 수 있었다.

눈처럼 하얀 털과 파란색 눈을 가진 고양이, 만화 캐릭터인 '가필드'와 똑같은 노란색 뚱냥이, 삵처럼 매서운 눈을 가진 얼룩 고양이, 밤에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까만 형제 고양이, 회색과 흰색이 예쁘게 섞인 아기 고양이 등등. 너무도 많은 길냥이들이 인천 남구의 뒷골목을 헤매고 있었다. 사람의 손을 많이 탄 듯 친숙하게 다가오는 고양이도 있었고, 아직 사람이 무서운지 다가가면 후다닥 도망가거나 차 밑에서 경계 어린 눈으로 쳐다보는 고양이도 있었다.

뉴스나 인터넷 기사로 길고양이들을 학대하는 뉴스들을 꽤 많이 접하곤 했는데, 아직 인하대 후문의 골목에는 인정이 남아있는지 고양이들이 자주 나타나는 곳에는 항상 사료나 고양이용 참치 캔 같은 것들이 놓여있었다.

나 말고도 먹이를 챙겨주는 사람들이 꽤 많은 것 같았다. 그래서 열심히 먹고 있는 길고양이들을 만나면 장난스러운 혼잣말로 "네가 나보다 잘 얻어먹고 다니는 거 아니야?"라고 말을 건네보기도 했다.
  
누군가 놓아둔 참치 캔을 먹고있는 길고양이. 배가 고팠는지 허겁지겁 먹고있다.
 누군가 놓아둔 참치 캔을 먹고있는 길고양이. 배가 고팠는지 허겁지겁 먹고있다.
ⓒ 강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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놓여진 사료를 먹을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 길고양이 두마리. 사람을 경계하고 있다.
 놓여진 사료를 먹을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 길고양이 두마리. 사람을 경계하고 있다.
ⓒ 강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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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은 없고 자취방에는 돌아가기 싫은 외로운 자취생이 인천의 골목을 어슬렁거리다 보면, 바쁜 일상에서는 느낄 수 없는 어떤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다.

반려견을 위해 추운 날씨를 마다하지 않고 산책 나오는 견주들과, 어둡고 차가운 골목에 고고하게 앉아있는 여러 길고양이들에게서 잠시나마 바쁘고 팍팍한 나의 처지를 잊고 왠지 모를 따뜻한 온기 그리고 연대감을 느끼게 된다. 다 같이 배고프고, 춥고, 외롭지만 그 속에서 작은 행복을 찾으려 골목을 돌아다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태그:#길고양이, #강아지 산책, #자취생, #인하대 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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