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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기간 여러 신도를 성폭행한 혐의를 받는 만민중앙성결교회 이재록 목사가 지난 5월 3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오랜 기간 여러 신도를 성폭행한 혐의를 받는 만민중앙성결교회 이재록 목사가 지난 5월 3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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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록 만민중앙교회 목사가 여성 신도들을 상습적으로 성폭행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은 가운데, 이 사건의 피해자는 "이번 판결이 아직 교회에 남아있는 다른 피해자들에게 용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22일 이 목사는 지난 2010년부터 신도 8명을 42차례에 걸쳐 상습적으로 추행·간음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80시간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와 10년 동안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취업제한 명령까지 내려졌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6부(부장판사 정문성)는 이 목사의 행위가 '비정상적인 범행'이었다고 판단했다. (관련 기사: '신도 성폭행' 이재록, 징역 15년... 신도들 "조작됐다" 탄식)

이 사건의 피해자들은 어린 시절부터 만민교회에 다니며 건전한 이성 교제조차 '죄악'으로 세뇌받아 온 여성 신도들이었다. 이들 중 교회를 나온 한 명이 미투(Me too) 운동 흐름 속에 용기를 내 어렵게 입을 열면서, 장기간 가려져 있던 이 목사의 범죄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 피해자들은 고소 이후 이번 선고까지 마음을 졸이며 결과를 기다렸다.

이날 피해자 A씨는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처음에는 누군가 진실을 들어줬으면 하는 마음에서 시작했던 일이다, 그땐 아무런 기대가 없었다"라며 "(오늘 재판 결과를 보니) 만감이 교차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A씨는 "말을 아끼고 싶다"라며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그동안 피해자들은 재판 과정에서 2차 피해를 겪으며 정신적 고통을 겪어야 했다. A씨는 "처음엔 단순히 용기를 낸 것뿐인데 너무 많은 힘든 시간을 보냈다"라며 "어떤 표현으로도 (그 힘든 시간을 설명하기) 부족하다"라고 밝혔다. 이날 재판부는 개인 정보 유출 등 피해자에게 가해진 2차 피해를 이 목사의 형량에 적용했다고 밝혔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장은 "재판부가 재판 과정에서 벌어진 2차 피해를 좌시하지 않겠다고 의견을 표명한 셈이라 2차 피해와 관련해 새로운 지향점을 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라고 평가했다.

"미투, 우리 사회의 지형 바꿔"

A씨는 이 판결이 아직 교회에 남아 있는 피해자들에게 용기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교회 신도들이 법정을 찾아 선고 내용을 들었는지 궁금해하기도 한 그는 "고소 인원에 비할 수도 없을 만큼 아직 내부에 남은 피해자가 많다"라며 "이 결과가 주변으로 널리 퍼져 남은 피해자들도 옳은 판단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설명했다.

피해자 대리를 맡았던 신진희 변호사도 그의 용기를 높이 샀다. 신 변호사는 "이 사건을 보면서 피해자들이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에 나오는 어린아이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 다들 옷을 입었다고 하는 데 아니라고 하는 건 굉장한 용기"라며 "피해자들은 '아직 깨어나지 않은 만민중앙교회 신도들이 많다'고 한다, 그들에게 이 판결이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이미경 소장 또한 "자신의 피해이기도 하지만, '성범죄를 멈춰야 한다'는 생각에 일종의 사회적 소명감을 갖고 피해자들이 나선 것"이라며 "피해자들의 결의 덕분에 고소, 기소, 재판, 실형까지 올 수 있었다고 본다, 미투 운동 이후 우리 사회의 지형이 달라진 것 아닌가 생각된다"라고 평가했다.  

이번 사건으로 드러난 만민중앙교회는 폐쇄적인 곳이었다. 피해자들은 교회를 '군대'에 비유했고, 신도들은 이 목사를 '성령'이라고 불렀다. 이런 분위기는 1990년대부터 최근까지 벌어져 온 이 목사의 범죄가 드러날 수 없었던 원천이었다.

재판부는 교회 내부 흐름, 문화 등을 고려해 피해자들이 심리적으로 이 목사에게 반항할 수 없는 상태였음을 인정해 유죄로 판단했다. 법원이 종교 사건에서 이를 쉽게 인정하지 않았었는데, 이 사건에서는 정상적인 성인 여성도 이른바 '심리적 항거불능' 상태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고 인정한 것이다.

신 변호사는 "그동안 법원에선 성직자가 신도에게 정신적 영향력을 미칠 순 있어도 심리적·정신적 지배가 가능하다는 것은 거의 인정하지 않았다"라며 "이번 사건의 경우 신격화된 목사가 신도들의 정신을 실질적으로 지배했다는 점이 인정돼 의미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 소장은 재판부가 이 사건을 피해자들이 오랜 시간 세뇌당한 '그루밍 범죄'로 인정한 것에도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최근 대법원이 '재판부가 성인지 감수성을 가져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는데 이번 재판부가 그루밍이라고 하는 (성범죄에서 발생하는) 맥락을 인정했다"라고 전했다. 

다만 신 변호사는 "이 목사가 같은 교리를 강조해도 신도마다 받아들이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단순히 그루밍이라는 단어 하나로 설명하긴 힘들다"라며 "앞으로 여성계에서 해석해볼 여지가 있다"라고 말했다.

만민중앙교회 측은 이 목사의 무고함을 믿는다며 즉각 항소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검찰 또한 "현재 판결문을 검토 중이다, 조만간 항소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태그:#이재록, #상습준강간, #만민교회, #종교사건, #그루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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