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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하면 애국자?

아이를 셋이나 키우다 보면 자주 듣는 말이 하나 있다. 바로 "애가 셋이에요? 애국자시네"라는 말. 아이가 셋이라는 걸 알게 되면 대부분이 깜짝 놀라면서 저와 같은 반응이 이어진다.

사람들의 놀라움에는 으레 그러려니 한다. 오랫동안 4인 가족이 기준으로 인식된 사회에서 5인 가족은 많은 편이며, 특히 요즘처럼 아이를 잘 낳지 않는 시대에 3명의 자녀를 키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니까.
 
아이 셋, 다섯 가족
▲ 우리 가족은 애국자 아이 셋, 다섯 가족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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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뒤에 '애국'이 이어지면 문제가 달라진다. 특히 어른들의 경우 거의 100%가 애국자를 운운하는데 그때쯤 되면 의아해지기 시작한다. 나는 애국할 생각에 아이 셋을 낳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왜 이들은 내가 애국을 하기 위해서 아이를 많이 낳았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혹여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왜 굳이 애국자를 운운하는 것일까? 인구가 늘면 국가가 부강해진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물론 이는 너무 예민한 반응일 수도 있다. 워낙 언론에서 저출산에 따른 초고령화사회를 심각하게 보도하고, 정부도 국민들에게 아이 낳기를 권장하고 있으니 다산을 국가를 위한 일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애국이란 단어가 불편한 것은 그 뒤에 숨겨진 함의 때문이다. 정부나 언론은 지금 이 출산율 추세라면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가장 먼저 사라질 것이라고 국민들을 협박하지만, 이는 억측일 가능성이 높다. 그것은 단일민족이라는 프레임을 전제로 한 이야기이며 동시에 국가주의적인 발상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금의 한국 사람들이 아이를 낳지 않아 국토가 텅텅 빈다고 가정해보자. 아마도 국가는 공동체의 영속성을 위해 다른 인종과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사회는 지금보다 난민과 이민자들에게 훨씬 관대하게 될 것이며, 국가는 다인종 국가로 새롭게 구성될 것이다.

게다가 우리에게는 북한이란 존재가 있다. 실제로 우리의 인구가 부족하게 된다면 생김새와 언어, 문화가 거의 비슷한 북한 사람들이 노동자로, 이민자로 대거 유입될 가능성이 높다. 이미 우리는 조선족을 통해 그 경험을 겪지 않았던가. 결국 아무리 인구가 줄어도 지금 정부가 이야기하듯이 이 땅의 국가가 사라질 가능성은 요원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런데도 왜 정부는 계속해서 인구 문제를 이야기하며 저출산이 문제라고 하는 것일까? 책 '가족과 통치'는 그것이 바로 근대국가의 특징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미쉘 푸코의 이론을 빌어 인구가 근대국가 통치의 근간임을 밝히고, 권력이 인구정책 등을 통해서 우리의 일상에 스며들었음을 주장한다. 즉, 우리가 저출산을 국가적인 문제라고 인식하고 다산을 애국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만큼 국가의 통치에 순응되었음을 의미한다는 거다.
 
저출산은 문제 자체 혹은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 증상이며 결과다. 현재의 인구 담론은 문제의 원인을 저출산으로 치환하며,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동시대 사람들의 곤궁을 국가주의의 차원으로 수렴시킨다 . - 7p
 
인구를 통한 통치
 
가족과 통치 표지
 가족과 통치 표지
ⓒ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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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우선 인구 개념에 주목한다. 우리는 흔히 인구를 원래 있었던 것으로 생각하지만, 인구는 근대 이후에 생긴 매우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개념이라는 것.

애초에는 인구가 '많은 사람'을 뜻했지만, 근대에 들어 통계학이 발전하면서 인구는 객관적 데이터로 변했으며, 근대 국가는 그 인구를 통제, 조정하면서 사람들을 통치하기 시작했다는 설명이다. 인구의 안정과 안녕, 복지, 그 역량과 생산성의 최적화 등을 이루는 것이 국가의 존재 이유가 된 것이다.

인구를 통한 국가의 통치는 근대국가를 전혀 다른 수준으로 만들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근대 이전의 국가는 신체형과 같은 처벌 등을 통해 백성을 지배하고 권력을 행사했지만, 근대 국가는 인구 통계를 바탕으로 규율을 만들고 개인들의 삶을 정상화하며 그 삶에 초점을 두는 권력기술을 발전시켰다. 가족은 그 인구를 통제하는데 중요한 거점이 되었고, 국가는 가족을 통해 사람들을 통치했다.
 
가족은 이제 좋은 통치의 공상적인 모델이 아닌 인구의 통치를 위한 특권적인 도구가 된다. 무엇보다 가족은 인구현상과 관련해서 – 가령 인구변동이나 출산율, 소비 등에 관해 무언가를 얻고자 할 때 – 반드시 활용해야 하는 요소가 되었다... 노동과 생산성, 병역, 건강, 준법의 의무 역시 우선적으로 모두 가족을 통해 규율되고 관리되게 되었다. – 30p
 
저자는 이와 같은 맥락에서 1960~1970년대 들어선 박정희 정권에 주목한다. 한국에서는 바로 이때부터 국가가 본격적으로 인구 정책을 펴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와 이승만 정권 때도 인구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만 그것은 그저 사람이 많으면 부강해진다는 수준이었을 뿐, 인구가 전혀 다른 차원에서 정치공동체에 대한 상상과 본격적으로 결합한 것은 박정희의 등장과 함께였다. 국가권력이 인구정책을 통해 개인의 일상에 스며들기 시작한 것이다.

가족계획사업의 의미
 
경상북도의 바른 설맞이 결의 시군 가족계획요원교육(1972년)
 경상북도의 바른 설맞이 결의 시군 가족계획요원교육(1972년)
ⓒ 국가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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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계획사업을 박정희 정권의 인구 정책의 핵심으로 꼽는 저자는 당시 서구는 제3세계의 과잉인구와 빈곤이 공산화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불안 때문에 원조를 빌미로 UN차원으로 가족계획사업을 추진했다고 말한다. 박정희 정권이 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가족계획사업을 통해 인구를 통한 통치를 확립했다는 거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피임이다. 국가는 피임이라는 아주 사적인 목표를 완수하기 위해 국민 개개인에 대한 정보를 취합하고, 행정의 망을 구축했으며, 이를 시행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었다. 가족계획어머니회가 그 대표적이다. 한국의 가족계획사업이 성공할 수 있었던 원인 중의 하나였던 그들은 나중에 새마을 부녀회의 전신으로 서술될 만큼 큰 역할을 하였다고 저자는 밝힌다.
 
가족계획사업을 통한 피임술 보급은 여러 차원의 기술을 필요로 한다. 활용 가능한 피임법이 기술적으로 개발되어 있어야 하고, 이를 시술하고 보급할 전문 인력이 양성되어 있어야 하며, 구체적 대상에 구체적 피임술을 보급할 수 있도록 하는 행정장치의 기술적 발전이 결합되어야 한다.  - 77p

가족계획사업은 인구현황에 관한 자료와 정보에 근거하여 시행된 것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인구에 관한 지식을 체계적으로 구축하는 과정이 실질적으로 가족계획사업의 핵심적인 차원을 구성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 - 103p
 
저자는 이런 가족계획사업이 다산을 중시하던 그간의 전통을 근대화된 우리가 지양해야 하는 인습으로 만들었음을 지적한다. 쌀을 재배하는 농경국가에서 다산을 통한 노동력이 가지는 의미, 농촌 가족의 토대와 결속의 기반 등은 모두 무시되었으며, 자본주의의 발전과 산업화에 맞는 4인 가정이 올바른 가족의 모델로 등장하였다.

가족은 부부를 중심으로 재편되었으며, 밖에서 돈을 벌어오는 남성과 집안에서 합리적으로 가계를 운영하는 아내가 정상이 되었다. 부부 중심의 가족을 위해 경제적 교환관계였던 결혼은 '사랑'을 매개로 하게 되었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서 성관계를 통해 사랑을 확인하는 서사가 완성되었다. 사랑과 결혼, 섹슈얼리티가 근대적으로 결합하여 새로운 근대가족 상을 만든 것이다.
 
가족계획사업은 단지 산아제한이 아니라 자본주의 산업화와 연관된 정상화 및 주체화의 과정이었다. 가족계획사업은 적은 수의 자녀를 낳아 임금노동을 통해 경제적으로 부양하는 아버지와 합리적으로 자녀를 양육하는 어머니의 일상적 실천을 일반적인 삶의 과정으로 정상화, 주체화했다는 점에서 근대화 프로젝트이자 개인의 행위를 지휘하는 통치의 실천이었다. – 276p

가족의 이러한 역할은 자본주의 경제의 확산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것이다. 노동하는 주체, 그리고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주체, 가족과 통치의 연관은 본질적으로 이 이중적인 정상화, 성별화된 주체화의 메커니즘에서 비롯된다. - 277p
  
유솜 가족계획용 이동진료차(1965년)
 유솜 가족계획용 이동진료차(1965년)
ⓒ 국가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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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정부는 국민들에게 출산을 장려 중에 있다. 이는 얼핏 보면 1960~1970년대의 산아제한 및 가족계획사업과 정반대인 듯하지만, 국가가 인구통계를 기반으로 통치를 한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같다.

특히 자유한국당은 큰 인심 쓰듯 돈만 주면 사람들이 아이를 낳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것은 그들이 박정희 정권의 후예로서 그만큼 국가주의에 더 경도되었음을 보여주는 단면일 뿐이다.

어떻게든 출산율을 높여 공동체의 존속을 보장하려는 노력은 당연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왜 출산율이 떨어지고 있느냐는 고민이며, 개개인의 일상에서 그 출산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들여다보는 행위이다.

우리가 국가를 위해 아이를 낳는 기계는 아니지 않는가.

가족과 통치 - 인구는 어떻게 정치의 문제가 되었나

조은주 지음, 창비(2018)


태그:#가족계획사업, #인구, #저출산
댓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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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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