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아리아나 그란데처럼 셀럽이 되고 싶어"를 외치며 돌연 가요계에 나타난 신인 아이돌 그룹이 있었다. 코미디언 김신영, 송은이, 신봉선, 안영미, 김영희로 구성된 그룹 '셀럽파이브' 얘기다. 맨발 투혼의 칼군무를 보고 있노라면 이들의 본업이 '가수'가 아닌 '코미디언'이라는 점과 평균 연령이 39세라는 사실은 잠시 잊어버리고 그저 넋 놓고 감탄하게 된다.
 
최근 한 시상식에서 '올해의 발견' 상까지 수상하며 기어이 2018년 최고의 신인 자리에 오른 '셀럽파이브'는 데뷔곡 <셀럽파이브>에 이어 얼마 전 두 번째 노래 <셔터>를 발표했다(김영희는 개인 스케줄 때문에 셀럽파이브를 졸업했다 - 편집자 말). 그 과정은 비보TV 웹 예능 < 판벌려2 >를 통해 방영되고 있지만, JTBC 예능 프로그램 <아는 형님> 출연 소식은 또 다른 반가움으로 다가왔다.
 
한국 예능판을 움직이는 대표적인 여성 예능인들과 남성 예능인들이 게스트와 호스트로 만나는 이 드문 풍경은 시청자들의 기대를 무난히 충족시켰다. 17일 방송된 <아는 형님>에서 셀럽파이브 4명(김신영 송은이 신봉선 안영미)의 멤버들은 호락호락하지 않은 '형님'들을 단숨에 제압하고 흐름을 주도했다. 이는 그 동안 예능계가 주목하지 않았던 이들의 진가를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그러나 한 켠에 씁쓸한 뒷맛이 남기도 했다. 이날 방송은 남성 중심의 예능판에서 여성 예능인이 어떻게 '소비'되는지를 선명하게 드러냈기 때문이다.
 
'외모'와 '몸매'를 끊임없이 평가당하는 현실
  
 JTBC 예능 <아는 형님> 캡처.

JTBC 예능 <아는 형님> 캡처. ⓒ JTBC


지난 3일 방송된 트와이스 편에서 <아는 형님> 멤버들은 원하는 시아버지의 외모를 고르라며 황당한 주문을 했다. 반면 '셀럽파이브'에게는 선택받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다는 듯 그런 질문은 꺼내지도 않는다. 대신 "요즘 살을 찌우는 중이냐", "원래 이렇게 말랐냐", "앞머리는 무슨 콘셉트냐"며 쉴 새 없이 '몸평(몸매 평가)'과 '얼평(얼굴 평가)'을 한다.
 
이에 '셀럽파이브' 멤버들은 "아, 쟤 때문에 X치네 진짜", "왜 그렇게 크게 웃지?"라며 반발하고 '형님'들은 놀라 '깨갱' 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그건 단지 '재미'를 위한 잠깐의 연출일 뿐이다. 강호동이 억울하다는 듯이 "우리가 느끼는대로 말하면 안 되는 거야?"라고 항변하자 멤버들이 되려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식이다. 그 한 마디에 잘못한 쪽은 '느끼는대로 예의 없이 말한' 사람이 아니라 그 말에 '화를 낸' 사람이 된다.

타인의 얼굴이나 몸매를 평가하고 이를 웃음거리로 삼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그러나 여전히 여러 예능 프로그램에서 '여성 예능인'의 외모를 웃음거리로 이용한다. 더욱 씁쓸한 건 여성 예능인들 스스로도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고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때다. '셀럽파이브' 역시 자신들의 '취약점'으로 "원탑 비주얼이 없다"는 점을 꼽았다. 이들은 서로를 향해 '넙치'(를 닮았다)라고 놀리거나, "음악방송에서 우리 앞뒤로 나오는 걸그룹들이 그렇게 예뻐 보인다"며 "자릿세를 받아야 한다"고 자신들을 한없이 낮추며 웃음거리가 되길 자처했다.
 
비슷한 전개는 방송 후반부 콩트에서도 이어졌다. 오케스트라 동아리 '셀럽파이브' 멤버들이 신입 부원을 뽑는 내용의 콩트에서 '예쁜 부원들을 기대했다가 실망하는' <아는 형님> 멤버들의 구도는 너무나 예상 가능한 설정이었다. <아는 형님>은 최근 가장 신선한 방식으로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셀럽파이브'를 부르고도 가장 쉽고 안전한 방식의 웃음을 택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여성 예능인들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부정하는 방식으로만 소비돼야 했다.
 
'서열' 구도 없이도 가능한 예능

한편 '셀럽파이브'의 능력과는 무관한 외모와 몸매가 방송 내내 소환되는 반면, 이들의 장점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의도치 않게 부각된다. 이상민이 대뜸 "너희는 서열이 어떻게 돼?"라고 묻자 송은이는 "이거 할 때만큼은 팀이니까. 우리가 모이게 된 구심점이 (김)신영이다. (김신영이) 주장을 맡고 그 다음의 서열은 다 똑같다. 주장 외 3인"이라고 답했다.
 
'형님'들은 송은이가 "나이도 제일 많고 투자금도 냈는데" 왜 주장이 아닌지를 궁금해 했지만 상황을 정리하는 김신영의 한 마디는 간단했다. "(그러니까) 얼마나 고마운 사람이야." 이 장면은 견고한 '형님'들의 연대가 사실은 권위와 서열로 구성돼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아는 형님> 내에서도 멤버들은 서로 반말을 하며 동등한 위치를 강조하지만, '나는 7번째'라는 이상민의 말에서 알 수 있듯 명확한 서열 구조가 존재한다.

하지만 '셀럽파이브'는 나이가 많다고, 돈을 냈다고 해서 당연하게 '리더'가 되지 않는다. 그 일을 가장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리더'가 되고, 불필요하게 나머지 사람들의 서열을 구분하지도 않는다. 김신영의 말마따나 송은이는 "고마운 사람"일 뿐, 눈치를 봐야 하는 권위적인 선배가 아닌 것이다.
 
 JTBC 예능 <아는 형님> 캡처.

JTBC 예능 <아는 형님> 캡처. ⓒ JTBC

  
'셀럽파이브'가 '아는 형님'을 만났을 때, 우리는 남성 중심의 기존 예능판과 그 판에서 만들어지는 편협한 예능 공식에 얼마나 익숙해져 있었는지를 강렬하게 경험한다. 그리고 그 경험이야말로 '예능'에서 새로운 감수성과 전과 다른 방식, 불편하지 않은 웃음이 필요한 이유를 가장 잘 설명해낸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기 비하를 하게끔 이미 짜여진 '판'이 있었고, 조금만 돌아보면 바로 그 지점에서 신나게 웃어댔던 '나'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스스로를 깎아내리거나 누군가에게 깎여지지 않고도 여성 예능인이 웃음을 줄 수 있는 방식은 훨씬 더 많다. 우리가 '셀럽파이브'에 열광한 이유가 그랬듯이.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문화콘텐츠 리뷰 미디어 <치키>에도 실렸습니다(http://cheeky.co.kr/2545).
셀럽파이브 아는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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