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또 한 아이가 자퇴를 했다. 아직 드물긴 하지만, 스스로 학교를 그만두는 고등학생들이 시나브로 늘고 있다. 학교마다 별도의 숙려 기간을 두기도 하지만, 학교에서 마음이 떠난 아이의 발길을 되돌리기란 쉽지 않다. 요즘엔 학부모가 자녀의 자퇴를 종용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올해 고2인 그는, 여느 아이들의 경우처럼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그만둔 건 아니다. 성격이 워낙 쾌활해서 주위에 항상 친구들이 넘쳐났던 아이다. 공부도 곧잘 해서 수업시간 모둠활동을 할 때마다 발군의 실력을 뽐내 친구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기도 했다.

오로지 수능으로 대학을 가겠다는 이유에서다. 고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내신 성적과 비교과영역을 꼼꼼히 챙겨야하는 학생부교과전형과 학생부종합전형(학종) 등의 수시보다 대학 가기가 수월하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그가 고1 때 허송한 걸 후회한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아이들은 고등학교 3년 내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는 게 수시 전형의 가장 큰 폐해라고 말한다. 더욱이 학종의 경우에는 비교과영역까지 따로 챙겨야하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니라는 거다. 학교생활 하나하나가 평가의 대상이라고 여겨질 테니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수능을 보기 전에 고등학교 졸업자격 검정고시를 치러야 하지만, 그에겐 누워서 떡 먹기다. 성적이 상위권인 그가 지금 당장 검정고시를 본다 해도 과락에 걸릴 과목은 없다. 학교에서 정기적으로 치르는 모의고사처럼 수능을 대비한 예행연습 정도로 여기게 될 듯하다.

정시로 대학 간다고 멀쩡한 학교를 그만둔다는 게 선뜻 이해가 가진 않는다. 하지만 곰곰이 따져 보면 합리적이고도 탁월한 선택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오로지 대학 진학만 염두에 둔다면 그렇다는 이야기다.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시간과 비용을 동시에 절약할 수도 있다.

여기저기서 '수능 일주일 완성', '족집게 강의' 운운하며 불안한 수험생과 학부모를 현혹하지만, 사실 수능 고득점 비법은 지극히 단순하다. 지금까지의 기출 문제를 찾아 반복해 풀어보는 것이다. 교과서 위주로 열심히 공부했다는 역대 수능 만점자의 인터뷰는 빤한 거짓말이다.

가깝게는 적용된 교육과정 이후부터, 멀게는 지금의 방식대로 치러진 2000년대 초반 수능 문제부터 차곡차곡 스크랩했다면 절반은 성공이다. 어차피 유형을 크게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크게 도움이 된다. 조금 더 욕심을 부린다면, 그동안 치러진 모의고사도 모아보면 이롭다.

일일이 챙기기가 번거롭다면, 시중에 나온 참고서와 문제집을 활용해도 된다. 어차피 수록된 문제들은 수능이나 모의고사의 기출 문제이거나 그것들을 응용한 것이 대부분이다. 경험상 출판사마다 표지와 편집만 달리할 뿐, 해마다 중요하게 다루는 문제들은 대동소이하다.

수능과의 연계를 정부가 '보증한' EBS 교재는 정시를 준비하는 수험생에겐 '경전'이다. 물론,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지만, 그 어떤 참고서나 문제집으로도 대체 불가한 '진짜 교과서'다. EBS 로고가 찍힌 거라면, 고득점을 위해서 몇 번이고 반복해 풀어서 외우다시피해야 한다.

자퇴를 결정할 때의 굳은 다짐이 흐트러지지 않고 수능 당일 컨디션이 나쁘지만 않다면, 그에게 고득점은 무난할 것이다. 교육과정을 이수하며 학교생활을 해나가야 하는 또래들보다는 유리하다는 뜻이다. 다른 아이들은 어쨌든 학종과 더불어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하기 때문이다.

듣자니까, 그는 지금 낮엔 학원에 가고 저녁엔 '인강'을 시청하는 것이 반복되는 일과라고 한다. 종일 수능 준비를 하는 셈인데, 그래도 짬이 난다면서 이따금 게임도 하고 영화도 보면서 여가를 즐기고 있단다. '문제아' 보듯 하는 주위의 따가운 시선만 빼면 대체로 만족한단다.

혹여 수능 성적이 기대에 못 미치는 경우의 대비책도 이미 마련돼 있다는 전언이다. 곧장 공무원 시험으로 갈아타겠다는 복안이다. 하긴 최근 들어 학교 내에도 대학입시가 아니라 학력 제한이 없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아이들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친척들 중에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각종 어학 시험과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경우가 흔하다 보니 생겨난 현상인 듯하다. 최종 학력에 따른 급여 차이가 확연한 현실에서, 대학을 가지 않겠다는 게 아니라 그 '순서'를 바꿔보겠다는 거다. 요즘 아이들은 영민하고도 영악하다.

과연 자퇴라는 그의 선택은 해피엔딩으로 끝나게 될까. 수능 고득점과 명문대 합격이 유일한 기준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학교 수업 역시 수능을 준비하는 과정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수십 년 간 수능 하나에 특화된 사교육에 맞서기란 역부족일 테니 말이다.

그에게 유일한 장애물은 정시 전형의 비율이 수시 전형에 비해 턱없이 낮다는 것이다. 그에겐 학종을 비롯한 수시의 비중을 낮추는 것이 절체절명의 과제일 수 있다. 그가 학종 등 수시 전형의 확대에 반대하는 현실적인 까닭이며, 담임교사가 자퇴를 만류한 이유이기도 하다.

어쨌든 그는 학종에 '올인'하더라도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맞춰야하는 아이들에 견준다면 유리한 게 사실이다. 여러 조건을 두루 챙겨야하는 수험생보다 오로지 하나에만 집중하는 경우가 효율적이라는 건 불문가지다. 상대적으로 재수생의 수능 성적이 높다는 게 이를 증명한다.

그의 자퇴 이유를 통해 학교란 무엇인가를 새삼 성찰해보게 된다. 그에게 학교란 대학 진학과 취업을 위한 도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셈이다. 나아가 그만의 생각이 아니라는 점에서, 대학입시라는 현실 앞에 추상같은 교육과정과 학교교육이 얼마나 무력한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명문고라는 학교 안팎의 자긍심도 따지고 보면 명문대 진학 실적을 밑바탕으로 한다. 교육과정을 취지에 맞게 충실히 운영하는 학교일수록 수능 성적은 변변치 않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학교마다 교육과정이 무색하게 학사운영 과정에서 온갖 편법을 동원하는 건 그래서다.

'인문학적 상상력과 과학기술의 창조력을 갖춘 창의융합형 인재 양성'이라는 이상과, 대학입시가 유일한 목표인 척박한 현실 사이의 괴리를 다시금 깨닫는다. 전자는 '2015 개정교육과정'이 추구하는 목표다. 하지만 한낱 '선언'에 불과할 뿐, 이를 염두에 둔 교사는 거의 없다.

지금껏 교육과정이 숱하게 개정됐지만, 그때마다 학교는 변화의 '최소 요구치'로 삼았을 뿐 근본적인 개혁은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법에 저촉되지 않을 만큼만 수용하고, 실제 운영에 있어선 대학입시가 기준이었다. 학교교육의 본령은 늘 뒷전이었고, 교사들은 현실에 굴복했다.

교사들이 무능하고 부패했으며, 공교육이 무너졌다는 여론의 질타가 이어진다. 그러나 여전히 학교교육은 아이들이 깨어있는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는 유일하다시피 한 통로다. 학교교육의 중요성을 인정한다면, 대학입시의 유불리만을 따져 자퇴를 선택하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그의 자퇴로 수능이 지닌 한계도 새삼 직시하게 된다. 수능의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오로지 수능만으로 대학 진학이 결정되는 것은 학교교육을 순식간에 무력화시킬 우려가 크다. 무엇보다 시험 한 번으로 아이들의 다양한 재능과 역량을 판단한다는 건 애초 불가능한 일이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