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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 당시의 강기훈과 그가 대필했다는 혐의를 받은 김기설의 유서
▲ 강기훈 재판 당시의 강기훈과 그가 대필했다는 혐의를 받은 김기설의 유서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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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위원장 김갑배, 아래 위원회)가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이 ▲ 정권의 수사방향 지시 ▲ 증거 은폐 ▲ 감정 과정의 위법성 ▲ 가혹행위 및 피의사실 공표 등에 의해 발생한 것으로 결론 내고, 문무일 검찰총장에게 "강기훈에게 직접 사과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했다. 또 2009년 이 사건의 재심개시가 결정된 이후 검찰의 방어적 태도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위원회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은 사건 발생 직후 정권의 부당한 압력이 검찰총장의 지시사항으로 전달됐고 그에 따라 초동수사의 방향이 정해지면서 무고한 사람을 유서대필범으로 조작해 그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줬다"라며 "검찰은 과오를 반성하는 태도가 필요하며 현 검찰총장이 강기훈에게 직접 검찰의 과오를 사과할 필요가 있다"라고 발표했다.

이어 "검찰은 (사건 당시) 피의사실에 대한 확인되지 않은 사실과 단정적 주장을 언론에 발표함으로써 대다수 국민뿐만 아니라 법원으로 하여금 잘못된 예단을 갖게 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험을 초래했다"며 "이러한 잘못된 관행에 대한 개선을 권고한다"라고 설명했다.

또 "수사기관의 위법행위를 주요한 원인으로 재심개시가 결정된 사건의 경우 그에 대해 기계적으로 불복하고 과거의 공방을 반복하는 방식으로 재심절차에 임하는 관행은 중단돼야 한다"라며 "재심절차에 관한 검찰권 행사의 준칙을 재정립하고 현재 운영 중인 '상고심사위원회'에서 과거사 재심개시 결정이나 재심 무죄 판결에 대한 불복여부를 심의하도록 하는 등 제도를 개선할 것을 권고한다"고 덧붙였다.

"청와대와 검찰 수뇌부, 수사 가이드라인 제시"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은 검찰이 1991년 이른바 '분신정국' 중 분신한 김기설씨의 유서를 강기훈씨가 대필했다고 조작한 사건이다. 검찰은 자살방조죄 혐의로 강씨를 기소했고 강씨는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2007년 진실화해위원회 권고에 따라 재심을 청구한 강씨는 2015년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법무부는 지난 2월 위원회를 만들고, 이 사건을 포함해 검찰에 의해 발생한 의혹 사건 12건을 재조사하기로 했다. 위원회는 이 사건의 진상조사를 위해 "강씨를 비롯해 당시 수사팀 검사 3명, 검찰총장, 대통령 비서실장, 국과수 문서감정인 등의 진술을 청취하고 수사 및 재판기록, 진상조사 기록, 국회 회의록, 자료집, 단행본, 언론 보도자료 등을 광범위하게 조사했다"고 밝혔다.

위원회가 재조사한 내용은 ▲ 정권에 의한 수사방향 지시 ▲ 수사진행 중 증거 은폐 ▲ 감정 과정의 위법성 ▲ 수사 중 가혹행위 및 피의사실 공표 ▲ 재심과정에서 검찰권 행사의 문제점 등 크게 다섯 가지로 분류된다.

'정권에 의한 수사방향 지시'와 관련해 위원회는 "당시 긴급하게 개최된 '치안관계장관회의'에서 분신정국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라는 지시가 나온 직후 검찰총장이 분신의 배후를 철저히 수사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라며 "사건 발생 직후 전격적으로 수사팀이 서울지검 강력부에 구성되고 사건 발생 하루, 이틀 사이에 유서대필 쪽으로 방향이 잡혔다"라고 발표했다.

이어 "유서의 필적과 김기설의 필적이 동일한지에 대한 감정회보가 도착하기도 전에 강기훈을 용의자로 특정했다"라며 "이러한 점을 종합해볼 때 사건 발생 초기 분신의 배후에 대한 수사라는 가이드라인이 수사팀에 전달됐고 이는 당시 청와대와 검찰 수뇌부에 의한 것으로 판단된다"라고 설명했다.

'수사진행 중 증거 은폐'와 관련해 위원회는 "수사 초기 확보된 김기설의 흘림체 필적이 감정에 회부되지 않고 기록에도 편철되지 않았다"라며 "수사 초기 감정 의뢰된 전민련(김기설이 소속됐던 재야 조직) 업무일지에 대한 필적 감정 결과, 업무일지 작성자가 여러 명이라는 것을 간과한 오류가 드러났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수사를 진행했다"라고 밝혔다.

또 "분신자살 사건에 있어서 가장 기초적으로 확인해야 할 변사자의 동선이나 신나 구입경위 등에 대한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라며 "이러한 점을 종합해볼 때 이 사건 수사과정에서 검사는 자살방조의 범죄사실 입증에 불리한 증거는 은폐하고 유리한 증거만 선별해 감정을 의뢰하는 등 객관의무를 위반했다"라고 지적했다.

'감정 과정의 위법성'과 관련해 위원회는 "이 사건 필적감정은 감정 대상물의 선정, 감정 절차, 감정 결과의 회신 등 대부분 절차가 규칙을 위반하는 방식으로 이뤄졌고 감정의 내용도 전문가의 감정이라고 보기에 부족하다"라며 "특히 이번 재조사 과정에서 (과거사위가) 전민련 수첩 실물을 직접 조사함으로써 수첩 절취선에 대한 국과수 감정이 부실했음이 확인돼 당시 검찰이 김기설의 전민련 수첩이 조작된 것으로 본 것은 부당하다고 결론내렸다"라고 강조했다.

'수사 중 가혹행위 및 피의사실 공표'와 관련해 위원회는 "강기훈, 참고인, 관계자들이 가혹행위가 있었다고 공통되게 진술하고 특히 당시 수사검사도 가혹행위가 이뤄진 것으로 추정되는 서울지검 11층 특별조사실의 존재를 인정했다"라며 "2002년 발생한 서울지검 강력부의 가혹행위치사 사건처럼 1991년 이 사건의 수사 당시에도 11층 특별조사실에서 가혹행위가 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당시 언론보도를 보면 기소 이전에 이 사건에 대한 위법한 피의사실 공표가 비일비재하게 이뤄졌다"라고 덧붙였다.

'재심과정에서 검찰권 행사의 문제점'과 관련해 위원회는 "이 사건 재심개시 결정 후 검찰은 줄곧 과거 공권력이 남용되던 시절의 수사 관행을 두둔하고 강기훈을 유서 대필자로 매도하던 과거의 입장을 반복했다"라며 "검찰은 재심과정에서 과거의 입장을 고수하며 피해자와의 공방을 반복할 것이 아니라 가해자로서의 반성 위에 중립적으로 공판 사무를 수행하고 과거 검찰권 행사의 문제점을 성찰해 피해자의 권리와 명예를 회복시켜주는 반성적인 진실추구자로서 재심절차에 임해야 할 것이다"라고 권고했다.

태그:#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 #검찰, #노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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