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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산을 가진 어른들은 가게나 릭샤 등에 새 페인트 칠을 하며 새단장을 준비하고, 어린 아이들은 길거리에서 폭죽을 터뜨리는 데에 여념이 없다. 상인들도 묵혀 두었던 촛불과 폭죽을 가판대로 꺼내며 대대적인 판매를 준비한다. 모두 디왈리를 준비하는 것이다.

디왈리(Diwali)는 오는 23일에 절정을 맞는 인도, 힌두교의 가장 큰 행사의 하나다. 디왈리에는 집집마다 빛과 불을 밝혀 신을 숭배하며, 신으로부터의 축복을 기대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전에서든 현대 문학에서든, '빛'이라는 것은 늘 악에 대척점에서 악을 섬멸하는 지식과 선을 의미했다. 밝은 곳에는 무릇 어둡고 칙칙하고 축축한 것들이 자리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디왈리는 그래서 산스크리트어로 '빛줄기' 혹은 '빛의 행렬' 등의 뜻한다고 한다. 더불어 돈을 상징하는 부와 풍요의 신, 락슈미(Laxmi)를 주로 기리는 축제라서, 돈을 좋아하는 오늘날의 인도인들은 불과 폭죽을 피워 락슈미 신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는 데에 돈을 아끼지 않는다고 한다.
 
디왈리를 준비하며 촛불을 수놓은 인도 바라나시의 갠지스강변
 디왈리를 준비하며 촛불을 수놓은 인도 바라나시의 갠지스강변
ⓒ 김용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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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도 전역을 여행하던 시간이 넉넉한 여행자들은 바라나시로 대부분 모여들고 있다. 디왈리는 힌두교의 가장 큰 축제이자 유독 빛과 불이 아름다운 축제이기 때문이고, 가장 성스러운 도시인 바라나시의 갠지스강변이 아무래도 가장 아름다울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 개인적으론 이번 디왈리가 기다려지지는 않는다. 차라리 세상이 오늘부터 완전히 잠이나 들어버려, 날짜 상에서 디왈리가 다 지난 뒤에 깨어나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올해엔 디왈리 같은 건 다 사라졌으면 좋겠다. 나는 물론이고 누구에게도 락슈미 신의 축복이 오지 않아 좋으니, 부디 올해는 디왈리가 조용히 지나가길 바란다. 디왈리에 대해서라면 기대는 하나도 없고, 되레 해소될 수 없는 걱정만 태산이다. 

'인도'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 중 하나는 '지참금'이라는 제도다. 지역에 따라서 때로는 '다우리', 때로는 '다헤즈'라 불리는 이 제도는 현대 인도가 가지고 있는 가장 위험하고 나쁘게 변질된 제도 중 하나다. 인도의 지참금 제도 아래에선, 결혼시 신부 쪽 집안에서 신랑 쪽 집안에 돈을 대야 한다. 그 유래에는 많은 설이 있긴 한데, 대체로 오늘날의 인도인들 사이에선 '이렇게 우리의 재산을 함께 보내니, 시집 보내는 우리 소중한 딸을 부디 소중히 대해달라'는 신부 쪽 집안의 따뜻한 마음의 표현이라 믿어진다고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시가 쪽에선 주로 그 지참금을 무리하게 요구하게 되었고, 요구한 지참금을 충족시키지 못할 때엔 신부에 대해 신랑 집안에서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으므로 이는 대단히 큰 사회적 문제가 되었다. 따라서 지금은 지참금에 대한 시가의 요구가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하지만 법적으로 금지된 인도의 많은 오랜 풍습이 그러하듯, 오늘날도 십중팔구의 결혼에서 지참금이 신부의 집안에서 신랑의 집안으로 이체되고 있다.

물론, 법적 제재가 효력이 없다면 민간 차원에서 지참금을 거부하면 된다. 예컨대 지참금에 대해 요구하는 집안에 대해선 결혼을 보이콧하는 식으로. 하지만 관습이란 것이 그리 쉽게 바뀌는 것도 아니고, 인도 혼인의 많은 경우가 연애가 아닌 정략으로 신부에 대한 사랑과 관심 없이 행해지기도 하며, 인도 관습에선 결혼하지 못한 여성은 실패한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그러기도 쉽지 않다. 게다가 아무리 사회적 지위가 높은 여성이라 하더라도, 지금까지도 인도 사회에선 많은 사회 기반 시설이 비혼 혹은 미혼 여성에겐 제한되고 있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인하여 장성한 아들을 둔 시가 측에선 때때로 '결혼'이라는 사건을 어떤 순수한 그 자체로서의 혼인 행위가 아니라, 단순히 지참금으로서의 목돈을 벌어들일 사업으로도 생각하고 있다고도 한다. 최근 본 한 뉴스에선, 지참금만 받고 진짜 결혼 생활을 하는 부인은 따로 있다는, 그렇게 두 집 살림을 하는 남자들도 많다고 소개한 바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인도에선 여아에 대한 살해도 적지 않게 일어나고 있는데, 이는 대체로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여자 아이가 언젠가 성년이 되었을 때에 닥칠 지참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가장의 선택이라고 한다.

아무튼 여기서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지참금으로 인한 살인이다. 지참금에 대해선 예전부터 시가가 처가에 '이만큼을 달라'고 요구하는데, 그 액수가 막대하고 시가의 요구가 말도 안 되어 처가가 제대로 들어주지 못하는 경우엔 시부모와 남편이 부인을 죽이기까지 한단다. 사랑이 아니라 돈 때문에 한 결혼이었으니 대체로 그 살인 행위에 거리낌도 없다고. 물론, 앞서 말했듯 요즘엔 그 모든 게 법적으로 금지되었다. 지참금의 요구는 물론이고, 그로 인한 살인에 대하선 더 말할 것도 없고.

그런데 인도의 여성 인구 통계를 보면 언제나 이상한 점을 포착할 수 있다. 매해 특정 시기만 되면 여성들의 인구가 팍 줄고, 피해자가 여성인 경우의 사망 통계가 이상하리만치 급상승할 때가 있는 것이다. 바로 모두가 행복해야 하고 모든 악이 섬멸되어야 하며, 금전의 신 락슈미 신의 축복으로 모두가 금전적으로도 부유해져야 하는 빛의 축제, 디왈리 기간이다.

디왈리 때는 모든 집집마다, 특히 주방 등에서 신을 초대하고 숭배하는 불을 피우는데, 많은 시부모와 남편은 그걸 악용한다. 지참금 문제로 며느리이자 아내를 맘에 들어하지 않고 평소에도 눈엣가시로 여기다가, 디왈리에 맞추어 몸에 석유를 붓거나 하여 자기네가 태워 죽이는 것이다. 그러고는 경찰이 수사를 나오면 "디왈리 준비하다가 실수로 촛불이 엎어져서 불에 타 죽어버렸다"고 둘러대곤 한다고.
 
인도 바라나시, 갠지스강에 피워 놓은 불
 인도 바라나시, 갠지스강에 피워 놓은 불
ⓒ 김용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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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속담에선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하던가. 인도에선 이처럼 가장 밝고 아름다우며, 불행을 비롯한 모든 어두운 구석탱이와 악이 사라져야 할 디왈리가, 많은 여성들에겐 오히려 가장 추악하고 어두우며 또 두려운 기간이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커다란 빛이 되는 돈과 그걸 관장하는 신, 락슈미는 도대체 누구를 위해 있는 거란 말인가. 돈과 재산과 그에 대한 사람들의 욕심이 없었다면 지참금은 애초에 없었을 관습이며 그 살인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인도 전역, 특히 많은 악폐습이 여전히 자행되는 지도에도 안 나오는 시골 같은 데서는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지참금 문제로 죽어가고 있을 것인가. 이번 디왈리엔 그 촛불 때문에 또 얼마나 많은 인도 여성들이 죽어나갈 것인가.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디왈리를 두려워해 디왈리 이브에 자살을 택할 것인가.
  
바라나시를 찾은 사람들은 매일 아침 저녁으로 갠지스강에 꽃을 가득 담은 촛불을 띄우며 갠지스강의 여신에게 소원을 빈다. 이 꽃불 접시는 '디아'라 부른다. 오늘 아침, 나 역시 일찍부터 갠지스강가에 나가 한 접시의 디아를 사다 불을 붙여 띄우며 소원을 빌었다. 촛불에 불을 붙이며 비는 소원이, 올해 디왈리에는 부디 모든 초에 불이 붙지 않게 해달라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어떤 것은 그것이 아무리 좋더라도 과하면 문제가 생기고, 인도 디왈리의 빛도 너무 밝아 문제를 일으킨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이방인 여행자로서는 늘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한 없이 무기력해진다. 부디, 이번 하루 빨리 지참금으로 인한 모든 고통이 사라지길 모든 힌두교의 신들에게 간절히 빈다.
 
인도 바라나시, 새벽 갠지스강에 소원을 빌며 띄운 디아
 인도 바라나시, 새벽 갠지스강에 소원을 빌며 띄운 디아
ⓒ 김용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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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인도, #바라나시, #갠지스강, #디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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