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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유정열 시민기자가 찍은 한 아파트 협조문. 빌라 거주자를 폄하하는 내용의 글이 적혀 있다.
 오마이뉴스 유정열 시민기자가 찍은 한 아파트 협조문. 빌라 거주자를 폄하하는 내용의 글이 적혀 있다.
ⓒ 유정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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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연히 '빌거'에 관련한 기사를 읽었다. 글은 한 아파트 단지 엘리베이터에 붙은 협조문에서 시작된다. 단지 내 쓰레기 투척 문제를 짚는 이 글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다.  

"이게 뭡니까! 그래도 아파트에 거주하신다는 분들이 인근 빌라에서 사는 분들과 뭐가 다릅니까? 종량제봉투는 제대로 묶어서 배출하고..."

쓰레기를 잘 버리라는 내용이었다. 기사를 쓴 이는 주거지로 사람의 격을 나눈 이 협조문을 보고 충격을 받은 동시에, 자신 역시 아파트로 들어가는 길목마다 인근 빌라에 사는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를 보면서 짜증이 나고 불편했다고 고백한다. 그러면서 '빌거'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아이들을 나무랄 자격이 과연 어른들에게 있을까 고민을 던졌다(관련 기사 : '빌거' 쓰는 아이들, 나무랄 자격 있나요?).

최근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빌거'는 '빌라 거지'의 줄임말이다. 17년 된 빌라에서 17개월 된 딸을 키우는 내게 이 단어는 작지 않은 충격을 줬다. 어린 시절부터 아파트에 한 번도 살아본 적이 없는 우리 부부에게 아파트란 살고 싶지도 않고, 살 수도 없는 주거공간이다. 서울에서는 아파트를 제외하면 주거 선택지가 별로 없다. 그렇게 아파트 단지와 조금 떨어진 빌라 동네에서 산 지 2년이 돼 간다.

빌라에서 쓰레기 버리기
  
빌라에 살다보면 가장 불편한 점은 쓰레기를 버리는 일이다. 2년째 같은 빌라에 살고 있지만, 아직도 정확히 어디에 쓰레기를 버려야 하는지 헷갈린다. 자꾸 장소가 바뀌기 때문이다.

어느 한 곳에 쓰레기봉투가 모여 있으면 '여긴가 보다' 하고 쓰레기를 버린다. 그러면 다음날 빨간 글씨로 '쓰레기 투척 금지'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모두들 자기가 사는 빌라와 담벼락 근처에 쓰레기가 모이면 바로 민원을 넣기 때문이다. 누군들 집 앞에 악취 나는 쓰레기가 잔뜩 쌓여 있길 바라겠나.

행정상 쓰레기는 자기 집 앞에 버리는 것이다. 빌라 네 동이 모여 있고 1층이 주차장으로 뚫린 빌라에 사는 사람들의 '집 앞'은 어디일까. 우리 빌라 입구는 깊숙한 터널 혹은 동굴 같다. 쓰레기를 수거하시는 분들이 이곳까지 들어와 일을 볼만한 위치가 아니다. 그래서 우리 빌라 사람들은 쓰레기봉투를 들고 늘 거리를 서성인다.

평소 쓰레기를 놓던 곳에 또 금지문이 붙었다. 음식물 쓰레기와 큰 일반 쓰레기봉투를 들고 나온 나는 '멘붕'에 빠진다. 금지문만 붙어 있을 뿐, 안내문은 없다. 이쪽저쪽 한참을 서성이다 대충 쓰레기가 모여 있는 곳에 놓고 도망치듯 집으로 달려간다.

비싼 쓰레기봉투에 음식물 쓰레기통 스티커도 빠짐없이 부착하고 요일과 시간도 맞춰 나왔는데, 쓰레기 버리는 일은 언제나 양심도 함께 버리는 일처럼 죄책감을 동반한다. 그래서 나는 최대한 쓰레기가 나오지 않게 애쓰며 산다. 빌라 사는 내게 쓰레기 버리는 날은 내가 버리는 쓰레기처럼 찝찝한 기분이 드는 날이다.
 
수원 정자동 주택가 주택가 골목에 쌓여 있는 쓰레기
 빌라 밀집지역 골목에 쌓여 있는 쓰레기(자료사진).
ⓒ 김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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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거

최근 지인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혹시 빌거라는 단어를 들어봤냐'고 물어봤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다니는 지인들은 알고 있었다. 

LH 임대 아파트에 사는 30대 초반의 A는 지난해 초등학교 입학식 때 만난 같은 반 아이 엄마들끼리 모임을 했단다. 큰 키와 화려한 외모를 가진 A에게 엄마들은 뭐든 함께 하자며 무척이나 친절했단다. 어느 날 A는 우연히 '집이 어디냐'는 질문을 받았고 'LH에 산다'고 답했다. 그랬더니 다른 엄마는 갑자기 어색해 하며 다음 모임부터 인사조차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날 이후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은 "친구들이 '휴거'(휴먼시아 거지)라고 놀린다"면서 속상해 했다.

지인 B는 최근 이사에 대해 직장 상사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단다. 직장 상사는 "가능한 한 빌라에는 살지 말라"고 했단다. "거기서 살다가 아이를 키우면 '빌거'라고 놀림 당한다"고 충고했다. 그 상사는 아파트에 사는 초등학생 학부모였다.

'휴거'와 '빌거'는 아파트 사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신조어인 걸까. 요즘 아파트 거주 여부는 빈부 격차는 물론 신분 격차를 나타내는 지표가 됐다. 지금까지 나는 '주택은 앞마당이 있는데 관리가 어렵고 비싸다', 빌라는 '싼 가격에 좋은 구조인데 쓰레기를 버리기 어렵다', 아파트는 '편리하고 깨끗하지만 단조롭다', 이렇게 기능에 따라 구분해 왔다. 하지만 요새는 아니다. 주거지에 따라 경제력, 신분, 심지어 인간성까지 평가받는 시대가 됐다.
 
 아파트에 가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줄 알았던 건 아파트에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내 착각이었다
 아파트.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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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이면 지금 살고 있는 빌라의 전세 계약이 끝난다. 남편과 주거지에 대해 고민하면서 아파트에 관한 이야기를 종종 나눈다. 남편은 지하주차장으로 차가 오가는, 요새 같이 잘 가꿔진 아파트 단지가 싫다고 한다. 골목 속에서 다양한 상점, 상가, 허름한 집들을 보며 걷는 게 사람 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좋단다.

나는 '빌거' '휴거'라는 단어를 알아버려서 그랬는지, 아니면 수박 껍질을 제대로 버리지 못하는 스트레스 때문에 과일 취향도 바꿔야 했던 스트레스 때문인지, "아이가 마음껏 뛰놀 수 있는 놀이터도 필요하니 빌라 대신 깨끗하고 쾌적해 보이는 아파트도 괜찮을 것 같다"고 넌지시 말했다.

부동산 사무실에 가보니 같은 동네, 같은 평수의 아파트 가격은 지금 사는 빌라값의 3배가 넘어선다. "2년 전에 하나 구입했어도 벌써 1억 원이 넘게 올랐다"는 부동산 아저씨의 말에 결혼해서 빌라에 살며 열심히 일하고 아등바등 아끼고 살아온 보람까지 허물어졌다. "아파트에 살면 엉덩이로 눌러앉아 있기만 해도 돈이 벌린다"는 아저씨의 충고를 뒤로 하고, 아무짝에 쓸모없는 내 엉덩이를 힘없이 일으키며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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