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프로농구 통합 7연패에 도전하는 우리은행 위비의 초반 기세가 무섭다. 지난 시즌 2연패로 시즌을 시작하며 다소 고전했던 우리은행은 이번 시즌 초반부터 안정된 전력을 과시하며 1라운드를 5전 전승으로 마무리했다. 박혜진과 임영희,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토종 삼각편대'가 변함 없는 위력을 발휘하는 가운데 우려했던 새 외국인 선수 크리스탈 토마스도 13.8득점13.8리바운드로 골밑을 든든하게 사수하고 있다.

비록 우리은행에 초반 선두 자리를 내주긴 했지만 이번 시즌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히던 KB스타즈의 상승세도 만만치 않다. 뛰어난 득점력을 갖춘 외국인 선수 카일라 쏜튼과 WKBL을 대표하는 살림꾼 염윤아가 가세한 KB는 공수에서 안정된 전력을 과시하며 1라운드를 4승1패로 끝냈다. 특히 5경기 득실점 마진이 평균 12.4점에 달할 정도로 우리은행을 제외한 모든 팀에게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다.

사실 높이가 좋고 경험과 패기를 갖춘 선수들이 즐비한 KB가 득점이나 리바운드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KB는 1라운드에서 평균 18.4어시스트로 팀 어시스트 부문에서도 KEB하나은행과 공동 1위에 올랐다. 상대적으로 가드진이 약하다고 평가 받는 KB이기에 더욱 놀라운 수치. KB의 패스게임이 이토록 발전한 이유는 역시 시즌 초반 깜짝 어시스트 1위(5.4개)를 달리고 있는 '보물센터' 박지수의 진화 덕분이다.

프로 데뷔 2년 만에 리그 최고의 센터로 성장한 박지수
 
 고교 시절부터 성인 대표팀의 주전 센터였던 박지수는 프로 데뷔 2년 만에 최고의 빅맨으로 성장했다.

고교 시절부터 성인 대표팀의 주전 센터였던 박지수는 프로 데뷔 2년 만에 최고의 빅맨으로 성장했다. ⓒ 한국여자프로농구

 
박지수는 이미 분당 경영고 시절부터 성인 대표팀에 이름을 올리며 국제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차원이 다른 유망주였다. 특히 2016년 리우 올림픽 최종예선에서 대표팀의 유일한 아마추어 선수로 출전해 유럽의 강호들을 상대로 밀리지 않는 활약을 펼치며 농구팬들을 사로 잡았다. 실제로 박지수는 올림픽 예선에서 평균 7득점 10.8리바운드를 기록하며 리바운드 1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 해 10월에 있었던 WKBL 신인 드래프트에서도 박지수는 단연 화제였다. 14.3%의 적은 확률을 뚫고 1순위 지명권을 손에 넣은 안덕수 감독이 만세를 부르고 학부모와 기자단을 향해 큰 절을 올렸을 정도. 농구팬들은 박지수를 품은 KB가 머지 않은 시간 안에 우리은행의 오랜 독주를 막아설 수 있을 거라 예측했다.

아시아청소년여자농구선수권대회에 참가하느라 팀 합류가 늦은 박지수는 설상가상으로 이 대회에서 발등 인대를 다쳤다. 12월 17일 우리은행전에서 뒤늦은 데뷔전은 가졌지만 국가대표 센터 양지희의 밀착수비에 막혀 단 4득점에 그치고 말았다. 박지수는 프로 데뷔 4번째 경기였던 26일 삼성생명 블루밍스전에서 12득점13리바운드로 데뷔 첫 더블-더블을 기록했지만 WKBL의 판도를 뒤흔들 것이라는 당초 기대와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박지수는 루키 시즌 22경기에 출전해 10.41득점10.27리바운드2.77어시스트2.23블록슛을 기록하며 더블-더블 시즌을 보냈다. 신인왕도 당연히 적수가 없는 박지수의 몫이었다. 신인으로서 충분히 대단한 성적이지만 일단 프로에만 들어오면 WKBL무대를 평정할 것이라는 높은 기대에는 미치지 못한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박지수는 루키 시즌의 소중한 경험을 바탕으로 더욱 성장했다.

박지수는 2017-2018 시즌 전 경기에 출전해 평균 35분09초를 소화하며 14.23득점12.89리바운드3.29어시스트2.51블록슛을 기록하며 한층 발전한 기량을 과시했다. WNBA 출신의 쟁쟁한 외국인 선수들 사이에서 박지수는 득점 10위, 리바운드 2위, 어시스트 7위, 블록슛 1위를 기록했다. '우승 프리미엄'이 없었다면 우리은행의 박혜진을 제치고 정규시즌 MVP를 수상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대활약이었다.

WNBA 경험 후 시야 넓어진 박지수, '깜짝' 어시스트 1위
 
 WNBA 유학(?)을 통해 시야가 넓어진 박지수는 시즌 초반 어시스트 1위를 달리고 있다.

WNBA 유학(?)을 통해 시야가 넓어진 박지수는 시즌 초반 어시스트 1위를 달리고 있다. ⓒ 한국여자농구연맹

 
WKBL 시즌이 끝난 지난 4월 박지수와 한국 여자농구에 놀라운 소식 하나가 전해졌다. 박지수가 WNBA 신인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전체 17순위로 지명된 것이다. 갑작스럼게 찾아온 기회였지만 박지수는 당연히 세계 최고의 무대에 도전하고 싶었고 소속팀 KB 역시 박지수의 WNBA진출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렇게 박지수는 지난 2003년 시애틀 스톰에 입단했던 정선민에 이어 역대 2번째 한국인 WNBA리거가 됐다.

사실 WNBA 첫 시즌 박지수가 보여준 활약은 썩 만족스럽지 못했다. 32경기에 출전했지만 선발 출전은 11번에 그쳤고 평균 13분 동안 2.8득점3.3리바운드0.9어시스트0.6블록슛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하지만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 쌓은 박지수의 '경험'은 미완의 유망주였던 박지수를 한층 더 성숙하게 만들었다. 박지수는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4강을 앞두고 대표팀에 합류해 2경기에서 12.5득점12리바운드를 기록했다.

지난 시즌 WKBL에서 플레이오프와 챔프전 포함 40경기를 소화한 박지수는 곧바로 미국으로 날아가 WNBA에서 32경기를 뛰었고 다시 아시안게임까지 참가하는 살인적인 일정을 소화했다. 하지만 박지수는 2018-2019 시즌 초반부터 다시 KB 유니폼을 입고 출전을 강행했고 뛰어난 기량으로 KB의 초반 상승세를 이끌고 있다. 특히 지난 시즌과 비교해 가장 달라진 부분은 더욱 날카롭고 정교해진 패스 감각이다.

박지수는 지난 시즌에도 경기당 3.29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할 정도로 패스를 잘하는 빅맨이었다. 하지만 이번 시즌엔 5경기에서 27개의 어시스트를 배달하며 박혜진(26개), 김단비(신한은행 에스버드, 25개)를 제치고 어시스트 부문 1위를 달리고 있다. 박지수는 시즌 개막 5경기 만에 이미 두 번이나 트리플더블을 기록했다. 물론 박지수는 리바운드 2위(12.8개), 블록슛 1위(2.8개)로 센터 본연의 임무도 완벽하게 소화하고 있다.

각 구단의 외국인 선수가 1명으로 줄어든 이번 시즌 박지수를 1대1로 막을 수 있는 토종빅맨은 없다. 결국 적극적인 도움수비를 통해 박지수를 괴롭힐 수밖에 없는데 박지수는 자신에게 도움수비가 들어오는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고 비어 있는 동료들에게 패스를 찔러 준다. 이론적으로는 간단하지만 정교한 눈썰미와 날카로운 손끝 감각이 없다면 불가능한 기술이다. 미국 유학을 통해 더욱 성숙해진 박지수가 점점 난공불락의 선수로 거듭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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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프로농구 KB스타즈 WNBA 박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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