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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에는 다양한 단계가 있다.
 채식에는 다양한 단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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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에 대한 글을 쓰고 있는 필자는 채식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간혹 의식적으로 채식 지향의 음식 혹은 비거니즘에 기반한 물건을 약간의 돈을 더 지불하더라도 구매하는 정도이다. 다만 주변 지인 중 꽤 많은 이들이 채식을 하고 있다. 그들의 생활을 보며, 그들을 대하는 미디어의 태도를 보며 '채식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어졌다.

채식을 선택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 알레르기나 체질 때문에, 특유의 냄새가 싫어서, 그냥 고기류, 육류, 유제품이 싫어서, 혹은 동물권에 대한 신념에 의해서. 보통 앞선 다른 이유 때문에 채식을 한다고 하면 별말 없이 넘어간다. 그런데 일종의 신념에 의해 채식을 선택했다고 하면 많은 말들이 덧붙여진다.

"너 고기 안먹으면 건강 상해."
"나 하나 어쩐다고 세상이 변하냐?"
"우유랑 계란도 안먹는다고? 그건 좀 심하다."
 

누구나 건강하지 못한 습관 하나씩은 있기 마련이다. 새벽에 이 글을 쓰는 나처럼 밤을 꼴딱 새우기를 밥 먹듯 하거나, 단 것 혹은 짠 것을 엄청 좋아한다거나, 물보다 음료를 즐겨먹는 등 말이다(채식이 건강하지 못하다는 뜻은 아니다).

'나 하나쯤'이 아니라 '나 하나까지 보태서' 세상도 바꿔본 촛불시민들의 입에서 그런 말 나오면 섭섭하다. 우리가 먹는 우유를 위해 암소는 계속 임신을 하여야 하고 그렇게 태어난 송아지는 대부분 살처분된다. 닭은 원래 3일에 한 번 정도 알을 낳지만 양계장의 닭들은 매일 알을 낳는다. 그렇게 유도하는 호르몬제를 맞기 때문이다. 동물들과 생태계를 위한 실천이지만 실은 나를 위해서도 우유와 계란은 조금씩 줄이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쉬운 점은 미디어가 비추는 태도이다. 카메라 혹은 펜을 든 사람들이 생각하는 채식주의자의 전형적인 모습이 있다. 가령 이런 경우이다. 2013년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한 정은아 작가의 <모던하트>에 한 남성이 등장한다. 그는 비건 채식주의자이다. 평범한 직장인 여성인 주인공의 눈에 그는 매우 특이한 사람이다. 좋은 대학을 나와 영어도 잘하고 명상에 관한 책을 번역하며 비건채식을 하는 사람. 주인공은 그런 그의 평범과는 먼 모습에 염증을 느껴간다.

지난 11월1일 방영된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호주편>은 많은 신념에 의한 채식주의자들을 깜짝 놀라게 하였다. 한국에 여행 온 호주사람 케이틀린은 채식주의자이다. 몇 년 전부터 채식을 선택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서울 이곳저곳을 구경하다 저녁이 되어 출연진들이 다함께 한강공원으로 향하였다. 한강에서 라면을 먹기 시작하였다.

문제는 라면스프에 고기가 들어 있다는 것이다. 케이틀린은 그것을 뒤늦게 알았고 이미 맛있는 냄새를 양껏 풍기는 라면에 매료되었다. 주위에서는 "국물정도는 괜찮지 않아?", "라면 정말 맛있어!" 등의 말로 케이틀린에게 라면을 먹을 것을 계속 권유하였다. 결국 케이틀린은 라면을 먹었다. 그것도 아주 맛있게.

두 가지 이야기는 한국에서 채식인을 바라보는 전형적인 모습을 각자 담고 있다.
1. 까다롭고 특이한 사람이다.
2. 안 먹는다고는 하지만 결국 권유하다보면 먹게 된다 혹은 혼자 있을 때는 먹을 것이다.

채식인 중에는 그런 모습인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마치 채식하는 모든 이의 특징인 것처럼 그리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이제 막 대중들이 채식에 대하여 인식해가는 이때에 미디어가 특정한 이미지안에 채식을 가두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지난 촛불의 값진 성과 중에 하나로 수어통역의 보편화를 꼽고 싶다. 촛불 이전의 집회 현장에서 수어통역사를 보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그런데 수백만명의 사람들이 광장에 모여 수어통역을 목격했다. 스무번이 넘는 집회를 하면서 '수어가 필요한 이들에 대한 존중'을 배운 것이다. 이제는 일정 규모 이상의 집회에서 수어통역을 자주 볼 수 있게 되었다. 익숙함이 주는 효과는 그런 것이다.

한국의 미디어에서 '채식주의, 비건'의 언급이 조금씩 늘어가고 있다. 점점 많은 사람들이 채식을 이야기한다. 나는 모든 사람이 비건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언제가 한국식당에서도 '완전채식(혹은 비건)' 스티커 붙은 메뉴를 만나는 것이, 처음 만나는 이들과 밥을 먹을 때 "혹시 채식하는 분 계신가요?" 묻는 것이 익숙한 때가 오기를 바란다.

그때에는 우리 사회가 스티커 하나만큼, 한 마디의 질문만큼은 서로를 더 존중하고 있을 것이다. 나아가 채식선택이 늘어나는만큼, 채식과 더불어 동물권이 이야기되는 만큼 동물도 지금보다는 존중받는 대한민국이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천주교인권위원회 월간 소식지 '교회와 인권'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채식, #채식주의, #비건, #비거니즘, #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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