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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성적이진 않지만 내향적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외향적인 사람들이 환대받는 세상에서 내향인의 정체성을 지켜가는 사람들에 대한 사는이야기입니다. [편집자말]
"난 네가 말을 못하는 줄 알았어."

대학에 입학하고 한 달쯤 지났을까. 새로 사귀게 된 학과 동기에게 들은 말이다. 돌이켜보면 당시 유난히 학과 사람들 앞에서 말을 아꼈던 이유가 있다. 입학 전, 떠밀리듯 신입생 모임에 참석하게 된 나는 도통 그 자리의 '인싸'들과 어울리지 못해 방황하고 있었다.
 
'혼자라도'가 아니라 '혼자라서' 즐거운 나를 그려보았다.
 "혼자라도"가 아니라 "혼자라서" 즐거운 나를 그려보았다.
ⓒ 이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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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임시 학년 대표라는 학생이 다가와 시간표는 어떻게 짰냐며 옆자리에 앉았다. 내 시간표에 필수 영어 과목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그는 이유를 물었고, 어학시험 성적으로 학점을 대체할 수 있다고 답했다. 토익이 몇 점이기에 수업을 면제받을 수 있냐기에 점수를 말했더니, 그는 큰 소리로 내 점수를 주위에 알렸다.

그리고 2주 뒤 개강 첫날, 수많은 눈으로 가득한 첫 전공 수업에 들어가자마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쟤가 토익 점수 높다는 걔야!"

곧게 뻗은 손가락은 나를 가리키고 있었다. 위의 문단을 읽고 '별일도 아닌데, 웬 유난인가' 싶다면 당신의 인간관계를 돌아보길 바란다. 개강 전 모임에서 나는 나에게 질문을 한 특정인에게 개인 정보를 알려준 것이지, 수업에 참석한 모두에게 그것을 공개하고자 했던 것이 아니다. 물론 1급 기밀로 다루어달라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말이라 해도 듣는 이가 불쾌함을 느낀다면 그것은 칭찬이 될 수 없다.

모든 외향인들이 '예의를 모르는 무뢰한'이라는 말이 아니다. 다만, 한국 사회에서 외향성은 종종 왜곡된 형태로 나타나 그 틀 바깥의 이들에게 폭력과 강요로 작용한다.

내향인으로 살아남기

우리 모두 상사에게 한 번쯤은 들어본 그 말, 나도 들었다. 소규모 신문사 면접에서 주량을 묻기에 솔직하게 대답했더니 "기자가 술을 못 마시면 쓰나" 타박했고, 인턴으로 일할 당시 주말 산행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하니 "그렇게 해서 어떻게 사회생활 할 테냐" 협박했다.

어떻게 된 일인지 한국 사회는 개인에 대한 공동체의 지나친 간섭, 공과 사의 구분을 무너뜨리다 못해 일치시키는 것, 그리고 이를 그저 웃어넘기는 것을 외향적이고 사교적인 것과 등치시켜 조직 생활에 적합한 자세라고 판단한다.  

이 일그러진 외향성을 사회성, 나아가 업무 능력이라고 믿는 그들은 다름을 인정하려들지 않는다. 구시대적 관행을 답습하고 있다는 사실은 외면한 채, 본인들은 그저 타인과 어울리기를 즐기는 외향적인 사람일 뿐이라고 굳게 믿으며 반기를 드는 이들에게는 사회 부적응자라고 낙인을 찍는다.

한편, 내향적이라고 해서 매사에 소극적이고 팀워크를 기피하는 것도 아니다. 내향인들은 혼자 보내는 시간을 통해 에너지를 얻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회와 단절된 채 살아가지 않는다. 나는 혼자 노는 것을 누구보다 좋아하지만 목소리를 내야 할 때는 늘 당당하게 의견을 피력하고, 협업이 필요한 경우에는 오히려 리더를 자처한다.

회의 시간에는 말이 많던 내가 사적인 질문에는 입을 다물자 동료들은 나를 '일은 잘 하지만 정이 없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왜 이것을 전문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걸까? 내 성별도 한몫 했을 것이다. 여성이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것이 하나의 미덕으로 손꼽히는 세상이니까.
 
왜곡된 외향성을 좇는 문화는 기업의 채용 과정에서 실시하는 인성검사에서도 투명하게 드러난다.
 왜곡된 외향성을 좇는 문화는 기업의 채용 과정에서 실시하는 인성검사에서도 투명하게 드러난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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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에서 마음 맞는 이들과 일할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굳이 나의 감정을 소모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주말 잘 보냈냐?"는 인사 정도야 웃으면서 할 수 있다. 동료에게 일손이 부족하다면 기꺼이 도울 것이다. 하지만 개인사를 속속들이 말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자발적으로 '아싸'가 되었다.

대학원을 졸업하며 그간 함께했던 선생님들과 동료들에게 있는 그대로의 나를 '관용'해주어 고마웠다고 인사했다. 초중고를 거쳐 학부 시절까지 나는 늘 '좀 특이한 애'로 분류되었는데, 대학원에 들어가자 내가 속한 분과에서 만큼은 나를 '쟤는 원래 저런 애'로 '내버려 두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는 나를 끊임없이 평가하는 사회에 지쳐 등을 돌린 것이다. 회사 동료들과 개인적인 주제로 대화하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무엇을 좋아하냐고 묻기에 대답했더니 왜 그런 것을 좋아하냐고 되묻는 이들과 더 이상 무슨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타인의 경계를 존중하지 않는 '오지라퍼'들에게 나를 먹이로 던져줄 생각은 전혀 없다.

왜곡된 외향성을 좇는 문화는 기업의 채용 과정에서 실시하는 인성검사에서도 투명하게 드러난다. '단독으로 진행하는 업무보다 협력하는 프로젝트가 편하다.' 일의 성격과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요소를 '편하다'는 주관적인 기준으로 평가하라는 것인데,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는 순간 별안간 나는 팀워크를 해치는 눈엣가시가 된다. 불편해도 협업이 필요하다면 못할 이유가 없다. 일이니까.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사람들과의 모임에 참여하기를 즐긴다'라는 항목에 '매우 그렇다'부터 '매우 그렇지 않다'까지 다섯 가지의 선택지가 있다면 나는 당연히 '매우 그렇지 않다'를 선택할 텐데,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나의 업무적 능력과 무슨 상관이라는 말인가?

일을 매개로 만난 이들과 나 사이에 과연 기본적인 예의 그 이상의 친목이 반드시 필요할까? 하지만 섣불리 내향성을 드러냈다가는 탈락이 뻔하고, 탈락하지 않더라도 면접에서 이에 대한 날선 질문이 이어질 것을 안다. 어느새 내향성은 숨겨야 하는 것이 되어버렸다. 내향인으로 살아남기,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은 꼭 필요하다
 
한때 빠져있었던 스머프 빌리지 게임에서 한 스머프가 혼자 마을을 빠져나와 유유히 바다로 향하는 모습.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나보다.
 한때 빠져있었던 스머프 빌리지 게임에서 한 스머프가 혼자 마을을 빠져나와 유유히 바다로 향하는 모습.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나보다.
ⓒ 이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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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름을 존중하지 않는 사회에서 내향성은 오히려 생존전략이 되기도 한다. '맛도 없는 걸 왜 먹는지 이해가 안 되네.' 핀잔 들을 바에 혼자 배불리 먹으면 그만이다. '나는 이런 데 왜 오는지 모르겠어.' 불만 걱정할 필요 없이 혼자 신나게 여행하면 된다. 상대의 부정적인 평가가 아니라도, 그저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거친 파도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단단한 중심이 필요하고 그 중심을 쌓아올리는 일은 바깥이 아닌 안으로 향하는 관심에서 시작된다. 사람은 존재한다고 해서 그 자체로 의미가 되지 않는다. '네'가 아니라 '내' 생각이 모여 '나'가 되고,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돌아보고, 반성하며 성장한다. 그러한 '나'가 모이면 자연스레 건강한 '우리'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건강한 개인이 건강한 사회를 만든다. 강요에 의해 형성된 공동체는 제대로 기능할 수 없다. 한국 사회는 종종 내향인을 개인주의자, 나아가 이기주의자로 취급한다. 그러나 더 나은 내일을 위해서는 개인을 공동체에 반(反)하는 것으로 간주하여 무조건 지울 것이 아니라 더 나은 개인이 될 수 있도록 사회적 차원에서 장려해야 한다. 공동체가 해체된다 해도 그 존재를 위협받지 않고 개인으로서 그 기반이 단단한 이들이 모일 때에만 책임감 있는 사회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타인과의 관계에서만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삶은 텅 빈 것이나 다름없다. 흰 도화지를 펼쳐보자. 아무리 그 크기가 작더라도 또렷하게 찍힌 점이라면 다른 점과 이어질 수 있다. '나'를 이해하는 사람은 남도 이해할 수 있다.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남들과 어떻게 다른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은 절대적인 존재이다. 내가 남들과 다르다면 남들도 나와 다르다. 이 간단한 명제로부터 이해가 시작되고 이해는 관용으로 확대된다. 모두가 있는 그대로 존재할 때, 이 세상이 얼마나 다채로운 색으로 물들지 궁금하지 않은가.

태그:#내향성, #외향성, #혼자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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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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