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태학 작가의 '산행'이라는 작품 앞에 선 정해창씨.
 오태학 작가의 "산행"이라는 작품 앞에 선 정해창씨.
ⓒ 구영식

관련사진보기

 
벌써 54년이 흘렀다. 13살 때 아버지에게 배운 '조선필'을 67살이 된 지금까지 만들어왔다. 붓 만들기에 전념하느라 전시회 한 번 열지 못했다. 자신이 만든 붓의 가치를 대중적으로 인정받을 기회조차 갖지 못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난 14일부터 열리고 있는 '문방(文房)과 작가(作家)의 만남' 전시회는 각별하고도 각별하다.

스스로 '조선필 연구가'라 부르는 정해창(67)씨는 조선필장이다. '조선필장'이란 조선붓을 만드는 장인을 가리킨다. 그는 최근 서울시 인간문화재 제5호 필장으로 지정됐다. '54년'이라는 시간에 비한다면 이러한 인정은 때늦은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형식적 명예'를 취하려고 하지 않았던 그의 고집스러운 성품 때문이기도 했다.

정씨는 고조외할아버지 홍오후(1대)와 외할아버지 홍세유(2대), 아버지 정학진(3대)에 이은 집안의 4대 필장이다. 아들(정선영)의 계승까지 더하면 필장의 명맥이 5대째 이어지고 있다. 외가를 포함해 한 가문 안에서 장인의 명맥이 5대째 이어지는 경우는 상당히 드물다.

정씨의 첫 전시회인 '문방과 작가의 만남'은 붓만의 전시회가 아니라 그의 붓을 직접 쓰고 있는 한·중·일 작가들의 작품들(서예·그림)과 함께 하는 전시회라는 점에서 의미 있고 야심찬 기획이다. 대중적인 고전해설서로 유명한 정민 한양대 국문과 교수는 "한중일 삼국의 서화가들이 필장 정해창 선생에게 바치는 헌사에 다름 아니다"라고 큰 의미를 부여했다.

정민 교수가 이번 전시회를 위해서 쓴 '불쑥 솟은 어깨뼈 인간문화재 필장에게 바치는 헌사'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그는 평생 외눈을 파는 법 없이 붓 만드는 일로 살아왔다. 1970년 인사동에 정착한 이래 반세기에 달하는 동안 붓 만드는 일을 한 번도 손에서 놓은 적이 없다. 이른 새벽부터 붓과 함께 시작되는 그의 일과는 좁은 공방에서 한쪽 어깨를 비스듬히 숙인 채 갈무리해둔 각종 붓털을 종류별로 추스르고, 침을 묻혀가며 털을 빗질하고, 끝을 고르며, 심을 박고, 해초를 먹여, 하나의 붓을 완성해 가는 단순한 반복의 세월이었다. 그 사이에 그의 어깨뼈는 단단히 뒤틀려 한쪽이 불쑥 솟았고, 고정된 자세로 반복하는 동작으로 인해 관절 마디 하나 안 아픈 데가 없다."
 

그러한 몰입과 집념으로 명필이 나왔고, 명작(예술품)이 나왔다. 하지만 정작 정씨는 "저는 그분들(작가들)의 작업을 도와줬을 뿐이다"라며 "빛나야 할 사람은 제 붓을 사용한 사람들이다"라고 겸양을 내보였다. 그는 "제가 아니고 제 붓을 사용해준 분들이 무형문화재(인간문화재)다"라고도 했다. 

<오마이뉴스>는 지난 17일 오후 인사동 아리수 갤러리 전시회장에서 그를 만났다. 다음은 1시간 30분 동안 나눈 대화의 전문이다.   
 
정해창씨가 만든 여러 가지 붓들.
 정해창씨가 만든 여러 가지 붓들.
ⓒ 구영식

관련사진보기

 
한중일 서예·그림 작가들이 전시회에 참여한 이유

- '문방과 작가의 만남'이라는 전시회를 열게 된 계기가 있나?
"제가 만든 붓으로 서예와 그림 등을 작업한 거를 보여주고, 제가 만든 붓의 가치를 인정받고 싶어서 연 전시다."

- 조선 붓만 전시한 게 아니가 서예, 그림 등까지 전시했는데 어떤 의도에서 이렇게 한 것인가?
"붓만 전시할 경우에는 붓으로 어떤 작품이 나오는지 모른다. 그래서 제가 만든 붓으로 어떤 서예와 그림 등이 나오는지 보여주기 위해서 그렇게 했다."

- 이번 전시회에는 특히 한중일 작가들의 작품이 다 있다.
"일본과 중국에 제 붓을 쓰는 사람들이 있다. 현재 11개국 나라에서 제 붓을 쓰고 있다. 그래서 외국 작가들이 당연히 참여한 거다."

- 11개국 가운데 특별히 한중일 작가들만 참여한 이유가 있나?
"한중일이 아시아권에서 붓을 가장 많이 쓰는 나라다."

- 그런데 붓의 위상이 예전에 비해 많이 달라지지 않았나?
"공법(만드는 법)은 달라지지 않았다. 조선시대부터 내려온 공법 그대로다. 다만 자기 창안으로서 더 기술을 개발해서 만든 붓들을 이번 전시회에 내놓았다는 점이 특징이다. 또한 40년, 50년 전에 만든 붓들을 새 붓처럼 복원한 것들 처음으로 선보였다."

- 그렇게 붓을 복원한 거는 어떤 의미가 있나?
"지금은 40년 전이나 50년 전이나 100년 전에 있던 털이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은 온난화 등 지구의 변화 때문에 그때 그 시절의 털을 구할 수 없다. 그래서 오래된 붓의 털과 현대의 털을 섞어서 복원한 것은 최초의 작업이다."

- 옛날에는 어떤 털을 붓의 재료로 삼았나?
"한국에는 양털붓이 없었던 것으로 안다. 주로 노루털붓과 고양이털붓, 족제비털붓, 토끼털 등 네 가지 붓을 썼다. 소귀에 붙은 털도 썼다."

- 그렇게 붓에 사용하는 털의 종류가 제한되는 이유가 있나?
"우리나라에는 그 외의 털이 많이 존재하지 않는다. 양모붓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은 1967년경부터일 것이다. 양모붓은 그때부터 오늘까지 이어진 붓이다."

- 우리나라에서는 양을 안 키웠나?
"(안 키웠다기보다) 양모붓을 만들 줄 몰랐다. 당·명·청 시대에 조선은 중국에서 만든 양모붓을 이용한 것 같다."

- 모든 털로 붓을 만들 수는 있나?
"어렵다. 사람이 태어나면 배냇머리털이 있다. 태어나서 8개월 혹은 1년까지 머리가 자라는데 그것이 인모(人毛)다. 그걸로는 붓을 만들 수 있다. '태모필'이라고 한다."

- 어른 털로는 붓을 만들 수 없나?
"머리털을 한 번 자른 다음에는 붓을 못 만든다. 호(毫, 맨처음 자란 가는 털)가 없기 때문이다. 사람도 이 호를 가지고 태어나는데 그걸 자르고 나면 그때부터는 머리털을 붓으로 쓸 수 없다."

- 그럼 짐승털들은 다 쓸 수 있나?
"다 쓸 수 있다."

- 호랑이털도?
"호랑이털로는 붓을 만들어본 적이 없다. 털 구입도 안 되고. 중국의 너구리털을 가장 많이 사용한다."
 
한중일 작가들의 작품 앞에서 자신이 만든 붓을 들고 선 정해창씨.
 한중일 작가들의 작품 앞에서 자신이 만든 붓을 들고 선 정해창씨.
ⓒ 구영식

관련사진보기

 
"문방구 붓펜으로는 높은 예술적 가치를 구현할 수 없다"

- 한중일의 붓의 차이가 있나?
"차이가 많다. 우선 중국 붓은 웅장하다고 할까? 일본붓은 강하고, 한국붓은 부드럽다. 한국붓은 '순한 양'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 붓에도 어느 정도 민족성이 반영돼 있는 건가?
"한민족은 대체로 온순하지 않나? (웃음)"

- 일본붓은 섬세할 것 같은데 강하다?
"섬세하지만 붓이 강하기 때문에 빨리 닳는다."

- 조선시대부터 가장 붓을 가장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조선붓'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인가?
"조선시대 때 붓을 많이 발전시켰다. 그래서 '조선필'이라고 한다. 고려시대에는 조선시대만큼 붓 기술이 발전되지 않았다. 고구려, 백제, 신라까지 올라간다면 우리가 전혀 모르는 붓이다."

- 조선시대 이전에는 어떤 붓이 사용됐는지 잘 모르는 건가?
"우리나라 의령에서 붓 두 자루가 출토된 적이 있다. 물론 털은 없어지고 붓대만 남은 붓이었다. 이것이 2000년 전에도 한반도에서 붓을 사용했다는 증거가 되고 있긴 하다."

- 옛날에는 붓이 기록용(필기용)으로도 널리 쓰였지만, 지금은 서예와 그림 등으로 그 용도가 좁혀지지 않았나?
"요즘 더 다양해졌다. 한국화에도 수묵화, 산수화, 화조화 등이 있는데 거기에 따라 붓이 다르다. 민화나 사경, 탱화, 불화 등에도 붓을 엄청 소모하고 있다. 분야와 용도에 따라 쓰는 붓이 달라지기 때문에 붓이 더 다양해졌다."

- 이제 붓으로 기록은 안하지 않나?
"붓으로 기록은 안하지만, 지금 붓문화는 무궁한 발전을 하고 있다. 현대서예가 발전하면서 거기에 수많은 붓을 사용한다."

- 조선시대에는 실록이나 문집, 소설 등을 붓으로 쓰거나 필사했는데 그런 용도로서의 붓은 사라진 것 아닌가?
"그게 (글쓰기용이나 필사용 붓)이 붓을 만드는 토대이자 기초다. 그 붓을 만들 수 있어야 다른 종류의 붓도 만들 수 있다. 물론 (글쓰기용이나 필사용 붓이) 많이 없어졌다. 하지만 요새는 서예 작가, 한국화 작가, 탱화 작가, 사경 작가 등 많은 작가들이 탄생하고 있다."

- 기록용으로서의 용도는 없어진 반면 다른 분야에서의 용도는 많아졌다?
"그렇다. 11개국에서 제 붓을 사용하지 않나?"

- 11개국이라면?
"중국, 일본, 홍콩, 대만은 물론이고 미국, 캐나다, 이탈리아, 독일에서도 제 붓을 사간다."

- 붓의 장점은 무엇인가?
"가장 오래 쓰는 거다. 40년 전에 만든 붓을 지금도 사용한다. 그것을 새 붓처럼 복원도 한다. 그런 복원 작업은 제가 처음이다. 중국이나 일본에는 없다. 그리고 분야마다 (붓에 들어가는) 털이 달라진다. 서예하는 사람에게는 그에 맞는 털을 써야 한다."

- 연필, 불펜, 만년필 등 현대의 필기구와 비교했을 때 붓의 경쟁력은 무엇인가?
"요즘 붓펜이 있는데 그것으로는 일정한 맛을 낼 수는 있다. 하지만 차원이 높은 예술적 가치는 구현하지 못한다. (전시장에 전시된 작품을 가리키며) 붓펜으로는 이런 작업을 할 수 없다. 천연모로 만든 붓으로 해야 (예술적 가치가 높은) 서화 작품이 된다는 말이다."

- 그럼 작가들이 주로 천연모 붓을 사용하나?
"모든 분들이 천연모 붓을 사용하고 있다."

- 천연모는 가격이 굉장히 비쌀 텐데.
"천연모에도 힘을 받는 게 있고, 힘을 못 받는 게 있다. 힘을 못 받는 천연모를 강하게 만드려면 나일론 등 인조모를 넣어야 한다. 그래서 요즘에는 붓에 힘이 들어가게 하기 위해 나일론 등 인조모를 넣는다. 물론 아주 부드럽게 쓰려고 하면 천연모만 써서 붓을 만든다."

- 작가들은 혼합 천연모를 쓰는 건가?
"아니다. 천연모가 많다. 작가들이 요구하는 붓들이 있으니까 거기에 맞추어서 붓을 만든다."

- 천연모 자체로는 붓을 강하게 만들 수 없나?
"돼지털이 있긴 하지만 이것은 한계가 있다. 돼지털만 다 넣어서 하면 붓이 안 된다. 돼지털은 세다. 동물마다 성격이 달라서 부드러운 털과 강한 털이 존재한다."

- 붓의 종류는 몇 가지나 되나?
"어마어마하다. 제가 만든 붓만 600여 가지다. 크기와 용도에 따라 만들어진 붓이 600여 가지다."

 
1977년에 만든 붓을 복원한 것.
 1977년에 만든 붓을 복원한 것.
ⓒ 구영식

관련사진보기

 
"민통선에서 염소 15마리 키워... 털은 자연 속에서 자라야"

- 붓의 재료가 털인데 털을 구하기는 괜찮나?
"어렵다. 특히 노루털 채취가 어렵다. 족제비의 경우 중국, 일본, 한국에서는 천연보호동물이기 때문에 죽은 것만 사용할 수 있다. 그래서 구하기가 참 어렵다. 현재는 중국 것을 많이 쓴다."

- 중국에서 털을 수입해 붓을 만든다는 것인가?
"중국에서 털을 가공해서 들어온다. (붓의 재료로 쓰는) 족제비 꼬리는 못 가지고 들어온다. 가공해야만 들어올 수 있다. 보호동물이기 때문이다. (야생) 토끼도 하도 많이 잡아서 중국에서는 국가가 토끼를 못 잡게 한다. 토끼를 잡다가 걸리면 형무소에 가야 한다. 야생에서 스스로 커야 한다. 다만 염소는 집에서 사육할 수 있다. 하지만 족제비나 토끼는 자연에서 살아야 한다. 사육은 절대 안 된다. 자연 속에서 털이 자라야 한다."

- 방목해서 키우면 안 되나?
"보호동물을 방목시킨다? 어려운 얘기다."

- 국내에서 구할 수 있는 털은 어떤 것이 있나?
"양털, 소귓털 두 가지밖에 없다. 한국 족제비는 기후 온난화 이후에는 못 쓴다. 붓의 재료가 안 된다. 온난화가 되면서 족제비 털이 붓으로는 쓸 수 없는 털이 돼 버렸다."

- 양모 붓의 재료가 되는 한국 토종 염소가 있나?
"한국 토종 흰염소가 있는데 그것이 우리나라 양모 붓 재료다."

- 지금 사육하고 있나?
"민통선 안에서 15마리 기르고 있다."

- 어디서 구했나?
"목포 신안군에는 1004개의 섬이 있는데 거기에서 구해 왔다. 육지에서 (한국 토종 흰염소는) 다 멸종됐고, 섬에는 몇 마리 살아 있었다. 2010년부터 그 염소를 복원하기 시작했다."

- 그 염소마저도 몇 마리 안 되니 양모를 많이 채취하기 어렵겠다.
"1년에 한 마리, 혹은 두세 마리 잡을 때가 있다. 게다가 수놈만 쓴다. 암놈 털은 붓 재료로 적합하지 않다. 양이나 염소는 수놈이어야 하고, 노루는 암놈이어야 한다. 동물마다 다 다르다. 암수를 가려서 사용하고 있다."

- 족제비는 어떤가?
"족제비는 암놈털 붓이 있고 수놈털 붓이 있다. 암놈털 붓은 작은 붓을, 수놈털 붓은 큰 붓을 만드는 데 쓴다."

고조외할아버지로부터 이어진 '5대 조선필'

- 붓은 언제부터 만들기 시작했나?
"13살 때부터 만들었다."

- 누구한테 배웠나?
"아버지한테 배웠다. 일을 해야 아버지가 공납금을 주니까. 우리 형제가 7남매여서 각자 벌어서 학교에 다녀야 했다."

- 아버지는 어디에서 붓을 만들었나?
"경북 예천 율현에서 만들었다. 거기가 외갓집이었는데 외갓집에서 기술을 배웠다.

- 외할아버지가 붓을 만들었나?
"고조외할아버지부터 시작해 외할아버지도 붓을 만들었다. 그게 저까지 이어져 저는 4대째 하고 있고, 제 아들은 5대다."

- 직접 붓을 만들어 보니 어땠나?
"그때는 아무것도 몰랐다. 그냥 아버지 따라서 일만 했다. 어떤 붓이 좋은지도 모르고."

- 어느 때서야 붓 만들기에 감각이 생기기 시작했나?
"군 제대하니까 아버지가 저더러 '내가 니한테 졌다'고 하더라. 그때서부터 용기를 얻었다."

- "졌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내가 아버지보다 더 붓을 잘 만든다는 거였다."

- 그때가 20대였겠다.
"군 제대했을 때니까 25살이었을 거다. 40년 배워야 할 것을 12년 만에 배운 거다."

- 13살부터 배웠다고 했는데 지금은 얼마나 된 건가?
"제가 올해 67살이니 54년 됐다."

- 계속 배울 만했나?
"지금도 제가 만들고 싶은 붓을 만들고 싶은데 예약이 6개월 정도 밀려 있어서 연구할 붓은 많은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 애만 탄다."
 
만든 지 오래돼 '호'(맨처음 자란 가는 털)가 닳아진 붓.
 만든 지 오래돼 "호"(맨처음 자란 가는 털)가 닳아진 붓.
ⓒ 구영식

관련사진보기

  
"조선필은 무덤까지 가져가는 붓이다"

- 특별히 연구하거나 만들고 싶은 붓이 있나?
"이 세상에 없는 붓, 누구도 만들어내지 못한 붓을 만들고 싶다."

- 특별한 붓이라면 어떤 붓인가?
"가장 희귀한 재료로 만든 붓이다. 양털 중에도 희귀한 재료가 나온다. 1년 한두 자루 만들 정도만 나온다."

- 희귀한 재료로 붓을 만들면 어떤 장점이 있나?
"죽을 때까지 쓰는 붓이다. 닳아도 닳아도 글씨가 되는, 그림이 되는 붓이다. 다 못 쓰고 죽으면 자기가 죽을 때 그 붓을 자기 무덤에 같이 묻어달라고 하는 붓이다. 이처럼 조선필은 무덤까지 가지고 가는 붓이다."

- 희귀한 재료를 쓰면 왜 그러한가?
"써도 써도 글씨가 된다. 닳아도 닳아도 호가 나온다. 한마디로 호가 길다는 뜻이다. 털의 맨끝부분이 투명해서 거울처럼 보인다. 보통 '호가 길다'고 표현한다. 호가 기니까 닳아도 닳아도 호가 남아서 죽을 때까지 쓸 수 있다."

- 그런 희귀한 재료를 만나는 것은 굉장히 드문가?
"생산이 얼마 안 난다. 생산량이. 국내에서도 나오고 중국에서도 나오고."

- 그런 희귀한 재료는 어떻게 구입하나?
"중국에 직접 가서 좋은 양털만 사고, 그 속에 (희귀한 재료가) 끼어들어 있다. 또 한국에서 양을 잡으면 그 속에 몇 가닥이 끼어 있다. 이번 전시회를 위해서 (희귀한) 양모로 붓 세 자루를 만들었다."

- 붓을 배우면서 그만두고 싶었던 적은 없었나?
"생활이 안 됐다. 반면 지금은 생활이 너무 잘돼서 너무 빠쁘고 그래서 힘들다(웃음)."

- 역설적이다.
"주문량이 너무 많이 온다."

- 누가 주로 주문하나?
"서예, 한국화, 민화, 탱화, 사경, 불화 등 각 분야 작가들이 주문한다. 붓이 모자라니까 예약한다. 예고 학생들도 주문하는데 그 붓마저도 못 만들어 예약받고 있다."

- 예약이 밀린 것은 직접 만드는 붓인가?
"그렇다."

- 좋은 붓을 고르는 방법이 따로 있나?
"전문가가 아니고서는 모른다. 일반인들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특정한 필방을 정해놓고 그 집을 다닌다. 거기서 무슨 붓 얼마짜리를 사간다. 일반인들은 좋은 붓을 고르는 방법을 절대 알 수 없다. 직접 붓을 써봐야 안다."

- 아직도 쓰고 있는 붓이 있다고 했는데.
"내가 만든 붓 중에 40년 된 게 있다. 1983년에 사서 2015년에 가져와 잘 썼다고 한 사람도 있다. 그거는 32년 됐다. 1994년에 만들어 2016년까지 25년 정도 쓴 붓도 있다."

"제 붓을 사용한 분들이 인간문화재"

- 조선붓이 게속 발전할 거라 보나?
"붓을 오래 쓰려면 기후 조건이 맞아야 한다. 온난화되면 털을 쓸 수가 없다. 지구가 병들고 있으니 가슴만 탄다. 좋은 털을 생산해 내지 못하니까."

- 그동안 왜 붓 전시회 한 번 안했나?
"한다 한다 했다가 그냥 50여 년이 지나갔다."

- 아버지도 전시회는 안했나?
"아버지도 한 적 없다. 제가 처음이다. 붓쟁이, 대장간쟁이, 종이쟁이, 벼루쟁이 등 '쟁이'가 들어간 사람들은 옛날에 천시받았다."

- 최근 서울시 필장인간문화재로 지정됐는데.
"제가 무형문화재가 아니다. 제 붓을 사용해준 모든 분들이 무형문화재다."

- 왜 그런가?
"저는 그분들의 작업을 도와줬을 뿐이다. 그러니 빛나야 할 사람은 제 붓을 사용한 사람들이다. 그게 맞다."

- 그래서 단독 전시회가 아니라 '문방과 작가의 만남'이라는 전시회를 연 것인가"
"그렇다."

태그:#정해창, #조선필, #문방과 작가의 만남
댓글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