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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속 오토바이
▲ 겨울은 힘들다.  눈 속 오토바이
ⓒ 라이더유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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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은 너무 힘들어요. 개인적으로 여름보다 힘든 것 같아요. 더운 건 땀을 흘리면 되잖아요. 근데 겨울이 되면 손발이 아파요. 얼굴도 아프고.. 피부가 터질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사실 추운 게 아니고 아픈 거예요."

가수의 꿈을 가지고 패스트푸드 라이더로 일하고 있는 L씨(27세)가 기자에게 '같은 라이더로서 잘 알 것 아니냐?' 라는 눈빛을 날렸다. 상상만 해도 등골이 시리다.

이불 밖은 위험하다는 한겨울, 사람들은 이불 속에서 꼬물꼬물거리며 스마트폰으로 따뜻한 음식을 주문하지만, 영하 18도의 추위를 뚫고 배달을 오는 라이더들의 손과 발이 얼마나 시릴지 상상하기 힘들다.

산업안전보건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영하 18도 이하의 냉동 창고에서 일할 경우, 방한모, 방한 장갑, 방한 신발을 지급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라이더들에겐 한겨울의 도로가 냉동창고와 다름없지만, 겨울용 장갑조차 지급받은 적 없다. 방한용 장갑, 신발 등의 용품은 전혀 제공되지 않는다.

오늘도 달립니다

"제가 만든 노래를 들고 무대에 서는 게 제 꿈이에요. 그래서 칼퇴할 수 있는 일자리를 찾게 된 거죠. 야근이다 뭐다 하면 제가 하고 싶은 일을 못 하니깐요. 꿈을 좇기 위해서 필요한 건 돈과 시간인데, 적은 돈 대신 시간을 선택한 거죠."

그는 20살부터, 편의점, 문구점, 이탈리안 레스토랑, 주스전문점, 패스트푸드점 등 닥치는 대로 알바를 했다. 처음엔 맛있는 걸 자기 돈 주고 사먹고 싶어서 시작한 알바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부모님으로부터의 독립과 싱어송라이터로서의 꿈을 위해 일을 했다. 오랫동안 알바를 하다보니 편의점 옆에서 소변과 똥 싸는 손님부터 온갖 진상 손님까지 다양한 경험을 했다.

그러다 보니 좀 더 자유롭게 일하면서도 최저 임금에 배달 1건당 400원을 더 주는 패스트푸드 라이더 일을 선택했다. 그는 일을 마치면 음악을 맘껏 할 수 있는 스튜디오에 가서 노래를 부른다. 이마저도 너무 피곤하면 못 가지만, 퇴근 후에 노래할 수 있는 이 시간을 위해 오늘도 더위와 추위를 견디고 아스팔트를 달린다. 

L씨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자신의 꿈을 위해, 그리고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위해 라이더 일을 한다. 정직하게 일하고 돈을 버는 엄연한 직업이다. 그러나 공부를 게을리 한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일이라는 사회적 편견이 많다.

이 때문에 라이더들의 노동 조건이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최근 폭염과 미세먼지 한파 등의 기후 변화가 일어나고 있지만 최악의 날씨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위한 보호 장비는 제대로 지급되지 않고 있다. 프랜차이즈 등 회사에 직접 고용된 노동자들은 헬멧과 보호대 등 최소한 물품을 지급받고 있지만, 장갑과 핫팩 등 추위를 피하기 위한 용품은 지급되지 않는다.

최근 프랜차이즈 회사에서 노동자들에 대한 책임을 피하고 싶어서, 직접 고용된 노동자들을 계약 해지하고, 배달대행업체를 사용하기도 한다. 노동자 신분이 아닌 배달 대행기사(특수고용 노동자)들은 헬멧부터 장갑까지 모두 자기가 구입해야 한다.

"100원이란, 저희가 폭염 속에서 일했을 때 받을 수 있는 어떤 존중감이라고 생각해요(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준비모임 대표, 7월 27일 SBS 인터뷰 중에서)."

지난 여름, 100년 만의 폭염 속에서 '폭염수당 100원을 주세요'라는 피켓을 들었다. 그리고 그 조용한 읊조림을 세상 사람들이 경청하기 시작했다. 폭염과 한파, 미세먼지, 비와 눈을 견디며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한편 4차 산업혁명 플랫폼노동자라는 멋진 말과 달리 장시간 노동과 보험 적용이 안되는 위험을 감수하고 일하는 사장님, 배달대행노동자도 있다. 저임금의 프랜차이즈 소속 라이더와 고임금이지만 위험을 감수하는 배달대행 라이더가 정당한 대가를 받으며 안전하게 달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정당한 노동에 정당한 대가를
 
빙판길 위 오토바이도 사람도 위험하다.
▲ 아슬아슬 오토바이  빙판길 위 오토바이도 사람도 위험하다.
ⓒ 라이더유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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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고민 속에서 라이더유니온 준비모임은 라이더 실태조사를 진행하고 9월 3일 결과 발표를 하기도 했다(관련 기사 : 폭염·폭우에 무방비인 라이더들, 사계절 내내 '위험의 질주').

염수당 100원을 외쳤던 우리는 이번 카카오같이가치 모금으로 추운 겨울 라이더들이 방한용품을 나눠가지면서 서로의 존재와 온기를 느끼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고자 한다. 모금에 모인 마음으로 마련된 보온장갑과 보온 신발을 들고 새로운 라이더들을 만나 전달하고 라이더유니온을 설명하고 제안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폭염수당과 보온 장갑을 당당히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그리고 안전한 직업, 질 좋은 서비스, 미래의 대안적 일자리로서의 플랫폼 노동을 만들기 위해서 라이더들이 모이고 연대할 수 있는 플랫폼, 라이더유니온이 필요하다.

라이더유니온 준비모임은 플랫폼 회사와 배달대행업체, 프랜차이즈 업체에서 방한용품을 지급할 것을 요구할 예정이다. 하지만 사회적 변화는 더디게 오고, 겨울은 코앞으로 다가왔다.

시민들의 참여와 기부를 통해 페이스북 등 온라인과 오프라인 홍보로 모집된 라이더와 라이더유니온 조합원에게 우선적으로 장갑과 핫팩, 방한 신발, 스펀지 레버 등을 제공할 예정이다. 라이더들에게 노동조합과 따뜻한 방한용품을 선물해줄 수 있도록 많은 참여와 후원을 부탁드린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카카오 같이가치(https://together.kakao.com/fundraisings/58059) 스토리를 수정·보완하였습니다.


태그:#라이더유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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