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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시 옥룡면 백운산 옥룡계곡 입구. 민가 하나 없는 들판 시골길에 들어선  ‘Grimm Cafe(그림카페)’.라이프 아티스트 모기태 작가가 나눔을 실천하며 운영하는 곳이다.
 광양시 옥룡면 백운산 옥룡계곡 입구. 민가 하나 없는 들판 시골길에 들어선 ‘Grimm Cafe(그림카페)’.라이프 아티스트 모기태 작가가 나눔을 실천하며 운영하는 곳이다.
ⓒ 김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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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유명한 시골 카페로 통하는 '사자 커피'는 이바라키현을 대표하는 랜드마크였다. 지난 1969년 한적한 시골에서 일곱 평의 공간으로 시작해 지금은 스타벅스 등 다국적 프랜차이즈를 누르고 일본인이 가장 사랑하는 3대 커피로 성장했다.

시골의 작은 카페가 어떻게 지역 명소가 됐을까? 비결은 단 하나였다. 변하지 않는 가치는 반드시 지켰고 시대에 맞는 가치는 새롭게 받아들였다. 결국 고집은 어느새 철학이 됐고, 아이디어는 또 다른 가치로 바꿨다. '사자 커피'가 더욱 의미 있는 이유다.

그런데 이런 멋진 철학을 가진 또 하나의 카페를 만났다. 그것도 우리나라다. 뜬금없는 광양의 시골 계곡에서 만난 이 카페는 그 유명한 '사자 커피'에 비교해 어디 하나 손색이 없었다.

시골 들판길에서 발견한 카페
 
그림카페는 스마트폰을 아무 곳에나 향해 눌러도 모든 것이 훌륭한 포토존이다.외벽에 왼쪽에 걸린 정체불명의 기호는 작가의 서명이었다.
 그림카페는 스마트폰을 아무 곳에나 향해 눌러도 모든 것이 훌륭한 포토존이다.외벽에 왼쪽에 걸린 정체불명의 기호는 작가의 서명이었다.
ⓒ 김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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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시 옥룡면 백운산 옥룡계곡 입구. 민가 하나 없는 들판 시골길에 범상치 않은 외관을 가진 건물 하나가 눈에 띈다. 얼핏 보면 개인 갤러리를 연상케 하는 이 외관은 포스부터 남다르다.

건물 외벽에 붙은 정체불명의 기호 표기, 형형색색의 장식으로 시선을 확 끌어당긴다. 과연 이곳의 정체는 무엇일까? 궁금증이 일어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살며시 문을 열고 들어서자 나도 모르게 탄성이 흘러나온다.

고풍스럽다 못해 예술적인 공간, 그 자체다.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100년도 넘은 듯한 피아노. 미용실 의자를 거꾸로 뒤집어 만든 듯한 평범하지 않은 테이블. 온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유화 그림에 이국적인 빈티지 소품과 앤틱 가구는 '덤'이었다.

그랬다. 이곳은 카페라기보다는 유화 작품부터 쿠션, 스카프, 부채, 컵 등의 생활소품, 조각품을 전시한 아담한 갤러리였다. 유니크한 내부 공간은 물론 창문 너머 한눈에 펼쳐지는 시골길 풍경도 장관을 이룬다. 스마트폰을 아무 곳에나 향해 눌러도 모든 것이 훌륭한 포토존이다.

감탄사를 연발하는 사이, 소녀의 수줍은 미소를 간직한 중년의 주인이 나타났다. 예감했던 대로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다. 범상치 않은 이곳은 바로 건물주이자 화가인 오빠가 운영하는 카페란다.

이곳은 '라이프 아티스트' 모기태 작가가 운영하는 'Grimm Cafe(그림카페)'. 그래서인지 실내 곳곳에 있는 모든 소품에는 예술가의 손길을 거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
 
카페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시선에 들어오는 것은 100년도 넘은 듯한 피아노다. 여기에 오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
 카페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시선에 들어오는 것은 100년도 넘은 듯한 피아노다. 여기에 오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
ⓒ 김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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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 그림에 이국적이고 짙은 색의 빈티지 소품과 앤틱 가구들이 정겹다.  노오란 꽃이 피어 있는 테이블은 미용실 의자를 거꾸로 뒤집어 만들었다.
 유화 그림에 이국적이고 짙은 색의 빈티지 소품과 앤틱 가구들이 정겹다. 노오란 꽃이 피어 있는 테이블은 미용실 의자를 거꾸로 뒤집어 만들었다.
ⓒ 김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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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카페라기보다는 유화 작품부터 쿠션, 스카프, 부채, 컵 등의 생활소품, 조각품을 전시한 아담한 갤러리였다. 가운데에 결려있는 초상화는 모작가의 동생이자 카페를 운영하는 경란씨를 그린 것이다.
 이곳은 카페라기보다는 유화 작품부터 쿠션, 스카프, 부채, 컵 등의 생활소품, 조각품을 전시한 아담한 갤러리였다. 가운데에 결려있는 초상화는 모작가의 동생이자 카페를 운영하는 경란씨를 그린 것이다.
ⓒ 김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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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판은 화장실이었다. 온통 갈대밭으로 표현한 화장실 벽이 인상적이다. 변기에 앉으니 왠지 갈대밭에서 숨어 몰래 볼일을 보고 있는 듯한 재미있는 착각에 빠진다. 카페에 딸린 작은 방에 걸려 있는 옷들은 모두 천연염색으로 무늬를 그려 넣고 직접 만들었다.

입시미술 버리고, '라이프 아티스트'로

주인은 서울의 한 유명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홍대 앞에서 20여 년간 입시 미술 전문가로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했다. 하지만 그가 꿈꿔온 미술 세계와 너무도 동떨어진 세상의 현실은 항상 그의 가슴 한구석을 허전하게 했다. 마침내 평범하게 사람들과 소통하며 사는 것이 참 인생이라는 걸 결심했고 그 길로 연고도 없는 광양으로 오고 말았다.

이후 10여 년 동안 예술에 대해 자유로움을 만끽하며 평범한 사람들과 예술을 소통하며 나눴다. 그러다 지난 2012년 우연히 이곳 시골길을 지나다 작은 집 한 채와 작업실을 겸한 갤러리 터를 마련하게 되었다. 그렇게 이 카페를 운영한 지는 3년 정도 되었다고.

처음부터 이 공간을 카페로 운영할 생각은 아니었다. 지금이야 카페 운영을 동생 경란씨가 맡고 있지만, 처음에는 그림을 배우려고 찾아온 손님들에게 커피를 제공하는 단순한 휴식 공간이었단다. 이야기를 들으며 커피를 마시다 보니, 커피 맛이 참 독특하다고 느껴진다.

"원래는 (이곳이) 작업실을 겸한 갤러리였고, 손님들에게 다과를 대접하려고 시작했어요. 그런데, 그림을 배우러 오는 여성 제자분 중 한 분이 일본에서 오신 분이 있었어요. 글쎄, 그 여성분이 일본에서 커피집을 3대째 이어오는 유명한 집안 딸이었지 뭐예요.

우리도 그분이 가져다주는 커피를 마시다 보니 본의 아니게 미각이 발달하게 됐고, 그러다 입소문을 타버린 거죠. 시골 한적한 곳에 있지만 지금도 마니아층이 꾸준히 찾아와요. 지금도 일본에서 오신 그분의 아드님이 대신 로스팅하여 커피를 가져다주고 있어요.

그런데, 아무리 흉내를 내려고 해도 3대째 내려오는 집안의 커피 맛만큼은 결코 따라갈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아직도 커피 맛 만큼은 자부하지만, 가져다 제공만 하는 판매자에 머물러 있는지 모르겠어요.(웃음)"

 
온통 갈대밭으로 표현한 화장실 벽이 인상적이다. 변기에 앉아 있으면 갈대밭에서 숨어 몰래 볼일을 보고 있는 듯한 재미있는 착각에 빠진다.
 온통 갈대밭으로 표현한 화장실 벽이 인상적이다. 변기에 앉아 있으면 갈대밭에서 숨어 몰래 볼일을 보고 있는 듯한 재미있는 착각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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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너머 한눈에 펼쳐지는 시골길 풍경도 장관을 이룬다.
 창문 너머 한눈에 펼쳐지는 시골길 풍경도 장관을 이룬다.
ⓒ 김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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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건물주인인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졌다. 마침 주인장은 지금 카페 2층 작업실에서 재능기부로 미술 꿈나무를 육성 중이란다. 어, 이런 시골 카페에서 그림을 가르치다니? 호기심이 발동했다.

그길로 2층으로 올라가 살며시 작업실 문을 열어봤다. 한 무리의 학생들이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사람이 들어오는 것도 모른 채 그림 그리기에 열중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마치 화가라도 된 것처럼 심각하고 진지했다.

그들의 곁에는 푸근한 인상의 선생님이 지키고 있다. 바로 모 작가였다. 아, 이런 산골 마을에 이런 공간과 이런 선생님이 있다니, 또 한 번 놀랐다. 2층은 원래 작가의 개인 작업실로 '라이프 아트'를 추구하는 예술인들과의 소통공간이지만 요즘에는 주말에 아이들에게 그림을 가르치는 용도로 쓰인다.

이곳에서 그림을 배우는 학생들은 미술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거나 기회가 없어 꿈을 펼치지 못했던 이들이 대부분이란다.
 
그림을 배우기 위해 작가의 작업실에 모인 학생들.
 그림을 배우기 위해 작가의 작업실에 모인 학생들.
ⓒ 김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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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기부는 수채화, 유화뿐만 아니라 데생, 캐리커처 등 취향에 맞게 다양하게 진행된다. 그림을 통해 학업으로 지친 학생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싶다는 모 작가는 학생들에게 늘 '자유롭게 표현하라'고 주문한다. 경란씨는 이렇게 귀띔했다.

"실은 오빠가 암으로 투병하다 2년 전에는 큰 수술까지 하게 되었어요. 지금도 요양 중이지만, 그래도 아프고 힘들 때 마음이 좋은 분들에게 도움받은 것을 잊지 못하세요. 그래서 오빠가 재능기부를 시작했어요. 마음으로 은혜를 갚는 차원이지요. 모든 게 전혀 대가가 없는 재능기부죠. 멀리 여수에서까지 일부러 찾아오는 걸요.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그림을 배우는 학생들이 작업을 통해 조금이라도 행복해지는 것이 작가님의 목표죠. 여기서 배워 벌써 화가가 된 학생도 있어요. 그림뿐만 아니라 의상디자이너로 성공하여 서울에 진출한 학생들도 있어요. 이런 학생들이 소소하게 작가를 기쁘게 해주고 있어서 작가님 건강도 충분히 좋아지리라 믿어요."

모 작가의 재능기부와 나눔은 예술품을 통한 '힐링'과 '순수한 사고'를 정착하자는 의미의 '라이프아트' 운동의 기본마인드에서 시작됐다. 예술을 서비스하는 '봉사'로 여겨 작품값을 창작을 영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수준으로 대가를 받는 것을 모토로 삼는 것이다. 그래서 전문가의 작품이라도 최소한의 재료비인 호당 2만 원만 받고 예술성을 선물한다.
 
카페에 걸려있는 라이프운동 안내문. 모 작가의 재능기부와 나눔은 예술품을 통한 ‘힐링’과 ‘순수한 사고’를 정착하자는 의미의 ‘라이프아트’ 운동의 기본마인드에서 시작됐다.
 카페에 걸려있는 라이프운동 안내문. 모 작가의 재능기부와 나눔은 예술품을 통한 ‘힐링’과 ‘순수한 사고’를 정착하자는 의미의 ‘라이프아트’ 운동의 기본마인드에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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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에 걸린 그림은 고호작품의 모작이 아니라 ‘리메이크’라는 미술 장르였다. 특이한것은 실리콘으로 밑그림으로 그려 유화느낌을 최대한 살린 것이다.
 벽에 걸린 그림은 고호작품의 모작이 아니라 ‘리메이크’라는 미술 장르였다. 특이한것은 실리콘으로 밑그림으로 그려 유화느낌을 최대한 살린 것이다.
ⓒ 김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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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모 작가도 처음에는 망설임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작품이 선물하는 기쁨과 나눔을 진정한 예술의 가치로 생각하며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그가 추구하는 작품 세계가 결코 싸구려이거나 천박한 예술이 아니라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오빠도 이쪽 분야에서는 나름 유명한 작가지만 미술작품이 특정인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함께 나누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이죠. 미술협회에서는 작품 판매가격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지만, 오빠는 재료비와 최소한의 노임만 적용하여 호당 2만 원만 받고 있어요. 항상 이것 때문에 비아냥거리는 분들도 많아요. 하지만 개의치 않아요. 작품의 가격을 올린다고 작가의 예술성이 주목받는 것은 아니죠. 차라리 예술을 대중에게 선물한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소통이 되겠어요."

싸고 좋은 것은 없다고 했다. 그렇다고 저렴하다고 모두 싸구려는 아니다. 그의 그림 속에는 사색과 휴식 그리고 나눔이 담겨 있다. 그래서 그림카페의 커피가 더 향긋했는지도 모르겠다.

예술성을 대중에게 선물하고 소통하며 행복해 하는 그를 보면서 긴 겨울을 이겨내고 다시 꽃을 피운 인동초가 떠올랐다. 세상과 개인의 고난에도 그림으로 희망을 선물하는 모 작가의 쾌유를 진심으로 바란다.
 
'마음의 눈으로 보면 하찮은 풀들도 위대해 보인다. 마음의 눈으로 보면 일상도 사랑스럽고 소중하다. 마음의 눈으로 보면 나는 채우려는 사람이 아니라 넓은 여백을 소유한 사색의 시인이 된다.'
- 모기태, 2014 <마음의 눈으로 본 풍경> 도록 중에서
 
그림카페 건너편에는 진짜 그림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그림카페 건너편에는 진짜 그림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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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그림카페, #광양, #옥룡, #발견 이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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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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