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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든 어른이든 무언가를 처음 시작할 때, 걱정 반 설렘 반 상태가 되기 마련이다. 때론 걱정이 지나쳐 설렘은 사라지고 두려움이 마음에 가득 차기도 한다. <수영장 가는 날>에 나오는 '나'가 그런 상태이다.
 
표지
▲ 염혜원 <수영장 가는 날> 표지
ⓒ 염혜원,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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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방울이 번진 듯 연한 물빛 면지를 지나자 토요일마다 '수영장 가는 날'이란 동그라미가 그려진 달력이 나온다. 표지에 그려진 마땅찮은 꼬마의 표정 때문인지, 파란 색깔의 토요일 숫자와 대비되는 빨간색 동그라미가 어쩐지 불안하다.

아니나 다를까, 화면의 1/5을 차지하는 물 앞에 서있는 꼬마는 너무나 자그만하다. 자신을 보호하듯 한쪽 팔을 가슴 위로 가로질러 다른 팔을 잡은 모습이 안쓰럽다. 물을 앞에 두고 고민이 많은 뒷모습이다. 무섭고 하기 싫은 마음이, 내켜 하지 않은 마음이 읽힌다.

'나'는 다양한 방법으로 이 마음을 표현한다. 수영장 가는 날이면 배가 아프고, 답답한 마음을 대변하듯 노란 수영 모자는 아프도록 머리에 꼭 낀다. 수영장은 시끄럽고, 아이들은 뭐가 그리 좋은 건지 모르겠다.

선뜻 물에 들어가지 못하는 '나'를 잠식하고 있는 것은 '두려움'이다. 저 물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통 알 수가 없다. 물이 '나'를 삼켜 버릴지도 모른다는 근원을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엄습할 터이다.

두려움은 이미 취득한 정보를 바탕으로 일어나기 보다는, 알지 못하는 미지의 것에 대해 만들어지는 경우가 더 많다. 모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본능에 가깝다. 그것이 물처럼 거대한 형체를 띠고 존재를 압도할 때 두려움은 배가 된다.

'나'의 두려움을 이해하는 수영 강사는 조급해 하지 않으며 '나'를 천천히 물과 친해지게 이끌어준다. 수영 강사의 도움을 받으며 '나'는 점차 물에 들어가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게 된다.

물로부터 '나'를 지켜줄 누군가의 존재는 든든하다. 신뢰할 수 있는 존재가 곁을 지킨다면, 우리는 두려움의 대상에 서서히 접근할 수 있게 된다. 아이에게 부모는 그렇게 생과 붙어다니는 두려움을 감소시켜 주는 존재이다.

익숙해지고 친해질 때, 사실 두려움을 야기하는 대상은 자신 고유의 특질대로 그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두려움은 서서히 해소된다. 대상이 해를 끼치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면 편안해진다. 물과 점차 친해지는 '나'의 변화는 이런 과정을 잘 보여준다.

물 위에 둥둥 뜬 '나'의 모습은 대상과 '나'가 합일되며 두려움이 극복된 상태이다. 천장을 바라보며 동그랗게 뜬 눈은 대상을 오해해 스스로 만든 굴레를 벗어던진, 한껏 자유로워진 존재를 잘 표현한다. 결국, 두려움의 극복이란 대상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굴레를 만든 자신을 극복하는 것이다.

<수영장 가는 날>에 그려진 물 앞에 선 작은 소녀를 보노라면 편견, 나아가 혐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편견이나 혐오는 두려움을 느끼는 우리의 나약함에 대한 반증이다. 모르기 때문에, 상대를 부정적으로 응시하거나 상대가 나를 해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게 된다. 두려움에 따른 지나친 방어는 때론 상대를 적대하게 만든다.

물론, 두려움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두려움은 생존 본능의 하나이며, 자연스러운 것이다. 두려움이 존재하기에 무작정 물로 뛰어드는 사고가 방지된다. 다만, 그 두려움이 조심하고 삼가는 '경계'의 차원을 넘어 '적대감'으로 변질될 때 문제가 발생한다.

적대감은 증오를 품게 하고, 증오는 그저 존재할 뿐인 대상을 공격하게 만든다. 논리를 벗어난 무작위의 공격은 언제든 '아무나'를 향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적대감을 유발하는 편견과 혐오로부터 벗어나는 일은 근원을 알 수 없는 증오와 공격에서 자신도 보호받은 것으로 돌아온다.

작가 소개를 보니 작가 염혜원은 미국에 산단다. 황인, 백인, 흑인 등 다양한 인종의 아이들이 수영장에서 거리낌없이 어울리는 그림들은 작가가 지향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짐작하게 한다.
 
<수영장 가는 날> 한 장면.
 <수영장 가는 날> 한 장면.
ⓒ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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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과도 친구들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아이들의 모습은 처음 물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는 '나'의 태도와 대비된다. 한쪽에서 그들을 바라보는 '나'의 모습은 두려움, 편견, 혐오 등이 자유로운 개인의 영혼을 가두는 감옥임이 새삼 느껴진다. '나'는 이제 친구들과 자연스레 어우러지며, 수영장 가는 날이 되어도 더이상 두려움이 야기하는 불안에 지배당하지 않는다.

두려움을 느낀 어느 순간, 조심하고 경계하되 적대하지 않으며 대상과 서서히 익숙해질 때, 세상은 새롭게 보인다. 대상을 수용하는 순간, 우리는 또하나의 새로운 눈을 갖게 된다. 대상이 세계에 존재하는 방식으로 세계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성장은 이런 방식으로도 이루어진다. '나'의 감탄은 대상의 존재 방식을 통해 새로운 시각을 획득한, 이전보다 한단계 성숙하는 순간을 잘 드러낸다.
 
'우아…….'
물 속은 아주 조용했고
눈에는 모든 게 새롭게 보였어.
- 염혜원 <수영장 가는 날>

 

<수영장 가는 날>은 두려움을 벗어난 가뿐함을 물 위에 뜬 소녀의 모습을 통해 표현한다. 우리들은 시작의 순간, 선택의 순간, 회피를 고민하는 순간 등 두려움에 지배당할 삶의 여러 순간과 만나게 된다.

서두르거나 조급해하지 않아도 된다. 두려움에 잠식당하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대상과 천천히 호응해 나가면 된다. 곧, 우리는 '나'를 극복한 가뿐함, 대상이 나와 같다는 동질감과 만나게 될 것이다. 혹, 서로 호응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건 내 탓도 네 탓도 아니다. 그냥 맞지 않은 것일 뿐이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합니다.


수영장 가는 날

염혜원 지음, 창비(2018)


태그:#수영장가는날, #염혜원, #두려움편견혐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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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대한민국 한 귀퉁이에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그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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