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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큐멘터리 <안녕, 미누>(2018, 지혜원 감독)는 구성진 '목포의 눈물'로 시작됐다. 나는 1%의 의심도 없이 그 노래를 부르는 이가 한국인이라 생각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노래를 부르는 이의 창법이 제대로였고, 그 애달픈 정서 또한 우리 민족의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목소리의 주인공은 미누씨, 한국에서 제법 먼 네팔 사람이었다.  

미누(네팔 이름 미노드 목탄)씨는 한국에서 18년을 이주노동자로 살았다. 21살에 한국에 건너온 그는 18년을 살고도 한국인이 될 수 없었다. 그는 2009년 10월 어느 날, 단속에 붙잡혀 강제 추방되었다.  

올가을 DMZ 영화제에서 <안녕, 미누>를 볼 수 있었다. 개막작이었는데 추방된 미누를 중심으로, 한국에서 'STOP CRACKDOWN(단속을 멈추라)' 밴드 활동을 같이했던 이주노동자 멤버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영화 상영 후 깜짝 등장한 미누씨를 보며 관객들은 모두 환호를 보냈다. 영화제 측에서 그를 초청했지만, 추방된 그의 전력이 입국 가능성을 낮게 했기 때문이었다.  

미누씨는 지혜원 감독과 함께 스크린 앞에 나란히 섰다. 그의 한국어는 9년을 떠나있었음에도 믿을 수 없을 만큼 유창했다. 여러 번 감사하다는 말로 감격을 표시하는 진심이 전해졌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 보자. 미누씨가 한국에 들어올 수 없자 'STOP CRACKDOWN' 멤버들은 네팔에서 다시 모였다. 성황리에 공연을 마친 후, 미누씨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했다. 그런 그의 말이 예견처럼 그의 죽음으로 이어졌다는 소식은 큰 충격이었다.

관객과의 대화에 나서 무한 긍정의 태도로 미래를 다짐했던 미누씨가 영화제 후 돌아간 네팔에서, 왼쪽 가슴을 움켜쥔 채 쓰러진 주검으로 발견됐다니... 그는 자신을 추방한 한국에 왜 그토록 돌아오고 싶었을까? 한국으로의 귀환이 그에게 어떤 의미였기에, '죽어도 여한이 없는' 여정이 되었던 걸까?  
 
영화 <안녕, 미누>의 한 장면
 영화 <안녕, 미누>의 한 장면
ⓒ 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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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1992년에 한국에 이주노동자로 들어와 반평생을 한국에서 살았다. 청춘을 보낸 한국, 여기에는 미누씨를 미누씨로 만들어주는 거의 모든 것이 있었다. 그에게 '추방당한다'는 것은 그저 다른 곳으로 옮겨지는 것이 아니라, 반평생을 부정당하는 것과 같았다. 친구, 노동, 음악, 역사 등 모든 것을 송두리째 빼앗는 것이 '추방'의 다른 의미였다.  

<안녕, 미누>에 등장하는 미누씨의 이주노동자 친구들은 "자신이 한국인이라 생각하나요?"라는 질문에 너무나 당연하게 "그럼요, 저는 제가 한국 사람이라고 생각해요"라고 답했다. 아, 그렇구나. 이들은 자신들을 한국인으로 정의하는구나.  

미누씨의 각기 다른 국적의 친구들은 미누씨처럼 청년으로 한국에 들어와 이제 중년이 되었다. 그들은 한국에서 결혼하고 아이 낳아 가정을 꾸리고 살고 있다. 반평생 한국에서 살아온 이들이 스스로를 한국인이라고 생각하는 게 이상한 일일까?

이주노동자들 때문에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근거 없는 주장을 믿을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들 대부분은 한국인이 꺼리는 업종에서 열심히 일하며 노동의 빈자리를 채워주고 있다. 몇 년 전 남편을 따라 우연히 가 본 폐차장에서 만난 검은 피부의 이주노동자는 혹독한 겨울 날씨에 떨며 밖에 피워놓은 드럼통에 잠시 언 몸을 녹이고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만남에 놀란 것도 잠시, 폐차장 사장님의 말에 놀라움은 곧 당혹감으로 바뀌었다.

"요즘 한국 사람들은 이런 데선 일 안 하려고 그래요."

이뿐인가? 식당의 서빙 노동자가 조선족 이주 노동자로 채워진 지는 이미 오래고, '사모님'을 연신 불러대며 이삿짐을 옮겨 주던 노동자들, 건축 현장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노동자들, 창틀 교체를 하는데 이주노동자가 와서 어찌나 맵짜게 일을 잘하던지 깜짝 놀랐다던 이웃의 전언까지,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인이 기피하는 곳곳에서 우리의 몫을 대신하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은 임금을 떼이는 것에서 폭언, 폭행, 성폭행에 이르기까지 비인간적 처우에 신음하고 있다. 게다가 사면초가에 몰려 타국 땅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한 이주노동자들의 소식까지 듣게 되면, 안타까움과 부끄러움으로 고개가 떨구어진다.

얼마 전 집중 단속에 붙잡히지 않으려 도망하다 떨어져 죽은 미얀마 노동자, 딴저테이는 고작 26살이었다. 이렇게 스러져가는 수많은 딴저테이들의 운명이 애달파서 미누씨는 소리쳐 불렀을 것이다. 제발 폭압적인 단속을 멈추라고, "Stop, Crackdown!"  

한국인의 근면을 추억하며 상찬하는 영화 <국제시장>(2014, 윤제균 감독)엔 형편이 어려워 돈 벌러 이국땅으로 떠났던 광부와 간호사가 등장한다. 하나같이 근면 성실한 산업 역군의 아이콘이었다.

수많은 '덕수'와 '영자' 덕에 그들의 가족은 먹고살 수 있었고, 대한민국은 이들이 송금한 외화 수입으로 어려웠던 경제를 견인할 수 있었다. 더러 독일에 남아 정착한 노동자들은 유럽 한인 사회의 기틀을 마련했다. <국제시장>의 '덕수'와 '영자'도 독일 이국땅에서 이주노동자였다. 이들이 한국의 이주노동자들처럼 유효기간 지난 폐품 취급을 당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자신을 그토록 무시하고 차별하고 박대한 한국에 미누씨는 왜 그토록 돌아오고 싶었던 걸까? 그는 말했다. "제 모든 것이 여기 있어요." 한국을 그리워하던 미누씨는 영혼이 되어서라도 한국에 건너왔을까? 그는 네팔의 풍습대로 화장됐다. 그의 죽음을 믿을 수 없었던 밴드 멤버들은 10월 21일 부평의 미얀마 절에서 추도 법회를 했다. 미누씨는 47살이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개인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태그:#안녕, 미누, #이주노동자, #지혜원 감독, #딴저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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