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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 제주4.3희생자 위령비 제막식.
 오사카 제주4.3희생자 위령비 제막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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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있었다면 나도 죽은 목숨이었어."

아버지에 등 떠밀려 밀항선을 타고 황급히 고향 제주를 떠난 소녀는 소리꾼 안성민의 입을 빌려 이렇게 증언한다. 70년 전 그날, 제주에서는 그렇게 학살을 피해서 고향을 등진 자들과 그곳에서 희생을 당한 자들이 있었다. 그렇게 고향을 떠나온 이들은 겨우 목숨은 건졌지만, 가족과 친척, 동무들의 죽음과 희생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반 세기 이상을 숨죽인 채 살아오도록 강요받았다.

고향을 떠나 목숨을 부지한 이들과 그 후손들이 살아온 땅, 일본 오사카. 일본 오사카의 '도코쿠지'(統国寺)라는 사찰에서 지난 18일 '제주4.3희생자 위령비 제막식'이 열렸다.

이날 제막식에는 당시 학살을 피해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생존자 여섯 분을 비롯해 그 자손과 친척, 지역의 재일동포와 일본인들이 참석했다. 생존자들은 제막식이 거행되는 동안 그날의 기억이 되살아나는 듯 연신 눈물을 훔치며 탄식했다. 
 
제막식 행사에 맨 앞에 앉은 생존자들.
▲ 오사카 제주4.3희생자 위령비 제막식 제막식 행사에 맨 앞에 앉은 생존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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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막식이 열린 도코쿠지는 재일본조선불교도협회에 소속돼 있는 사찰로 조선의 전통 불교의식을 지키고 있다. 납골당에는 조선인 희생자나 무연고자 등을 모시는 등 원효대사의 화합의 정신을 바탕으로 조선(북한), 한국, 일본의 차이를 넘어서 불교의식을 포교하며 세계의 평화를 기원하는 포교활동을 하고 있다는 평가다.

이날 세워진 위령비에는 제주도의 178개 전 마을에서 모아 온 돌이 바쳐졌다. 이 돌들은 학살 관련 지역에 있는 것들을 골라, 하나 하나 돌을 수집할 때마다 향을 피우고 술잔과 큰 절을 올리는 정성과 마음으로 준비됐다. 

제막 행사 중에는 이 사찰의 승려들이 희생자를 추모하는 독경을 외우면서 한라산 백록담과 백두산 천지를 합한 물을 위령비에 뿌리고 분단에 의해 생긴 비극이 더 이상 되풀이 되지 않고 하루 속히 조국의 화해가 이뤄지기를 기원하는 의식을 행했다.

오광현 재일본4.3희생자 유족회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70년 전의 우리 선열들은 조국의 분단을 막고 하나가 되기 위해 싸우셨습니다"라며 "우리들도 이 위령비를 통해 조국의 하나됨을 기원하고 세계에 평화의 메시지를 전해 갑시다"라고 말했다.
 
위령비 아래쪽에는 제주 178개 마을에서 가져온 돌들이 함께 놓여져 있고 돌 아래에 각 마을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 오사카 제주4.3희생자 위령비 제막식 위령비 아래쪽에는 제주 178개 마을에서 가져온 돌들이 함께 놓여져 있고 돌 아래에 각 마을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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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막식 현장에서 <제주도 4.3사건>의 저자인 일본 리츠메이칸 대학 문경수 교수를 만나 위령비가 이곳에 세워진 의미에 대해 질문했다. 문 교수는 "많은 사람들이 4.3을 피해 오사카로 왔기 때문에 오사카는 4.3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곳이다"라면서 "따라서 이곳의 위령비는 4.3 해결의 이정표가 되고, 일본사회에서의 민단·총련·일본 화합의 상징이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문 교수는 "당시 남로당 간부를 비롯한 사람들이 아직도 희생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민단과 총련이라는 두 조직으로 크게 나뉘어져 있는 동포사회를 생각할 때 앞으로는 그런 사람들을 포함한 모두의 명예회복이 4.3 문제 해결의 큰 과제"라고 강조했다.

제막식에는 멀리 제주도에서 '제라진 어린이 합창단'이 와서 제주 민요와 추모의 노래 등을 불러줬다. 그밖에도 살풀이와 풍물, 판소리를 통해 희생자를 추모하고 평화를 다짐하는 시간을 가졌다. 더 많은 이들이 이 곳을 방문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그들이 바랐던 조국의 통일과 한반도의 기원하는 장소가 되기를 바란다.

 
생존자들이 대표로 위령비 제막을 하고 있다
▲ 오사카 제주4.3희생자 위령비 제막식 생존자들이 대표로 위령비 제막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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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광현 재일본 4.3희생자 유족회 회장이 분향을 하고 있다
▲ 오사카 제주4.3희생자 위령비 제막식 오광현 재일본 4.3희생자 유족회 회장이 분향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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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자를 추모하는 독경
▲ 오사카 제주4.3희생자 위령비 제막식 희생자를 추모하는 독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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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막식에 앞서 묵념하는 참석자들
▲ 오사카 제주4.3희생자 위령비 제막식 제막식에 앞서 묵념하는 참석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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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막식이 열린 도코쿠지 입구
▲ 오사카 제주4.3희생자 위령비 제막식 제막식이 열린 도코쿠지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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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혜씨의 살풀이
▲ 오사카 제주4.3희생자 위령비 제막식 장지혜씨의 살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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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민씨의 판소리 '4월 이야기'
▲ 오사카 제주4.3희생자 위령비 제막식 안성민씨의 판소리 "4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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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제라진 어린이 합창단
▲ 오사카 제주4.3희생자 위령비 제막식 제주 제라진 어린이 합창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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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제주4.3, #오사카 위령비, #도코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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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나고야의 장애인 인형극단 '종이풍선(紙風船)'에서 일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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