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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왜 있어야 하지?
 
"나, 궁금한 게 있어요." "그래, 뭐니?" "아빠에 관한 건데……." "그래, 뭐냐니까?" "도대체 아빠들이 왜 필요한 거예요?" 아주머니는 웃으면서 아빠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아빠도 웃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빠는 웃지 않았다. 아빠에게는 그 질문이 전혀 우습지 않았으니까. (15쪽)

만약 아빠가 집으로 가는 길을 찾아서 집에 갔더니, 아내와 에베리네와 로메오가 아빠를 보고…… 아빠 같은 거 필요 없다고 하면 어떻게 하지? 그러면 뭐라고 대답해야 좋을까? (67쪽)

"어머나 세상에, 이런 건 정말 처음 보는구나!" "누구나 빨래를 개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어요." 아빠가 말했다. "내 말은, 너의 그런 모습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는 뜻이야." 어머니가 말했다. (88쪽)

아버지란 무엇을 하는 사람일까요? 오늘은 아버지란 몸으로 살면서 이 말을 묻지만, 어릴 적에 두 어버이를 바라보며 아버지란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를 알기 퍽 어려웠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어릴 적에 우리 아버지는 새벽처럼 나가서 밤 늦게 돌아오면서 '바깥에서 돈을 버느라 바쁜' 몸이었거든요. 아버지를 볼 일이 드물었고, 말을 섞을 일이 손에 꼽을 만했습니다.

오늘날 적잖은 아버지가 아이들을 볼 겨를이 없이 집 바깥에서 바쁩니다. 이뿐 아니라 적잖은 어머니까지 아이들을 볼 틈이 없이 집 바깥에서 바빠요. 아이들은 어린이집을 거쳐 초등학교에 들 텐데, 이윽고 중·고등학교에 이르면 두 어버이를 볼 새가 없기 일쑤입니다. 학교와 학원을 맴돌며 배우는 아이들한테 두 어버이는 어떤 어른으로 보일까요? 돈을 벌어서 살림을 꾸리는 일 말고, 무엇을 가르치거나 알려주거나 나누거나 이야기하는 사람일까요?

<아빠가 길을 잃었어요>(랑힐 닐스툰·하타 고시로/김상호 옮김, 비룡소, 1998)는 두 가지 줄거리를 다룹니다. 첫째, 책이름 그대로 '길을 잃은' 아버지를 보여줍니다. 보금자리를 새 곳으로 옮기면서 저녁에 일터에서 새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만 새 집이 어디에 있는가를 몰라요. 그래서 길을 잃지요.

둘째, '길을 잃은' 모습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뿐이 아니라, '집에서 아버지라는 삶길이 무엇인가를 잃은' 모습이 됩니다. 버스를 타고 일터로 가는데, 옆자리에 앉은 아이랑 아주머니가 서로 주고받는 말을 듣다가 '나는 어떤 아버지이지?' 하고 마음으로 묻다가 그만 어디에서 버스를 내려야 할는지 놓쳐요. 마음이란 길을 잃지요.

길을 잃은 아버지(아저씨)는 이레 내내 헤맵니다. 온갖 사람을 만나면서 길을 묻지만, 어느 누구도 이 아버지한테 속시원히 알려주지 못합니다. 길 잃은 아저씨는 자꾸자꾸 헤매면서 더 어지럽습니다. 이러다가 어느 날 깨달아요. 어디로 가는 어떤 사람(아버지)이어야 하는가는 모르겠지만 익숙한 길이 하나 떠올랐지요. 바로 이 아버지를 낳은 어머니가 사는 집으로 가는 길이에요.

오랜만에 어머니 품에 안겨서 울기도 하고 고픈 배를 채우기도 하고 씻기도 하다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집안일을 거듭니다. 이러면서 새로 깨닫지요. 여태 두 아이랑 곁님하고 지내는 보금자리에서 '집안일을 같이 한 적에 없는' 줄을 말이지요. 이뿐 아니라 일터에서 돈을 버느라 바빠 '아이들하고 어울려 놀 틈'을 안 낸 줄 깨닫고, 이 아버지가 어릴 적에 저희 아버지도 똑같이 너무 바쁘신 줄 깨닫습니다.

자, 이렇게 깨달은 '길 잃은 아버지'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집으로 돌아가면 새롭게 아버지 노릇을 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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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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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아이하고 쓰는 일기
 
내 몸속에 공존하는 또 하나의 존재. 꿈틀꿈틀 자유롭게 움직인다. 아프다……. (27쪽)

아기에게는 옆에 있는 사람을 여유롭게 하는 힘이 있다. (57쪽)

어린 아이들이 있는 집은 빨래가 없는 날이 없다. 호텔 거울 위 조명은 빨래 건조대로 제격이었다. 여행 중에 매일 빨래를 하다 보니 손빨래 실력만 몰라보게 늘었다. (128쪽)

"엄마, 귤껍질은 꽃 모양으로 벗겨 줘야 해!" 새벽 3시, 아파서 잠이 들었던 아오가 귤이 먹고 싶다며 벌떡 일어났다. (196쪽)

눈길에서 우산과 우산을 연결해 기차놀이를 했다. 등에 업힌 모모도 꺅꺅 소리를 내며 동참했다. 지금밖에 없는 특별한 시간. (248쪽)

모든 아이는 저마다 어버이를 골라서 태어난다고 느낍니다. 모든 아이는 다 다른 삶을 누리려고 다 다른 어버이 품에서 태어나 다 다른 길을 걷는다고 느껴요. 어느 아이는 가멸찬 집안에서 태어나서 자라는 길을 걷고, 어느 아이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자라는 길을 걷지요.

어느 아이는 좀 어른스럽지 못한 집안에서 태어나 시달릴 수 있고, 어느 아이는 무척 따사로운 품인 집안에서 태어나 사랑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아이를 어떤 눈이나 손으로 맞아들이는 어버이일까요?

"모모가 태어나고 아오가 오빠가 되어 가는 386일 간의 기록"이라는 이름이 붙은 <모모네 자수 일기>(몬덴 에미코/편설란 옮김, 단추, 2018)를 가만히 읽습니다. 이 책은 아이를 돌본 나날 삼백여든엿새를 실무늬놓기로 보여줍니다.

그러니까 모모란 아이하고 아오란 아이를 지켜본 하루를 바늘하고 실을 놀려서 날마다 이야기를 엮었다고 할 만합니다. 아기한테 젖을 물리다가 지친 날도, 아기하고 까르르 웃으며 놀던 날도, 아이들한테 성을 터뜨린 날도, 아이가 무럭무럭 크는 모습을 눈물로 바라보던 날도, 그때그때 손에 집히는 대로 천이나 종이에 실로 무늬를 새기면서 발자국을 남겨요.

아이들하고 살아오면서 늘 느끼는데, 어버이는 '육아일기'를 쓸 수 없구나 싶습니다. '육아'란 이름으로 '아이를 키운' 이야기란 있을 수 없어요. 아이하고 살아가면서 아이한테서 배운 이야기가 있을 뿐이지 싶습니다. 어버이는 아이한테서 배워요. 그래서 어버이는 "아이한테서 배운 이야기"를 적습니다. 아이는? 아이는 아이 나름대로 어버이한테서 받은 사랑을 마음에 새깁니다.

어른은 이야기를 남기고, 아이는 사랑을 새깁니다. 어른은 이야기를 짓고, 아이는 사랑을 가꿉니다. 어른은 이야기를 노래하고, 아이는 사랑을 꿈꾸지요. 이렇게 두 사람, 어른하고 아이는 사이좋게 어우러지는 숨결로 거듭납니다. 삶을 노래하며 이야기가 태어나고, 살림노래를 들으면서 사랑스레 웃고 뛰놀면서 씩씩하게 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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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공주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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ㄷ. 아이를 괴롭히는 할머니
 
"조지야, 이리 와 봐. 이리 가까이 오면 네게 깜짝 놀랄 만한 일을 가르쳐 주지." 조지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할머니 역시 움직이지 않았다. 할머니는 갑자기 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하지만 꼭 뱀이 사람을 물기 전에 웃는 것처럼 차갑기 그지없는 웃음이었다. (21쪽)

조지는 정말 겁이 났다. 그래서 꼭 할머니를 어디로 날려 버리고만 싶었다. 글쎄……. 아주 날려 버릴 수는 없겠지. 하지만 조지는 할머니를 한번 정신이 번쩍 들게 해 주고 싶었다. (26쪽)

조지는 마법의 약을 만드는 방법에 대해 전혀 고민하지 않았다. 이걸 좀더 넣고 저걸 좀더 뺄까 따위의 걱정으로 시간을 부질없이 보내기는 싫었던 것이다. 아주 간단하게,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넣기로 했다. (33쪽)

그때쯤 할머니의 몸은 성냥개비만큼 작아졌다. 그런데도 여전히 할머니는 계속 작아지고 있었다. 얼마 후, 할머니는 바늘만큼 작아졌다. 그러더니 호박씨만해졌고, 그리고는 …… 그리고는 ……. (152쪽)

사랑스럽거나 아름다운 할머니가 있다면, 안 사랑스럽거나 안 아름다운 할머니도 나란히 있을까요? 아이를 살뜰히 아끼는 할머니가 있다면, 아이를 매우 들볶거나 괴롭히는 할머니도 함께 있을까요?

아이를 사랑으로 낳아 사랑으로 돌보는 어버이가 있습니다. 이와 달리 아이를 사랑 없이 낳고는, 다시 아무 사랑 없이 팽개치는 어버이가 있어요. 어쩌면 이 어버이는 어릴 적부터 참다이 사랑받은 일이 없는 바람에, 몸은 어른이 되었어도 마음은 못 자랐을는지 모릅니다.

<조지, 마법의 약을 만들다>(로알드 달/김연수 옮김, 시공주니어, 2000)에 나오는 할머니는 조지란 아이를 매우 들볶거나 괴롭힙니다. 아이를 놀리는 재미로 산다고까지 할 만합니다. 어쩜 이런 할머니가 다 있으랴 싶으나, 이 할머니도 어린 나날 사랑받지 못한 채 자라다가 고되게 일만 하고 늙은 바람에 그만 귀여운 아이 앞에서 모진 짓을 일삼을는지 모릅니다.

조지라는 아이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날마다 두려워 벌벌 떨면서 할머니가 벌이는 모진 짓을 다 받아들여야 할까요? 어찌저찌 이 끔찍한 나날에서 벗어날 길이 있을까요? 할머니가 날마다 먹는 약을 마법약으로 바꿔치기해서 할머니한테 크게 한 대를 먹이고는 눈이 번쩍 뜨이도록 하는 길이 있을까요?

누가 가르쳤을는지 모르지만, 아이는 '마법약'을 떠올립니다. 누가 알려준 적은 없으나 할머니가 눈이 번쩍 뜨일 만한 마법약을 빚습니다. 그야말로 온마음하고 온힘을 다해 빚은 마법약은 대단히 잘 듣습니다. 그런데 있지요, 곰곰이 생각할 노릇입니다. 할머니가 아이를 알뜰히 사랑하는 마음이었다면, 아이는 어떤 마법약을 빚을 수 있었을까요? 아이한테 사랑을 물려준다면 아이는 사랑을 담은 마법약을 빚을 만하겠지요. 아이한테 물려주는 그대로 돌려받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글쓴이 누리집(blog.naver.com/hbooklove)에도 실립니다.


아빠가 길을 잃었어요

랑힐 닐스툰 글, 하타 고시로 그림, 김상호 옮김, 비룡소(1998)

이 책의 다른 기사

어디 가세요? 집으로!

모모네 자수 일기

몬덴 에미코 지음, 편설란 옮김, 단추(2018)


조지, 마법의 약을 만들다

로알드 달 지음, 김연수 옮김, 퀸틴 블레이크 그림, 시공주니어(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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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말사전 편집자로 일하면서, 전남 고흥에서 <사전 짓는 책숲집 '숲노래'>를 꾸립니다.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읽는 우리말 사전》《골목빛》을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