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빈 가넷과 레이 알렌, 폴 피어스로 이어지는 소위 '빅3'가 해체된 이후 보스턴 셀틱스는 팀 재건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미대학농구(NCAA) 무대에서 버틀러 대학의 돌풍을 이끈 후 2013년 보스턴 감독으로 부임한 브래드 스티븐스 감독 덕분이었다. 스티븐스 감독은 2년 만에 보스턴을 플레이오프로 복귀시켰고 2016-2017 시즌과 2017-2018 시즌에는 보스턴을 2년 연속 동부 컨퍼런스 파이널로 견인했다.

지난 시즌 55승27패로 동부 컨퍼런스 2번시드를 차지한 보스턴은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킹' 르브론 제임스(LA레이커스)가 이끄는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에게 3승4패로 패했다. 보스턴은 2년 차 제일런 브라운과 루키 제이슨 테이텀이 각각 19.7득점과 17.9득점을 기록하며 고군분투했다. 하지만 컨퍼런스 파이널 7경기에서 33.6득점9리바운드8.4어시스트를 기록한 르브론의 원맨쇼를 제어하긴 힘들었다.

보스턴이 탈락하자 많은 셀틱스 팬들은 승부처에서 '빅샷'을 터트려 줄 수 있는 에이스 카이리 어빙을 그리워했다. 어빙은 지난 시즌 정규시즌 60경기에서 24.4득점을 기록하며 보스턴의 공격을 이끌다가 무릎 수술로 정작 플레이오프에서는 한 경기도 뛰지 못했다. 이번 시즌 부상에서 돌아온 어빙은 17일(이하 한국시각) 토론토 랩터스와의 홈경기에서 43득점11어시스트로 원맨쇼를 펼치며 '에이스의 화려한 귀환'을 알렸다.

르브론 제임스의 그늘에서 행복하지 못했던 '만년 2인자' 어빙

2011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클리블랜드의 지명을 받은 어빙은 평균 18.5득점 3.7리바운드 5.4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신인왕에 올랐다. 평균득점을 22.5득점으로 끌어 올린 2년 차 때는 생애 첫 올스타에 선정됐고 2013-2014 시즌에는 올스타전 MVP를 차지했다. 시즌이 끝난 후 출전한 2014 농구 월드컵에서는 미국을 우승으로 이끌며 대회 MVP에 뽑히기도 했다. 유망주에서 슈퍼스타까지 전형적인 엘리트코스를 밟으며 성장한 것이다.

그러던 2014년 여름, 약체 클리블랜드의 외로운 에이스였던 어빙에게 커다란 변화가 생겼다. 마이애미 히트로 장기출장(?)을 떠났던 프랜차이즈 스타 르브론이 고향팀으로 컴백한 것이다. 약체였던 클리블랜드는 단숨에 우승후보로 격상됐지만 팀의 흥망성쇠를 책임지던 에이스 어빙은 졸지에 2인자로 내려가야 했다. 아무리 어빙이 뛰어난 선수라 해도 이미 전설들과 비교되는 르브론에 미칠 순 없었기 때문이다.

어빙은 2인자의 자리를 순순히 받아들여 잘 적응했다. 르브론과 어빙이 뭉치고 빅맨 케빈 러브까지 합류한 클리블랜드는 2014-2015 시즌부터 3년 연속 파이널 진출이라는 기염을 토했다. 특히 어빙은 클리블랜드가 창단 첫 우승을 차지했던 2016년 골든 스테이트 워리어스와의 파이널 7차전에서 스테픈 커리를 앞에 두고 결승 3점슛을 터트리기도 했다. 2016-2017 시즌에는 25.2득점을 기록하며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냈다.

하지만 어빙이 아무리 뛰어난 활약을 펼쳐도 클리블랜드는 어디까지나 '르브론의 팀'이었고 어빙은 '킹의 조력자' 신세를 면치 못했다. 그 어느 팀에 가도 에이스로 활약할 수 있는 뛰어난 실력을 갖춘 어빙은 결국 작년 7월 구단에 트레이드를 요청했다. 르브론과 함께 한다면 동부 컨퍼런스의 왕으로 군림할 확률이 매우 높았기에 어빙의 트레이드 요청은 의외라는 평가가 많았다. 하지만 새로운 곳에서 도전하겠다는 어빙의 의지는 매우 컸다.

클리블랜드는 담담하게 어빙과의 이별을 준비했다. 그리고 클리블랜드는 작년 8월 보스턴과 1:4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어빙이 보스턴으로 가고 아이재아 토마스(덴버 너기츠)와 제이 크라우더(유타 재즈), 안테 지지치, 그리고 한 장의 신인 지명권이 클리블랜드로 넘어가는 '빅딜'이었다. 그렇게 르브론의 품을 떠나 에이스가 되고 싶어했던 어빙은 7년 만에 클리블랜드를 떠나며 제2의 농구인생을 시작했다.

래리 버드 이후 26년 만에 홈경기 40득점10어시스트 달성

보스턴은 2016-2017 시즌 28.9득점을 기록한 단신가드 토마스의 폭발적인 득점력에 힘입어 동부 컨퍼런스 1번시드를 차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토마스는 엄청난 득점력과 별개로 신장의 한계(175cm) 때문에 수비에서는 '자동문'이나 다름 없었다. 어빙 역시 클리블랜드 시절 수비에서 썩 높은 평가를 받진 못했지만 상대와의 매치업 자체가 불가능했던 토마스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어빙은 보스턴 이적 첫 시즌 60경기에서 24.4득점3.8리바운드5.1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보스턴의 젊은 선수들 사이에서 새 에이스로 활약했다. 하지만 몸을 사리지 않는 역동적인 플레이 때문에 클리블랜드 시절부터 고질적으로 좋지 않았던 무릎이 다시 한 번 말썽을 일으켰다. 어빙은 지난 3월 무릎 통증 완화 수술을 받았지만 플레이오프 도중 돌아올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보스턴이 탈락할 때까지 코트로 복귀하지 못했다.

2018-2019 시즌 건강하게 돌아온 어빙은 시즌 개막 후 첫 6경기에서 평균14득점에 그치며 보스턴 팬들을 걱정시켰다. 하지만 10월31일 디트로이트 피스톤스전 31득점을 시작으로 최근 8경기에서 28.5득점을 폭발시키며 농구팬들이 알던 어빙으로 돌아왔다. 이 기간 동안 30득점을 넘은 경기만 4번에 달한다. 초반 부진으로 시즌 평균득점은 22.3점에 불과(?)하지만 리바운드(4.6개)와 3점슛성공률(41.8%)은 모두 데뷔 후 최고기록이다.

특히 17일 동부컨퍼런스 1위 토론토와의 경기에서 어빙이 보여준 퍼포먼스는 놀랍다 못해 경이로운 수준이었다. 어빙은 올스타 4회 출전에 빛나는 특급 가드 카일 라우리와 매치업을 하면서도 43득점11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토론토 수비를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보스턴 선수가 홈경기에서 40득점10어시스트 이상을 기록한 것은 1992년 보스턴의 농구영웅 래리 버드 이후 26년 만에 나온 대기록이다.

지난 시즌 평균 출전시간이 32.2분이었던 어빙은 올해도 출전시간 32.7분을 기록하고 있다. 전체 경기 시간 48분 중 한 쿼터 이상을 쉬는 셈이다(어빙은 클리블랜드 시절에는 세 시즌 동안 35분 이상의 출전시간을 기록한 바 있다). 그만큼 스티븐스 감독이 어빙의 체력과 건강을 관리해 주고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스티븐스 감독의 배려 속에 어빙이 시즌 끝까지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면 보스턴은 9년 만의 파이널 진출에 더욱 가까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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