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즌 메이저리그 FA 시장에는 한파가 극심했다. 이유는 분명했다. LA 다저스와 뉴욕 양키스 같은 부자 구단들이 사치세를 피하기 위해 지출을 꺼렸다. 팀의 전력을 확실하게 올려줄 대어급 선수가 아닌 이상, 많은 돈을 투자하지 않았다.
 
또 다른 이유가 있다면 바로 다음 시즌 FA 시장에서 큰 돈을 쓰기 위해서였다. 하퍼, 마차도, 도날드슨 등 당시에는 총액 2억 달러(한화 약 2200억 원) 이상의 계약을 체결할 것이라고 예상되는 선수가 2018 FA 시장에 다수 등장하기에 많은 구단들은 지갑을 꽁꽁 싸맸다.
 
그리고 드디어 고대했던 2018 FA 시장이 열렸다. 예상대로 최대어로 꼽히는 선수는 워싱턴 내셔널스의 브라이스 하퍼와 LA 다저스의 매니 마차도이다. 특히 하퍼는 워싱턴에서 제안한 10년 3억 달러 제안을 단번에 거절하며 최소 3억 달러 이상의 계약을 요구하고 있다.
 
2010년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1순위에 워싱턴 내셔널스에 지명된 하퍼는 데뷔 시즌부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19살의 나이에 메이저리그 무대에 데뷔해서 0.270의 타율에 22홈런 59타점 18도루를 기록하며 무서운 10대의 위력을 뽐냈다. 신인왕 역시 당연히 그의 몫이었다. 그렇게 한 시즌 만에 하퍼는 워싱턴의 아이콘이 되었다.
 
이후 2시즌 간 잠재력 가득한 선수로 불렸던 하퍼는 2015 시즌 기량을 만개했다. 0.330의 타율에 42홈런 99타점 OPS 1.109를 기록한 하퍼는 22살의 나이에 내셔널리그 MVP에 올랐다. 아메리칸리그에 마이크 트라웃이 있다면, 내셔널리그에는 하퍼가 있다는 것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하퍼의 시대가 꾸준히 이어질 것처럼 보였지만, 그의 시대는 오래가지 않았다. 다음 시즌 하퍼는 시즌 초반 반짝했지만, 이후 타율이 오르지 않으면서 최악의 시즌을 보냈다. 타율과 출루율 모두 거의 1할 가까이 떨어지면서 그의 가치가 조금 떨어졌다. 2016년 당시 시카고 컵스의 3루수 크리스 브라이언트가 새로운 스타로 떠오르면서 내셔널리그를 대표하는 스타는 하퍼에서 브라이언트 쪽으로 넘어가는 듯 했다.
 
무너졌던 하퍼는 다음 시즌 오뚝이처럼 일어났다. 부상으로 전체 시즌의 3분의 1 가까이를 결장하며 많은 경기를 소하지는 못했지만, 0.319의 타율에 29홈런 87타점을 기록했다. 건강한 하퍼는 이정도의 성적을 꾸준히 기록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지난 시즌 이러한 가능성을 보여줬기에 1년 후 FA를 앞둔 이번 시즌은 하퍼에게 굉장히 중요한 시즌이었다. 스탠튼의 13년 3억 2500만 달러 계약을 뛰어넘기 위해서는 2015 시즌, 그리고 2017 시즌의 스탯을 다시 기록해줘야 했다.
 
하지만, 하퍼는 그러지 못했다. 4월 초까지 3경기 연속 홈런을 기록하고, 3할대 타율을 유지하며 반짝했지만, 이후 무너졌다. 5월, 6월까지 슬럼프는 지속되었다. 타율은 2할대 초반의 타율까지 떨여졌다. 6월 한 달 동안 기록한 하퍼의 타율은 0.188에 불과했다.
 
다행히 하퍼는 올스타전을 기점으로 살아났다. 올스타전 홈런더비에서 홈런왕 타이틀을 가져가며 자존심을 지켰던 하퍼는 후반기 맹타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8월 한 달 동안 기록한 그의 타율은 0.324였다. 이러한 부활에 힘입어 많은 컨텐더 팀들이 워싱턴에 하퍼의 트레이드를 문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트레이드는 없었다. 결국 하퍼가 기록한 2018 시즌 최종 성적은 타율 0.249에 34홈런 100타점. 장타력은 높았지만, 타율이 너무 낮았던 시즌이었다. 메이저리그 최초로 4억 달러 시대를 개척하려 했던 그의 꿈은 현실적으로 어려워졌다.
 
하퍼가 큰 계약을 맺기 어려운 이유는 현실적으로 하퍼의 몸값을 감당할 수 있는 팀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큰돈을 쓰기를 꺼려하는 현재 메이저리그 시장 추세를 봤을 때 하퍼의 몸값을 감당할 수 있는 팀은 필라델피아 필리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뉴욕 양키스 정도이다.
 
그런데, 필라델피아와 양키스 모두 외야수보다는 내야수 보강을 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이 두 팀은 하퍼보다는 마차도 영입을 우선순위에 두고 있다. 샌프란시스코는 리빌딩과 '윈나우'의 기로에 서 있다. 성적만으로 보면 리빌딩을 하는 시점이지만, 샌프란시스코 팀의 특성상 더 큰 투자를 하여 달릴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하퍼를 영입할 수 있는 구단은 1, 2개의 구단뿐이다. 이러한 상황은 하퍼에게는 상당히 불리한 상황이다. 여기서 생각나는 선수가 있으니, 바로 1년 전 똑같은 상황을 겪었던 JD 마르티네즈다.
 
JD 마르티네즈는 지난 시즌이 끝난 후 보스턴에게 처음에는 7년 2억 1000만 달러를 요구했다. 하지만, 보스턴은 이러한 큰 계약을 감당할 이유가 없었다. 마르티네즈를 살 수 있는 구단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았던 보스턴은 끝까지 기다렸고, 결국 5년 1억 1000만 달러에 잡을 수 있었다.
 
이러한 불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하퍼의 에이전트 스캇 보라스는 "하퍼가 1루수 수비도 가능하다"고 언급했다. 이는 현재 1루수 거포가 부족한 메이저리그 전체 상황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아메리칸리그의 경우 타율 0.265에 22홈런 78타점을 기록했던 시카고 화이트 삭스의 호세 아브레유가 실버슬러거를 탈 정도로 1루수 기근은 심각하다. 하퍼 정도의 강타자가 1루를 채우게 된다면 충분히 전력 상승을 노릴 수 있는 것은 틀림없다.
 
결론적으로 하퍼 영입은 도박에 가깝다. 하퍼의 스타성, 인지도 등으로 많은 부가가치를 얻을 수 있고, 하퍼가 2015 시즌만큼의 활약을 펼친다면 하퍼에게 4억 달러 이상의 계약을 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하퍼가 이번 시즌과 같은 활약을 펼친다면 3억 달러의 계약도 사실 아쉬움이 남는 계약이 될 수 있다.
 
과연 하퍼의 최종 행선지는 어디가 될지 많은 팬들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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