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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복지를 생각해 온 네 명의 활동가 - 긴수염, 손서영, 양효진, 최태규 - 가 모여 사육곰을 구조, 보호하기 위해 만든 프로젝트. 국내 모처에 3만평의 규모로 100마리의 곰을 보호할 계획을 갖고 있다. 활동 진행 상황은 페이스북 페이지 '곰 보금자리 : Project Moon Bear'에서 확인할 수 있다. - [기자 말]

가축은 오랫동안 사람 손에 길러졌다. 그래서 인위적인 관리가 없으면 생존이 어렵다. 오랜 유전자 변이를 통해 태어날 때부터 정도의 차이는 있더라도 사람의 손길과 시선에 익숙하고 의존한다. 그러나 야생에서 포획되거나 포획된 어미에게서 난 야생동물은 태생적으로 사람의 관리를 필요로 하지도 않고 익숙해지기도 어렵다. 종에 따라 다르지만, 야생동물을 사람의 관리 하에 사육하는 것은 동물에게 큰 스트레스를 주기 때문에 해당 종에 대한 높은 이해와 고도화된 시설, 인력이 필요하다.

반달가슴곰도 야생동물이다. 천연기념물 329호이자 멸종위기 야생생물의 국제거래를 규제하는 CITES 협약 부속서 국제거래금지종인 반달가슴곰은 몇 세대 안에 가축화될 수 없는 야생동물이다. 그래서 집약적 사육 환경에서는 물론이거니와 전시를 위한 동물원의 환경에서도 신체와 정신의 건강을 유지하기 어렵다. 그래서 대부분의 동물복지 선진국에서는 이 고등포유류를 반입하거나 기르는 데에 엄격한 기준을 두고 사실상 개인에게 사육을 허락하지 않는다.

한국의 산림청은 1980년대 초, 반달가슴곰을 식용으로 기르라고 홍보했다. 뒤늦게 잘못을 깨닫고 수입은 금지했지만, 한국은 중국과 함께 2018년에도 여전히 반달가슴곰의 쓸개를 팔 수 있도록 허용하는 단 두 개의 나라이다. 웅담의 약효는 이미 언급이 무의미할 정도로 더 좋은 대체 약물이 많이 나와있지만, 중국과 한국의 보신 문화는 아직 미신을 믿는 수준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국가가 과학적 근거로 그 믿음을 반박할 수준에 이르지도 못했다.

당연하게도 곰의 사육과 도축은 어떠한 규제도 없이 이루어진다. 2005년 환경부에서 정한 '사육곰 관리 지침'에는 "쾌적하고 깨끗한 환경에서 최소한의 생존권을 유지 할 수 있는 적정한 사육시설"이라는 앞뒤가 맞지 않는 수사를 쓰고 있지만, 권고사항일 뿐 어느 농장에서 살아있는 곰의 쓸개즙을 채취하는지, 불법으로 번식을 시키고 있는지 관리감독하지 않는다. 그럴 능력도 인력도 의지도 없다. 도축은 권고기준조차 없다. 마취약 주사 후 방혈하는 방법부터 목을 매다는 교수형까지 다양하다. 이 과정에서 동물복지를 적용할 주체는 아무도 없다. 소관 부처인 환경부는 곰이 열 살 이상이 되면 죽여서 웅담을 쓸 수 있도록 하는 시행규칙만 만들어 놓았을 뿐이다.

2017년에 완료한 반달가슴곰의 중성화는 더 이상의 증식을 막기 위한 임시방편이었다. 중성화 이후 곰들은 여전히 열악한 환경에서 지내야 했으므로 동물복지를 고려한 당국의 후속 조치가 필요했다. 그러나 2012년 충남대 산학 협력단의 용역연구에서 곰을 매입하는 방안을 제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환경부는 중성화 이후 곰들이 좁은 시멘트 바닥에서 도축연한을 기다리며 살도록 방치하는 방안을 선택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고통을 매일 매시간 느끼는 곰들의 일상은 변하지 않았다. 정책은 천박하고 조처는 무식했다.

농가는 도축 연한인 10년을 넘긴 개체들도 판매하지 못하거나 판매하지 않고 있다. 판로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며 추가 보상금에 대한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34개 농가 대부분은 정부의 전수 매입을 원한다. 전수 매입 시 예상 매입 비용은 3년 간의 중성화 사업비를 넘지 않을 것으로 본다. 환경부의 의지만 있으면 가능하다는 뜻이다. 일부 농가에서는 보상금도 받고 곰도 도축해서 한몫을 챙기고 싶어하고, 일부는 보신용 식품으로 곰 사육을 지속하고 싶어하기도 한다. 명백하게 동물학대임에도 동물보호법이 미비하고 행정이 무능하기 때문에 공공연히 할 수 있는 주장이다.

사육곰의 복지를 위해 해야 할 일은 다양하다.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야생생물법), 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 (동물원법) 등 멸종위기 야생동물 사육이나 거래에 관한 법률을 지금보다 구체적이고 촘촘하게 만들어야 한다. 동물복지를 관할하는 정부부처와 지자체의 공무원들은 동물복지에 대해 공부를 해서 정상적인 행정이 가능해야 한다. 모든 동물의 복지에 대해 일상적인 관리와 감독이 필요하다. 지금은 사람과 가장 가까이 지내는 애완동물을 잔인하게 죽여도 동물단체의 노력이 없으면 기소조차 되지 않는다. 매우 느리게 나아지고 있는 재판정에서의 사고도 조금 더 빨라질 필요가 있다.

우리가 하려는 활동은 당장 좁은 우리에서 먹이와 물도 제대로 얻어먹지 못하고 목숨만 붙어있는 540여마리 반달가슴곰을 구조해 이들의 자연수명이 다 할 때까지 보호하는 것이다. 자연으로 돌아가 살아낼 능력이 없는 곰들에게 자연과 같은 환경을 제공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의 동물복지를 보장해주고자 한다. 건강에 위해가 없도록 양질의 먹이와 물을 충분히 공급 받을 것이다. 곰들이 볕과 바람을 쬐고 싶을 때는 나갈 수 있고 눈과 비를 피하고 싶을 때에는 들어가 웅크리고 있을 것이다. 수의사가 상주하며 곰들의 질병을 예방하고 사고에 대처할 것이다. 곰들끼리 싸우지 않는 방법을 배우고 서로에게 또 사람에게 감정을 드러내어 소통하게 될 것이다.

한국 정도의 경제력을 가진 나라에 국가도 기업도 어느 개인도 야생동물을 위한 생추어리를 만들지 않았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밀렵되거나 밀수된 야생동물을 압수해야 하지만, 동물을 보호할 곳이 없어서 학대의 현장에 그대로 두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는 녹슨 철창을 열고 곰들에게 흙 바닥과 하루 종일 할 일이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한다. 야생동물을 가두려면 이렇게 가둬야 한다는 본을 짓고자 한다. 그렇게 한국의 동물복지에 작은 숨구멍을 하나 더 뚫겠다.

덧붙이는 글 | 한겨레 '애니멀피플'과 저희 페이스북 페이지에도 실립니다.


태그:#사육곰, #반달가슴곰, #생추어리, #동물복지, #아시아흑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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