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사는이야기

포토뉴스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네팔 포카라의 페와 호수에서 어느날 오후를 하염없이 보내다 ⓒ lys
 
2018년 10월 12일, 안나푸르나 라운딩을 마치고 네팔 제2의 도시인 포카라에 왔다. 며칠 푹 쉬고 나서 몸과 마음이 회복되면 이번에는 푼힐 전망대와 ABC(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래킹을 할 생각이었다. 포카라는 히말라야 설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고여 만들어진 아름다운 페와 호수가 있는 도시다.

50여 개의 히말라야 트래킹을 시작하는 도시여서 페와 호수와 접한 레이크사이드는 세계 각지에서 온 각양각색의 트래커들로 붐볐다. 카트만두의 타멜거리와는 달리 조용하고 평화로우며, 맑은 공기와 바라보기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호수가 있는 곳이다. 또한 서너 군데의 한국 음식 전문 식당이 있어 지친 몸을 쉬기에는 최적의 장소였다.

나는 여기서 호수 가운데에 있는 바라히 힌두 사원에 간 것 말고는 4일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푹 쉬었다. 아침에 일어나 호수를 따라 산책하고, 아침밥은 한인 게스트하우스에 가서 집밥을 먹었다. 오전에는 호수가 보이는 창가에 앉아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었다. 11시쯤 나가 산책하고 한인 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오후에는 레이크사이드를 둘러보거나 호수에 가서 책을 읽기도 하고 사진도 찍고,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구경을 했다. 사람들과 어울리려 애쓰지 않고 혼자 아무런 근심도 스트레스도 없이 평화로운 시간을 보냈다.

10월 16일, 첫째날  포카라(해발 800미터)-울레리-고레파니(해발 2905미터)

ABC(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를 향해 다시 등산화를 신고 배낭을 짊어지고 길을 나섰다. 무턱대고 감행한 안나푸르나 라운딩을 거울삼아 이번에는 나름대로 준비를 하였다. 무엇보다도 포터를 고용하였다. 트래킹 성수기에 처음 가는 낯선 곳에 포터없이 무거운 배낭을 매고 혼자 가는 것은 여러모로 너무 힘들다는 것을 절감하였기 때문이다. 

네팔 현지인 포터는 등산 짐을 운반해줄 뿐아니라 걷는 거리, 자는 곳, 음식 주문 등 어느 정도의 가이드 역할도 해주었다. 포터 외에도 한인 식당 사장님에게 부탁하여 고추장, 미역국 등 약간의 밑반찬도 준비했다. 그래서 지난번보다는 훨씬 가벼운 마음으로 트래킹을 시작했다. 포카라에서 택시와 지프차를 번갈아 타고 울레리까지 갔다. 그 후 두 시간을 걸어 고레파니에 도착했다. 울창한 밀림 같은 숲속에 난 길을 따라 걷는 기분은 무어라 말할 수 없이 상쾌하기만 했다. 
 
고레파니 가는 길, 고요하고 평화롭다 ⓒ LYS
 
10월 17일, 둘째날 고레파니(해발 2905미터)-푼힐전망대(해발 3200미터)-추울레(해발 2271미터)

푼힐 전망대에 가려고 새벽 4시 반에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밤새 잠을 거의 자지 못하고 뒤척거렸다. 나는 불면증이 있는데, 특히 커피에 민감하여 커피 마신 날은 잠을 잘 자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저녁에 롯지 식당에서 외국인들과 얘기하며 무심코 마신 커피가 문제였다.

"왜 나는 이렇게 멍청할까?" 하고 푼힐 전망대 계단을 오르며 수없이 자책하였다. 어리석은 실수를 수없이 반복하며 사는 나는 정녕 부족한 게 많은 인간인가 보다. 그러나 몸은 힘들었어도 푼힐에서 붉은 태양이 안나푸르나, 마차푸차레 설산 위로 떠오르는 모습은 정말 장관이었다. 병풍처럼 둘러쳐진 히말라야 설산들을 차츰 붉게 물들이며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는 아침은 그저 황홀하고 행복했다. 
   
푼힐 전망대에서 보는 히말라야 일출 ⓒ lys

10월 18일, 셋째날 추울레(해발 2905미터)-촘롱-어퍼시누아(해발 2365미터)

추울레부터는 트래커들에 비해 롯지의 방이 부족하여 나처럼 혼자 온 사람은 침대가 여러 개 놓인 쉐어룸을 이용해야 했다. 그래서 로마에서 온 파프리치오라는 남자를 만나게 되어 3일 밤을 같은 쉐어룸을 이용하였고, 트래킹 내내 같이 걷고 포카라에서 헤어졌다. 그는 은행가였고, 내 또래였고, 유쾌한 남자여서 서투른 영어로 대화를 나누어도 즐거웠다. 아마도 외국인을 만나 대화하는 것도 여행이 주는 커다란 즐거움 중 하나일 것이다.

촘롱에서 어퍼시누아 가는 길은 정말 엄청나게 많은 가파른 돌계단을 걸어야 했다. 까마득한 돌계단을 한없이 내려가서 또 끝도 보이지 않는 돌계단을 올라가야 했다. 올라가는 길은 한 걸음 옮기는 것이 천근만근처럼 무거워 숨이 헉헉거리고 내려가는 길은 무릎이 욱신거리고 아파 욕이 절로 나왔다.

맨몸으로 걷기에도 힘든 길인데도 롯지에 사용되는 모든 물품들은 네팔 사람들이 직접 등에 지고 운반했다. 먹고 살기 위해 돈을 버는 것은 어느 나라 사람이든지 눈물겨운 고통이 따르는 모양이다. 
 
이태리 로마인 친구와 포터들 ⓒ lys
     
3천 미터가 넘는 고산에서 놀이기구를 타면서 즐거워하는 사람들 ⓒ lys

10월 19일, 넷째날 어퍼시누와(해발 2365미터)-밤부-도반-데우랄리(해발 3200미터)

어퍼시누와 롯지에서 머문 쉐어룸은 견디기 힘들 만큼 최악이었다. 지하에 가건물 형태로 급조한 방의 시트는 축축하였고 정체 모를 화학 약품 냄새가 밤새 가시지 않았다. 나는 바로 옆 침대 로마 친구와 이 고약한 "smell"에 관한 얘기하며 기나긴 밤을 보냈다.

어퍼시누와부터는 협곡 위로 마차푸차레와 안나푸르나가 보이기 시작했다. 밤부까지는 또 계단이 많은 오르막길이 이어지고 이후 도반에서 데우랄리는 상대적으로 편한(?) 길이었다. 데우랄리에서도 쉐어룸에서 머물렀다. 나와 로마인, 중국인 두 명, 국적 불명의 백인까지 다섯 명이 한방에서 잤다. 그런데 모두가 곤히 자는 한밤중에 누군가가 말없이 계속 문을 두드렸다. 다들 잠이 깬 모양인데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내가 투덜거리며 일어나 문을 열었는데 정말 깜짝 놀랐다. 사람은 보이지 않고 개 한 마리가 쏜살같이 방에 들어와 내 침대 밑으로 기어들어 갔다. 추운 밤이라 개가 사람처럼 계속 문을 노크한 모양이었다. 나는 옆에 로마인과 정말 "smart dog"라고 키득거리며 농담을 하였다. 시계를 보니 새벽 1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눈 내린 길에서 따뜻한 햇볕을 쬐며 잠든 개. 평화롭다 ⓒ lys
   
마차푸차레 가는 길에서 먹은 6천원 짜리 라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라면이다 ⓒ lys

10월 20일, 다섯째날 데우랄리(해발 3200미터)-MBC(해발 3700미터)

데우랄리에서 MBC(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 가는 길은 경사가 그리 급하지 않으나 고도가 높아 조금 힘들었다. 두 시간 남짓 걸려 오전 10쯤에 MBC에 도착하였다. 많은 트래커들이 최종 목적지인 ABC(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까지 올라가서 롯지는 한산하였다.

나는 허접하지만 쉐어룸이 아닌 개인 방을 구해 짐을 풀었다. MBC는 네팔인들이 신성시하는 마차푸차레 바로 아래 자리 잡고 있다. 서쪽으로 안나푸르나, 동쪽에 고개만 들면 보이는 마차푸차레를 보며 하루를 보냈다. 구름 한 점 없는 새파란 하늘 아래 하얀 눈을 이고 있는 웅장하고 아름다운 설산을 보는 것은 더할 나위 없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 가는 길 ⓒ LYS
       
설산을 보며 맥주를 마시는 시간은 행복하였다 ⓒ lys

10월 21일, 여섯째날 MBC(해발 3700 미터)-ABC(해발 4100미터)
 
아침에 일어나니 온 세상이 하얀 눈으로 덮여 있었다. 거의 7~8cm는 되는 듯싶었다. ABC(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까지는 해발 400미터를 두 시간 가량 올라가야 했다. 길이 미끄럽고 숨이 차서 아주 천천히 올라갔다. 드디어 이번 트래킹의 종착지인 ABC에 도착하여 안나푸르나를 바라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찔끔 나왔다.

포터와 수고했다는 악수를 하고 안나푸르나 영봉들의 모습을 가슴 가득히 담았다. 해냈다는 뿌듯한 성취감으로 가득한 정말 감격스러운 시간이었다. 퇴직하고 그토록 하고 싶었던 히말라야  트래킹을 무사히 마치고 나니 인생의 큰 매듭을 짓는 기분이었다.
 
ABC를 내려오다가 혼자 오고 있는 로마인 친구를 만났다. 포터는 어디 두고 혼자 오느냐고 물어보자 빙그레 웃으며 하는 말이 재미있었다. 네팔인 포터가 어제 저녁에 고산병이 와서 숙소에 꼼짝 못하고 누워있단다. 세상은 이래서 재미있다. 일어날 만한 일만 생기면 세상은 얼마나 재미없을 것인가!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가는 길 ⓒ lys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 lys
   
안나푸르나 ⓒ lys

올라가는 길은 6일이 걸렸지만 내려오는 길은 3일이면 충분했다. 밤부에서 하룻밤, 지누단디에서 하룻밤을 자고 지프차를 타고 다시 포카라로 돌아왔다. 이후 포카라에서 3일을 쉰 다음 부처님 탄생지인 룸비니로 가서 2일을 보냈다. 그리고 카트만투 타멜, 박타푸르, 나갈코트등을 여행하고 11월 3일 귀국하였다.

퇴직하고서 33일간의 나홀로 네팔 여행 후 바뀐 것은 무엇일까? 우선 몸무게가 4킬로그램이 줄었다. 그리고 이제 정말 퇴직을 한 기분이다. 학창 시절, 직장 생활을 돌이켜 보고 가치를 부여하고 마무리를 지었다. 32년간 조직의 일원으로 살아온 날들이 이제 완전히 막을 내렸다. 

앞으로는 어떠한 조직에도 들어가지 않고 프리랜서로서 살아가고 싶다. 누구의 지시나 시선에 구애받지 않고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자유인으로 살아갈 것이다.
태그:#네팔, #포카라, #ABC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독자의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