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향기

<신과 함께>로 이천만 관객을 열광하게 한 김향기가 <영주>라는 작품으로 대중과 만난다. 영화는 오는 22일 개봉. ⓒ CGV아트하우스

  
사고로 부모를 잃은 뒤 모든 게 뒤틀려 버린 고교생 영주(김향기)는 가해자를 찾아가 복수할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이내 따뜻하게 그리고 진심으로 영주를 대하는 그들 모습에 복잡한 마음을 숨기지 못한다. 지난 23회 부산국제영화제의 초청을 받은 <영주>는 위로, 용서에 대한 화두를 설득력 있게 그린 작품으로 찬사받았다.

김향기는 이 작품이 욕심났다고 말했다. 영화 속 영주와 동갑인 김향기는 그 나이에서 겪기 힘든 사건을 오롯이 이해했고, 연기로 표현해냈다. 애초 성인 연기자를 알아보았던 차성덕 감독은 김향기의 이해력과 표현력을 믿고 맡겼다. 결과는 성공적. 누구보다 김향기는 영주라는 인물을 마음으로 품고 있었다. 참고로 <영주>는 감독이 겪은 실제 경험을 극화한 작품이기도 하다.

잔상의 힘 

"영화에서 영주에게 많은 선택의 순간이 있다. 가해자를 찾아가기로 한 것부터 마지막 장면에서 다리 위에 서는 순간까지. 가해자인 상문(유재명)을 찾아간다는 건 그만큼 삶의 한계에 왔다는 뜻이다. 촬영 전에는 영주의 감정이 동요하는 게 가능한 일일까 의심했다. 그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도 고민했다. 근데 촬영하면서 영주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걸 느끼게 됐다. 상문의 아내 향숙(김호정) 아줌마가 '넌 좋은 아이야 난 알 수 있어'라는 말을 하는데 그게 그렇게 마음에 박히더라. 지금까지도 그때 기억이 남아있다.

이 작품이 욕심났던 건 여운 때문이다. 한창 <신과 함께> 촬영할 때였는데 글만 읽었는데도 잔상이 남았다. 담담하게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이 저에게도 성장의 기회가 될 것 같았다. 첫 만남 때 감독님께서 이 대본을 쓰게 된 계기를 말씀해주셨다. 정말 많이 고민하신 게 느껴졌다. 가해자의 삶까지 생각하셨고, 왜 그랬는지 설명하시는데 멋있어 보였다(웃음). <영주>를 보시면 느끼실 것 같지만 정말 미워해야 할 사람이고 미워하고 싶지만 아무도 미워할 수 없다. 그 상황을 겪어보지 않으면 이해하지 못할 일이 세상에 너무 많잖나. 우리 영화를 통해 타인을 이해하기 전 자신부터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되면 좋겠다."

 
 영화 <영주>의 한 장면.

영화 <영주>의 한 장면. ⓒ CGV아트하우스

 
등장인물 대부분이 선한 마음을 품고 있다. 자칫 영화가 너무 현실과 떨어져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 수 있지만 김향기의 말처럼 삶을 이해하는 감독의 방식이 그렇다. 겪어보지 않고는 차마 알 수 없는 순간들, 영화는 '가해자는 나쁜 사람'이라는 정형화를 경계하며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끌어나간다. 영주 역시 부모를 여읜 후 삐뚤어질 수 있었지만 동생 영인(탕준상)을 보살피며 마지막 희망을 향해 나아간다.

"영주가 열심히 살고 동생에게 헌신하는 건 그가 착해서, 좋은 누나여서가 아니었다. 아무도 영주에게 열심히 잘 살라고 하지 않았는데 스스로 그렇게 행동하는 거 아닌가. 자신이 사랑받고자하는 만큼 동생에게 표현하고 있다. 그게 영인에게는 부담일 수 있는데 착함과는 별개로 영주는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다. 또 부모님 없이도 난 잘산다. 잘할 수 있는 아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인물이라고 이해했다."

고민의 순간들

"사람이 진짜 무서워지는 순간은 충동적으로 행동할 때"라며 김향기는 속마음을 전했다. 미워하고 증오하며 어떤 계획을 세울 수 있지만 정작 자신도 모르게 하는 행동이 더 무서울 수 있다는 의미였다. "충동과 고민 사이에서 방황하는 영주의 모습이 그래서 관객분들에게 이해받았으면 좋겠다"며 김향기는 "특히 요즘 또래들이 꿈과 미래에 대해 걱정하는 게 많다. 영화 속 영주가 상문과 향숙 아줌마를 의지하듯 전 엄마를 많이 의지한다"라고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갔다.

"지금까지도 엄마와 대화를 많이 하며 의지한다. 지금까지 가장 마음이 힘들었을 땐 고교 입학 때였다. <신과 함께> 제안이 들어와서 덕춘을 연기한다는 소식에 부담이 컸던 것 같다. 중학교 때 친했던 친구들과도 떨어지고, 새로운 친구와 선생님을 만나는 게 그렇게 힘들게 다가왔다. 사실 지나고 나면 별것 아닌데 미리 속상해하면서 엄마 앞에서 울면서 감정을 토로했었다. 새로운 친구들에 절 궁금해하고 관심 갖는 건 당연한 건데 그게 부담스럽게 다가왔었다. 근데 지나고 나니 정말 별게 아니더라. 고등학교 생활을 끝까지 마친 게 다행이다. 좋은 친구들도 만났고." 

사춘기 아닌 사춘기였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김향기는 2003년 매우 어린 나이에 잡지모델로 데뷔한 이후 연기자 일을 쭉 해왔다. 충분히 자신의 꿈, 진로에 대해 의심하고 고민했을 때가 있었을 것이다. 김향기는 "이제 연기는 너무 소중한 부분이 돼 버렸다"고 답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 행복해지는 일을 하는 건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도와주신 분들, 가족들도 절 믿어주고 이끌어주셨다. 감사한 마음이 크다. 앞으로도 정말 많은 시간이 남아 있잖나. 어떤 어려움이 닥칠지 예상할 순 없지만 그런 어려움을 잘 이겨내고 싶을 만큼의 마음이 있다는 걸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다. 스스로 지치지 않게 이 좋은 마음을 이어나가고 싶다. 좋아한다고 해서 무언가를 계속 할 수 있는 현실은 아니니까 할 수 있을 때까지 연기를 오래 하는 게 꿈이다. 어려운 상황이 닥치면 분명 방법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배우 김향기

"<신과 함께> 제안이 들어와서 덕춘을 연기한다는 소식에 부담이 컸던 것 같다. 중학교 때 친했던 친구들과도 떨어지고, 새로운 친구와 선생님을 만나는 게 그렇게 힘들게 다가왔다. 사실 지나고 나면 별 것 아닌데.." ⓒ CGV아트하우스

 
김향기의 행보 얘기에 <신과 함께> 이야기를 뺄 수 없다. 1, 2편 합쳐 2000만 관객 돌파. 김향기에게도 '천만 배우' 타이틀이 충분히 붙을 수 있고, 그럴 자격 또한 있다. 이 작품의 상업적 성공은 더불어 김향기라는 이름의 인지도를 높이는 결과로 작용했다. "인스타그램 팔로어 수가 확 늘었다"며 본인 역시 실감하고 있었다.

"정말 큰 사랑을 받았다. <신과 함께> 덕에 제 전작을 찾아봐주시는 분도 계셨다. 중요한 시기에 큰 관심을 받아 저 스스로에게 자극이 된 것 같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웃음). 좋은 경험을 많이 했다. (특수 효과를 입히기 위한) 그린 매트 촬영도 했고, 좋은 삼촌들도 만났다. 성인으로 넘어가는 시점에 중심을 잡아준 작품 같다.

그런데 천만이라는 타이틀은 영광스럽지만, 제겐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다. 전 더 경험할 게 많으니까. 뭔가 더 다짐하게 된다. 엄마도 같은 말씀을 하셨다. 앞으로 잘하는 게 중요하다고. 제가 <마음이>로 데뷔한 이후 운 좋게 지금까지 연기하고 있는데 만약 제가 힘들어했다면 엄마도 굳이 연기를 계속 시키진 않았을 것이다. 전 잘 기억이 안 나는데 <마음이> 때 제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연기 안 하겠다고 했다더라(웃음). 그때 기억이 큰지 엄마는 그 얘길 제게 종종 하신다. 근데 제가 하고 싶었기에 지금까지 버텼지, 싫었으면 성격상 그 이후에라도 안 하겠다고 말했을 것이다."


준비된 성인
 
 배우 김향기

"그런데 천만이라는 타이틀은 영광스럽지만, 제겐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다. 전 더 경험할 게 많으니까. 뭔가 더 다짐하게 된다." ⓒ CGV아트하우스

 
깊이 고민한 것을 또박또박 말하는 의젓한 모습이었지만 제임스 맥어보이 등 좋아하는 배우를 말할 땐 영락 없는 10대 소녀로 보였다. 집에서 혼자 노는 걸 좋아하며 유튜브 방송도 즐겨본단다. 곧 진학할 대학 생활에 대한 기대도 커 보였다. "대학을 가야 할지, 간다면 어떤 전공을 택해야 할지 엄청 고민했다"던 김향기의 선택은 연극영화과였다. 그에게 성인이 돼서 하고 싶은 것들을 물었다.

"현장에서 다 배운 거 아니냐 말씀하시기도 하는데 현장에서 배운 것과 다르게 저와 같은 꿈을 가진 친구들과 얘기하고, 공부하고 싶다. 그 과정이 제겐 색다른 자극이 될 것 같다. 제가 도움을 줄 수도 있고. 초중고와는 다른 느낌이다. 공부 말고? 음... 아르바이트를 해보고 싶다는 친구들도 있는데 전 빨리 운전면허증을 따서 겨울 바다를 운전해보고 싶다." 

<신과 함께>의 핵심 중 하나는 회자정리 거자필반. 이를 빗대 김향기의 좌우명을 물었다. 김향기는 "좌우명까진 아니지만 한결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며 '인향만리'라는 사자성어를 언급했다.

"좋아하는 말이다. 사람의 향기는 만리를 간다. 배우로서도 그렇고 사람으로서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은은하게 향기를 남기면 좋겠다."
김향기 영주 유재명 김호정 신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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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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