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좌> 수묵화가 허달용 개인전 「새」가 광주광역시 양림미술관에서 오는 19일까지 개최된다.  <우> 하얀 밤. 60x185cm.  한지에 수묵.  2018
 <좌> 수묵화가 허달용 개인전 「새」가 광주광역시 양림미술관에서 오는 19일까지 개최된다. <우> 하얀 밤. 60x185cm. 한지에 수묵. 2018
ⓒ 김미진

관련사진보기

 
우리는 언제쯤이면 끝없는 하늘을 '내 것이다'고 외치며 큰 울음 한 번 울어볼 수 있을까? 자유롭게 날개를 퍼득이면서 말이다.
  
수묵화 "산이 된 바보"를 통해 고 노무현 대통령의 잃은 슬픔을 달래주었던 허달용 작가가 오는 19일까지 광주광역시 양림미술관(남구 양림동 108-1)에서 개인전 '새'를 개최한다. 지난 봄 '4人4色'전과 개인전을 끝내고, 새로운 작품들로 가을에 또 개인전을 여는 허작가의 열정이 놀랍기만하다.

"오랜만이에요, 김 기자님. 잘 지내셨어요?"

까만 모자에 까만 코트를 입고 악수를 청하는 허달용 작가는 방금 그림 속에서 날개를 접고 나온 한 마리의 까만 새처럼 보인다. 까만 색을 바탕으로 둥근 하얀 색 안경테는 더욱 하얗게 반짝이는 게 마치 새의 눈동자처럼 보인다.

- 선생님도 잘 지내셨지요? 지난 봄에 못 본, 새를 그린 새 작품들이네요. 이 쪽의 새는 눈빛이 무섭고, 저 쪽 그림 속에는 순둥이 눈빛이고…. 저는 '새' 하면 히치콕 감독의 '새'가 먼저 생각나서 그런지 좀 무섭던데, 선생님이 그리신 새는 어떤 종류의 새인가요?
  
<좌>하얀 밤.  90x64cm.  한지에 수묵.  2018.  <우> 새.  116x80cm.  한지에 수묵.  2018.
 <좌>하얀 밤. 90x64cm. 한지에 수묵. 2018. <우> 새. 116x80cm. 한지에 수묵. 2018.
ⓒ 김미진

관련사진보기

 
"까마귀. 지난 봄 제주도 4·3항쟁 전시회가 있어서 다녀왔는데 제주도 까마귀는 여기와는 다르게 상당히 크더라구요. 어우, 눈이 반짝반짝하고, 날개를 펴고 날으는 모습이 무슨 독수리 같아, 독수리. 그 모습이 마음에 남아 있었는데 마침 또 대한항공 조양호 회장의 기사를 보니 화가 나서 가슴이 울컥 하면서 그리고 싶더라고요. 승무원들이랑 한진그룹 직원들 이야기 들으면서 화도 많이 나고, 가슴이 많이 아팠어요.

저 쪽 그림, 까마귀떼들이 비행기를 덮치고 있잖아요. 대한항공 조양호 회장의 갑질 사태 기사들을 읽으면서 진짜 주인은 누굴까? 내 생각에는 대한항공에서 일하는 승무원들이 주인인데 그 주인을 무시하고 행해진 갑질들에 화가 나더라구요. 화가가 화가 나면 어떻게 해? 그려야지! 그래서 그린 거지요. 작은 새 한 마리가 저 거대한 대한항공의 엔진을 멈추게 할 수 있는거거든. 상징이 아니라 진짜로도 그렇잖아요. 나는 그냥 우리가 저 새 같아. 아직은 비행기에게 하늘의 주인 자리를 내어주고는 있지만, 그들이(승무원들)이 주인이고, 우리가 주인인 거잖어. 어쩌면 한진그룹 사태가 재벌 개혁의 첫 단추가 될 수도 있겠다 생각했어요."
  
새. 370x122cm.  한지에 수묵.  2018
 새. 370x122cm. 한지에 수묵. 2018
ⓒ 김미진

관련사진보기

 
그림을 들여다 보고 있으려니 나도 한 마리의 새가 되어 그림 속으로 들어간다. 그림 속의 새들과 어울려 거대한 비행기를 감싸고 있다. 달을 향해 날아오르기도 한다. 정물처럼 나뭇가지에 앉아있거나, 피눈물을 흘리는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기도 하다.

- 선생님 이번 전시회의 작품들 중에서 어떤 작품이 선생님을 제일 힘들게 했을까요?
"자화상이 제일 힘들었죠. 저쪽에 걸린 저 그림인데 합판에 종이를 붙여놓고 붓을 두 달 동안 못들었어요. 나 자신을 그린다는 것이 표정이나 모습뿐 아니라 내가 사는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가 묻어나도록, 또 나이면서도 내가 아닌 듯한, 나를 좀 더 객관화 시켜보고도 싶었어요."
  
<좌> 자화상.  122x185cmx3.  한지에 수묵.  2018.  <우> 붉은 하늘.  한지에 수묵.  2018.
 <좌> 자화상. 122x185cmx3. 한지에 수묵. 2018. <우> 붉은 하늘. 한지에 수묵. 2018.
ⓒ 김미진

관련사진보기

 
무엇을 바라보고 있었을까?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을까? 촛불시민혁명을 통해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고 곧 통일이라도 될 듯한 그림들이 넘칠 때, 그는 아직도 사람 밑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다. 그래서 아직 까마귀의 성난 눈동자를, 슬픈 눈동자를, 순한 눈동자를 그리면서 밀려 나 있는 진짜 주인들을 생각에 가슴 아파하는지도 모른다.

- 선생님 저쪽에 걸린 자화상 세 점은 빨강, 파랑, 흑백으로 그려서 그런지 자꾸 프랑스 국기의 자유, 평등, 박애가 생각이 나요.
"맞아, 맞아요. 다른 분들도 저 그림 보면 꼭 프랑스 국기 같대. 색깔만 보면 그렇는데 자세히 보면 같은 사진을 놓고 그린 거예요. 그런데 그릴 때의 느낌이 달라서 나에게는 울고 있는 파랑, 분노하고 있는 하양, 우울한 빨강, 뭐 그렇는데 의도한 건 아니에요. 보시는 분들은 또 다르게 느낄지도 몰라요. 자기 기분에 따라서 다르게 느껴지기도 하는 거니까."

- 참, 인물화 중에 선생님 말고 다른 한 분이 계시던데 어떤 분이세요?
 "후배, 민용기라고 아주 오래동안 친하게 지내온 후배인데 그 날 앉아있는 폼이 딱 그리고 싶은 자세로 있어서 한 번 그려봤죠. 당구도 같이 치고, 밥도 자주 같이 먹고, 또 제게 일이 있으면 잘 도와주는 친구예요."
  
<좌> 자화상.  122x185cm.  한지에 수묵.  2018.  <우>연서.  64x90cm.  한지에 수묵.  2018.
 <좌> 자화상. 122x185cm. 한지에 수묵. 2018. <우>연서. 64x90cm. 한지에 수묵. 2018.
ⓒ 김미진

관련사진보기

 
문득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는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라는 시가 생각이 난다. 참 자세히도 보고, 오래 보았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도록 그림이 참 따뜻하다. 하얀 안경테 너머로 허 작가의 눈을 훔쳐본다. 사람이 사람을 바라보는 눈이, 사람이 다른 생명체를 바라보는 눈이 저러햐야 하지 않을까?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인데도 불구하고 사람 위에 있고 싶은 사람들의 눈은, 마음은 그렇지 않다.

전시장이 북적이기 시작하고 찾아온 객들이 허달용 작가를 사람들이 찾는다. 참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허작가가 살아 온 모습 그대로를 보아주는 눈들이, 그 눈들 앞에서 사는 모습 그대로 보여주는 허작가의 뒷모습을 본다. 나는 어떤 눈을 가졌을까? 나의 눈동자는 어떤 슬픔들과 연대를 준비하고 있을까? 문득 겨드랑이가 가려워지면서 까만 깃이 돋는 걸 보는 듯하다. 전시장 가득 까마귀들이 들어서고 있다.

태그:#허달용 개인전, #새, #양림미술관, #민중수묵화, #민미협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책 읽고, 글 쓰고, 재밌게 놀고!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